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이대희2006.09.08
조회147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안녕하세요? 맛있는 토스트 BOOK 입니다 *^^*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흉조(凶兆) '까마귀'가 아니라 길조(吉兆) '태양새'다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고구려 벽화 - 고구려 벽화에 등장하는 삼족오는 용과 봉황을 좌우에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MBC 대하드라마 ‘주몽’이 인기를 끌면서 도입부에 등장하는 ‘삼족오(三足烏)’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리고 지난 1999년 김대중 정부시절에 만든 ‘3호 봉황국새’에 금이 갔다는 감사원의 발표 이후 국민들이 차기 국새의 인뉴(손잡이)에 이 ‘삼족오’를 새기자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럽게 문화계의 화두로 떠오른 문화상징 ‘삼족오’. 과연 ‘삼족오’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최근에 삼족오의 등장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주몽'의 한 장면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 태양새 삼족오 국새 - 국새의 인뉴(손잡이)에 고구려의 웅혼한 기상을 대표하는 태양새 삼족오를 새김으로써 우리나라의 國運이 한없이 뻗어나가기를 기원하고 있다. (옥새전각장 민홍규 作)

* 태양새 삼족오 문장 - 두 발 달린 까마귀에 없는 '볏'이 선명해 삼족오가 태양새임을 보여준다. (옥새전각장 민홍규 作)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여의도에 있는 경제 전문지 '파이낸셜뉴스'의 본사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노정용 파이낸셜뉴스 문화부장】

 

자료를 찾다가 몇 개월 전부터 칼럼과 옥새에 관련한 글을 꾸준히 올려 드라마 '주몽'을 예견한 듯 각종 웹사이트와 어느 뉴스보다 삼족오에 대한 전문적인 기사를 써온 '파이낸셜뉴스'의 문화부 노정용기자(문화부장)를 찾게 되었다.

그동안 출판사는 많이 찾아 다녀봤지만 언론사의 현직 기자를 찾는 것 처음이여서 실제로 어려움(기사의 보안상 출입제한과 일간지 특성상 바쁜 업무 등 ^^:)이 있었다. 하지만 흔쾌히 도움을 주신 덕분에 이 페이퍼를 만들 수 있었다. 이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 글은 삼족오의 대한 노정용기자의 글을 통해 우리가 오해하고 잘못 알고 있던 흉조 까마귀(원래는 까마귀는 흉조가 아닌 길조였다)가 아닌 '다리 셋달린 검은새' 삼족오와 임금의 도장으로만 치부했던 '국운의 상징'이고 '역사의 결정체'인 옥새를 김성호 작가와의 만남으로 인해 깊이 있는 설명을 들으며 바로 알게 되었다.

 

특히, 얼마전에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한 우리의 고구려와 발해사를 자기들의 역사(우리와 함께 일본의 역사왜곡을 겪었던 그 중국이 도를 넘어선 역사침탈에 그저 할말을 잃었다.- 똑같은 넘들) 이고 지방행정이었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어 일본의 독도 영토 분쟁에 이어 우리 국민의 속을 태우고 있다. 심지어 한민족의 얼과 한이 서려 있는 백두산을 6회 동계 아시안게임의 전략적인 홍보를 위해 백두산에서 성화 채화를 함으로써 그 의중을 표면화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효과적이고 적절한 대응과 함께 국민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로 하는 시기이다.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군대를 이루었던 고구려의 상징인 '삼족오'의 올바른 부활과 옥새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역사 바로 알기에 대한 일환이 되었으면 한다.

 

 

삼족오의 정체?


‘삼족오’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비롯해 동이족의 문화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화상징이지만,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상징성에 비해 일반인들의 이해가 지극히 낮은 게 사실이다. 심지어 학자들조차 ‘삼족오’에 대해 ‘세 발 달린 까마귀’라는 터무니없는 해석을 해놓고 있다. 그런데 고대 문헌을 찾아보면 우리 조상들은 ‘삼족오’라고만 기술했지, 학자들이 규정하듯이 ‘세 발 달린 까마귀’라고 한 적이 없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삼족오’의 ‘烏’를 ‘까마귀 오’로 오독하고 있을 따름이다.

