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견디고.. 다시 찾아온 햇살을

이대균200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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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이어서

그칠 줄 알았던 비는 한 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고

 

오대산 주유소.
도착 예정시간을 15시에 잡았는데 당시 시간은 16시30분을 지나고 있었다.
떨어지는 비에 타이어 펑크를 고쳤다는 소리를 듣고
우의를 준비하러 차량이 지원 나왔다.
“자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다. 도착지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힘들다면
이 차량을 타고 다음 숙소 이동하길 바란다.“
대원들은 한사코 자신있다며 의기양양이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한번 경고를 줘도 자신있다는 표정들이 살아있었다.

 

폐허가 된 진부면...
어렵사리 그나마 피해를 덜 받은 방아다리 약수터주변 유료숙소를 차량팀이 구했다.
진부면 도착 당시시각 18시30분.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주변이 어두워져만 갔다.
방아다리 약수터까지 걸어서 2시간을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일정을 구간까지 마치고 전원 차량탑승하고 숙소를 향해 갔다.
오늘 목표지점에 도달하고 다음 숙소는 코스를 한참이탈하기 때문에 더 이상 행군은 의미가 없었다.

 

모처럼만에 따뜻한 아랫목에서 모두가 잠든다.

아픔을 견디고.. 다시 찾아온 햇살을


 

광희의 전화가 왔다.
“잘 살아있단다.”

다음 우리가 가는 길목에 합류하기로 했다.

 

모두가 잠든 시간...
지긋지긋하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하늘에 대고 욕을 해봤다.
이젠 멈출 때도 되지 않았나?

 

7월 21일 흐림
폐허 속을 통과한다.
우리가 가는 도로는 무너지고 깎이고 끊겼다.
사람들의 모습을 좀 처럼 찾기 어려웠다.

아픔을 견디고.. 다시 찾아온 햇살을

 

면내는 흙탕물과 쏟아져 내린 진흙들이 한데 엉켜 도로를 뒤엎었고
우리는 마르지 않은 신으로 마르지 않은 도로를 철펄철펄 질러간다.
이번만큼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모두가 숙연한 가운데 말이 없어졌다.
노래 소리는 물론

발 걸음을 옮기는 소리마저 조심해야 했다.
어쩌다 마주친 주민의 얼굴에는 절망과 좌절만이 보였다.

‘사람이 죽어가는 데 무슨 놈의 걸음이냐..’라는 말을 들었다.
그들에게는 순수히 걷는 것조차도 사치였다.
걸음이 사치였다.

 

곳곳에서 복구작업을 알리는 굴삭기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내 귓속 사는 매미소리와 함께..

구간만다 늪처럼 변해버린 진흙탕 속을 피해 돌아가기도 했다.
길이 막혔을 때 어디로 돌아가야 한다는 물음조차 꺼내기 힘들었다.

 

“니들 지금 여행다니지?”
진부면 농협 가공공장 주변에 한 아저씨가 내게 묻는다.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옛길을 찾아 다니고 있습니다“
그 아저씨의 원망어린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걷는 것마저 사치가 되어버린 이곳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고 느껴야 하는가
출발 전 관동대로는 10대로중에 가장 아름다운 길중에 하나라고 대원들에게
말했던 내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제발, 많은 것을 보고 배워라.’
정작 챙겨야 할 나의 그녀를 마음속에 담고 그 끊어진 통화를 되뇌이며
후회를 하고 있으면서 걷고 있었다.
무능력, 자책감, 죄책감이 내 머릿속을 감싸고돌았다.
대원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우리는 걷지 않으면 다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었고
우리가 애초에 가졌던 원대한 꿈과 도전은 아무런 의미를 지닐 수 없다.
인사조차 하기 버거울 정도의 폐허 속을 지나가면서
인생은 때론 원치 않는 환경 속에서도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계속 전진을 해야한다.
지금이 이때이고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이 사치일지라도
주저하지 않고 걸었다.
설령 내 눈앞에 그 따가운 눈총에 맞서더라도
난 대원들을 보호하고 대변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암울한 이 분위기 어서 극복하자’

 

도대체 쉴 곳이 없다.
세탁을 고려해 진흙탕 속에 앉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애꿎은 다리를 툭툭 쳐가며 걷는다.
경련이라도 일어나지 않게.

