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학교에서는 두발과 체벌 등으로 시끄럽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6개월 정도가 지난 나지만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사실이다.
두발은 어느 정도 언론에서 관심이 쉬쉬해진 상태지만 최근에는 체벌에 관한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그 이유에는 체벌 금지 법제화가 가장 큰 목을 하고 있는데 끊임없이 과잉체벌 논란 기사들이 가시화되고 있기 떄문이다. 그 기사의 달린 댓글들을 보면 학생이 잘못이 있을 때에는 처벌한게 당연한데 왜 그러냐는 듯한 글들도 상당수가 있다. 하지만 난 여기서 의문점을 제시한다. 그럼 그 학생들은 계속적인 일탈을 하는가? 물론 이점은 대한민국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가 자유를 인정해주고 있는 수많은 국가들도 가지고 있는 공통된 부분이지만 난 대한민국으로 한정해 생각해보고 싶다.
첫째, 왜 지각을 하고, 담배를 피고, 무단 결석 등의 일탈이 생기고 있는가?
나는 학생시절 거의 지각을 하지 않았다. 스스로가 약속을 어김에 대해 약간 결벽증에도 가까운 거부감이 있었기 떄문이다. 하지만 수업시간 종이 치고 나서야 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언제나 정기적으로 있다. 보면 언제나 같은 아이다. 이것을 보고 선생님들과 어른들은 말한다. "역시 늦은 학생이 늦는거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 학생에 대해서는 얼마나 생각해 보았을까? 난 이렇게 묻고 싶다. 학교가 재밌는 장소라면 왜 늦을까? 나도 내 성격상의 문제로 언제나 일찍오지만 와야한다는 의무감이 아니라면 전혀오고 싶지 않는데... 사람들 중에는 의무감이 적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걸 낙인찍어서는 안된다. 그걸 개선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학교사회는 그걸 체벌과 학점 감점등으로 하고 있다. 나는 그보다 학교가 오고 싶은 장소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19년이란 짧은 세월을 살았지만 그 세월 대부분을 학생으로써 살았고 그 기억이 아직 많이 식지 않았기에 난 분명 말할 수 있다. 나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서는 늦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말이다. 학생들의 일탈은 반드시 학생이 혼자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도 책임이 있다는 점을 파악해야한다.
둘째, 그럼 어째서 학교는 재미가 없는 것일까? 나만의 생각은 아닐까? 학교는 목적이 배우는 장소인데?
나의 주장은 얼토당토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학교는 배움을 목적으로 하는 장소, 재미를 추구하는 장소가 아니라 대학 진학을 위해 보다 나은 사회생활 지식을 받기 위해 있는 장소가 아니냐고. 분명 우리들의 윗윗대 세대에서는 학교는 그럴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 맞다. 지식이란 것이 전무한 시절,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를 먹고 살기 위해 공부를 하셨다. 전혀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머리 속에 주입하고 사회에서 사용하는 학습을 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만이라고 모든 세계를 돌아보지 않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한국 사람들은 변화한 것을 매우 곤란해하는 경우가 있다. 나쁜 말로 하자면 받은 만큼 되돌려 주고 싶어하는 경양이 너무 크다. 우린 이런 식으로 교육 받아왔고 성공했기 때문에 너희들도 이렇게 받아야 한다. 착각이다. 시대는 이미 달라졌다. 인터넷이 활성화 됨으로써 지식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얻던 시절과는 달라진 것이다. 칭찬을 하든, 흐리뭉덩하든, 욕으로만 하든, 어른들의 시절보단 비판능력을 발달해가고 있다. 그것에 맞춰 학교는 변해가야 하는 것이다. 이젠 배움만이 목적이 아니라 그 배움의 주체인 학생의 적성, 소질과 꿈을 생각해야 하는 세대가 도래한 것이다. 학생에게 가르침에 주체는 하나만 있는게 아니다. 가정이 있고, 학원이 있고, 개인과외도 있다. 