이영표, 유럽 이적시장에서 카오스의 핵으로 떠오르다.

최용일200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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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AS 로마로 옮길 게 확실시됐던 이영표가 막판에 토트넘 잔류 쪽으로 마음을 바꾸면서 1일 문을 닫는 유럽 축구 이적시장이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유럽의 프로구단들은 선수를 내다팔고 받은 이적료로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는 시스템인데, 이적 고리의 한쪽이 깨지면서 연쇄적으로 선수 거래가 무산된 것이다. 이영표는 이적시장의 질서를 무너뜨린 카오스의 핵이 된 것이다.

 

이영표, 유럽 이적시장에서 카오스의 핵으로 떠오르다.

 

과정 자체로만 따진다면 토튼햄과 AS로마, 두 구단은 이영표 모두 이적을 위한 수순도 원칙대로 밟았다. 물론 이영표의 행동은 1996년 발효된 보스만법에 의해 불문율처럼 적용되고 있는 선수본인의 의지에 해당한다. ‘보스만법’은 1990년 벨기에 축구선수 장 마르크 보스만이 이적을 시도하다 구단의 동의없이 이적할 수 없다는 규정에 묶이자 5년여의 법적 투쟁끝에 만들어졌으며, 유럽사법재판소는 선수의 직업선택 자유를 법률적으로 보장했고 FIFA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선수 이적의 준거 틀이다.


이영표 측 계약 대행사인 지쎈은 이영표의 AS로마 이적 건은 최근 닷새 급박하게 이뤄진 것이라는 말도 했지만 AS 로마가 이영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게 알려진 건 올해 1월이었고, 이영표 스스로도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긴급한 이적 상황에서 이영표 선수 측이 의견을 표하지 못했거나 특별히 불리한 입장에 처했던 것도 아니다. 연봉문제나 계약조건 문제라면 그 사실을 발표했을 것이고 그랬어야 옳다. AS 로마 구단이 협상 과정에는 이견이 없었음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강경 대처하겠다고 주장하자 지쎈이 "선수 개인적 사정으로 이적이 무산됐다"는 발표를 한 것을 보더라도 계약조건의 문제는 아닐 듯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남는 이유는 결국 이영표가 개인적인 이유로 결심을 돌렸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선수가 개인적인 사정을 들어 이적을 거부했다면 본인의 설명 외에는 명쾌한 답이 없기 때문에 이영표가 밝힌 개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이적협상의 시작이 뜻밖이었고 끝도 뜬금없었던 데다, 당사자인 이영표는 하루 동안 널뛰듯 예스와 노를 번갈아 외친 것인지 축구팬들은 의아해 했다.


AS 로마 구단측은 종교적인 이유로 이영표가 이적을 거부했다고 밝힘에 따라 사건이 이상한 방향을 꼬여갔기 때문이다. 로마의 다니엘레 프라데 단장은 지난 31일 이탈리아의 한 라디오 방송과 가진 인터뷰서 "토트넘과의 협상은 완벽하게 이뤄졌지만 최종 단계에서 이영표가 종교적인 이유로 이적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로마 일간지 '일 로마니스타'는 한 라디오 방송을 인용해 이영표가 종교적 성향 차이로 AS 로마로 이적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평소 독실한 신앙인(기독교)인 이영표가 종교적 신념 때문에 로마행을 고사했다고 그 배경까지 밝혔다.


이러한 이영표의 이적거부가 종교문제라면 사태가 의외로 민감할 것이라는 점 때문에 지쎈 측은 "종교문제 때문은 아니고 여러 상황을 두루 고려한 결정"라고 일축하면서 시즌 개막 이후 팀을 옮기게 될 경우 현지 적응 문제가 걸리고 가족과 주변의 만류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모든 궁금증은 31일 오후 귀국하는 이영표의 입을 통해서만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팬들이나 관계자들 모두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영표의 귀국 기자회견에서 의혹이 해명되기를 기대했으나, 마음이 바뀐 이유를 설명한 부분은 너무도 추상적이어서 구체적인 진실을 알려주지는 못하는 것이었다. 종교적인 문제는 죽어도 아니고 지쎈 측이 밝혔던 자녀문제도 아니고 가족문제도 아니라고 한다. 현지적응 문제라는 것도 이미 해외 진출 5년째를 맞는 프로선수임을 감안할 때 설명이 부족하다. 그런 걸 다 제외하고 보니 개인적인 사정이라는 게 떠오르질 않고 각 언론들은 의혹, 의문 등의 단어로 도배를 하는 것이다. 결코 상업적 의혹 제기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여기서 흥미롭게 지켜볼 점은 이영표의 이적 거부가 유럽시장에서 향후 한국선수들에게 미칠 파장인 것이다.

 


첫째, 스포츠와 종교의 양립에 관한 문제다. 종교적인 문제로 이적을 거부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보다는 과연 스포츠 선수들의 지나친 종교성이 주는 효과가 해당종교 입장에서 보더라도 순기능만 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AS로마 측 주장에 대해 유럽팬들은 "불교 신앙자라면 바티칸이 있는 곳을 찾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나도 기독교 신자이지만 AS로마행을 거절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등의 말로 비아냥거렸다. 이영표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고 이탈리아는 가톨릭 국가라는 점 때문에 이탈리아 행을 거부했다면 그야말로 코메디가 아닐 수 없다.


