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암리민속마을 - 공세리 성당 - 왜목마을

박종석2006.09.08
조회864
외암리 민속마을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 소재

 

 

외암리는 아산시내에서 유구(공주) 방향으로 있는 곳입니다.

특히 광덕산과 가까운 지역이랍니다.

 

1.천안에서 아산(온양) 가는 방향으로 21번 국도를 타고 갑니다.
2.호서대 입구, 모산(왼 쪽으로 한도 아파트가 멀리 보임)을 지나
우측에 장항선 복선 공사하는 곳을 지나면 신호등이 나옵니다.
3.순천향대, 예산 방향(623번 지방도)이라고 나와있고
왼쪽에 신도리코 공장이 보이는데 그 쪽 으로 좌회전을 해서
장항선 건늘목을 지나야 합니다.(왕복 2차선 도로라서 운전 주위)
4.그 길로 가다보면 첫번 째 신호등에서 직진
(좌회전하면 "맹씨행단, 광덕산 방면)하고
그 다음 신호등에서 좌회전(유구 공주 방향 39번 국도)해서
1Km 가면 데이콤 지구국 안테나가 여러개 보이고 바로 삼거리가 나옵니다.
좌회전 해서(직진하면 대술 방향) 150m 가다가 오른 쪽으로 내려가서
지하통로를 이용해서 나가면 주차장이 나옵니다.

 

외암리민속마을 - 공세리 성당 - 왜목마을


 

외암리민속마을 - 공세리 성당 - 왜목마을

2000년 1월 7일 중요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되었다.
마을은 북쪽 설화산(雪華山)을 주봉으로 그 남쪽 경사면에 동서로 길게 뻗어 있으며,
서쪽이 낮고 동쪽이 높은 지형 조건으로 주택은 거의 서남향 또는 남향이다.
마을 곳곳에 냇물이 흐르며 입지가 좋고 일조량이 많으며
겨울에 북서계절풍울 막아 주는 등 지형적 이점이 있어 일찍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500여 년 전에는 강씨(姜氏)와 목씨(睦氏)가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조선 명종 때 장사랑(將仕郞)을 지낸 이정(李挺) 일가가 낙향하여 이곳에 정착하면서
예안이씨(禮安李氏) 세거지가 되었으며 그 후손들이 번창하고 인재를 배출하여
반촌(班村)의 면모를 갖추고 반가(班家)의 가옥이 생겨났다.

그 뒤 이정의 6대손이며 조선 숙종 때 학자인 이간(李柬:1677~1727)이
설화산의 우뚝 솟은 형상을 따서 호를 외암(巍巖)이라 지었는데
그의 호를 따서 마을 이름도 외암이라고 불렀으며 한자만 외암(外巖)으로 바뀌었다.
마을에는 조선시대 이정렬(李貞烈)이 고종에게 하사받아 지은
아산 외암리 참판댁(중요민속자료 195)을 비롯해 영암댁, 송화댁, 외암종가댁, 참봉댁 등의
반가와 그 주변의 초가집들이 원형을 유지한 채 남아 있는데

전통가옥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마을은 반풍(班風)이 강하고 세시풍속도 농경사회와 비슷하며

느티나무제, 장승제 등을 지낸다. 마을의 역사와 문화적 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전통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어 문화적 가치가 크며 10월에는 짚플문화제가 열린다.

 

 

 

 

 

공세리 성당

충청남도 아산군 인주면 공세리 194 소재

 

바다가 육지로 깊숙이 들어온 아산만에 인접한 충남 아산군 인주면 공세리 성당은 일찍이
조선조 때 아산·서산·한산을 비롯해 멀리 청주·문의·옥천·회인 등
40개 고을의 조세(租稅)를 쌓아 두던 공세(貢稅)창고가 있던 곳이다.
이 창고 건물은 1523년(중종 18년)에 개설됐다가 고종 때 폐지됨으로써
80간짜리 건물이 헐리고 그 자리에 1897년 구(舊)본당 및 사제관 건물이 들어섰다.

