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적부터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하여

박순영200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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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적부터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하여 집안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살아왔다. 내 보호의식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기억속에서의 나는 인정받는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국민학교저학년, 공부를 썩 잘했다 생각한다. 하나틀리면, 다들 하나밖에라고 하지만, 집에선 그거 하나만 맞았어도 백점인데, 이렇게 되어버린다. 첫 시작이 그렇게 되는데 누가 기분이 좋겠는가. 높은 점수에 대한 칭찬이 먼저가 아니라, 더 높은 점수에 대한 아쉬움이 먼저였다. 점수가 낮으면, 공부를 안해서 그렇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격려아닌 격려를 받았다. 결국 두가지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은 나에게 똑같이 다가 왔다. 이 역시 핑계지만 이래서 내가 좋아하는것 이외에는 그다지 하고 싶지가 않았다. 내 기준에서 잘하든 못하든 혼나는건 마찬가지인데 왜 열심히 해야하나, 이런 생각이다.

 난 참 레고를 좋아했다. 하루종일, 이틀, 아침부터 새벽까지, 손에서 잠시도 떼지 않고 생각하며 만들고 싶은것, 본것들을 만들어냈다. 워터월드란 영화를 보고 거기 나오는 수상도시를 만들었다. 돌리는 방향에 따라 실로 연결되어있는 문이 열리고 닫히는 구조였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필생의 역작이라 감히 말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난 자랑스럽게 엄마한테 자랑했지만, 대답은 '잘했네, 이제 늦었으니깐 그만 자라'이 한마디였다. 난 기분이 너무도 나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갖고 훌륭한 성과를 이뤄 엄마한테 인정받고 싶었는데, 칭찬받고싶었는데, 엄만 그 한마디와 몇일 뒤 청소기로 반쯤 부숴버린 레고만을 나에게 선사했을 뿐이다. 지금같아선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떈 순종하는 어린 양일 따름이었다. 몇번을 그런 후엔 아예 엄마아빠한텐 보여주지도 않았다. 그냥 내가 만들고 만족하고 다시 만들고...

 중학교를 갔다. 엄마는 그딴 학교엘 갔다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도 처음엔 무지하게 겁먹었지만,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동평중학교로 간 것은 나에게 세상의 크기를 다르게 보게 만들었고, 나도 내 의지대로 나의 힘으로 외부세계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특히나 초등학교 6년동안 알던 얍삽하고 치사한 녀석들이 아닌 가진것은 좀 없지만 순수하고 자신이 세운 자신의 목표를 세우는 녀석들을 만나게 된 것은 감히 축복이라고 말할 수있다. 하지만 엄마아빤 그 친구들을 싫어했다. 단지 더러워보이고 집이 가난하고 성적이 낮아서 그런듯 했다. 단지 추측으로 내 친구들을 판단하고, 나에겐 삼산동 귀족층애들과 놀 것을 넌지시 강요했다. 난 싫었다. 권위의식을 기반으로 한 녀석들 사이에선 단 1초도 있기 싫었다. 적어도 달동녀석들은 남을 깔보거나 그러진 않았기 때문이다. 점점 난 구체적으로 엄마아빠가 이해가 안되기 시작했다.

 난 항상 엄마아빠에게 인정받고싶었다. 그래서 5살땐가 언젠가는 아픈 엄마를 위해 밥을 퍼담으려다 흘린 기억도 가물가물하게 난다. 신발끈을 제대로 묶게 되었을때도 엄마아빠한테 제일 먼저 자랑하고 싶었다. 그때 엄만 이제사 맬 줄 알게됬냐고 하셨다.  초등학교때 무궁화씨를 따다가 팔아서 용돈을 벌었을때도 더럽게 뭐하는거냐는 말을 먼저 들었다. 3학년 4학년때 만화를 그린다고 했을떄도 엄만 걱정먼저 했다. 흉내내기에 불과했지만, 사장, 편집장, 사원시스템, 월급제, 주간지를 펼 정도로 체계적이었는데, 그래서 그것만큼은 자랑할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것도 아니었다.콜라마시기대회에서 티셔츠를 타왔을때도 미련하다고 했다. 스스로 밥도 엔간히 차려먹을 수 있게 되었다. 엄마보다 키도 커졌고 짐도 많이 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들을 수 없었다. 점점 지쳐갔다.

