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국무원 산하 사회과학원 직속 변강사지연구중심에서는 2002년 2월부터 동북공정이라는 국가적 프로젝트를 5년간 추진하고 있다. 중국 동북 지방의 역사, 지리, 민족 문제 등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를 학제적으로 다루는 중점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동북공정'에서 다루는 문제 중에서 고구려를 비롯한 고조선과 발해 등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2. 동북공정의 배경
2001년 한국 국회에서 재중 동포의 법적 지위에 대한 특별법이 상정되자 중국 당국은 조선족 문제와 한반도의 통일과 관련된 문제 등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대책을 세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2001년 북한이 고구려의 고분군은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을 신청하자 국가적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을 기획하고 추진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북한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을 받게 되면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주장하는 명분이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많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방해하고, 2003년 봄 오히여 집안시 주변의 고구려 고분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줄 것을 신청한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볼 때, 통일한국과 있을 국경문제를 비롯한 영토 문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볼 수 있다.
3. 동북공정의 내용
'동북공정'에서 한국 고대사에 대한 연구는 고조선과 고구려 및 발해에 걸쳐있지만 가장 핵심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주제는 고구려로서 전문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 부분이 우리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문제인데, 고구려를 고대 중국의 일개 지방 민족 정권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고구려의 역사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있었으나, 국가적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을 통하여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 정권으로 단정하여 공식적 견해로 확정해 버린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몇 가지 제시를 하고 있으나, 사실에 기초하여 볼 때 수긍하기 어려운 궁색한 이야기들이다. 고구려가 중국 영역 내의 민족이 건립한 지방 정권이라는 것, 활동 중심에 있어 몇 번의 천도가 있었으나 결코 한사군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것, 고구려가 줄곧 중국 역대 중앙 왕조와 군신관계를 유지하였고 중국 밖으로 벗어나기 위해 그 관계를 스스로 끊지 않았다는 것, 고구려 멸망 후에 그 주체 집단이 한족에 융합되었다는 것 등을 내세워 고구려가 고대 중국의 지방 민족 정권이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고구려와 고려 및 조선족을 혼돈해서는 안된다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고구려의 고씨와 고려의 왕씨는 혈연적으로 다르며 시간적으로 250년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역사적 계승성이 없다는 것이다.
1) 고구려는 중국 땅에 세워졌다.
고구려가 탄생한 지역은 기원전 3세기 모두 연(燕)의 영역이었고, 진(秦)이 6국을 통일한 뒤에는 진나라에 속했다. 기원전 108년 한(漢)나라가 위만조선(衛滿朝鮮)을 멸망시키고 현도군을 설치했는데 이 때 고구려는 현도군의 한 현이었다. 주몽이 고구려 5부를 통일하고 나라를 세운 곳도 현도군의 영토였다. 고구려의 건국은 이처럼 모두 중국의 영토에서 진행되었으므로 오늘의 한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 반론 : 영토 패권주의에 불과하다.
고조선, 부여, 예맥 등 고구려에 선행하는 역사는 명백한 우리의 역사이다. 현재 자국 영토안에 있다는 이유로 그 역사까지 모두 자기네 것으로 주장하는 것은 영토 패권주의에 불과하다. 한사군의 실체와 성격에 대한 중국측 주장은 일방적인 것이다. 실상은 고조선과 한(漢)나라의 변경에 있었던 국경 분쟁이며 현도군은 광역의 식민지 군현으로서 기능했다기보다는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한 창구의 역할을 하는데 지나지 않았다. 고구려는 부여에서 발원했다.
2)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 정권이었다.
주몽의 건국 이래 고구려현은 이미 한(漢)의 현도군에 속했다. 동한(東漢) 180년 동안 고구려는 모두 동한 왕조의 신하였다. 220년부터 426년까지 고구려는 중국 중앙 정권의 신하로 예속되어 고구려후, 고구려왕, 정동대장군 등의 관직을 받았다. 남북조 시기에는 북위, 북제 및 남조의 각 정권에 공물을 바쳤다. 이처럼 고구려 왕국은 시종 중국의 한 지방 민족 정권이었다.
→ 반론 : 명백한 독자 국가였다.