하지만 학교는 배움의 주체가 학생 하나뿐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에게는 학교를 등외시해도 문제가 없음의 문제가 생긴다. 어차피 공부할거면 때리지도 않고 핵심만 가르치는 학원이 있는데 내가 학교에 집중해야 하는가? 여긴 이제 어차피 친구나 만나는 사교장이다라는 사고를 가질 수도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위까진 학교가 시대 흐름을 타지 못하면서 생긴 재미없음의 문제였고, 사회적인 문제도 있다. 정부는 언제나 사교육을 걱정하면서도 지원하고 있는 것 같다는 나만의 착각을 가지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때문이다. 정부는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서열화를 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능이 가장 대학 서열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듯하다. 너무나도 뻔히 들어나 있어서 무시하는 것이가? 수능점수로 가는 대학이 달라진다. 너무 당연한 서열화가 아닌가! 그런데도 수능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현실성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갑자기 대학진학 체계를 무너뜨리면 교육계 전체가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안으로 내신과 논술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 역시 그것들도 수준으로 대학들을 서열화하고 있다. 수능은 학교를 재미없게 만드는 것중에 일등공신이다. 학교에 제일 목적은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다. 학생들의 꿈, 취미와 원하는 것은 모두 무시한 채 수능에만 목매달게 만들고, 학부모들조차 그것에 목매달게해 학교에 공부를 안 가르치면 압력을 가하게 만들었다. 수능은 분명 모두를 [평등]하게 비교할 수 있는 수단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 자질을 무시한 그 학생의 암기력만을 테스트하는 수단이다. 경영학을 하기 위해, 의사가 되기 위해, 공학을 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 지식은 모두 무시한 채 암기력만을 테스트하고 있는 것이다. 암기는 단순하면서도 인간을 매우 지치게 한다. 그 반복되는 과정은 학생들에게 일탈을 꿈꾸게 하는 필요충분의 요소이다. 의사가 된 사람이 나중에 시를 읊던가? 경영학자가 고전문학을 해석하던가? 인문학도가 복잡한 수학 계산을 하던가? 물론 기초지식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영수사과 교과들은 이미 한 학생에게 필요이상의 지식을 요구하고 있다.
셋째, 그렇다면 글을 쓰고 있는 이의 대책은 무엇인가? 비판만 하고 대책이 없다면 무책임하지 않은가?
지금부터 말하는 부분은 수많은 학자들이 논의하고 생각하고 토론해야 하는 부분이고 나많은 생각을 적기에 비판을 많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의견으로 생각하고 발전의 토대가 될 수 있는 것이 될 수도 있다면 좋겠다.
우리나라 수학능력시험은 매년 난이도에 대해 비평을 받는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같은 내용의 교과들은 매년 작년에는 나오지 않은 전혀 새로운 내용으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사교육에서 작년에 나온 문제를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년에는 전혀 다른 문제를 내야지 앞서 시험친 이들과 형평성을 맞출 수 있다. 그러다보니 해가 지나면 지날 수록 문제들은 핵심을 벗어나는 경향이 강하다. 흔히들 말한다. '세계의 대학은 들어가기 쉽지만 나오기 어렵고, 한국의 대학은 들어가기는 어렵지만 나오기 쉽다' 우리가 따르고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미국의 영향이 크다. SAT라는 시험체계에서 가져왔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미국에는 SAT만으로 대학의 길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SAT가 높을 수록 유리한 점은 많으나 그것이 아니더라도 하버드, 예일, 아이비리그 등에 들어갈 다른 길이 많이 있다. 물론 SAT에서도 기본적으로 받아야 할 점수가 있겠지만. 