 

그동안 우리 6기 대장정단에 관심가져주시고 큰 힘이 되어주신
지리학과 이홍중 대선배님이 우리릃 향해 격려차 오신다고 들었다.
선배님께 항상 감사하다.
그 은혜를 내가 어떻게 감히 갚아야 할까?
이럴 때 일수록 우리는 더욱 더 일사분란하고 체계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대원들에게 당부한다.
우리를 믿어주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으니까
저 멀리서라도 분명 우리를 응원해주고 걱정해주는 대원들의 가족과 친구,선생님들이 계시니까.

 

다음 목적지인 신리초등학교에 도달했다.
하지만 신리초등학교 역시 우리가 머물수 없는 장소였다.
차량팀의 선견지명으로 다다음 목적지인 계촌에서 체육관을 어렵사리 빌렸다.

이홍중 선배님과의 신리에서 합류로 오늘은 조금 더 걷더라도
대화면까지 걷기로 했다.

대화까지 걷고 다다음 목적지인 계촌에서 차량으로 이동한 다음
내일 오전 다시 차량을 타고 대화까지 와서 다시 계촌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결정했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 가는 일이 제3자에서 봤을 때 어처구니 없을 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정하고 우리가 믿고 있는 이길 관동대로의 옛길을 그대로 밟는 것이
목적이고 걷는 이유인지라, 숙영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임을 명시한다.

 

대화면에서 차량 마중.
운전이 조금 서툰 선택이가 차량을 끌고 나왔다.
선배님을 모셔야 하니 차량지원팀장인 대환이가 조심스럽게 운전을 자청했지만
선택이는 무시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이유인즉슨 차량검문으로 면허증이 현재 없는 대환에게 운전을 맡기지 않겠다는 판단에서 그랬단다.
미리 말해주지 않았던 선택이는 사과하는 표현이 서툴렀고

(선택이의 환경으로 매우 내성적이었다.)

선배의 말을 무시했다는 그 결과는 대환이의 화를 쉽게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대원간의 갈등.
나는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
각기 손가락의 역할과 특징이 있겠지만
난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니고 어느 누구의 입장만 고려해서도 안 되었다.

 

차량이 망가지면 돈이라고 써서 그 손상부위를 말끔히 고칠 수 있다지만
마음이 다치면 그것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나...
물론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하였다. 치료할 방법은 현재 없다.
그것이 나의 비극이다.
대원들 간의 갈등으로 또 하나의 비극을 만들기 싫다.
나에 역할이 분명 컸지만,
치료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무능력.. 이 세글자의 단어는 나를 더욱 더 절망의 나락으로 치닫게 했다.
선배님이 계서서 대환이의 진정으로 일단락 지었다.

 

사모님도 함께 오셨다.
미리 숙소에 계셨던 사모님 그리고 오늘의 지원팀인 정민이, 인성이 형이 저녁준비를
정성들여 해놓았다.
정민이는 생닭을 잡았다고 난리다.
처음 맛보는 진귀한 막걸리와 함께
우리 대원 우리 식구 모두는 배가 터지도록 먹었지만 결국 다 못 먹었다.

 

늦은 밤
원래 우리 행군에 있어서 금주가 원칙이지만
지금까지 살펴주시고 아껴주셨던 선배님과의 조촐한 주안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예비역 현철이와 새내기 홍주와 함께..
‘종혁이를 상담하러간 부단장 남주영인 도대체 왜 안오는 것인가?’
모처럼 만에 흐리기만 하고 비는 안왔던 오늘..
일도 많았다..
그리고 구름에 약간 가려 안보이긴 했지만
달이 유난히 밝게 빛났다..