 고1 첫 모의고사 반에서 3등했다. 점수를 말했더니 썩 잘한건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난 속으로 무언가 아찔하고 소용돌이치고 얼굴이 빨개짐을 느꼈다. 분노일까? 잘했다고 말할줄 알았는데 아니라서, 그래서 이는 분노였을까? 그랬을 것이다. 대가리가 조금씩 커지면서 남의 눈치를 평생 보고 살게 되면서 느는것은 분석력이었다. 가만 보니깐, 엄마는 내 말은 초장부터 거짓, 아니면 장난으로밖에 보지 않았다. 만약 내가 수학 100점을 맞았다. 그래서 그것을 엄마한테 말하면 엄마는 항상, 언제나, 틀림없이, '남들도 다 잘했겠네.'이런 뉘앙스로 시작하였다. 난 뭔가 말하기도 싫었다. 인정받으려하지만 그것을 근본부터 믿지 않으면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젠 개인적인 사소한 말조차 하기 싫어졌다. 그저 객관적 얘기만을 나눌 뿐이었다. 한가지 더 붙이자면 엄마는 의심이 많다. '너 OOO했지?'내지는 '니가 XXX하니깐 그런거아니야?' 일단 엄마의 생각을 정답으로 해 놓고 사람을 대한다. 내가 15초대로 달리기를 하든, 축구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되건, 수영을 잘하건 못하건, 인정받으려는 무언가를 하면 일단 기분부터 딱 분질러 놓는다.

 내가 그래서 잘했다는건 아니다.생각해 보라, 뭘 잘했는가. 어렸을적부터 돼지같이 먹고 살만 뒤룩뒤룩 쪘다. 밖에 나가서 활발히 놀지도 않았다. 학습지는 맨날 빼먹었다. 성적은 날로 떨어지기만 했다. 운동을 잘하는것도 아니었다. 거짓말만 늘어갔다. 그리고 들키기도 많이 들켰다. 말은 지지리도 안듣고 투덜거리기만 했다. 이래선 좋은소릴 절대 들을 수 없을것이다. 마치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같은 얘기다. 하지만 누가 먼저시작이든 현재는 인과의 관계에 놓여져 있다. 참 슬픈 부분이다...

 난 내가 하고싶은 일을 집에선 그다지 이루지 못했다 생각한다. 밖에서 많이 놀던 중학교 시절, 처음엔 집에 전화를 했었다. '나 놀고 들어가도 되요?' 대답은 10이면 7~8은 NO였다. 물론 그중 4~5는 내가 우겨서 그냥 놀긴 했지만 짜증섞인 목소리로 허락을 받아봤자 좋은가. 슬슬 집에 전화도 안하고 놀고 들어갔다. 전엔 까먹어서 전화를 못했다지만 이젠 아닌것이다. 그냥 하기가 싫었다. 정확한 이유가 있어서 거부를 당하면 이해라도 하지 항상 이유는 곧 해지는데, 늦도록, 학교마치면 곧장 집에 와야지, 이런 이유였다. 그런데 같이 놀던 다른 애들은? 그럼 걔들은 무엇인가? 항상 그럴때마다 딜레마에 빠졌다. '엄만 항상 다른애들하고 나를 비교하고 그들과 비슷해 지길 원하면서,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나? 나보다 잘하는 놈이건 못하는 놈이건 내가 집에서 거부당한 일들을 하고있는데, 나는 뭐지? 중간에 끼여서 이도저도 못하는 그런 놈인가?' 서로친한친구 3명이 있다. 난 그들과의 모임에 특히나 자주 빠졌다. 부산엘 갔을때도 영화를 볼때도 주말에 놀때도 친구네 놀러갈때도 밤에 인터넷으로 만날때도 등등... 지금은 물론 아니지만, 그때당시엔 너무 억울했다. 초조했다.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게 적어졌고 나로인해 모임이 제약받았다. 대화를 나눌때도 내가 모르는게 많았다. 나만 멀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유없는 통제, 보고없는 행동. 인과의 관계다. 

