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트나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 안에서 겐지즈를 상상했다. 얼마나 위대한 강이고 아름다운 강이기에 모든 힌두인들이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기를 바라고 평생 한번이라도 이 강에서 목욕을 하고 싶어하는지... 이 강을 보고싶은 호기심은 그곳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거룩한 강..... 윤회의 굴레를 끊고 열반에 이르게 한다는 강.... 힌두인들은 이 강을 어머니의 강이라 불렀다. ‘강가’ 힌디어로 이 말은 어머니의 강이란 뜻이다.
그곳에 도착했을 땐 인산인해를 이룬 순례객들이 와 있었고 저마다 목욕을 하기 위해서 자리를 찾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의 풍경을 묘사하면 이러하다..
화장터.... 이승에서의 업과 전생의 업을 씻고 열반에 들라고 그의 후손들은 이곳에서 비싼 경비를 감수하며 시신을 화장하고 겐지즈에 재를 뿌린다. 크게 두 개의 화장터가 있는데 화장터마다. 하루에 적게는 50구에서 많게는 100구 이상의 화장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화장을 마친 후에는 바로 강에 뿌린다. 成人이 되지 못한 아이들의 시신은 천으로 둘둘 말고 추를 매달아 멀리 보트를 타고 나가서 어머니의 강에 가라앉게 했다.
그리고 얼마 떨어지지 않아 빨래터가 있어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빨래를 한다.
그리고 강가를 따라 길게 목욕터가 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순례자들이 이승의 것이든 전생의 것이든 업을 씻기 위해서 이곳에 목욕을 한다. 그리고 한 옆에는 소들도 목욕시키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강변엔 힌두교의 현자라 불리는 금욕생활을 하고 있는 사두들이 고행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힌두 신앙을 가지지 않은 나로서는 이 비위생적인 광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겐지즈의 물은 하수종말처리장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으며 한 모금이라도 마신다면 식중독을 불러 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기쁨으로 목욕을 했고 거룩한 성수를 자랑스럽게 마시기도 했다. 겐지즈의 성수를 감탄하면서 그들의 얼굴은 인생에서 마치 큰 무엇을 이룬 것처럼 의기양양했고 거룩함을 영접한 품위와 기품이 있었다. 분명 내가 알 수 없는 신앙의 힘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목욕을 마친 그들은 마치 고향에서 어머니를 뵌 것 같은 편안함으로 강을 응시했다.
신앙의 눈으로 이 어머니의 강은 위대한 것이다. 세속의 눈으로 이를 보려했을 땐 하나의 오염된 강에 불과한 것이었다.
어머니의 강은 더러울 수밖에 없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모든 업을 씻어준 물이기에 모든 생로병사를 스스로 껴안은 물이기에 강은 더러웠다. 세상에 지치고 죄에 찌든 아들을 안았기에 어머니의 맘은 멍든 것이다. 겐지즈는 더럽기에 거룩한 강인 것이다. 더럽기에 어머니의 강인 것이다. 우리 어머니의 마음처럼.....
그러나 어머니 강은 그 본래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화장터와 목욕터를 멀리하고 저 멀리 강을 바라보았을 때 그 맑음과 순결과 고귀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어머니의 강으로 어머니의 품으로 오는 것이었다.
이 의미를 깨달았을 때, 그들과 같이 목욕은 할 수 없었지만 손은 씻을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 어머니 강의 숭고함을 생각하며.....
겐지즈 강
어머니의 강 겐지즈
나는 사트나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 안에서 겐지즈를 상상했다. 얼마나 위대한 강이고 아름다운 강이기에 모든 힌두인들이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기를 바라고 평생 한번이라도 이 강에서 목욕을 하고 싶어하는지... 이 강을 보고싶은 호기심은 그곳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거룩한 강..... 윤회의 굴레를 끊고 열반에 이르게 한다는 강.... 힌두인들은 이 강을 어머니의 강이라 불렀다. ‘강가’ 힌디어로 이 말은 어머니의 강이란 뜻이다.
그곳에 도착했을 땐 인산인해를 이룬 순례객들이 와 있었고 저마다 목욕을 하기 위해서 자리를 찾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의 풍경을 묘사하면 이러하다..
화장터.... 이승에서의 업과 전생의 업을 씻고 열반에 들라고 그의 후손들은 이곳에서 비싼 경비를 감수하며 시신을 화장하고 겐지즈에 재를 뿌린다. 크게 두 개의 화장터가 있는데 화장터마다. 하루에 적게는 50구에서 많게는 100구 이상의 화장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화장을 마친 후에는 바로 강에 뿌린다. 成人이 되지 못한 아이들의 시신은 천으로 둘둘 말고 추를 매달아 멀리 보트를 타고 나가서 어머니의 강에 가라앉게 했다.
그리고 얼마 떨어지지 않아 빨래터가 있어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빨래를 한다.
그리고 강가를 따라 길게 목욕터가 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순례자들이 이승의 것이든 전생의 것이든 업을 씻기 위해서 이곳에 목욕을 한다. 그리고 한 옆에는 소들도 목욕시키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강변엔 힌두교의 현자라 불리는 금욕생활을 하고 있는 사두들이 고행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힌두 신앙을 가지지 않은 나로서는 이 비위생적인 광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겐지즈의 물은 하수종말처리장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으며 한 모금이라도 마신다면 식중독을 불러 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기쁨으로 목욕을 했고 거룩한 성수를 자랑스럽게 마시기도 했다. 겐지즈의 성수를 감탄하면서 그들의 얼굴은 인생에서 마치 큰 무엇을 이룬 것처럼 의기양양했고 거룩함을 영접한 품위와 기품이 있었다. 분명 내가 알 수 없는 신앙의 힘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목욕을 마친 그들은 마치 고향에서 어머니를 뵌 것 같은 편안함으로 강을 응시했다.
신앙의 눈으로 이 어머니의 강은 위대한 것이다. 세속의 눈으로 이를 보려했을 땐 하나의 오염된 강에 불과한 것이었다.
어머니의 강은 더러울 수밖에 없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모든 업을 씻어준 물이기에 모든 생로병사를 스스로 껴안은 물이기에 강은 더러웠다. 세상에 지치고 죄에 찌든 아들을 안았기에 어머니의 맘은 멍든 것이다. 겐지즈는 더럽기에 거룩한 강인 것이다. 더럽기에 어머니의 강인 것이다. 우리 어머니의 마음처럼.....
그러나 어머니 강은 그 본래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화장터와 목욕터를 멀리하고 저 멀리 강을 바라보았을 때 그 맑음과 순결과 고귀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어머니의 강으로 어머니의 품으로 오는 것이었다.
이 의미를 깨달았을 때, 그들과 같이 목욕은 할 수 없었지만 손은 씻을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 어머니 강의 숭고함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