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이인은 피곤해~

이정란200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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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 부터 내 이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이름이 싫어진 이유가 있다.

 

중학교 생물 시간이였다.

선생님이 수정란에 대해서 설명해주는데 갑자기 내 얼굴이 빨개졌다.

아무도 '수정란'과 '이정란'에 대해서 연관짓는 친구도 없었고,

어느 누구 하나 놀린 적도 없는데 혼자서 그랬다.

왜 하필 내 이름은 거시기 하게도 '수정란'과 성만 다른 '이정란' 인가 말이다.

 

그 후 성장해서 사람들에게 내 이름을 얘기하면

선배들의 경우 "고은희 이정란?" 하면서 대표곡 '사랑해요'를 불러보라고 까지

하기도 했다.

 

뭐 영숙이 처럼 흔하지는 않지만,

내 이름도 독특한 이름은 아닌지라 가끔씩 똑같은 이름의 소유자를 만나면

왠지 나랑 똑같은 옷입은 사람을 우연히 만나 피하고 싶은 부끄러움 같은게

발동했다.

 

그런데, 작가 일을 하면서 동명이인 때문에 발생한 피곤한 일들이 종종 생겼다.

다른 작가의 우편물이 우리 집에 오는 건 애교로 봐줘야 한다.

 

한번은 모 장관이 취임하던 때의 일이다.

새로운 장관이 취임했다며 떠들썩한 날,

갑자기 오전부터 집으로 전화가 빗발쳤다.

전화를 받으니 정중하게 이정란 작가님 댁이냐고 물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귀기울이고 있는데 대뜸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거다.

해서 나는 '내가 무슨 인터뷰....하긴 그동안 이 세상이 날 너무 못 알아줬어.

이제야 내 진가를 알릴 수 있는거야?'

하고 들떠있는데 다음 얘기는 이거였다.

"장관님도 취임하셨는데 한 말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관님이라니...아니 그 장관과 내가 무슨 연관있지...'

당장 기사를 보니 아내 역시 방송작가 (드라마)로 나와 동명이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내 모습에 씁쓸했다.

그 짧은 순간, 우쭐했던 내 모습이라니...

정말 장관 부인이라도 되면 얼마나 거만을 떨까 볼만 할 것 같았다.

 

또 한번은 통장으로 입금된 검은 돈 사건이다.

 

어느날 모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통장으로 원고료가 잘못 입금됐다며 돌려달라는 것이였다.

입금된 통장은 내가 거래한지 5년이나 지난 거였다.

그러니 당연히 입금된 줄도 모르고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는데

700만원이 넘는 돈을 잘못 입금했으니 달라고?

쳇!

잘못 입금한 사람이 가져갈 것이지 왜 보내라 마라야.

막 귀찮아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은행 일이라는게 업무 시간 이내에 해결해야 하는데,

우리 집 근처에는 그 은행도 없거니와 매일 출근해서 점심도 먹는 둥 마는둥

눈썹이 휘날리게 정신없이 보내는데 그런 잡무를 처리하러 일부러 버스를

타고 갈 여력이 있나 말이다.

그렇게 전화받은지 2주가 지나도록 난 해결하지 못하고 내내 마음속으로 찜찜해 하고 있는데 마침 토요일에 시간이 났다.

집 근처를 찾아보니 은행은 없고 그 은행의 CD기만 있었다.

잘됐다 싶어 통장정리를 하니 그 많은 세월동안의 이자며 뭐며 계속 찍어대는데

맨 마지막 장에 입금내역을 찍어내던 통장은 뱉어내더니 거래 내역이 더 있으니 새로운 통장을 발급받으라는 것이다.

 

이런!

CD기로 해결하려고 했는데 결국은 은행으로 찾아가야 했다.

할 수 없이 은행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파악하고 버스를 타고 가서 통장을 새로 발급받았다.

그런데 담당 직원이 새내기라 쩔쩔 매며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나는 혹시 또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길까 대비해 직불카드를 발급해달라니까

새내기에는 어려운 숙제였는지 또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그러더니 옆에 직원이 자회사 카드 발급을 추천하기 위해 일장연설을  해대고

나는 일언지하에 거부했지만 또 설득하고...

 

결국 새로운 통장 발급과 직불카드를 발급받고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CD기로

갔는데 안되는 것이다.

직원에게 가니까 새내기인지라 바로 쓸 수 있게끔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던 거였다. 다시 조치를 취한 후, 한꺼번에 송금할 수 없는 거액인(?) 700만원을 나눠서 보내야만 했다.

그 간단한 일을 나는 정말 큰 일 치루듯 해댔다.

 

그렇게 큰 돈을 동명이인에게 잘 못 입금하고,

다시 돌려달라고 해서 군소리 없이 입금해줬는데도 어떤 고맙다는 표시도 없는 그들에게 화가 났다.

어떻게 이렇게 큰 실수를 할 수 있냐 말이다.

지금쯤 내 원고료도, 내 저작권료도 이런 식으로 남에게 흘러들어가고

그 사실 조차 잊고 있는 건 아닌지 화가 났다.

주민번호 하나만 확인해도 실수할 게 없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