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이 된 사람은...

유정연2006.09.14
조회41

내 남편이 된 사람은...

월급은 많지 않으면서,
꽤나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잔무가 많은 직업을 가진 대한민국의 가여운 샐러리맨이다.

퇴근길에 필요한 물건 있어 열나게 전화해도 받지 않다가,
집에 들어와서 잔소리하면, 그제서야 핸펀 확인하고,
살꺼 있었는데 하며 투덜거리는 마누라 등살에,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고, 현관을 나서는...
그런 사람이다.

심부름 가는 길, 돌아오는 길에,
수십번도 더 집으로 전화를 하면서,
몰 사오랬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시시콜콜한 거까지 다 확인해서,
마누라의 잔소리를 피해가는 그런 사람이다.

간신히 집에 돌아와서는..
요리하는 내 옆에서 칼질하는거,
가스 불 조절하는거 하나하나까지 다 신경쓰면서,
잔소리를 하고, 간맛을 기막히게 잘보다가,
막상 상을 차려 놓으면
밥이 다 식어가는대도 물을 철철 틀어톻고 샤워를 하고,
정갈하게 밥을 먹는 정말 까다로는 사람이다.

저녁 먹고 돌아앉기 무섭게 tv앞에 앉아서,
내가 설거지하는 거 막 못하게 하고,
그렇다고 자기가 하지도 않는,
참 이상한 남자다.

주말이면, 말한마디 하기 싫은 정도로 서로 파김치가 되어서,
tv를 켜놓고 둘이 엉켜 잠이 들고,
서로 먼저 들어가 씻고 자라고 소리지르다,
하나는 소파에, 하나는 마루 바닥에서 코를 골며
잠이드는, 삶의 피곤함에 지친 사람이다.

어쩌다 분위기 잡겠다고,
차를 타고 동네 한바퀴를 돌고,
돌아오는 길에 비디오가게에 잠깐 들러서,
이영화가 좋네, 저영화가 좋네 싸우다가,
결국 하나 의견일치 보고 좋다고 들어오다가,
현관 앞에서 서서야
차를 두고 걸어온걸 생각해내는
정말 나랑 똑같이 단순하고 오락가락하는 사람이다.

베스킨라빈스에 들러,
내가 먹겠다는 아이스크림 말고,
피스타치오 아몬드를 끝내 고집해서 골라주곤,
자기는 안먹겠다고 하고, 막상 거리로 나서면,
내꺼 반은 먹어버리는 사람이다.

나처럼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를 닮은 딸이 나오면 못 생겼다는 소리 들을까 걱정하고,
자기 닮은 아들이 나오면, 너무 잘생겨서 걱정이라는
별 걱정을 다 하는 사람이다.

아이는 의견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금방 화를내고, 자기가 애가 되어 버리는,
성격 무쟈게 급한 아빠다.
그러나 돌아서서는 미안한 맘에 몸 부림치는
천상 아빠다.

가끔씩 약해지기도 하는 사람이다.
1년에 한두번 갖는 회식 자리에서 내 전화를 받으면,
서럽게 울기도 하고, 보고싶다고 평생 안하던 소리를 하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람들과 헤어지고 나서,
차안에서 잠들어버려, 결국은 집에 새벽에 들어오고,
절대 어디서 밤을 지샜는지 알 수 없는,
비밀이 많은 사람이다.

어떤경우에도 자신을 던져버리지 않을
고지식한 사람이다.
tv프로의 불의를 보면 당장이라도 방송국을 폭파하고,
맘에 안드는 정치인을 암살할 꺼 같은...
의리로 너무 똘똘 뭉쳐서,
시사 프로그램은 절대 같이 봐서는 안되는 사람이다.

비뚤어진 세상의 잣대로 절대 저울질 할 수 없는
내 남편은...
그 소박함과, 그 나약함과, 그 순진함이
세상의 무게를 버텨내지 못할 꺼 같은...
여린 사람이지만,

세상 누구보다 자식을 사랑하고,
아내를 아끼고,
아빠로서의 위치, 남편으로서의 위치에서
흔들림이 없는 강한 사람이다.

2005.5.30 혜란이 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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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란이의 홈피에서... 아래글을 읽고,

방명록에 남기고 왔다가... 지금 자랑치냐구 욕을 바가지로 먹은 글이다..

새삼 지금 꺼내어 보는 까닭은?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