그리고 최근 일본에서는 대한별센터시험 방식을 하고 있다. 대학별로 원하는 과목한도 내에서만 공부를 하는 방식이다. 물론 일본 내부에서도 필요과목외에는 공부를 하지않아 학력저하의 우려를 표시하는 방식이지만 내 방식으로 개선하자면 우리나라는 국영수사과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니 각 과목의 만점을 100점으로 두면 기본적으로 50점을 넘는 학생들 중에서 특정과목을 90점이상 이수 등의 방법으로 하는 등 충분한 개선의 여지가 있는 입시정책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교육평준화라는 이름아래 이러한 본고사를 막고 있지만 [평등]과 [형평]은 엄연히 구분해야 된다고 본다. 능력의 차이없이 모두 똑같은 출발선에 두는 [평등]이 아니라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과 대등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형평]이 있어야 한다고. 그걸 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정부란걸. 프랑스에서 수능을 대체하고 있는 시험이 바칼로레아라는 논술시험이다. 모두가 시험장에서 공통된 하나의 주제를 받고 그외 관련될 자신의 주장을 써야한다. 주장을 함에 있어서 자신의 읽고 듣고 배웠었던 저명한 인물들의 논문, 책, 문구 등에서 인용을 하거나, 주장의 옳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므로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것을 자연스럽게 습관화시키는 좋은 입시제도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러한 글에 대해 평가를 할 철학자들이 부족으로 이러한 시험제도가 채택될 수 없다는 이야기많고 사실이다. 먹고 사는게 중요하게 받아들여 지는 우리 사회 현실에서는 철학이란 배부른 자들이 하는 소리다. 그러나 해외에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철학을 가진 경우가 많고, 경영학에서도 회사를 이끌려면 리더나 CEO는 특별한 경영철학을 가져야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남들의 것만 들여오는 것만이 대안이 아닌게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갑자기 새로운 의견을 내는 것도 이상한 일이고 세계에서 검증받고 있는 새로운 입시제도를 들여와 과거의 입시제도를 바꾸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더욱 좋은 방법이 있다면 현재의 수능제도에 학생의 자유, 적성, 취미, 개성 등이 포함될 수 있는 제도로 개선하는 것이다. 대학은 들어오는 학생의 객관적인 자료를 원하지만 사회는 창의성을 지닌 인재를 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적자면 학교라는 장소가 초등학생시절에는 나(!)에겐 무척 즐거운 장소였다. 숙제를 하지 않는다고 종아리를 많거나 하기보단 꿀밤한 대 살짝 많는 경우가 많았고 선생님들이 점심시간에 반아이들과 같이 점심을 먹다가 반찬을 나눠먹기도 하고, 한 담임 선생님은 체육관 시설을 담당했는데 여름에 폭우로 산으로 갈려던 야영을 학교에서 했는데 아이들이 덥다고 하니까 서늘한 체육관에 딴 반들 모르게 몰래 재워주시고 하던. 물론 그시절에도 과잉체벌 논란을 받을 만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 어쩌면 나만 운좋게 행복한 시절을 보낸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우리들을 잘 돌봐주시는 학교의 부모님과 같은 존재였다. 물론 우리 다음 세대들부터는 학원이다, 뭐다 바뻐진 경우가 많아진것 같지만 나의 20살인 나의 어린 시절까지도 친구들과 학원걱정없이 놀이터에서 놀고 산을 아지트삼아 놀았다.(고향은 시골은 아니고 대구다.)그러나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학원에 얽매이고 선생님은 공부만은 외치는 나로써는 안타까운 모습만을 보이게 되고 그분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학생들의 성공을 그들의 기쁨처럼 느끼시니까 공부하라 외치시는 걸꺼다. 중요한 것은 난 내가 어린 시절 기억하고 있던 가고 싶던 학교가 될 수 없을까하는 것이다. 지각한다고 때리지않고... 아니 지각해야될 이유가 없고, 내가 하고 싶은 꿈에 열정을 담을 수 있는 장소. 학교는 그런 장소로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하는 어느 20살 청년이 이상론이었다.
학교라는 장소는 근본적으로 바뀌어야한다.