공세리 본당의 오늘이 있기까지 초대 주임을 지냈던 드비즈 신부의 열정적인 사목 활동이

그 바탕을 이루었다.
드비즈 신부는 2대 기낭 신부가 1년 만에 전임하면서 초대에 이어 다시 3대 주임으로 부임해
1930년까지 34년간 공세리 본당의 기반을 굳건히 하고 발전의 터를 닦았다.
그 크고 화려함으로 건축 당시 아산 지방의 명물로 멀리서까지 많은 구경꾼을 불러왔던
현재의 성당 건물은 그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건축 기술자들을 불러 지휘 감독하면서

지은 1922년도의 성당이다.

길에서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은 마치 순교의 현장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는 안내자처럼 길게

뻗어 있다. 한걸음 한걸음을 피땀이 범벅이 된 순교자의 발걸음을 묵상하면서 올라가면

한켠으로는 성당이 자리하고 다른 한켠으로는 순교자들의 묘소가 있는 갈림길이 나선다.
박의서(사바스), 박원서(마르코) 그리고 박익서(본명 미상) 3형제가 나란히 잠들어 있는

순교자 묘 옆으로는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한 이들 형제의 잠자리를 말없이 지켜보는

성모상이 건립돼 있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 우리의 신앙 선조들 중에는 전국 곳곳에 이름도 채 남겨 놓지 못한 채
오직 천주를 모신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초개같이 목숨을 던진 무명의 순교자들이 많다.
이곳에 안장돼 있는 박씨 3형제는 겨우 그 이름과 구전으로 전해지는 몇 가지 행적이 있지만
어떻게 살다가 죽어 갔는지 그리 상세하게 전해 내려오지는 않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다른 많은 순교자들과 마찬가지로 죽음 앞에서도 의연한

신앙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뿐이다.


성당 옆으로는 한적한 오솔길도 마련돼 있는데 이 길에는 예수의 수난을 묵상할 수 있는

14처가 마련돼 있다. 십자가를 지고 피땀을 흘리신 예수와 같이 우리 선조들도

자신의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시대가 가져온 험한 박해의 시기를 겪었던 것이다.
건축 당시의 모습을 잘 보존해 온 성당 옆에는 320년 된 고목이 한 그루 있다.
그 연륜을 알 수 없는 고목은 공세리 본당의 긴 역사를 그저 무심한 듯 말없이 증언해주고 있다.


-내포 지방 신앙의 못자리
공세리 천주교회는 1895년 파리 외방 선교회 드비즈(에밀리오) 신부가 당시 동네 한 가운데

신자집을 임시로 사용하여 복음을 전파하며 시작되었다. 그 후 1897년

창고 건물(현 사제관)을 헐고 구 성당과 구 사제관을 임시로 지었다.

현재의 성당이 위치한 8000여 평의 부지는 예로부터 공세  곡창지(貢稅 穀倉地)로 유명한 곳이다.
조선조 성종 9년(1476년) 세곡 해운창을 설치 운영하다가 중종 18년(1524년) 80칸의 창고를 지어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일원으로부터 거둬들인 세곡을 집결한 후 조운선으로 서해 물결을 따라
한양으로 운반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같이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에서 세금을 거두어 임시 보관했던 자리가

400년이 지난 1890년에 들어서면서 내포 지방에 상륙한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가톨릭 신앙 전교의 전진 기지로 바뀌게 되었다.

초대 본당 신부인 드비즈 신부는 1895년 5월 6일부터 1931년 7월 5일까지 본당 사목을 하였다.
현재의 성당을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지휘 감독하여 1922년 10월 8일 성당을 완공했다.
드비즈 신부는 지역 교육사업과 의료사업 등 많은 노력을 했고, 자신이 직접 조제한 한방의술을 활용 한약 조제로 지금은 고인이 된 유명한 이명래 요한 씨에게 고약의 비법을 전수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공세리 본당은 내포 지방 신앙의 못자리이다.
1897년 6월 공주 본당 분할, 1901년 안성 본당 분할,

1948년 온양온천동 본당 분할, 1976년 둔포 본당을 분할시켰다.

