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가운데 예수의 향기가 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뛴다. 외면의 모습에서 나오는 향이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물씬 풍겨 나오는 예수의 진한 향기.
보이는 것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금방 질리고 금방 시들어 버린다.
보이진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확실히 느껴지는 주님.획기적이진 않아도 격동적이진 않아도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지만 마침내가 있고 찬란함이 있어서 모든 수고와 눈물과 고통을 잊게 하는 기도응답. 난 그런 주님이 좋다. 약한 가운데에서도 소망의 기도를 올리게 해 주시는 주님이 감사하다.
연약한 환경 가운데 지금 나에게 주어진 중요한 여러 기도 제목들이 있지만 주의 말씀의 풍성함으로 인하여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닌 지금 내 안의 천국의 임재를 느낀다. (천국은 여기있다 저기 있다 못하리니 너희 안에 있느니라)
큰 교회 다닐때 아니 3년 전만 해도 성령은 그냥 단순한 방언, 통변,예언 같은 한정된 세계로만 알고 그렇게 신앙생활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목사님을 만나뵙고 성령의 무한한 세계를 맛보았고 맛보고 있다. 성령의 깊은 말씀에 취하기도 하고 체험도 하고...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 목사님을 통하여 성령의 사역을 하고 계신다. 안수의 기도가 강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 목사님의 안수 기도를 받고 신유의 능력을 체험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집사님은 둘째 임신하고 태아 상태가 안 좋았는데 목사님 모시고 안수기도 받고 순산하고, 또 다는 집사님은 손 수술을 앞두고 우리 목사님 집회 참석해서 깨끗이 치료받고, 코와 목 사이에 혹이 있던 어느 집사님도 깨끗이 치료받고, 아기를 7년동안 갖질 못한 어떤 집사님은 목사님 안수기도 받고 둘째 낳고, 우리 아이 눈 시력 높여주셔서 서울대 병원 가서 기적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내 허리 디스크 4일 만에 고쳐주시고...
어떻게 다 쓰랴. 요번주 월요일에도 쓸개 제거 수술을 앞둔 어떤 성도가 와서 기도 받기로 했다. 이렇게 주님은 우리 목사님을 강하게 사용하고 계신다. 사람들이 우리 목사님을 몰라서 오지 못해서 체험 못한 거지 오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냥 안 갔다. 은혜를 강하게 받든, 신유를 체험하든, 성령체험을 하고 갔다.
그런 여러가지 모습들을 보면서 난 주님께 원망 할 때가 있었다. 왜 저리 능력있으신데 주님은 너무나 모질게 저리도 오랜 세월 버려두실까? 하고. 지하 햇빛도 안 오는 교회에 오랫동안 방치해 두실까?
너무 야속했다. 하지만 지금은 감사다. 왜냐면 약한데서 강해진다고 성경에 써 있듯이 오랜 연단이 있었기에 한 맺힌 기도와 절규가 있었기에 연단을 통한 강한 능력의 도구로 쓰여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았다.
왜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판단할까. 안타깝다. 성경에 써 있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느니라(고전4:20)
능력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여러가지 능력이 있지만 말씀에 능력, 좌우의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심령골수를 쪼개고도 남을 말씀, 그것만 보더라도 목사님을 주님이 쓰신다는 것을 확신한다. 목사님을 만나뵙고 말씀에 갈증을 느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어려운 가운데서도 요동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평안해지는 소망의 기도 올리는 것을 배웠다.
내가 매일 기도하고 우리 교회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이유가 하나 있다. 좀 더 나은 환경을 받아서 날마다 뜨거운 성령의 집회를 열고 그 안에서 방언,통변,예언등 각종 은사와 병고침의 역사를 날마다 체험하는 것, 천국 잔치를 날마다 여는것. 그 이유 하나다. 지금도 그 생각하면 기도가 더욱 간절해 진다. 속히 응답되기를.
한 1년전의 일이다.
여러가지 기도 제목 중에 내 친구를 위한 기도 제목이 있었다. 그 친구가 부탁해서가 아니고 그냥 기도 해 주고 싶어서 오랜 시간을 두고 기도를 해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하루 일과를 마치고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 친구를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 고낼료 가족이 떠 올랐다. 좋았는데 베드로를 초청하므로서 더 좋았더라 하는, 그래서 다음날 출근하는 남편을 붙잡고 그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도중 또 창세기 좋았더라 좋았더라 심히 좋았더라 가 떠 올랐다. 난 주님의 기도 응답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메세지를 보냈다. 한번반 만나보라고. 좋은 일이 있을것이라고.