 고등학교때 하루중 대부분을 일주일중 대부분을 일년중 대부분을 집 밖에서 생활했다. 난 자유로웠다. 차라리 학교에 있는게 좋았다.

주말엔 학원에 있는게 좋았다. 진실이든 아니든 그곳 사람들은 날 인정해줬다. 그게 그냥 좋았다. 오락실에서도 사람들은 날 인정해 줬다. 난 3D격투게임의 최고수를 다투는 위치였다. 동아리에서도 날 인정해 줬다. 1학년땐 기장이었고 2학년땐 회장이었다. 집에선 인생에서 가장 쓸모없는 짓거리로 인식했다. 난 울산 최고였다. 기울어진 동아리를 정상화 시켰고 2년째엔 울산 최고의 프라모델동아리로 키워놨다. 부에 내가 지은 이름도 달고, 기기도 들여놓고 부원도 2배로 늘리고... 하지만 집에선 무슨 취급을 당했었나... 말하기도 싫다. 조금이나마 있던 자존심을 난 3년간 짖밟혔다.

 공부, 거기선 내가 절대 할 말이 없다. 노력을 안했으니깐. 내가 안했으니깐. 혼나는건 당연했다. 그부분에선 내가 절대 인정 받을 수 없었다.

 책, 이거 하나만은 평생 엄마에게 인정받은 것들중 단연 제일이라 할 수 있다. 인정받기에 난 프라이드가 있었고 원체 생각없는 놈이라 그것을 지키려 고등학교때도 끊임없이 책을 봤다. 즐겁기도 하였다. 즐거운데다 인정까지 받으니 책만보면 난 날아갈 듯 하였다.

 대학엘 왔다. 공대다. 고2 올라갈때, 난 문과를 가고싶었다. 하지만 집에서 이과를 원했다. 난 그랬다. 그럼 엄마아빠가 좋아할까... 하지만 2~3학년때도 내 관심은 문과과목이었다. 문과애들 시험지를  뺏어다 다시 쳐 볼 정도였으니... 점수가 그럭저럭 되서 서울엘 왔다. 건축과다. 지난 1년 반, 난 인정받는 상위그룹에 있었다. 학년에서가 아니라 학교에서말이다. 자만이겠지만 다들 그랬다. 힘들기로만 볼때 난 이미 그만 뒀어야했다. 하지만 내가 즐거웠고 남들도 인정해 줬고, 사람들이 무엇보다 좋았다. 내가 하고싶은 일도 내가 스스로 결정해서 했고 고생도 내가 사서 했다. 힘들어도 내가 선택한 일이므로 난 후회없이 행했다. 행복했다. 끌려가는게 아니라 내가 밀고가는거였다. 그런데 집에선 뭐라고하는가, 내가 하는일에 의문을 가졌고 내 주워사람들에대하여 의문을 가졌다. 심지어 전과라는 말도 너무도 쉽게 꺼냈다. 20년동안 살면서 처음으로 모든게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가는데, 됬는데, 전과라니, 힘들어보이니깐 힘드니깐, 돈도 못벌것 같으니깐 전과라니... 나의 행복을 통째로 뽑아놓겠다는 말인가. 언제까지 집안의 통제로만 나를 움직일 것인가. 나는 나의 의지가 있는 21살이다.

 이제 나는 더이상 듣지 않게되었다. 건방지게도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기시작했다. 군귀가 후에 난 나의 의지력을 시험했다. 살을 뺏다. 약 덕분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살을 뻈다. 3분의1로 먹는걸 줄였고 간식도 없고 야식도 없었다. 운동은 하루 2시간정도.