우리는 ‘삼족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먼저 이 ‘烏’의 의미를 살필 필요가 있다. ‘烏’는 옥편을 찾아보면 두 가지의 뜻이 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까마귀’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검다’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오골계(烏骨鷄)’, ‘오죽(烏竹)’, ‘오석(烏石)’, ‘오사(烏蛇)’, ‘오옥(烏玉)’, ‘오수정(烏水晶)’, ‘오동(烏銅)’, ‘오금(烏金)’ 등을 이야기할 때 ‘오(烏)’는 ‘까마귀 오’가 아니라 ‘검을 오’로 읽힌다.

‘삼족오(三足烏)’의 ‘오(烏)’도 마찬가지다. ‘까마귀 오’가 아니라 ‘검을 오’로 읽어야 삼족오가 지닌 상징성을 제대로 밝힐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4 「고구려본기 2 太武神王條」 에 보면 ‘烏者黑也’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도 삼족오의 ‘오’가 ‘검을 오’임을 뒷받침한다.

삼족오를 이처럼 까마귀로 읽지 않고 ‘검을 오’로 보아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손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점이 바로 태양의 흑점과의 관련성이다. 고대인들은 흑점이 태양의 광채가 응어리진 것으로 보고 양(陽)을 상징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동양사상에서 흑색은 오행(五行)의 ‘수(水)’에 해당하고 역괘(易卦)로는 감(坎)이기 때문에 ‘험(險)’을 상징한다. 고대인들은 태양의 흑점 중 그 중앙에 가장 검은 본영(本影)이 세 발 달린 검은 새의 생김새와 같다고 해서 ‘삼족오(三足烏)’라고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삼족오’의 ‘오’가 ‘검은 새’를 지칭하는 것으로 봐야 하는 근거다. 마치 달(月)에 두꺼비와 옥토끼가 산다고 믿은 것과 같은 이치다.

예술가들에 따르면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배경으로 할 경우 어떠한 사물도 검게 보인다. 이 때문에 ‘삼족오’를 ‘세 발 달린 검은 새’로 보고 이렇게 이름을 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다 결정적인 증거는 ‘삼족오(三足烏)’가 ‘태양(太陽)’의 이칭(異稱)으로 양(陽)을 상징한다는 점이다. 국어사전에도 ‘삼족오’가 1)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해 속에 산다는 세발 달린 까마귀’라고 잘못 해석하고 있으면서도 2) ‘태양을 달리 일컫는 말’이라고 해서 삼족오가 바로 태양을 상징함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 가운데 ‘검을 오(烏)’가 들어가면 ‘태양’을 상징하는 단어들이 많다. ‘일오(日烏)’, ‘금오(金烏)’, ‘직오(織烏)’, ‘현오(玄烏)’, ‘준오(?烏)’가 그렇다. 특히 이 가운데 ‘금오(金烏)’와 ‘준오(?烏)’는 ‘삼족오(三足烏)’의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고대인들은 자신들이 태양의 후손이라는 뜻에서 태양 안에 삼족오를 그려 넣어 자신들의 문양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민족이 바로 고조선의 뒤를 이은 고구려다.

‘삼족오(三足烏)’는 고구려 쌍영총, 각저총, 덕흥리 1·2호 고분, 개마총, 강서중묘, 천왕지신총, 장천 1호분, 무용총, 약수리 벽화고분, 그리고 다섯무덤(오회분) 4·5호묘, 중국 요녕성 조양(朝陽)지구 원태자벽화묘(袁台子壁畵墓) 등에 아름다운 벽화로 그려져 있다.

문헌 기록으로는 ‘환단고기(桓檀古記)’ 단군세기 중 “甲寅七年三足烏飛入苑中其翼廣三尺”《갑인 7년(B.C.1987년) 세 발 달린 검은 새(三足烏)가 날아와 대궐 뜰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 날개 넓이가 석자나 되었다》가 보인다. 하나같이 문헌에는 ‘三足烏’로만 기록되어 있을 뿐인데, 무지한 후손들이 ‘까마귀’로 달갑지 않게 해석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상징 ‘삼족오’를 이야기할 때면 대개 학자들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삼족오’가 등장한다며 굳이 우리의 문화상징으로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인다. 겉으로 보면 그럴듯해 보이는 말이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실소를 금치 못한다.