대한민국에는 현재 초중고등학교가 없다. 학교한 이름을 빌린 군대식 학습소만 존재한다.
아직도 학교에서는 두발과 체벌 등으로 시끄럽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6개월 정도가 지난 나지만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사실이다.
두발은 어느 정도 언론에서 관심이 쉬쉬해진 상태지만 최근에는 체벌에 관한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그 이유에는 체벌 금지 법제화가 가장 큰 목을 하고 있는데 끊임없이 과잉체벌 논란 기사들이 가시화되고 있기 떄문이다. 그 기사의 달린 댓글들을 보면 학생이 잘못이 있을 때에는 처벌한게 당연한데 왜 그러냐는 듯한 글들도 상당수가 있다. 하지만 난 여기서 의문점을 제시한다. 그럼 그 학생들은 계속적인 일탈을 하는가? 물론 이점은 대한민국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가 자유를 인정해주고 있는 수많은 국가들도 가지고 있는 공통된 부분이지만 난 대한민국으로 한정해 생각해보고 싶다.
첫째, 왜 지각을 하고, 담배를 피고, 무단 결석 등의 일탈이 생기고 있는가?
나는 학생시절 거의 지각을 하지 않았다. 스스로가 약속을 어김에 대해 약간 결벽증에도 가까운 거부감이 있었기 떄문이다. 하지만 수업시간 종이 치고 나서야 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언제나 정기적으로 있다. 보면 언제나 같은 아이다. 이것을 보고 선생님들과 어른들은 말한다. "역시 늦은 학생이 늦는거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 학생에 대해서는 얼마나 생각해 보았을까? 난 이렇게 묻고 싶다. 학교가 재밌는 장소라면 왜 늦을까? 나도 내 성격상의 문제로 언제나 일찍오지만 와야한다는 의무감이 아니라면 전혀오고 싶지 않는데... 사람들 중에는 의무감이 적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걸 낙인찍어서는 안된다. 그걸 개선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학교사회는 그걸 체벌과 학점 감점등으로 하고 있다. 나는 그보다 학교가 오고 싶은 장소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19년이란 짧은 세월을 살았지만 그 세월 대부분을 학생으로써 살았고 그 기억이 아직 많이 식지 않았기에 난 분명 말할 수 있다. 나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서는 늦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말이다. 학생들의 일탈은 반드시 학생이 혼자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도 책임이 있다는 점을 파악해야한다.
둘째, 그럼 어째서 학교는 재미가 없는 것일까? 나만의 생각은 아닐까? 학교는 목적이 배우는 장소인데?
나의 주장은 얼토당토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학교는 배움을 목적으로 하는 장소, 재미를 추구하는 장소가 아니라 대학 진학을 위해 보다 나은 사회생활 지식을 받기 위해 있는 장소가 아니냐고. 분명 우리들의 윗윗대 세대에서는 학교는 그럴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 맞다. 지식이란 것이 전무한 시절,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를 먹고 살기 위해 공부를 하셨다. 전혀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머리 속에 주입하고 사회에서 사용하는 학습을 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만이라고 모든 세계를 돌아보지 않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한국 사람들은 변화한 것을 매우 곤란해하는 경우가 있다. 