지금 생각하면 후회스럽다. 진실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담대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그 친구한테 전화했다는 것이 후회스러운 것이 아니라 솔직하지 못했던 내 자신이 후회스럽다. 그 당시 난 내 친구아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중이었었다. 기도 하는 중에 기도 응답확신을 받아서 전화를 했지만 그때 인간적인 생각이 들어갔다. 혹시나 안되면? 하는 생각. 그래서 아기 이야긴 안 하고 그냥 좋은 일이 있을것이라고만 했는데...
지금도 난 확신한다. 그래서 지금도 그 친구를 위해서 간절한 맘으로 기도하고 있다. 꼭 한번만 어떻해서든 꼭 한번만 그 목사님 만나게 해달라고.
7년 동안 아기 못 가진 집사님이 목사님 안수기도 받고 아기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며칠전에 들었다. 진작 들었다면 좀 더 확신을 가지고 내 친구에게 이야기 해줬을 텐데. 같은 경우가 있었다고.
지금은 그 친구랑 연락이 안된다.
성령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친구가 끼어드는 바람에 내 친구에 대한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야속함, 섭섭함으로 전화번호를 지워버렸다. 정말 한번만 만나서 말씀을 들어본다면 그리고 안수기도 한번 받는다면 친구로써 여한이 없겠다. 아직 때가 안됐나 보다. 만남의 때가. 하지만 만날만한 때에 만나라라는 성경 말씀이 있듯이 지금 나의 간절한 기도가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만날만한 때가 아닌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항상 역사하신다. 성경속에서만 목사님들 설교속에서만 역사하시는 주님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도하는 성도의 마음속에 환경속에 그리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려고 노력하는 주의 사랑하는 자들속에 언제나 함께 하신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고 기도는 응답받기 위해 하는 것이다. 소망은 인내를 요구한다. 그리고 말씀안에서의 인내는 평안을 보장한다. 기적을 보장한다. 우리의 믿음이 성경을 벗어나지 못해서, 계산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믿음은 계산을 뛰어넘고 성경의 기적을 뛰어넘어 우리 사는 생활 가운데서 진가를 발휘한다.
그것을 난 날마다 체험하며 모든 사람들이 체험하길 바라며 성령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한번 체험해 보라고 외치고 싶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오늘도 주님이 맡겨 주신 일감에 충실하며 (신유,여러가지 은사) 지금도 주님은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4:20)"
생활하는 가운데 예수의 향기가 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뛴다. 외면의 모습에서 나오는 향이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물씬 풍겨 나오는 예수의 진한 향기.
보이는 것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금방 질리고 금방 시들어 버린다.
보이진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확실히 느껴지는 주님.획기적이진 않아도 격동적이진 않아도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지만 마침내가 있고 찬란함이 있어서 모든 수고와 눈물과 고통을 잊게 하는 기도응답. 난 그런 주님이 좋다. 약한 가운데에서도 소망의 기도를 올리게 해 주시는 주님이 감사하다.
연약한 환경 가운데 지금 나에게 주어진 중요한 여러 기도 제목들이 있지만 주의 말씀의 풍성함으로 인하여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닌 지금 내 안의 천국의 임재를 느낀다. (천국은 여기있다 저기 있다 못하리니 너희 안에 있느니라)
큰 교회 다닐때 아니 3년 전만 해도 성령은 그냥 단순한 방언, 통변,예언 같은 한정된 세계로만 알고 그렇게 신앙생활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목사님을 만나뵙고 성령의 무한한 세계를 맛보았고 맛보고 있다. 성령의 깊은 말씀에 취하기도 하고 체험도 하고...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 목사님을 통하여 성령의 사역을 하고 계신다. 안수의 기도가 강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 목사님의 안수 기도를 받고 신유의 능력을 체험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집사님은 둘째 임신하고 태아 상태가 안 좋았는데 목사님 모시고 안수기도 받고 순산하고, 또 다는 집사님은 손 수술을 앞두고 우리 목사님 집회 참석해서 깨끗이 치료받고, 코와 목 사이에 혹이 있던 어느 집사님도 깨끗이 치료받고, 아기를 7년동안 갖질 못한 어떤 집사님은 목사님 안수기도 받고 둘째 낳고, 우리 아이 눈 시력 높여주셔서 서울대 병원 가서 기적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내 허리 디스크 4일 만에 고쳐주시고...
어떻게 다 쓰랴. 요번주 월요일에도 쓸개 제거 수술을 앞둔 어떤 성도가 와서 기도 받기로 했다. 이렇게 주님은 우리 목사님을 강하게 사용하고 계신다. 사람들이 우리 목사님을 몰라서 오지 못해서 체험 못한 거지 오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냥 안 갔다. 은혜를 강하게 받든, 신유를 체험하든, 성령체험을 하고 갔다.