고구려 건국 초기에는 조공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고구려가 강성했을 때 조공이 많았는데 이는 고구려가 조공과 책봉을 외교적 목적으로 활용했다는 의미이다. 조공과 책봉만으로 지방이라 규정한다면 마찬가지로 조공했던 일본, 신라, 베트남 등도 모두 중국의 지방 정권이란 말인가? 고구려가 영락, 영가 등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것도 중원의 조공국이 아니라 중원 왕조에 대응하는 독자적 국가였음을 말해준다.
3) 고구려 민족은 중국 고대의 한 민족이다.
고구려가 망한 뒤, 고구려의 후예들 가운데 일부는 중원, 돌궐, 발해 등으로 들어가 모두 중국의 각 종족에 융화되었다. 대동강 이남의 일부 고구려인들만 신라로 넘어갔다. 오늘날 한(韓)민족의 선조는 주로 고대 삼한(三韓) 곧 신라인이고 조선 반도로 옮겨간 중국의 각 종족도 상당 수 섞여 있다. 고구려의 후예는 극소수이다.
→ 반론 : 설득력없는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고대 중국은 자기네 민족만 중화로 부르고 나머지는 동이, 서융, 남만, 북적 등 오랑캐로 단정했다. 이는 각종 사료에도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와서 고구려가 중국 민족이었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고조선, 부여, 예맥을 중국 민족이라고 규정하는 주장은 불과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국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주장이다.
4) 수, 당과 고구려의 전쟁은 중국 국내 전쟁이었다.
고구려가 자리했던 곳은 1000년 간(낙랑군 400년+기씨, 위씨 조선)중국 한 족이 지배하던 곳이기 때문에 수, 당이 고구려를 친 것은 중국 국내 민족간 전쟁이었다. 고조선-위씨조선-낙랑으로 바뀐 것도 모두 한족이기 때문에 같은 민족의 통일 전쟁이며, 고구려가 낙랑군을 차지한 것도 중국 내에서 전개된 민족 간의 침범이었다.
→ 반론 : 동아시아의 세계 대전이다.
수, 당전쟁은 고구려만 참여한 게 아니었다. 백제, 신라, 왜 등이 모두 참여한 동북아시아의 세계 대전의 성격이 짙었다. 더구나 수나라와의 전쟁은 고구려가 먼저 수나라를 침공함으로써 발발한 전쟁이었다. 세계의 어느 지방 정권이 중앙 정권에 대해 그처럼 대규모의 전쟁을 벌일 수 있다는 말인가? 고구려가 자리했던 곳은 고조선-부여-고구려로 이어지는 한(韓)민족의 강역이다.
5) 왕씨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가 아니다.
왕건은 신라 장군이었고 신라를 멸한 다음 후고려를 건립했다. 왕권은 신라 김씨 계통으로 고구려 고씨의 위(位)를 계승한 것이 아니었다. 왕씨 고려는 대동강 이남만 차지했고, 수도 개성은 신라의 옛 땅이지 고구려의 땅이 아니었다. 따라서 왕씨 고려는 오늘날 한(韓)민족의 선조가 건국한 것이지만, 고씨 고려는 중국 역사로써 오늘날 중국 각 민족의 선조가 세운 것이다.
→ 반론 : 명백한 고구려 계승 국가였다.
왕건은 고구려를 계승하는 의미에서 국호를 고려라고 지었다. 이것은 고려가 고구려를 이어받았다는 명백한 역사 의식의 산물이었다. 고려는 또한 고구려의 옛 땅의 압록강까지 진격해 갔다. 고려가 고구려를 이어받았다는 것은 송나라 때의 [송사(宋史)]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측의 주장은 자신들의 정사(正史)까지 부인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6) 한반도 북부(북한)지역도 중국의 역사다.
한반도가 오늘날 한(韓)민족의 거주지가 된 것은 15세기 이후의 일이다. 따라서 5세기에 고구려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것을 놓고 조선이라는 국가가 생겼다고 봐서는 안된다. 15세기 이후의 이씨 조선과 기씨 조선(기원전 11세기), 위씨 조선(기원전 2세기) 등은 모두 조선이라 불렀으나 민족 구성과 국가 귀속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로 보아선 안된다. 이씨 조선은 오늘날 한민족이 세운 조선으로 한국의 역사에 속하고 기씨 조선과 위씨 조선은 한족(韓族)을 선조로 한 옛 조선으로 중국 역사에 속한다.
→ 반론 : 결코 중국의 역사가 될 수 없다.