개신교와 카톨릭의 관계가 카톨릭과 불교의 관계만도 못한(?) 한국 상황을 유럽 현지 축구팬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지 우리도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축구, 배구, 야구 심지어는 복싱에서조차 이기면 관중이고 응원단이고 마다하고 꿇어 앉아 버리는 현상, 심지어는 지난번 월드컵 대회 때와 같이 경기 후 관례로 되어 있는 유니폼 교환을 하자는 상대 선수를 외면한 채 삼삼오오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에서 어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도 불경스러운 일일까?


두 번째는 인종차별에 관한 문제와 대응방안이다. 종교 문제로 씹히고 있는 이영표 선수에게 이적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진정한 프로선수에 걸 맞는 상당한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AS 로마에서 이영표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왔다. 한 언론은 "AS로마측에서 이영표 선수의 나이를 이유로 연봉을 조금 더 주는 대신 계약기간을 줄이자는 조건을 들고 나온 것 같다. 다년계약이 아닌 단년계약을 하게 되면 선수생명이 단축될 가능성이 큰데 이영표 선수가 이를 우려해 막판에 생각을 바꾼 것 같다"고 보도했다.


실제 이 같은 분석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31일 기자회견에서 이영표 선수는 "AS 로마는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세계 최고의 팀입니다. 축구 선수 입장이라면 당연히 가야겠지만 내 삶과 미래를 생각해 가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평생 축구를 하는 게 아니라 축구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생각한다면 AS 로마로 가야 했지만 삶 전체를 생각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라는 말들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기돼온 의문은 이 말로 풀리지 않고 더 꼬여갔다. 이영표는 축구를 그만둔 뒤 무엇을 할지, 개인적인 사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밝히지 않은 채 계속해서 미래와 개인적인 사정을 입에 올렸기 때문이다.


그런 인터뷰 내용을 놓고 많은 언론들이 논란을 벌였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는데, 짧은 단년 계약으로 위험 부담이 컸고, 그래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이 나오고보니 그런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 듯해 보인다. 또 다른 소식통도 "유럽리그는 젊고 유망한 선수들이 넘쳐난다는 점을 들어 AS로마측이 이영표 선수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수 있다"고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이기 때문에 동양인인 이영표 선수의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나이를 트집 잡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안정환은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골든골을 넣었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페루자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온 적이 있다. AS로마가 명문팀이기에 끝까지 참으려 했지만 자존심을 너무 건드려 이영표가 이적을 철회했다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세 번째는 이영표의 이적거부가 몰고올 후폭풍에 관한 것이다. 이적 거부로 인해 소속 구단의 정비전략을 뒤죽박죽으로 만든데다 팀내의 입지가 약화됐기 때문에 이영표 자신이 직접 피해자가 될 것이며, 한국 선수들의 유럽 이적도 더 어려워 질 것이라는 책임론도 일고 있다. 이번 사태는 향후 한국 선수들의 해외진출에도 막대한 악영향을 미칠 게 확실하다. 이미 월드컵 무대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선수에게도 공공연히 테스트를 요구할 정도로 한국 선수들을 믿지 못했던 유럽 구단들은 이번 파문을 계기로 문턱을 더욱 높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분명 이러한 문제들은 이영표가 변덕을 부렸기 때문에 나타난 것임에 틀림없고 그 점에 대해서 비난이 거세다. 이영표의 행동이 이성적으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세상 일이 모두 이성적인 결정에 의해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며 이해해 주자는 사람도 있다. 이영표의 갑작스런 의사 결정이 많은 사람을 당황스럽게 했지만 소동은 이제 끝이 났으니 더 따지고 왈가왈부를 해봐야 무엇 하느냐,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하는 소모적인 논쟁은 이것으로 끝내자고 한다. 그 책임을 오롯히 지는 사람은 이영표를 비난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자신이니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점에 대해서까지 이영표 자신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이적 파동으로 인해 토튼햄 내에서 예전과 같은 입지를 이어갈 수 있을 지, 구단의 구조조정 작업에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 그에 대해 갖게 될 좋지 않은 이미지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했다”며 이영표도 모든 것을 감내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그럴 듯한 주장이다. 본인의사가 물론 존중되어야 하지만 룰에 따라 본인까지 포함된 이적 협상을 했고 본인도 원하던 팀이라는 점 때문에 오해가 있음에도 계약조건이나 연봉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뚜렷한 이유는 대지 못하니 이영표의 결정이 많은 사람을 당황스럽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프로선수라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잠재적, 현재적 고객이며 관계자들인 것이다. 본의든 아니든 종교문제까지 불거져 나왔는데, 기독교의 본산지인 유럽인들조차 이해하지 못한다면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영표는 “내 삶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고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말로 이적거부에 대한 이유를 속 시원히 밝히지 않으면서 프라이버시 문제로 몰아갔다. 그러면서도 영국에서의 생활에 애착을 보이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전혀 프로선수답지 못한 처신이며, 그 탓에 빚어지는 오해는 바로 그의 몫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영표가 마음을 바꾸지 않은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여하튼 비난까지는 아니더라도 비판의 대상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영표 선수 개인적으로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결국 로마로 가지 않은 데 대한 비난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