먼저 중국의 문헌에 등장하는 ‘삼족오’부터 따져 보자. 먼 옛날 중국대륙은 원래 동이(東夷)와 지나(枝那)의 결투의 장이었다. 동이가 중원을 차지할 때는 지나가 변방에 머물렀고, 지나가 중원을 차지하면 동이가 중원에서 점차 변방으로 후퇴했다. 그래서 중원의 주인이 한번은 동이, 한번은 지나로 뒤바뀌면서 역사가 흘러왔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로 평가받는 진의 시황제도 동이족의 한 분파임을 중국의 역사학자들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저우스펀은 저서 『중국 역사 11강』에서 《진은 역사가 유구한 씨족으로 동이족의 한 갈래에 속하는데, 황하 하류에서 유목 생활을 하며 살았다. 그 조상은 순(舜)임금 밑에서 날짐승을 길렀고, 그 때문에 영(?)이라는 성을 하사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리우웨이는 저서 『중국문명박물관-진한시대』에서 《진나라 사람은 동이족의 한 분파이며, 황하 하류 동해 바닷가에서 유목 생활을 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고문헌들이 지금 현재 중국의 땅에 남아 있다고 해서 모두 중국의 기록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 ‘삼족오’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문헌으로 알 수 없다면 그 다음은 유물이나 유적으로 따져 보면 된다. 역사학자들은 ‘삼족오’가 고구려의 문화상징이 아니라는 가장 강력한 근거로 호남성 장사시(長沙市) ‘마왕퇴(馬王堆) 1호 한묘(漢墓)’를 든다. 그런데 무덤 주인의 승천을 기원하는 주제인 이 그림에는 신화와 전설을 삽입하여 내용이 풍부하고 구도가 정교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두 발 달린 까마귀’만 등장하고 있을 뿐 ‘삼족오’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역사학자들은 ‘삼족오’를 ‘까마귀’라고 단정을 한 나머지 ‘세 발 달린 검은 새’ 삼족오와 ‘두 발 달린 까마귀’를 마구 혼동하고 있다. ‘마왕퇴 1호 한묘’의 그림이 삼족오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현실 속에 실재하는 평범한 두 발 달린 까마귀임은 그 머리에 볏이 없음에서도 확인된다.

그리고 일본 축구대표 팀의 문장(紋章)으로 삼족오가 사용되고 있다는 데 문제는 간단하다. 일본 축구대표팀의 문장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이 문장은 말만 삼족오이지, 진짜 세 발 달린 까마귀이다. 머리에는 볏이 없으며, 한 발은 축구공을, 다른 두 발은 땅을 딛고 서 있는, 일본에서 길조(吉鳥)로서 숭배 받는 평범한 까마귀인 것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삼족오의 머리에는 반드시 볏이 그려져 있다. 삼족오의 볏(一)이 물이나 시원, 즉 태초의 생명성을 상징한다면, 날개(二)는 화합, 부부, 상대적 균형, 따뜻함을 상징한다. 그리고 세 발(三)은 자연의 생명성(싹), 순환,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초목, 생장-소멸-순환, 시공, 힘, 완성 등을 상징한다.

게다가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삼족오는 왼쪽에는 용을, 오른쪽에는 봉황을 거느리고 있는 점도 특이하다. 시기적으로 볼 때 고구려가 당나라와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을 때인데, 만일 삼족오가 중국에서 널리 사용하는 상징이라면 우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고구려가 중국의 상징을 차용해 사용했을 리 없다.

삼족오가 까마귀가 아닌 이상 현실 속의 두 발 달린 까마귀를 옮겨놓은 중국의 ‘마왕퇴 1호 한묘’나 세 발 달린 까마귀를 문장으로 사용하는 일본 축구대표팀의 문장은 삼족오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삼족오(三足烏)는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세 발 달린 까마귀’가 아니라 ‘세 발 달린 태양새’로 새롭게 해석함이 타당하다.

태양새 삼족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 민족의 삼신 신앙으로 발전되었다. 환인·환웅·단군의 삼신 신앙으로 발전됐다가 민간에서 삼신 할미 사상으로 그 성격이 변해왔다. 연구를 게을리하는 학자들 탓에 우리의 신성한 태양새 삼족오는 흉조(凶兆)로 여기는 까마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제 삼족오의 이름 앞에 길조(吉兆)를 의미하는 당당한 그 이름 ‘태양새’를 붙여주자.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옥새 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김성호 지음/예나루) - 옥새 (민홍규 지음/인디북)
 

 

                                     옥새에 새겨진 역사를 읽는다.