본당 구내에 삼위의 순교자를 모신 묘가 자리하고 있다.
1863년 조선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잡고, 1866년 병인박해 때
밀두리, 걸매포, 해암리 신자 28명이 수원, 서울, 공주 등으로 끌려가서

고문, 옥사, 교수 등으로 순교하였다.
그런데 박의서, 박익서, 박원서 삼형제의 시신을 신자 한 분이 찾아
본당에서 서남쪽으로 5km 떨어진 해암리 맹고개에 모셨다가,
그분이 돌아가실 때 남긴 유언에 따라 1988년 9월 20일 본당 구내로 모셔왔다.

"명인치명사적" 제 11권에 기록되어 있기를 1867년 병인 풍파를 당해
삼형제 함께 잡혀 수원으로 올라가며 원서 말하기를
"내 평생 천주 공경을 실답게 하지 못하였더니 오늘 주께서 나를 부르셨노라" 하였다.

1995년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본당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였고,
2000년 성당과 구 사제관이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 제 144호로 지정되었다.
2000년 10월 새 사제관, 수녀원, 피정의 집(예수마음 피정의 집으로 개칭),
성체조배실을 완공하고 주변 정비사업을 마무리하였다.

 


외암리민속마을 - 공세리 성당 - 왜목마을

-현지교통 :

아산버스터미널(또는 온양온천역)앞에서 밀두리,삽교,대음방면 시내버스 운행
           (06:40 ~ 21:40, 20-30간격운행, 30분소요)

-자가운전 :
    1) 경부고속도로 천안IC → 남부우회도로 → 국도21호(20㎞) → 온양온천 → 국도39호(삽교,
       아산만 방향 30㎞) → 인주면 공세리 소재지 → 공세리성당
    2) 서해안고속도로 서평택IC → 아산만방조제 → 인주인터체이진  → 인주면공세리 소재지 →
       공세리성당

 

 

 

왜 목 마 을

충남 당진군 석문면 교로리에 소재

 

▷ 왜목마을 이름의 유래(由來)
 
우리나라는 아주 오랜 삼국시대 이전부터 해상교통이 발달하였다고 하며, 조선운의 왕래가 빈번하던 아산만의 입구에 위치한 왜목마을 앞바다는 많은 배들이 왕래이 왕래하였다고 한다. 배를타고 왜목마을쪽을 바라보면 얕으막한 산과 산사이가 움푹 들어가 가늘게 이어진 땅 모양이 마치 누워있는 사람의 목처럼 잘록하게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 옛문헌에는 "와목(臥木)" 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臥(엎드릴 와) = 사람이 누워있다는 뜻의 글자
木(나무 목) = 이 두문자의 영향으로 項(목덜미 항)자를 쓰지않고 음만따서 글자의 뜻과는 관계없이 목이라 쓰여졌다.

따라서 누워있는 사람의 목이라는 의미로 "와목"이다. 우리지방 방언발음이 음성모음과 중성모음이 많이 쓰이는 관계로 "와"에 중성모음 "이"가 붙여져 와목(臥木)"에서 "왜목"으로 변전. 
 
 ▷ 왜목마을에서 일출을 볼 수있는 이유
 
왜목마을 충남 당진군 석문면 교로리에 위치한 어촌 마을입니다.
조용하고 한적한 어촌이었는데, 서해안에서 바다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갑자기 유명해진 곳입니다.
이곳에서 바다 일출을 볼 수 있는 것은 지리적 특성 때문입니다.
지도를 보면 당진군이 서해에서 반도처럼 북쪽으로 불쑥 솟아 나와 있는데, 왜목마을이 이 솟아나온 부분의해안이 동쪽으로 향해 툭 튀어 나와 있어 동해안과 같은 방향으로 되어 있기때문에 동해안에서와 같은 일출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일출과 함께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입니다.
 

