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던가. 중국계 음악이 궁중의 모든 의식음악에 사용되던 조선시대 초기의 음악상황이나 지금의 음악상황이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이라면 중국음악 대신에 서양음악이 국가의식음악에 사용된다는 점뿐이다. 당시에 세종대왕은 이런 상황을 개탄하고 새로운 향악을 창제하여 의식음악에 사용토록 했다.
지금도 종묘제례악에 사용되는 정대업, 보태평의 음악이 바로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세종대왕이 종묘제례악에 중국음악이 아닌 우리의 음악을 사용하려 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 생전에는 우리 음악을 듣고 죽으면 중국음악으로 제를 지낸다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종대왕은 우리 음악이 중국음악에 비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500여년 전의 까마득한 일이지만 지금의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크고 작은 국가행사에 있어서 모든 의식 음악은 서양음악으로 대체되고 있다. 우리의 음악은 그야말로 구색을 갖추기 위해서 아주 가끔 사용될 뿐이다. 외국의 국빈을 맞을 때건, 국가의 경축행사이건 때를 가리지 않고 서양 의식음악이 사용된다.
우리 국민은 예로부터 체통을 매우 중시하는 걸로 알려져 왔다. 비록 때울 끼니가 없어 몇끼를 굶어도 양반 체면에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자존심이 강한 민족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체통을 세워야 할 외국손님을 맞는 자리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음악을 접어둔 채 서양음악만을 연주하고 있다. 과연 외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서양악기로 구성된 군악대의 사열을 받으면서 문화적인 우월감을 느끼게 될 서양인은 없을지 궁금하다. 우리 음악을 외국인 앞에서 연주하는 것이 부끄럽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음악의 예술성이 서양음악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우리의 음악이 중국음악에 비해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다는 세종대왕의 말을 다시 끄집어낼 필요도 없이 우리의 음악이 서양음악보다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설혹 우리의 음악이 서양음악에 뒤떨어진다고 해도 외국의 국빈을 맞는 자리에서 우리의 음악을 감추고 서양음악만을 연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나라의 체통이 서지 않는다는 말이다.
만약 현재의 우리음악이 지금의 시대 감각에 맞지 않는다면 시대감각에 맞는 새로운 의식음악을 만들어 사용하면 될 것이다. 그 정도의 수고나 노력이 없이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인가, 모든 국가 의식음악에 있어서 체통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의 것은 우리가 소중히 생각하지 않으면 어느 누가 소중히 생각할 것인가.
언제인가 한 국악단체에서 소속단원의 결혼식을 그 단체의 전통극장에서 무료로 개최해 주면서 신랑, 신부의 등, 퇴장 등 모든 음악을 서양음악으로 진행하는 것을 본 일이 있는데, 이것 역시 체통이 깎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체에서 새로운 등, 퇴장 음악을 만들어서 사용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최소한도 전통음악 중에서 선곡하여 사용하는 성의를 보였어야 옳다. 인륜지 대사인 결혼식에서만이라도 우리의 음악을 사용하는 것이 국악인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
최근에 종교계에서 각종 의식에 우리 음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불교계에서는 기존의 서양음악양식으로 만들어진 찬불가가 불자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국악으로 만든 찬불가를 널리 보급하고 있고, 기독교 계에서도 서양음악양식의 찬송가를 국악성가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종교의식에서 사용하는 말이 외국어가 아닌 우리말인 이상 모든 의식에 우리의 음악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말을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음악이 바로 우리음악이기 때문이다.
국가의식음악과 종교의식음악, 또 각 개인의 경조사에 사용되는 의식음악부터 하나 하나 우리의 음악으로 대체해 나갈 때 국악의 생활화는 앞당겨 질 수 있을 것이다
" 각종 의식음악에 우리의 국악을 사용하자 "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던가. 중국계 음악이 궁중의 모든 의식음악에 사용되던 조선시대 초기의 음악상황이나 지금의 음악상황이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이라면 중국음악 대신에 서양음악이 국가의식음악에 사용된다는 점뿐이다. 당시에 세종대왕은 이런 상황을 개탄하고 새로운 향악을 창제하여 의식음악에 사용토록 했다.
지금도 종묘제례악에 사용되는 정대업, 보태평의 음악이 바로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세종대왕이 종묘제례악에 중국음악이 아닌 우리의 음악을 사용하려 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 생전에는 우리 음악을 듣고 죽으면 중국음악으로 제를 지낸다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종대왕은 우리 음악이 중국음악에 비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500여년 전의 까마득한 일이지만 지금의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크고 작은 국가행사에 있어서 모든 의식 음악은 서양음악으로 대체되고 있다. 우리의 음악은 그야말로 구색을 갖추기 위해서 아주 가끔 사용될 뿐이다. 외국의 국빈을 맞을 때건, 국가의 경축행사이건 때를 가리지 않고 서양 의식음악이 사용된다.
우리 국민은 예로부터 체통을 매우 중시하는 걸로 알려져 왔다. 비록 때울 끼니가 없어 몇끼를 굶어도 양반 체면에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자존심이 강한 민족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체통을 세워야 할 외국손님을 맞는 자리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음악을 접어둔 채 서양음악만을 연주하고 있다. 과연 외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서양악기로 구성된 군악대의 사열을 받으면서 문화적인 우월감을 느끼게 될 서양인은 없을지 궁금하다. 우리 음악을 외국인 앞에서 연주하는 것이 부끄럽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음악의 예술성이 서양음악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우리의 음악이 중국음악에 비해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다는 세종대왕의 말을 다시 끄집어낼 필요도 없이 우리의 음악이 서양음악보다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설혹 우리의 음악이 서양음악에 뒤떨어진다고 해도 외국의 국빈을 맞는 자리에서 우리의 음악을 감추고 서양음악만을 연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나라의 체통이 서지 않는다는 말이다.
만약 현재의 우리음악이 지금의 시대 감각에 맞지 않는다면 시대감각에 맞는 새로운 의식음악을 만들어 사용하면 될 것이다. 그 정도의 수고나 노력이 없이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인가, 모든 국가 의식음악에 있어서 체통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의 것은 우리가 소중히 생각하지 않으면 어느 누가 소중히 생각할 것인가.
언제인가 한 국악단체에서 소속단원의 결혼식을 그 단체의 전통극장에서 무료로 개최해 주면서 신랑, 신부의 등, 퇴장 등 모든 음악을 서양음악으로 진행하는 것을 본 일이 있는데, 이것 역시 체통이 깎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체에서 새로운 등, 퇴장 음악을 만들어서 사용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최소한도 전통음악 중에서 선곡하여 사용하는 성의를 보였어야 옳다. 인륜지 대사인 결혼식에서만이라도 우리의 음악을 사용하는 것이 국악인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
최근에 종교계에서 각종 의식에 우리 음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불교계에서는 기존의 서양음악양식으로 만들어진 찬불가가 불자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국악으로 만든 찬불가를 널리 보급하고 있고, 기독교 계에서도 서양음악양식의 찬송가를 국악성가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종교의식에서 사용하는 말이 외국어가 아닌 우리말인 이상 모든 의식에 우리의 음악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말을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음악이 바로 우리음악이기 때문이다.
국가의식음악과 종교의식음악, 또 각 개인의 경조사에 사용되는 의식음악부터 하나 하나 우리의 음악으로 대체해 나갈 때 국악의 생활화는 앞당겨 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