역사적 미스터리의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가 옥새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 는 을사늑약 등 당시 한-일간 맺은 모든 협정들이 가짜 국새로 체결돼 무효라는 전제에서 출발, 진짜 국새를 찾는다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그런데 옥새는 일반에 생소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언제 처음 옥새가 만들어졌는지, 옥새와 국새는 어떻게 다른지, 옥새가 없으면 황제가 되지 못하는지, 영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옥새로 역사까지 바로 잡을 수 있는지, 옥새는 어떤 사람이 만드는지, 어떤 방법으로 만드는지 이 책(옥새 숨겨진 역사를 말하다)은 전체 4 PART로 구성되어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옥새 숨겨진 역사를 말하다의 저자 김성호氏 

(옥새 전시관에서 관람객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는 저자)


저자가 옥새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이미 10여 년 전이다. 1997년 국민의 정부가 새로운 옥새제작을 추진할 당시부터 그 부분에 대해 취재했다. 그리고 그 옥새가 금이 가는 등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이후 지금까지 옥새와 그에 얽힌 역사적 진실들을 추적한 결과가 이 책으로 정리된 것이다. 

기자 출신의 저자는 '인디북'의 '옥새'와 민홍규 선생의 자료를 바탕으로 옥새 뿐만 아니라 옥새에 관련된 역사를 이끌어내었고 처음 우리나라 '국새'에 금이 간 사실과 국새의 보관 유무를 세상에 알리는 등 다양한 소재로 책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고 있다.

또한, 지난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맞춰 '일본은 죽어도 모르는 독도 이야기 88'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Ⅰ. 황제와 제국의 상징

옥새의 명칭과 기원, 그리고 역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숨겨진 우리 역사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옥새를 통해 동북아시아의 중심 문화였던 한민족 문화의 원류를 살피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밝혀진 것들은 놀라운 사실들이다.

중국의 기원으로 알았던 은나라가 실은 우리 동이족이 세운 나라였다는 사실. 중국의 황제문화가 동이의 천자문화를 모방한 것이라는 사실.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진 제국이었던 고구려와 발해.
일본왕을 책봉할 정도의 실력을 가졌던 백제. 강대국들 사이에서도 황제국을 지향했던 고려. 명에 사대관계를 가지면서도 나름대로 자주성을 견지했던 조선. 망해가는 나라를 끝까지 부활시키려했던 황제국 대한제국.

이 모든 것들이 옥새에 얽힌 역사를 찾는 과정에서 드러난 역사적 사실들이다. 저자는 옥새의 눈으로 보는 우리 역사는 결코 외롭거나 궁핍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영화 한반도(강우석 감독)에서 되뇌이는 '우리는 한 번도 이 땅의 주인인 적이 없었다'는 말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반만년 역사에서 일제 36년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이 땅을 외세에 넘겨준 적이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는 좁은 한반도에서 웅크린 그런 민족사가 아니었으며, 우리는 대륙의 주인이었다는 것이 저자가 옥새를 통해 만난 우리역사라 한다.
이 책은 옥새를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신물'로 풀이한다. 그리고 천부인을 옥새의 시초로 보고 있다. 천부인의 실체에 대해서도 단순히 도장형태가 아닌 청동거울, 칼, 구슬 등 다양한 형태로 보고 거기에 얽힌 역사적 사실들을 추적해가고 있다.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전통옥새

 

옥새는 임금과 국가의 최고 상징물이다. 그 명칭은 옥새(玉璽), 국새(國璽), 보인(寶印) 등 다양하게 불려왔다. 임금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하는 옥새는 외교 문서는 물론 임금의 명령으로 행해지는 문서에 사용되었다. 옥새가 찍힌 문서는 바로 임금의 권위와 명령을 나타낸다. 또한 다음 임금에게 왕위를 계승할 때에도 그 징표로 옥새를 전달했으며, 임금이 행차할 때에도 그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행렬의 앞에서 봉송되기도 했다.