왜목마을 석문산 79m의 정상에 올라 충남의 장고항 용무치~경기도 화성군 국화도를 사이에 두고 시기별로 위치가 바뀌면서 일출과 월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몰은 충남 당진고 석문면 대난지도와 소난지도 사이의 비경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습니다.
왜목마을의 일출은 동해의 그것과는 차이를 보이는데 동해안은 장엄, 화려한 반면 서해의 일출은 소박하면서 서정적인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왜목마을에서 월별 일출위치

외암리민속마을 - 공세리 성당 - 왜목마을


 


왜목마을의 일출은 동해에서 해가 뜬 뒤 5분 만에 일어나는 일출입니다.
좀 더 웅장한 일출을 보려면 마을 뒷산 격인 석문산(79.4m)에 올라가면 됩니다. 작은 동산처럼 생긴 석문산은 일출은 물론 일몰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일몰은 이 곳에 올라가야만 감상이 가능합니다.
동해의 일출은 장엄하고 화려하다면 서해 왜목마을 일출은 한순간 바다가 짙은 황토 빛으로 바다를 가로지르는 물기둥을 만들며 작으면서도 예뻐 서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매년12월 31일부터 1월1일에는 해맞이행사를 개최하여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왜목마을은 장고항 용무치~경기도 화성 군 국화도를 사이에 두고 시기별로 위치가 바뀌면서 일출과 월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일출, 일몰 광경을 볼 수 있는 일 수가 최소한 180일 정도로 어느 지역보다 긴편이라고 합니다
 

외암리민속마을 - 공세리 성당 - 왜목마을


 

외암리민속마을 - 공세리 성당 - 왜목마을

ㅇ 서울, 경기, 천안에서
- 천안 IC( 경부 고속도로) ⇒ 아산(39번국도) ⇒ 삽교호관광지(38번국도) ⇒ 송악 IC(서해안고속
도로 밑) ⇒ 부곡.고대국가공단(동부제강) ⇒ 한보철강 ⇒ 석문방조제⇒ 왜목마을

ㅇ 서해고속도로 이용시
- 송악 IC ⇒ 부곡.고대국가공단(동부제강) ⇒ 한보철강 ⇒ 석문방조제⇒ 왜목마을
※ 송악 IC ~ 왜목마을 : 40㎞
- 당진 IC ⇒ 당진(탑동4거리) ⇒ 고대면 ⇒ 석문면(삼봉) ⇒ 왜목마을, 대호방조제
※ 당진 IC ~ 왜목마을 : 30㎞
- 당진 IC ⇒ 원당 3거리) ⇒ 송산(지방도633호) ⇒ 군도20호, 군도19호 ⇒ 석문면(삼봉)
⇒ 왜목마을

ㅇ 예산방면에서
- 예산 ⇒ 합덕 ⇒ 순성(지방도615호) ⇒ 당진(탑동4거리) ⇒ 고대면 ⇒ 석문면(삼봉) ⇒ 왜목마을
※ 예산 ~ 왜목마을 : 65㎞
 
 
ㅇ 대전, 충남권
- 대전시-28km→ 공주시-55km→예산군-19km→합덕읍-16km→당진군(탑동사거리)-15km→
  석문면사거리-8km→왜목마을
ㅇ 전북.충남, 서남부권
- 서해안고속도로 해미IC→서산시-21km→ 대산읍-13km→왜목마을

ㅇ 경삼남.북도, 충북권
- 경부고속도로→천안시-17km→아산시-19km→ 인주사거리-26km→당진군(탑동사거리)-15km→
  석문면사거리-8km→ 왜목마을

ㅇ 강원도권
- 영동고속도로→신갈안산고속도로→서해안고속도로-45km→ 송악IC-9km→한보철강(부곡공단)-
   8km→석문방조제(성구미삼거리)-18km→왜목마을
 
 
 
 
ㅇ 대중교통 이용시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수시(10분 간격) 당진간 고속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며 소요시간은 약 1시간30분
대전은 동부터미널에서 2시간 소요되며 당진 버스터미널에서 도비도행 버스 이용
당진버스터미널에서 왜목마을까지는 40분정도 소요.
 
  

 

※ 여행정보 게시판에 왜목마을이 없어서 이리로 작성해 게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