그런 여러가지 모습들을 보면서 난 주님께 원망 할 때가 있었다. 왜 저리 능력있으신데 주님은 너무나 모질게 저리도 오랜 세월 버려두실까? 하고. 지하 햇빛도 안 오는 교회에 오랫동안 방치해 두실까?
너무 야속했다. 하지만 지금은 감사다. 왜냐면 약한데서 강해진다고 성경에 써 있듯이 오랜 연단이 있었기에 한 맺힌 기도와 절규가 있었기에 연단을 통한 강한 능력의 도구로 쓰여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았다.
왜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판단할까. 안타깝다. 성경에 써 있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느니라(고전4:20)
능력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여러가지 능력이 있지만 말씀에 능력, 좌우의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심령골수를 쪼개고도 남을 말씀, 그것만 보더라도 목사님을 주님이 쓰신다는 것을 확신한다. 목사님을 만나뵙고 말씀에 갈증을 느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어려운 가운데서도 요동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평안해지는 소망의 기도 올리는 것을 배웠다.
내가 매일 기도하고 우리 교회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이유가 하나 있다. 좀 더 나은 환경을 받아서 날마다 뜨거운 성령의 집회를 열고 그 안에서 방언,통변,예언등 각종 은사와 병고침의 역사를 날마다 체험하는 것, 천국 잔치를 날마다 여는것. 그 이유 하나다. 지금도 그 생각하면 기도가 더욱 간절해 진다. 속히 응답되기를.
한 1년전의 일이다.
여러가지 기도 제목 중에 내 친구를 위한 기도 제목이 있었다. 그 친구가 부탁해서가 아니고 그냥 기도 해 주고 싶어서 오랜 시간을 두고 기도를 해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하루 일과를 마치고 기도를 하고 있는데 그 친구를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 고낼료 가족이 떠 올랐다. 좋았는데 베드로를 초청하므로서 더 좋았더라 하는, 그래서 다음날 출근하는 남편을 붙잡고 그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도중 또 창세기 좋았더라 좋았더라 심히 좋았더라 가 떠 올랐다. 난 주님의 기도 응답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메세지를 보냈다. 한번반 만나보라고. 좋은 일이 있을것이라고.
지금 생각하면 후회스럽다. 진실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담대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그 친구한테 전화했다는 것이 후회스러운 것이 아니라 솔직하지 못했던 내 자신이 후회스럽다. 그 당시 난 내 친구아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중이었었다. 기도 하는 중에 기도 응답확신을 받아서 전화를 했지만 그때 인간적인 생각이 들어갔다. 혹시나 안되면? 하는 생각. 그래서 아기 이야긴 안 하고 그냥 좋은 일이 있을것이라고만 했는데...
지금도 난 확신한다. 그래서 지금도 그 친구를 위해서 간절한 맘으로 기도하고 있다. 꼭 한번만 어떻해서든 꼭 한번만 그 목사님 만나게 해달라고.
7년 동안 아기 못 가진 집사님이 목사님 안수기도 받고 아기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며칠전에 들었다. 진작 들었다면 좀 더 확신을 가지고 내 친구에게 이야기 해줬을 텐데. 같은 경우가 있었다고.
지금은 그 친구랑 연락이 안된다.
성령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친구가 끼어드는 바람에 내 친구에 대한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야속함, 섭섭함으로 전화번호를 지워버렸다. 정말 한번만 만나서 말씀을 들어본다면 그리고 안수기도 한번 받는다면 친구로써 여한이 없겠다. 아직 때가 안됐나 보다. 만남의 때가. 하지만 만날만한 때에 만나라라는 성경 말씀이 있듯이 지금 나의 간절한 기도가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만날만한 때가 아닌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항상 역사하신다. 성경속에서만 목사님들 설교속에서만 역사하시는 주님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도하는 성도의 마음속에 환경속에 그리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려고 노력하는 주의 사랑하는 자들속에 언제나 함께 하신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고 기도는 응답받기 위해 하는 것이다. 소망은 인내를 요구한다. 그리고 말씀안에서의 인내는 평안을 보장한다. 기적을 보장한다. 우리의 믿음이 성경을 벗어나지 못해서, 계산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믿음은 계산을 뛰어넘고 성경의 기적을 뛰어넘어 우리 사는 생활 가운데서 진가를 발휘한다.
그것을 난 날마다 체험하며 모든 사람들이 체험하길 바라며 성령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한번 체험해 보라고 외치고 싶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오늘도 주님이 맡겨 주신 일감에 충실하며 (신유,여러가지 은사) 지금도 주님은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