 


Ⅱ. 궁중 문화의 꽃

두 번째 PART는 궁중 문화의 꽃으로서의 옥새를 면밀히 살피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왕조를 막론하고 왕실의 문화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최정상급 문화였다. 왕실문화는 귀족과 평민문화의 본보기가 되었으며, 대외교류를 통한 국가의 문화적 위상을 드높이는 데에도 앞장섰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왕실문화이다.
왕실문화 가운데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보고(寶庫)는 왕조시대 최고의 상징물 옥새가 될 수밖에 없다. 옥새는 귀족과 평민에게는 절대왕권의 상징이었으며, 대외 관계에서는 국가의 문화적 위상을 드높이는 데에도 앞장섰다. 그 안에는 왕실문화의 검박하면서도 품위에 넘치는 격식이 담겨져 있다.
옥새의 정치적 예술적 위상에서부터 옥새를 둘러싼 의식, 옥새의 종류 등에 대해 현미경을 들이대듯이 치밀하게 살피고 있다.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배안상과 옥새 - 옥새가 들어가 있는 함을 올려 놓는 상과 옥새. 조선의궤에 따라 복원(민홍규 作)

 


Ⅲ. 옥새에 숨겨진 비밀

세 번째 PART는 옥새에 숨겨진 비밀들을 밝혀내고 있다.
옥새는 당대 최고의 실력자들이 머리를 맞대어 만든 최상의 작품이다. 여기에는 예술성과 함께 보이지 않는 기운까지 조절, 왕과 나라의 운명 나아가 종묘사직까지 좌우할 수 있는 힘을 담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손잡이의 형태에서부터 금속의 합금 비율까지 치밀하게 계산했다. 특히 인면에 새겨질 문자는 자연의 음양적 조화와 힘을 담도록 했다는 놀라운 사실들을 공개하고 있다. 천지통합의 기운을 담은 인면, 자연의 힘을 담아내는 비밀, 임금을 상징하는 손잡이에도 숨겨진 비밀들이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Ⅳ. 옥새의 제작

네 번째 PART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승되고 있는 옥새제작의 비법과 그 전승자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통해 면면이 이어져 내려왔던 옥새의 비밀은 바로 선대 '옥새전각장'을 잇는 전수자에게 구전으로만 행한 비밀수업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도 이 책에서 공개되고 있다. 왕가의 독특하고 고유한 격식은 옥새전각장들 사이에 영새부란 이름으로 비밀리에 전해져 왔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와 함께 이 책은 옥새전각장이 갖추어야할 덕목은 물론 그 제작과정까지 상세히 풀어놓고 있다.
그리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는 옥새전각장의 신비로운 세계와 그들이 서구의 연금술사와 매우 유사한 특질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석불 정기호로부터 옥새 제작 기법과 동장 기법을 계승한 21대 옥새전각장 '민홍규'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통해 면면이 이어져 내려왔던 옥새의 비밀은 바로 선대 '옥새전각장' 을 잇는 전수자에게 구전으로만 행한 비밀수업에서부터 비롯된다. 옥새는 조선시대 궁중 예술품 중에서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왕조시대의 정통미로 표현된 전통 문화재 중 하나이다. 옥새는 수백 년 동안 여러 차례의 수정과 변화에 의해 왕가의 독특하고 고유한 격식을 공간 결집한 '영새부'의 비법을 통해 왕조의 사상과 예술을 완벽하게 구사한 장르다.



1. 을사조약에는 국새가 찍히지 않았다.

영화 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을사조약이나 한일합방조약에는 대한국새가 찍히지 않았다. 을사늑약의 당사자는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공사 하야시다. 이 조약은 협상대표에 대한 고종의 위임장과 조약체결에 대한 비준서 등의 국제조약에 필요한 형식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지 못해 국제조약으로 인정하기 어렵다.
조약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위임, 조인, 비준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을사늑약은 이 세 절차 중 단 하나도 거치지 않았다. 먼저 고종은 외무대신 박제순에게 체결권을 위임하지 않았다. 문서에 찍힌 외무대신 인장은 일본이 강제로 빼앗아 찍은 것이다. 지금까지는 '강제이긴 하지만 대한제국 측이 직접 찍었다'고 알려져 왔다. 그 당사자인 박제순은 을사5적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왔다.
당시 황성신문과 일본외교문서에 의하면 '이토와 하야시가 마에마 교사쿠를 시켜 인장을 탈취하여 조약문에 날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인 도츠카 에쓰로도 에서 "일본 헌병이 외부(外部)에 가서 공인(公印)을 꺼내 왔고, 1905년 11월 17일 일본인의 손에 의해 날인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비준서에 해당하는 공포칙유에 고종황제의 서명이 없기 때문에 국제법적으로도 성립하지 않는다.
을사조약은 일제 침략의 시작이다. 이것으로부터 쌓아 올린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강점의 역사 또한 불법적인 것이며, 잘못된 것임을 밝힐 필요가 있다. 일본은 지금까지 을사늑약은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른 국권의 양여'라고 주장, 식민 지배를 합리화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식민지배의 역사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할 필요도 없게 된다. 하지만 이 조약이 불법적이라면 일본은 강탈자이며 국제 강도 행위이었음이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다.