한반도와 만주 대륙을 하나의 구획으로 했던 한(韓)민족의 역사 무대가 한반도로 좁혀진 것은 고려 이후 일이며 한반도 유사 이래 변함없이 한민족의 터전이었다. 북한 지역의 중국 역사에 귀속된다는 중국측의 주장은 정도를 넘어선 억지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역사적 의미에서 중국의 범위는 만리장성 이남일 뿐이다. 현재의 중국 국경선 자체가 만주족의 정복 왕조인 청(淸)나라가 개척한 것으로 만주족의 역사 또한 한독 중심의 중국사에 편입될 수 없다.
4.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한 대응 방안
'동북공정'의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하기 위한 역사 왜곡은 일본의 역사 왜곡 교과서 사건 보다 더욱 심각한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의 역사 왜곡 사건은 검인정 교과서 중에 하나인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 왜곡은 중국의 정부 기관이 나서서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훨씬 크다. 더구나 고구려 역사 뿐만 아니라 발해사와 고조선사까지 왜곡하고 있으므로 한국의 역사는 시간적으로 2000년 밖에 되지 않으며, 공간적으로 한강 이남으로 국한되게 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먼저 고구려 연구 재단을 중심으로 고구려 역사에 대한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 먼저 그들이 주장하는 논리와 근거를 확실히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에 대한 대응 논리를 개발하고 사실을 왜곡한 부분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또한 중국의 역사 왜곡 문제에 대해 장기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중국의 동북 지방(만주)에 대한 역사와 지리 및 민족 문제에 대한 관련 자료 수집, 중장기적 기초 연구, 학문 후속 세대 양성, 민간 전문 기관 육성, 중국의 역사 왜곡 실태 홍보 등의 제반 임무를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여태까지 우리는 만주 지역에 대한 관심이 저조하였으며, 이에 대한 연구는 일천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한편, '동북공정'이 시작된 직접적 계기이자 가장 시급한 문제는 북한이 유네스코에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만약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이 단독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다면 고구려의 역사가 마치 중국의 역사인 것처럼 오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역사는 남과 북 어느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이므로 남북공조로서 고구려의 역사를 지켜낸다면 남북공조의 모범적 사례가 될 것이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동북공정의 배경과 대응 및 내용
1. 동북공정
중국의 국무원 산하 사회과학원 직속 변강사지연구중심에서는 2002년 2월부터 동북공정이라는 국가적 프로젝트를 5년간 추진하고 있다. 중국 동북 지방의 역사, 지리, 민족 문제 등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를 학제적으로 다루는 중점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동북공정'에서 다루는 문제 중에서 고구려를 비롯한 고조선과 발해 등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2. 동북공정의 배경
2001년 한국 국회에서 재중 동포의 법적 지위에 대한 특별법이 상정되자 중국 당국은 조선족 문제와 한반도의 통일과 관련된 문제 등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대책을 세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2001년 북한이 고구려의 고분군은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을 신청하자 국가적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을 기획하고 추진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북한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을 받게 되면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주장하는 명분이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많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방해하고, 2003년 봄 오히여 집안시 주변의 고구려 고분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줄 것을 신청한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볼 때, 통일한국과 있을 국경문제를 비롯한 영토 문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볼 수 있다.
3. 동북공정의 내용
'동북공정'에서 한국 고대사에 대한 연구는 고조선과 고구려 및 발해에 걸쳐있지만 가장 핵심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주제는 고구려로서 전문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 부분이 우리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문제인데, 고구려를 고대 중국의 일개 지방 민족 정권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고구려의 역사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있었으나, 국가적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을 통하여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 정권으로 단정하여 공식적 견해로 확정해 버린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몇 가지 제시를 하고 있으나, 사실에 기초하여 볼 때 수긍하기 어려운 궁색한 이야기들이다. 고구려가 중국 영역 내의 민족이 건립한 지방 정권이라는 것, 활동 중심에 있어 몇 번의 천도가 있었으나 결코 한사군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것, 고구려가 줄곧 중국 역대 중앙 왕조와 군신관계를 유지하였고 중국 밖으로 벗어나기 위해 그 관계를 스스로 끊지 않았다는 것, 고구려 멸망 후에 그 주체 집단이 한족에 융합되었다는 것 등을 내세워 고구려가 고대 중국의 지방 민족 정권이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고구려와 고려 및 조선족을 혼돈해서는 안된다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고구려의 고씨와 고려의 왕씨는 혈연적으로 다르며 시간적으로 250년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역사적 계승성이 없다는 것이다.