서울로 다시 올라올 계획도 세웠다. 올라온 후의 일도 계획했다. 일자리도 알아놨다. 그래서 엄마아빠가 시키는 일은 안했다. 아니 못했다. 나의 계획에 걸리므로. 그리고 그 계획을 말해봤자 씨알도 안먹힐 것을 아니까. 말도 안했다. 이유없이 걸릴게 뻔한데 왜 말하나.

서울엘 왔다. 친구네서 지냈다. 그런데 어쩔수없는 아들인지 집에 무지하게 미안했다. 왠지는 모르지만 무지하게 미안했다. 그래서 할머니 집에 들어가란 말에 낼롬 들어왔다. 근데 그게 또 미안했다. 일명 제대로 사는(엄마아빠가 말하는...) 생활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이제 술과 음식은 멀리하게 되었지만 밤새는 일은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난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통제받지않는 자유를 느낀다. 행복을 느낀다. 내 생각으로 하루일과를 짜고 내가 일해서 돈을 벌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생활하는 이것, 말이 필요없는 축복이다. 집에서 말하던 행동들을 난 여기서 하고있다. 공부를 하고 일을한다. 우려하던 술과 음식도 조절이 된다. 장소만 바뀌었지 엄마아빠가 말하던 일들을 난 하고 있다. 게다가 문화생활도 즐기고, 취미인 카메라도 하고 있다. 더이상 나의 행보를 거부하신다면 합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집에서 나온거 자체가 문제라면, 그건 나의 의지를 표현하려던 단 하나의 방법이자 출발점이었다고 말해두고 싶다.

 나의 예상과 단 하나 틀린게 있다면, 엄마아빠가 너무 보고싶다. 똥짜루 너도 너무 보고싶다. 맨날 싸우고 내가 구박하지만 넌 내 동생이니까, 그래서 보고싶다. 아빠하고 장난도 치고, 아침에 아빠 자는데 옆에 누워서 잠깐 자고도 싶고 저녁먹을때 아빠가 주는 술도 받고싶다. 아빠가 들어오시면 가방도 받아들고 양복도 받아서 걸고싶다. 신문도 가져다드리고싶다. 엄마랑 아침에 티비보면서 얘기하고싶고 병원을 가든 백화점을 가시던 따라가고 싶다. 점심도 내가 차리고싶고 시장따라가서 장도 보고싶다. 같이 요리도 하고싶다. 운동도 하고싶다. 똥짜루 너랑은 같이 게임하고싶고 만화도 보고싶다. 같이 어디든 둘이서 노는게 좋다. 특히나 나란히 누워서 자는게 너무나 하고싶다. 가족들과의 외출도 너무나행복한 일이다. 난 가슴에 천근만근을 말뚝으로 박아넣고 살아가고 있다. 엄마아빠를 행복하지 않게 만들었다는것에대한 말뚝.

 저 위에서부터 써내려온 나의 불만도 엄마아빠의 나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불만이다. 그러한 통제가 없었으면 나의 이 의지력은 어디서 나왔겠는가. 난 감사하고 있고 반항하고 있다. 문제는 감사하고 반항하기에 금이가는 것이다.

 박성진, 너는 감사를 더 많이 하길 바란다. 니가 생각할 때 스스로 이 형만큼 삐둘어지거나 머리가 나쁜쪽으로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넌 감사를 더 많이 하길 바란다. 더이상 엄마아빠가 나나 너로인해 슬퍼하는건 화내는건 보고싶지가 않다. 형은 더이상 엄마아빠한테 인정받기는 글렀다. 언제나 엄마아빠가 원하는 방향과 내가 원하는 방향은 달랐고 앞으로도 다를것이다. 그러니 너라도 잘하자.

여기까지다. 무지하게 긴거 잘읽었다.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