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장용선200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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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1984년 LA올림픽이었으니까 벌써 18, 19년 돼가네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까지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제 인생에 있어소 잊을 수 없는 순간이죠. 대회 첫 금메달이었거든요. 레슬링에서는 대한민국 역사상 두 번쨰의 값진 메달이었습니다.

 

 1984년 TV를 통해 김원기 선수의 금메달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감격에 가득 찬 얼굴로 메달을 목에 걸고 매트 위를 뛰었다. 당시 사람들은 모두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리고 한때의 스타처럼 순간 빛을 발했을 뿐, 지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는 사라져버렸다.

 

 솔직히 전 금메달 유망주가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시합을 다흘 앞두고 발목 부상을 당했거든요. 그때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조국과 제 자신의 꿈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부상을 당하다니. 부상당하면 소외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요. 그리고 대진표를 뽑았는데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 은메달을 땄던 선수드이 모두 제가 속한 조에 있었던 거예요. 발목 부상에다 불리한 대진운까지 겹치니 그야말로 암담했죠.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업섰습니다. 그리고 한 경기 한 경기 이겨나갔죠.

 경기 이틀째 되던 날, 운좋게도 4회전은 부전승으로 올라갔어요. 하지만 5회전에서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 선수를 누르고 올라온 일본 선수와 맞붙게 되었죠. 그때 이런 마음이 들더군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이기겠다. 어떻게 해서든 이기겠다."

 죽기 살기로 경기에 임했는데 어느새 '땡' 하고 종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졌다'는 생각에 침울해했었는데 심판이 제 손을 들었습니다. 정말 날아간다는 기분이 이런 건 줄 예전엔 몰랐습니다.

 그리고 대회 사흘째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던 스웨덴 선수와 결승전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발복 부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말 젖먹던 힘까지 쏟아냈어요. 가까스로 3 대 3 동점을 만들고 결국 큰 점수차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며 우리는 그때의 모습을 떠올릴 있었다. 모두가 고대하던 대회 첫 금메달, 우리도 그와 함께 정말로 행복한 순간을 맞지 않았던가.

 

 취재진들이 사인을 해달라고 몰려들었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때 사인을 어덯게 하는지 몰랐거든요.

 "사인을 어떻게 하죠?"

 그랬더니 이름만 쓰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이번에는 인터뷰를 하래요. 사인도 모르는데 인터뷰는 알겠습니까? 그래서 또 물었죠.

 "인터뷰는 어떻게 하죠?"

 할 말 없으면 감독님이 잘 가르쳐서 메달을 땄다고 말하라더군요.

그런데 그 말은 안나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 선수, 어떻게 금메달을 따게 되었습니까?"

 "어마니가 보고 싶습니다."

 전 금메달 유망주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인이나 인터뷰도 준비하지 못했어요. 체력이나 기술적 조건이 세계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거든요. 그래서 사인이나 인터뷰는 저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가난과 홀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이유로 시골 학교를 선택했던 고등학교 시절. 그래도 대학은 제 마음 속의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동만 잘 하면 대학은 물론 금메달에다 좋은 여자도 만날 수 있다는 감독님의 말씀에 레슬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골에서 지게나 지고 담배잎이나 따던 촌놈의 체력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월등하게 떨어졌어요.

 그렇게 운동을 한 지 3개월 후, 함평에서 열린 전국체전 예선전이 있던 날,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보기좋게 작살나고 말았습니다. 후로도 여러 번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 했어요.

 그럴 때마다 몇 번이고 산이며 운동장을 내달렸습니다. 그리고 학년을 거듭할수록 마음을 다잡고 경기에 임하게 되었죠. 그 결과 고3이 되어서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되었습니다.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결과였습니다. 그럴수록 자신감과 자긍심이 좋은 성적을 만들었고, 또 다른 활력으로 희망을 갖게 되었던 겁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도 마찬가지예요. 주로 구기 종목이나 프로 경기가 있는 종목들은 나름대로 국민들의 호응이 많잖아요. 하지만 레슬링이나 투기 종목들은 인기가 없습니다. 하지만 훌련이나 연습만큼은 그 어떤 운동보다도 고되거든요. 한 예로 레슬링 선수들 대부분은 귀가 불구입니다. 살과 살이 맞닿을 때마다 가장 쉽게 파열되는 부분이 귀거든요. 그러기를 수십 번 반복하면 귀는 자연히 딱딱하게 굳어갑니다. 제 귀 역시 마찬가지구요. 귀가 붓지 않은 레슬링 선수는 레슬링 선수가 아니죠.

 

 그의 얼굴이 눈에 띄게 상기되어 있었다. 부산 아시안게임 7일 전, 태릉 선수촌에서 막바지 훈련에 여념이 없는 후배들과 만나는 자리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고단한 훈련과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할 후배들에게 그는 해줄 말이 누구보다도 많았다.

