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La storia

백지현200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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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La storia

약속해 줄 거야?

 

그렇게 말한것은 나였다.

 

피렌체의 두오모에, 너랑 오르고 싶어.

 

같이 갈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어디에 살든, 우리는 같이 있고,

 

그 곳에서 같이 떠날 거라고. 피크닉처럼.

 

피렌체의 두오모? 밀라노가 아니고?

 

이상하다는 듯 묻는 쥰세이에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피렌체의 두오모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두오모니까.

 

그렇게 먼 앞날의 약속을,

 

쥰세이가 기억하고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줄곧.

 

 

누구한테 못할 짓을 하고 있다거나, 실례라든가, 그런생각은 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내 안의 무언가 - 터무니없이

 

강하고, 천방지축인 무언가 - 가 나를 휘젓고 있는것 같았다.

 

일을 정리했다. 차근차근 일을 정리했다.

 

차근차근, 하나씩, 쥰세이를 향하여.

 

 

내 안에, 이만한 의지가 있었다니, 놀랍다.

 

아무런 주저도 없었다 그 때 이미 마음이 정해져 있었다.

 

나는 그저 인정하기만 하면 되었다.

 

피렌체에 간다는 것을. 두오모에 오른다는 것을.

 

쥰세이와 나눈 약속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는 것을.

 

 

 오고 말았어.

 

가슴속으로 쥰세이를 향해 중얼거렸다. 그 옛날 사랑했던

 

학생 신분의 쥰세이가 아니라, 도쿄에 - 아마도 우메마오카에 있을.

 

도쿄는 지금 깊은 밤이다. 쥰세이는 자고있을까 - 자고있을 지금

 

이 순간의 쥰세이에게.

 

 오고말았어.

 

어처구니가 없겠지, 라고 덧붙이고는 씁쓸히 웃었다.

 

그래도 마음은 어쩐지 후련하고 기분은. 들떠있다

 

알게모르게 각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여기에 올 것이라고,

 

언제 그렇게 마음 먹었느냐고 묻는다면

 

10년 전이라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다.

 

 10년 후, 5월이란 말이지. 그 때는 벌써 21세기네.

 

그렇게 말한 쥰세이의,

 

들판 같은 웃는 얼굴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조그맣게 숨을 들이쉬고 나는 정상에 올라섰다. 빛속으로

 

평화롭고 조용한 피렌체 거리의 저녁하늘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내 눈이 한 점으로 빨려들어갔다.

 

그 사람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있었다.

 

약간 비스듬하게, 그러나 거의 등이 똑바로 보이는 위치에서,

 

나는 그 사람이 쥰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깜짝 놀라, 순간적으로 설마, 하고 생각했지만,

 

나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저 등은 쥰세이의 등이다. 틀림없다. 쥰세이의 등이다.

 

움직일 수 없었다.

 

 

"쥰세이"

 

만나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고 고백하듯,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그 사람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돌아본 쥰세이의, 기억속보다 야윈 볼.

 

숨이 멈추는 줄 알았다.

 

피렌체 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두오모의 꼭대기에서.

 

부드러운 저녁 햇살 속에서.

 

 

 

- 에쿠니 가오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