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는 인간이 되자

조승연200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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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기독교인들의 성경비판 글들이 어떠한 가치를 가지냐고 물어본 기독교인도 있었다.


다시말해 한국 개신교의 부패와 배타성만 지적하면 되었지, 성경비판이 무슨가치가 있냐는
질문들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성경비판은 진실을 탐구하고자 하는 점에 가치가 있다. 또한 무조건적인
맹신은 배타를 유발시키는 것은 물론, 발전을 저해한다.


갈릴레이를 종교재판에서 무릎꿇게 만든것도 바로 성경이었다.



의심하는 정신, 그것은 인간으로써, 그리고 민주시민으로써 당연히 거쳐가야 할 과정이다.


그 과정을 무시하고 억제시킨 결과는 우매한 광신자를 만들뿐이며, 민주주의의 다원성도
인정하지 않는 꽉막힌 배타적 인간만을 양산할 뿐이며, 과학마져도 부정하면서 인간이
걸어가야할 발전을 퇴보시킨다.


의문을 갖는 것은 본능적인 인간의 본성이지만 기독교에서는 그 본성을 억압한다.


사단이니 마귀니 시험에 든다느니 죄악시 한다.


어째서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지적 호기심을 원천봉쇄하는 것인가?


왜 기독교의 신은 자신을 의심하지 말라고 하는지 한 번 역으로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오히려 어떤 종교는 끊임없이 회의하고 물음을 찾으라고도 한다.


기독교의 신은 무지몽매한 인간들만 좋아하는것은 아닌가?


기독교의 출발부터 오류에서 비롯된 때문은 아닌가?


기독교는 결코 보이고 싶지 많은 비밀을 숨겨두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기독교 내에서 믿음과 의심은 정녕 병립할 수 없는 것인가?



특히 한국 개신교의 문제는 무조건적인 믿음의 강요와, 믿지 않는 자에 대한 무시와
비난,의심과 회의를 원천 봉쇄함으로서 인간을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이다.


이런 것들의 폐해는 필연적으로 무지한 기독교와, 허약한 신앙과, 배타적 신앙을 낳게 된다.



회유와 협박, 불안과 공포, 물질적 축복의 갈구 등을 통해 기독교에 입문한 사람들은(어쩌면
거의 대다수이지만), 진리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자신의 부족분을 채우는 것으로만 만족하기
쉽다.


불안한 사람은 평화로우면 그만이고, 몸이아픈 사람은 마음의 위안을 얻으면 그만이고, 빈궁한
자신의 신에게 부를 가져다 달라고 기도를 드리며 위안을 얻으면서 더이상 진전이 없는
상태로, 거기에서 안주하고 마는 것이다.


안주하고 만족하는 순간, 치열한 과정을 통해 진리를 깨달음으로 인해 의심이 해소된 것이
아니라, 의심 자체가 불필요한 상태에 머물게 되어버린다.


이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의심하지 않는 신앙, 의심 없는 믿음....... 언뜻 강고한 신앙인의 자세로 착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복제품일 따름이다.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따져보아도 도대체 의심 없이 믿음이 있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믿음이 아니고 맹신이 아니지 않는가!



한참 지적인 활동이 왕성할 청소년들에게 반복적인 찬양을 시키면서, 사고하고 의심할 능력을
마비시키는 것이 한국 기독교의 교회교육이다.


사회를 개혁하고 이웃을 섬기는 복잡하고 불편한 과정으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회의해야 할 성인들에게, 단순하기 짝이 없는 교회 포스터 쪼가리 따위로 "그대는
구원받았다!"며 마취시키는 것이 한국 기독교의 기본 패턴인것이다.



신학대학의 많은 학생들 뿐 아니라 일반 교회의 많은 신자들도 조금만 자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처음 기독교를 접하고 당연히 회의를 갖지 않는가?


그런데 그들이 종래 어떻게 변해가는가? 기독교가 지난 2천년 동안 회의하는 지성과 자의식을
잠재웠다.


그래서 구심, 회의, 지적 호기심을 죄악시 하기위해 "성령을 의심하지 마라"라고 주장하지
않앗던가? 자신들의 하나님의 전지 전능이 부족해 결국 마귀나 사탄까지 동원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거의 세뇌의 기술이라고 밖에는 볼수없다.


반복적인 행위와 반복적인 억압, 동류의식 그리고 죄의식의 주입해서 말이다.



기독교인들은 흔히 "신의 뜻은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으니 그냥 믿어버려라."라는 주장을
흔히 한다.


정녕 믿음이 그런것인가? 답이 나오지 않은 것을 일단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인것인가?


그것이 확신인가? 그것이 신앙인가? 믿음으로 얻는 진리, 그것이 무슨 구구단인가?


그렇다면, 무당이 섬기는 신도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으니 그냥 믿어버리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과연 치열하고 처절한 의심의 터널에서 헤메보지 않고서 쉽사리 얻을 수 있는 진리따위가
있겠는가? 있다 한들, 혹시 광신자의 싸구려 진리가 아니겠는가?


종교와 학문을 착각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실 분도 계시겠지만, 철저하게 믿음의 복종만
강요하는 한국 기독교는 비난받아야만 한다.


기독교에 뭐 대단한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사기만 치지 말라는 거다.



목사들 자신역시 신학교에서 여러분들이 알고있는 것과는 딴판인 신학을 배웠다.


기독교에 대해서 의심하는 것이 죄악이라면, 신학따위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왜 신학생들은 목사가 되기 위해서 신학교에서 신학을 배워야 하는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눈으로 기독교라는 종교를 보기위함이다.


만약 목사의 조건으로 믿음이 우선이라면, 광신자를 목사로 세우는 것이 낫다.


그러나, 그런 광신자의 관점으로는 신자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낼수가 없다.



그런데, 목사들은 신학교에서 제대로 된 신학을 배우고서는, 주일날 강단에 서서는 신도들에게
엉뚱한 설교를 하는 것이다.


한국의 목사들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신학을 배우고서도 신자들에게 맹신과 광신을
요구하고 있다.



제발 거짓을 가르키지 말자.


믿기지 않아도 믿으면 알 수 있다고 사기치면서 사람 바보 만들지 말라.


그리고 의심하는 자에게 질문을 허락하라!


손 붙잡고 시험에 들었다는 둥, 기도하자는 둥, 의심을 가지게 된 사람을 자신과 똑같은 바보로
끌어내리지 마라.



기독교인 되기 쉽다고 한다. 일단 믿으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무조건 믿는 자세, 즉 맹신하는 믿음은 어린이들의 태도에 불과 할뿐이다.


하기야 기독교인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최고로 평가한다. 이러니 말이 통하는가?



어쨌든, 그 믿음, 혹은 믿는다는 착각, 혹은 진실에 대한 외면 속에서 스스로 도취되어가고
자기방어 집단합리화 끊임없는 동어반복!


신은 인간을 로봇으로 만든 적이 없다.


상식과 지식과 몸과 영혼을 모두 내던져 부딪히면서 치열하게 자연에게 도전하면서 삶의
난제들에 대한 숨은 해답을 찾아가는, 그런 의심 많은 진정한 인간으로 다시 거듭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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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으면 반박해봐, 논리적으로 , 그 누구든지 ,의심하는 인간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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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같이 살다가 , 죽기 3초 직전에만 회개 기도하면

 

천국행?

 

천국가기 쉽군 , 이거 맞는거야 ? 아님 틀린거야 ?

 

요즘 마니 햇갈린다 .

 

모태신앙인 나도 모르겠는데 ,

 

논리적으로, 똑바로, 시원하게  

 

말해 줄 제대로 된 기독교인 어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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