나쁜 말로 하자면 받은 만큼 되돌려 주고 싶어하는 경양이 너무 크다. 우린 이런 식으로 교육 받아왔고 성공했기 때문에 너희들도 이렇게 받아야 한다. 착각이다. 시대는 이미 달라졌다. 인터넷이 활성화 됨으로써 지식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얻던 시절과는 달라진 것이다. 칭찬을 하든, 흐리뭉덩하든, 욕으로만 하든, 어른들의 시절보단 비판능력을 발달해가고 있다. 그것에 맞춰 학교는 변해가야 하는 것이다. 이젠 배움만이 목적이 아니라 그 배움의 주체인 학생의 적성, 소질과 꿈을 생각해야 하는 세대가 도래한 것이다. 학생에게 가르침에 주체는 하나만 있는게 아니다. 가정이 있고, 학원이 있고, 개인과외도 있다. 하지만 학교는 배움의 주체가 학생 하나뿐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에게는 학교를 등외시해도 문제가 없음의 문제가 생긴다. 어차피 공부할거면 때리지도 않고 핵심만 가르치는 학원이 있는데 내가 학교에 집중해야 하는가? 여긴 이제 어차피 친구나 만나는 사교장이다라는 사고를 가질 수도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위까진 학교가 시대 흐름을 타지 못하면서 생긴 재미없음의 문제였고, 사회적인 문제도 있다. 정부는 언제나 사교육을 걱정하면서도 지원하고 있는 것 같다는 나만의 착각을 가지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때문이다. 정부는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서열화를 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능이 가장 대학 서열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듯하다. 너무나도 뻔히 들어나 있어서 무시하는 것이가? 수능점수로 가는 대학이 달라진다. 너무 당연한 서열화가 아닌가! 그런데도 수능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현실성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갑자기 대학진학 체계를 무너뜨리면 교육계 전체가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안으로 내신과 논술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 역시 그것들도 수준으로 대학들을 서열화하고 있다. 수능은 학교를 재미없게 만드는 것중에 일등공신이다. 학교에 제일 목적은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다. 학생들의 꿈, 취미와 원하는 것은 모두 무시한 채 수능에만 목매달게 만들고, 학부모들조차 그것에 목매달게해 학교에 공부를 안 가르치면 압력을 가하게 만들었다. 수능은 분명 모두를 [평등]하게 비교할 수 있는 수단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 자질을 무시한 그 학생의 암기력만을 테스트하는 수단이다. 경영학을 하기 위해, 의사가 되기 위해, 공학을 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 지식은 모두 무시한 채 암기력만을 테스트하고 있는 것이다. 암기는 단순하면서도 인간을 매우 지치게 한다. 그 반복되는 과정은 학생들에게 일탈을 꿈꾸게 하는 필요충분의 요소이다. 의사가 된 사람이 나중에 시를 읊던가? 경영학자가 고전문학을 해석하던가? 인문학도가 복잡한 수학 계산을 하던가? 물론 기초지식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영수사과 교과들은 이미 한 학생에게 필요이상의 지식을 요구하고 있다.
셋째, 그렇다면 글을 쓰고 있는 이의 대책은 무엇인가? 비판만 하고 대책이 없다면 무책임하지 않은가?
지금부터 말하는 부분은 수많은 학자들이 논의하고 생각하고 토론해야 하는 부분이고 나많은 생각을 적기에 비판을 많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의견으로 생각하고 발전의 토대가 될 수 있는 것이 될 수도 있다면 좋겠다.