1) 고구려는 중국 땅에 세워졌다.
고구려가 탄생한 지역은 기원전 3세기 모두 연(燕)의 영역이었고, 진(秦)이 6국을 통일한 뒤에는 진나라에 속했다. 기원전 108년 한(漢)나라가 위만조선(衛滿朝鮮)을 멸망시키고 현도군을 설치했는데 이 때 고구려는 현도군의 한 현이었다. 주몽이 고구려 5부를 통일하고 나라를 세운 곳도 현도군의 영토였다. 고구려의 건국은 이처럼 모두 중국의 영토에서 진행되었으므로 오늘의 한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 반론 : 영토 패권주의에 불과하다.
고조선, 부여, 예맥 등 고구려에 선행하는 역사는 명백한 우리의 역사이다. 현재 자국 영토안에 있다는 이유로 그 역사까지 모두 자기네 것으로 주장하는 것은 영토 패권주의에 불과하다. 한사군의 실체와 성격에 대한 중국측 주장은 일방적인 것이다. 실상은 고조선과 한(漢)나라의 변경에 있었던 국경 분쟁이며 현도군은 광역의 식민지 군현으로서 기능했다기보다는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한 창구의 역할을 하는데 지나지 않았다. 고구려는 부여에서 발원했다.
2)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 정권이었다.
주몽의 건국 이래 고구려현은 이미 한(漢)의 현도군에 속했다. 동한(東漢) 180년 동안 고구려는 모두 동한 왕조의 신하였다. 220년부터 426년까지 고구려는 중국 중앙 정권의 신하로 예속되어 고구려후, 고구려왕, 정동대장군 등의 관직을 받았다. 남북조 시기에는 북위, 북제 및 남조의 각 정권에 공물을 바쳤다. 이처럼 고구려 왕국은 시종 중국의 한 지방 민족 정권이었다.
→ 반론 : 명백한 독자 국가였다.
고구려 건국 초기에는 조공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고구려가 강성했을 때 조공이 많았는데 이는 고구려가 조공과 책봉을 외교적 목적으로 활용했다는 의미이다. 조공과 책봉만으로 지방이라 규정한다면 마찬가지로 조공했던 일본, 신라, 베트남 등도 모두 중국의 지방 정권이란 말인가? 고구려가 영락, 영가 등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것도 중원의 조공국이 아니라 중원 왕조에 대응하는 독자적 국가였음을 말해준다.
3) 고구려 민족은 중국 고대의 한 민족이다.
고구려가 망한 뒤, 고구려의 후예들 가운데 일부는 중원, 돌궐, 발해 등으로 들어가 모두 중국의 각 종족에 융화되었다. 대동강 이남의 일부 고구려인들만 신라로 넘어갔다. 오늘날 한(韓)민족의 선조는 주로 고대 삼한(三韓) 곧 신라인이고 조선 반도로 옮겨간 중국의 각 종족도 상당 수 섞여 있다. 고구려의 후예는 극소수이다.
→ 반론 : 설득력없는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고대 중국은 자기네 민족만 중화로 부르고 나머지는 동이, 서융, 남만, 북적 등 오랑캐로 단정했다. 이는 각종 사료에도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와서 고구려가 중국 민족이었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고조선, 부여, 예맥을 중국 민족이라고 규정하는 주장은 불과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국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주장이다.
4) 수, 당과 고구려의 전쟁은 중국 국내 전쟁이었다.
고구려가 자리했던 곳은 1000년 간(낙랑군 400년+기씨, 위씨 조선)중국 한 족이 지배하던 곳이기 때문에 수, 당이 고구려를 친 것은 중국 국내 민족간 전쟁이었다. 고조선-위씨조선-낙랑으로 바뀐 것도 모두 한족이기 때문에 같은 민족의 통일 전쟁이며, 고구려가 낙랑군을 차지한 것도 중국 내에서 전개된 민족 간의 침범이었다.
→ 반론 : 동아시아의 세계 대전이다.