 

 운동 끝나고 1주일에 한 번꼴로 시골집에 가면 어머니는 언제나 그랬듯 수수밭, 콩밭 매가면서 모은 돈을 손에 쥐어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한테 돼지고기 한 근도 못 사주고 아버지까지 일찍 돌아가셨으니....... 너한테 해준것도 없이 죄짓는 기분이다."

 그런 어머니 손을 매만지며 어떻게든 이걸 메달로 연결해야겠다, 이것만이 내가 살길이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달렸던 게 목표가 됐고 결국 결실을 맺었던 것 같아요.

 솔직히 유망주도 아니었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인정받기 시작하니까 믿어지지 않더라구요. 벌써 그것이 18, 19년 전의 일입니다. 저도 이곳 태릉 선수촌에서의 훈련을 바탕으로 그 큰 영광을 누릴 수가 있었어요.

 지금이야 이곳을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의 현장이라 말하지만 그 당시엔 너무 힘들어서 철창없는 감옥이라고 생각했어요. 걸어서 두 시간 되는 불암산을 10kg 재킷을 걸치고 30분 만에 전력질주해서 올라갑니다. 그러면 땀범벅, 눈물범벅으로 정상에 오르자마자 쓰러지죠. 불암산 정상에서 고함이라도 지르기 위해 일어나면 별이 보입니다. 그것도 잠시, 진달래 만발한 산 전경을 보면 이내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그제야 알게 되죠. 길고 긴 시련 뒤에는 예쁜 꽃촌지와 맛있는 약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마치 반짝거리는 금메달처럼 말이죠.

 정말 고되게 훈련했습니다. 훈련은 물론이거니와 선배들의 빨래까지 담당해야 했으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안마는 물론 선배들의 잔심부름까지........ 남몰래 울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더욱더 괴로웠던 것은 국가대표 선수가 됐어도 실업팀에서 뽑아주지 않으면 생활이 힘들다는 사실이었어요. 그래서 국군 체육부대에 지원했습니다.

 군대를 다녀와서 체육 선생님 되고 돈 벌어서 어머니 호강시켜드려야지, 그것이 단지 저의 목표였습니다. 그 시절 남몰래 울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 생각을 했어요. 여러분처럼 말입니다.

 

 어린 선수들은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하는 표정이었다. 어머니라는 말에 숙연해진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예전에 그랬듯이 이렇게 큰 대회를 앞에 두면 선수들은 한결같이 어머니를 떠올린다고 한다. 어머니는 모든 사람에게 끊임없이 샘솟는 힘을 주는 존재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LA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었습니다. 메달을 목에 걸고 숙소에 들어오는데 하형주 선수가 묻더라구요.

 "금메달 어떻게 땃어요?"

 "죽기를 각오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소마. 지도 금메달 따오겠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유도, 양궁, 복싱에서도 금메달이 나오더라구요. 제 개인적으로는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이지만 그때의 영광은 모든 국민들이 힘을 모아주셨기에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제 몸은 제 것이지만 마음대로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흔히들 부부간은 인륜이고 부모 자식간은 천륜이라고 얘기하죠.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뜻인 천륜에 의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저는 태어나면서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나 이제 태어났다는 신호였죠. 그리고 부모님께선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왼쪽 가슴에 달았습니다.

 운동을 하고 국가대표가 되면서 제 왼쪽 가슴에는 이름 대신 태극마크가 달려 있었습니다. 왼쪽 가슴 깊숙이 무엇이 있죠? 바로 심장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하루도 멈추지 않는 게 심장입니다. 여러분, 심장멈추면 죽게 되죠? 심장은 나를 살리기 위해서, 내중심이 돼주기 위해서, 내 마음이 돼주기 위해서 하루도 쉬지 않고 뛰고 있습니다.

 만약 인생에 있어서 심장 같은 역학과 부속 같은 역할 중 선택하라고 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심장 같은 역할을 지목할 것입니다. 그것은 목표가 있는 삶을 뜻하는 것이니까요.

 무슨 일이든 고통이 따르지 않는 일은 없습니다. 그 고통을 이겨냈을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기 때문이죠.

 나 자신은 시간, 환경, 분위기에 따라서 수시로 변합니다.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굴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승리자가 됩니다.

 이제 곧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있으니 선수들 모두 초조하고 긴장될겁니다. 같은 연습과 훈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0.1퍼센트 차이로 메달을 목에 거느냐, 소외되느냐 판가름나기 때문이죠.

 자신의 실력과는 별개로 대회를 치를 때마다 느끼는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겨내는 것이 진정한 스포츠인이 아닐까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만 진정한 승리자이기 때문이죠. 목표를 가지고 정진하세요. 그러면 이미 금메달을 목에 건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인생의 금메달리스트, 김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