 

7월 22일 토요일 흐리가다 맑음.
공교롭게도 오늘 우리가 머문 이 숙소에서 멀어져
다시 이 숙소로 오는 날이다.
다시 한번 2일동안 우리를 위해 계촌체육관을 빌려주신 관계자님께 감사의 말씀 올린다.

 

어젯밤
의대생들이 주민복지를 위해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들었고
그 곳에 대표자님과 얘기를 하여
염치없게도 우리 대원들의 건강상태를 봐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흔쾌히 승낙하셨고 우리는 오늘 저녁 안으로 찾아가면 되었다..

 

다시 대화면부터 시작.
차안에서 이미 우리가 걸어갈 길을 보았던 대원들은
별 흥미가 없어보인다..
나라도 그랬겠다.
하지만 은근히 멀다며 한편으로는 애교섞인 투정도 부린다.

 

오늘까지 함께 하시는 선배님은 주변을 보는 여유를 가지시며 천천히 둘러보신다.
나도 오늘 만큼은 뒤에서 천천히 걸으며
곪고 있는 발을 조금은 쉬게 하였다.

비가 안 오는 이틈을 타 주변산세를 둘러본다.
안개 자욱한 저 태백산맥 자락은 한 폭의 동양화였다.
이번 홍수 최대 피해지역인 진부와 신리를 넘어서고 나서 모처럼 갖는 여유다.
이제 숙영지 걱정을 덜어도 될 듯하다.
대원들도 모처럼만에 대화가 오가고 있다.
아직 흥에 겹지 않지만
그동안 막혔던 숨이 트이는 것 같을 느낌이 대원들에게도 오고 있는 모양이다.

아픔을 견디고.. 다시 찾아온 햇살을


 

점심이 될 즈음은 구름이 많이 걷히고
햇빛이 드나든다.
날씨와 우리의 기분은 같이 갔다.

선배님과의 아쉬운 작별..
그동안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베푸신 선배님.
걷는 것에 긍지를 가지고 좋은 말씀많이 해주신 선배님.
그 아쉬움을 간직한 체 점심을 드시고 이제
선배님이 가신다.
제대로 편안히 못해드렸는데..

 

많은 대화가 오가고 어느새 계촌에 다다랐다.

다행히 예정보다 빠르게 도착했고
오늘 진찰받기로 했던 대원들을 데리고 의료봉사팀에게 갔다.

참상태가 안 좋았던 고운이, 홍주, 인성이형 그리고 부단장..
내 시술보다 앞섰던 의사선생님들의 손길을 받아보니 이내 싱글벙글이다.

아픔을 견디고.. 다시 찾아온 햇살을


고운이는 행군 이튿날 물집이 생겼었고
내가 처음으로 본보기로 물집을 터뜨려 주었는데 눈물을 흘렸었다.
이유인즉슨 아프지는 않았지만 무서워서 그랬던 것이라고.
고운이를 돌아보면 참으로 고맙다.
아프면 아프다고 그때 그때 말해주니 갑작스럽게 터진 사고에 비하면
내가 마음에 준비라도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고운이가 날 믿고 있으니 내가 으쓱하고도 머쓱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이전에 다른 대원들에게도 여러 차레 내가 물집시술을 도왔지만
역시 어른 답게 잘 참던 걸..

인성이 형은 군시절 앓았던 발목부상이 아지곧 후유증이 있던 탓인지
쉽게 정상걸음으로 안돌아 오고 있었다.

홍주는 충혈되는 눈으로 그리고 몸살끼로 고생하고 있었고..

부단장인 남주영인 계속 걸음자체가 불안했다.
무언가 아픔을 더디고 걷는 아이처럼
그녀는 웃었지만 그녀의 걸음은 항상 울고 있었다..

 

대원들이 치료를 받고 있을 즈음, 현철이에게
연락이 왔다.

 

시간이 몇 분을 지났고 그제서야 알았다.

눈앞에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말을 못했다.

 

눈물을 참고 있다.

 

아픈 가슴을 저미고 있었다.

 

그녀가...

그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