2. 日, 한일합방조약 불법 체결되었다.
한일합방조약도 순종 황제의 최종 승인 절차에 결정적인 결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완용에게 전권을 위임한다는 순종의 위임장은 강제로 받아낼 수 있었으나 가장 중요한 최종 비준을 받는 절차가 생략되었다.
그 증거는 조약문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조항 제8조에는 양국 황제의 재가를 받았다고 적고 있으나, 조약문의 어떤 내용도 최종 비준 이전에는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상기할 때 재가 사실을 미리 명시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또한 병합을 최종적으로 알리는 조칙에는 옥새는 찍혀있지만 순종의 서명이 빠졌다. 조칙이 성립하려면 옥새와 함께 서명이 들어가야 한다. 결국 한일합방조약은 불법적으로 자행되었었다는 것을 옥새와 그에 따르는 의전절차를 통해서도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대 이태진 교수(한국사)는 "한일합방조약을 알리는 황제의 칙유가 일본정부에 의해 작성됐으며 순종이 이에 대한 서명을 거부했거나 하지 않은 사실이 자료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그 근거로 8월29일 공포된 황제칙유에는 대한국새가 아닌 1907년 7월 고종황제 강제 퇴위 때 일본이 빼앗아간 칙명지보(국가간의 조약에는 국새가 찍혀야 하는데, 칙명지보는 행정결제용 옥새였다)가 찍혀 있다는 점과 1907년 11월 이후 황제의 조칙문에 날인해온 황제의 서명 '척(拓)'이 빠져 있는 점을 들었다. 당시 순종은 일본 측의 강제병합에 직면해 전권위원위임장에는 국새를 찍고 서명할 수밖에 없었으나 마지막 비준절차에 해당하는 칙유서명은 완강히 거부했다.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는 순종황제의 조칙은 재가란에 칙명지보만 찍히고, 당연히 있어야할 황제의 이름자 '척' 서명이 없다. 대한제국의 옥새는 통감부가 빼앗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날인 만으로 결코 황제의 제가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이태진 교수는 "한일강제합방조약의 법적결함은 결국 국제법상으로만 보아도 조약불성립론을 입증하며 1910년 이후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식민통치도 아니고 일본이 한국을 불법적으로 강점한 상태"라고 말했다.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옥새함장(좌)                                          소배안상과 옥새(우)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대한국새                                                         어룡국새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봉황국새(30억)                                        주작국새(10억)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지난 겨울에 옥새 전시관을 관람하며 직접 찍은 옥새사진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30억원의 감정평가를 받은 봉황국새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지난 겨울, 서울 소공동 롯데명품관 에비뉴엘에서 열린 '600년을 이어온 세불옥새전'
3.5캐럿과 2캐럿 등 다이아몬드 수십여 개가 장식된 백금의 '봉황 국새(민홍규 作)

 

 

지금까지 국가의 상징인 국새는 보통 2억∼3억원이 고작이었으나 이처럼 감정가가 30억원에 이르는 최고급 예술품으로 태어나기는 처음이다.
'봉황 국새'는 지난 98년 김대중 정부시절 만든 균열이 생긴 ‘봉황 국새’ 대신에 "정부가 새 국새 제작에 3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한 일본 기업가의 후원으로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끈다. 민홍규씨는 "일본의 한 기업인이 우리 정부가 잃어버린 2호 국새(1948년 석불 정기호 제작)를 찾기 위해 150만원의 현상금을 걸었다는 기사를 접한 후 국새의 가치가 너무나 낮게 평가된 것에 분개한 나머지 최고급 국새를 만들어달라며 상당한 액수의 귀금속을 보내와 제작하게 됐다"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태양새 삼족오 국새

 

 

 

행정자치부가 나라의 상징인 국새(國璽)의 인뉴(손잡이) 형태를 ‘태양새 삼족오(三足烏)’로 하자는 국민 제안을 무시하고 균열이 간 현 국새와 같은 형태인 봉황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행자부는 99년 김대중 정부시절 만든 국새가 제작 당시부터 금이 갔다는 감사원의 감사 발표 직후인 지난해말 새 국새에 대한 국민제안을 받았었다. 그때 전문가들은 용이나 봉황대신 고구려의 문화상징인 '태양새 삼족오'를 인뉴 형태로 하자는 국민제안을 내놓았으나 행자부는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지만 그 의견을 뒤로 한 채 새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실시, 봉황으로 잠정 결정했다.