수, 당전쟁은 고구려만 참여한 게 아니었다. 백제, 신라, 왜 등이 모두 참여한 동북아시아의 세계 대전의 성격이 짙었다. 더구나 수나라와의 전쟁은 고구려가 먼저 수나라를 침공함으로써 발발한 전쟁이었다. 세계의 어느 지방 정권이 중앙 정권에 대해 그처럼 대규모의 전쟁을 벌일 수 있다는 말인가? 고구려가 자리했던 곳은 고조선-부여-고구려로 이어지는 한(韓)민족의 강역이다.
5) 왕씨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가 아니다.
왕건은 신라 장군이었고 신라를 멸한 다음 후고려를 건립했다. 왕권은 신라 김씨 계통으로 고구려 고씨의 위(位)를 계승한 것이 아니었다. 왕씨 고려는 대동강 이남만 차지했고, 수도 개성은 신라의 옛 땅이지 고구려의 땅이 아니었다. 따라서 왕씨 고려는 오늘날 한(韓)민족의 선조가 건국한 것이지만, 고씨 고려는 중국 역사로써 오늘날 중국 각 민족의 선조가 세운 것이다.
→ 반론 : 명백한 고구려 계승 국가였다.
왕건은 고구려를 계승하는 의미에서 국호를 고려라고 지었다. 이것은 고려가 고구려를 이어받았다는 명백한 역사 의식의 산물이었다. 고려는 또한 고구려의 옛 땅의 압록강까지 진격해 갔다. 고려가 고구려를 이어받았다는 것은 송나라 때의 [송사(宋史)]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측의 주장은 자신들의 정사(正史)까지 부인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6) 한반도 북부(북한)지역도 중국의 역사다.
한반도가 오늘날 한(韓)민족의 거주지가 된 것은 15세기 이후의 일이다. 따라서 5세기에 고구려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것을 놓고 조선이라는 국가가 생겼다고 봐서는 안된다. 15세기 이후의 이씨 조선과 기씨 조선(기원전 11세기), 위씨 조선(기원전 2세기) 등은 모두 조선이라 불렀으나 민족 구성과 국가 귀속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로 보아선 안된다. 이씨 조선은 오늘날 한민족이 세운 조선으로 한국의 역사에 속하고 기씨 조선과 위씨 조선은 한족(韓族)을 선조로 한 옛 조선으로 중국 역사에 속한다.
→ 반론 : 결코 중국의 역사가 될 수 없다.
한반도와 만주 대륙을 하나의 구획으로 했던 한(韓)민족의 역사 무대가 한반도로 좁혀진 것은 고려 이후 일이며 한반도 유사 이래 변함없이 한민족의 터전이었다. 북한 지역의 중국 역사에 귀속된다는 중국측의 주장은 정도를 넘어선 억지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역사적 의미에서 중국의 범위는 만리장성 이남일 뿐이다. 현재의 중국 국경선 자체가 만주족의 정복 왕조인 청(淸)나라가 개척한 것으로 만주족의 역사 또한 한독 중심의 중국사에 편입될 수 없다.
4.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한 대응 방안
'동북공정'의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하기 위한 역사 왜곡은 일본의 역사 왜곡 교과서 사건 보다 더욱 심각한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의 역사 왜곡 사건은 검인정 교과서 중에 하나인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 왜곡은 중국의 정부 기관이 나서서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훨씬 크다. 더구나 고구려 역사 뿐만 아니라 발해사와 고조선사까지 왜곡하고 있으므로 한국의 역사는 시간적으로 2000년 밖에 되지 않으며, 공간적으로 한강 이남으로 국한되게 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먼저 고구려 연구 재단을 중심으로 고구려 역사에 대한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 먼저 그들이 주장하는 논리와 근거를 확실히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에 대한 대응 논리를 개발하고 사실을 왜곡한 부분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또한 중국의 역사 왜곡 문제에 대해 장기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중국의 동북 지방(만주)에 대한 역사와 지리 및 민족 문제에 대한 관련 자료 수집, 중장기적 기초 연구, 학문 후속 세대 양성, 민간 전문 기관 육성, 중국의 역사 왜곡 실태 홍보 등의 제반 임무를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여태까지 우리는 만주 지역에 대한 관심이 저조하였으며, 이에 대한 연구는 일천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한편, '동북공정'이 시작된 직접적 계기이자 가장 시급한 문제는 북한이 유네스코에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만약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이 단독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다면 고구려의 역사가 마치 중국의 역사인 것처럼 오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역사는 남과 북 어느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이므로 남북공조로서 고구려의 역사를 지켜낸다면 남북공조의 모범적 사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