우리나라 수학능력시험은 매년 난이도에 대해 비평을 받는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같은 내용의 교과들은 매년 작년에는 나오지 않은 전혀 새로운 내용으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사교육에서 작년에 나온 문제를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년에는 전혀 다른 문제를 내야지 앞서 시험친 이들과 형평성을 맞출 수 있다. 그러다보니 해가 지나면 지날 수록 문제들은 핵심을 벗어나는 경향이 강하다. 흔히들 말한다. '세계의 대학은 들어가기 쉽지만 나오기 어렵고, 한국의 대학은 들어가기는 어렵지만 나오기 쉽다' 우리가 따르고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미국의 영향이 크다. SAT라는 시험체계에서 가져왔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미국에는 SAT만으로 대학의 길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SAT가 높을 수록 유리한 점은 많으나 그것이 아니더라도 하버드, 예일, 아이비리그 등에 들어갈 다른 길이 많이 있다. 물론 SAT에서도 기본적으로 받아야 할 점수가 있겠지만. 그리고 최근 일본에서는 대한별센터시험 방식을 하고 있다. 대학별로 원하는 과목한도 내에서만 공부를 하는 방식이다. 물론 일본 내부에서도 필요과목외에는 공부를 하지않아 학력저하의 우려를 표시하는 방식이지만 내 방식으로 개선하자면 우리나라는 국영수사과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니 각 과목의 만점을 100점으로 두면 기본적으로 50점을 넘는 학생들 중에서 특정과목을 90점이상 이수 등의 방법으로 하는 등 충분한 개선의 여지가 있는 입시정책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교육평준화라는 이름아래 이러한 본고사를 막고 있지만 [평등]과 [형평]은 엄연히 구분해야 된다고 본다. 능력의 차이없이 모두 똑같은 출발선에 두는 [평등]이 아니라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과 대등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형평]이 있어야 한다고. 그걸 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정부란걸. 프랑스에서 수능을 대체하고 있는 시험이 바칼로레아라는 논술시험이다. 모두가 시험장에서 공통된 하나의 주제를 받고 그외 관련될 자신의 주장을 써야한다. 주장을 함에 있어서 자신의 읽고 듣고 배웠었던 저명한 인물들의 논문, 책, 문구 등에서 인용을 하거나, 주장의 옳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므로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것을 자연스럽게 습관화시키는 좋은 입시제도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러한 글에 대해 평가를 할 철학자들이 부족으로 이러한 시험제도가 채택될 수 없다는 이야기많고 사실이다. 먹고 사는게 중요하게 받아들여 지는 우리 사회 현실에서는 철학이란 배부른 자들이 하는 소리다. 그러나 해외에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철학을 가진 경우가 많고, 경영학에서도 회사를 이끌려면 리더나 CEO는 특별한 경영철학을 가져야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남들의 것만 들여오는 것만이 대안이 아닌게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갑자기 새로운 의견을 내는 것도 이상한 일이고 세계에서 검증받고 있는 새로운 입시제도를 들여와 과거의 입시제도를 바꾸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더욱 좋은 방법이 있다면 현재의 수능제도에 학생의 자유, 적성, 취미, 개성 등이 포함될 수 있는 제도로 개선하는 것이다. 대학은 들어오는 학생의 객관적인 자료를 원하지만 사회는 창의성을 지닌 인재를 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적자면 학교라는 장소가 초등학생시절에는 나(!)에겐 무척 즐거운 장소였다. 숙제를 하지 않는다고 종아리를 많거나 하기보단 꿀밤한 대 살짝 많는 경우가 많았고 선생님들이 점심시간에 반아이들과 같이 점심을 먹다가 반찬을 나눠먹기도 하고, 한 담임 선생님은 체육관 시설을 담당했는데 여름에 폭우로 산으로 갈려던 야영을 학교에서 했는데 아이들이 덥다고 하니까 서늘한 체육관에 딴 반들 모르게 몰래 재워주시고 하던. 물론 그시절에도 과잉체벌 논란을 받을 만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 어쩌면 나만 운좋게 행복한 시절을 보낸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우리들을 잘 돌봐주시는 학교의 부모님과 같은 존재였다. 물론 우리 다음 세대들부터는 학원이다, 뭐다 바뻐진 경우가 많아진것 같지만 나의 20살인 나의 어린 시절까지도 친구들과 학원걱정없이 놀이터에서 놀고 산을 아지트삼아 놀았다.(고향은 시골은 아니고 대구다.)그러나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학원에 얽매이고 선생님은 공부만은 외치는 나로써는 안타까운 모습만을 보이게 되고 그분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학생들의 성공을 그들의 기쁨처럼 느끼시니까 공부하라 외치시는 걸꺼다. 중요한 것은 난 내가 어린 시절 기억하고 있던 가고 싶던 학교가 될 수 없을까하는 것이다. 지각한다고 때리지않고... 아니 지각해야될 이유가 없고, 내가 하고 싶은 꿈에 열정을 담을 수 있는 장소. 학교는 그런 장소로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하는 어느 20살 청년이 이상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