 

[파이낸셜 노정용 문화부장]

국민제안은 국새에 관심이 높은 사람이 제안을 한 사항이고, 여론조사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실시한 것이어서 그 무게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자부는 지난번 실패한 국새 제작의 전철을 고스란히 되밟고 있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짐작컨대 이 같은 행자부의 졸속 행정 처리는 국새제작자문위원회의 비전문가적인 인적 구성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현 국새제작자문위원회에 참여한 인사로서 철학이 담긴 인고(印考)-영새부에 따른 국새 인문(印文) 전각(일반 전각과 국새 전각은 다르다)-전통적 인뉴 조각-전래 국새 주물에 이르는 국새 제작의 전 과정을 한번이라도 지켜본 사람이 있는가. 만일 한 사람이라도 국새를 제작해본 사람이나 이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 있다면 이 같은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국새 제작의 전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는 전통 옥새전각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며 엄청난 장인정신이 뒷받침되는 작업임을 알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현 국새의 인뉴 조각 작업에 참여했던 조각가 L씨는 "국새라는 명칭을 쓰는 한 전통 옥새전각장에게 국새 제작을 맡겨야 한다. (나와 같이) 현대적 조각을 공부한 사람은 전통 조각을 따를 수 없고 만드는 방법도 달라서 정통성 있는 국새를 만들 수 없다"고 고백했다.

특히 600년을 이어온 전통 옥새전각장에게 국새를 맡기지 않고 지금 추진하는 것과 같이 일반 공모를 통해 분업으로 제작한다면 그 결과가 어떨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현 국새를 제작할 당시에도 국새 제작의 과정을 기록한 '보인소의궤'의 기록을 무시하면서 옥새전각장이 아닌 여러 장인에게 분업으로 처리해 금이 간 국새를 만들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행자부가 선임한 전문가들이 제작에 실패를 거듭하자 인뉴 조각과 주물 제작을 다시 하청처리하면서 국새가 '누더기'가 된 사실을 우리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국새는 말 그대로 나라의 상징이다. 일반 아파트 공사도 하청처리를 하면 부실공사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한 나라의 상징인 국새를 제작하면서 하청을 통해 제작했다는 사실은 졸속 행정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한데도 행자부는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고언들을 외면하면서 강행하는 저의를 이해할 수가 없다. 실패라는 경험은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을 때만 가치가 있는 것이지, 실패를 되풀이한다면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정양모 전 국새제작자문위원장은 전통 옥새전각장에게 국새 제작을 맡기지 않은 사실을 후회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나는) 현대의 과학기술을 너무나 믿었다. 국새 제작 당시에는 600년을 이어온 옥새전각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민홍규씨)를 만난 후부터 현대의 과학기술이 절대 전통 국새제작기법을 뛰어넘을 수 없음을 알게 됐다.”

행자부와 국새제작자문위원들은 전 국새제작자문위원장이 국새제작에 왜 실패했었는지를 증언하는 실패담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염원과 국가적 비전을 담은 정통성 있는 국새를 만드는 첫 걸음이다.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일본과 중국이 터무니 없는 억지를 써가며 자국내 이익을 위해 우리의 역사와 영토를 침범하고 있다. 아직은 별다른 대안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저 지나간 역사이거나  현재 우리가 점유하고 있다고 해서 묵고할 수만은 없다. 다소 늦은감이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거국적인 대응과 적절한 조치를 체계적으로 취해야할 때이다. 국민들의 관심 또한 절실하며 보다 높은 지지와 개인의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며 그들에게 대응해야만 한다.

 

"올바른 과거의 역사가 없다면 우리의 미래도 없다."

 

우리가 선조들에게 피와 땀이 어린 과거를 받았다면 우리는 후손들에게 보다 밝은 미래를 물려주어야할 책임이 있다.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 맛있는 토스트 BOOK 입니다 *^^* 삼족오의 정체? - 옥새,숨겨진 역사를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