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용수 편집위원 =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참배 강행으로 촉발된 야스쿠니(靖國)신사 문제는 이데올로기와 역사인식, 외교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미묘한 사안이다.
지난 8월 15일을 포함해 재임 중 무려 여섯 차례나 야스쿠니를 참배한 고이즈미 총리는 "나는 전쟁 희생자에 대한 추도 기분으로 참배할 뿐이다", "부전(不戰)의 결의를 새롭게 다지고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참배한다", "전쟁 미화나 정당화가 아니라 다시는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된다는 기분으로 참배하고 있다"고 설명해 왔다. 한국과 중국의 반발에 대해서는 "내정 간섭"이라고 일축해 왔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야스쿠니 신사는 근대 일본 국가가 형성된 시점부터 패전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주권을 행사해 치른 전쟁에서 공적인 희생자로 인정된 전몰자들을 제사 지내는 시설이었다. 이러한 야스쿠니 신사를 둘러싸고는 전쟁 신사, 전범 신사, 군국주의 신사, 천황의 신사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야스쿠니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호칭은 일본 총리가 이곳을 참배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 추도보다는 전사자를 떠받드는 게 야스쿠니 신사의 본질적 역할 = 야스쿠니 신사는 전사자들을 `신'으로 합사해 떠받드는 곳이다. 이른바 영령 현창(顯彰)이 야스쿠니 신사의 역할이다. 그렇다면 야스쿠니 신사는 왜 전사자들을 신으로 모셔왔는가.
일본은 멀리는 청일전쟁에서부터 러일전쟁, 만주침략,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을 징병해 전쟁에 내보내고 이들이 전사하면 줄어든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다시 징병해 전쟁터에 내보내는 징병-전쟁-전사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야스쿠니 신사는 이러한 순환을 원활히 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했다. `전장에 나아가 죽으면 신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진다'는 믿음을 심어줌으로써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비참함과 공포심을 마비, 은폐시키고 국민들을 전쟁터에 내몰 수 있었던 것. 이와 함께 전사자 유족을 달래기 위해서는 죽음 자체를 슬픔이 아닌 기쁘고 성스러운 것으로 승화할 필요가 있었다.
일본 사회에서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야스쿠니 정신'(국가와 사회를 위해서는 기쁘게 피와 눈물을 흘리라는 희생 정신)이나 `야스쿠니 신앙'(전쟁터에서 죽더라도 신이 돼 야스쿠니로 돌아간다며 생명을 버리게 하는 믿음. 천황과 국가를 위해 기쁘게 죽었을 것이라는 유족의 믿음 )이 생긴 배경이다. 야스쿠니 신사가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을 정신적으로 지탱했던 군국주의의 둥지였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부전ㆍ평화 시설이 아니라 황국의 영광을 노래하는 시설 = 야스쿠니 신사는 과거 천황 숭배와 군국주의의 상징이었다. 현재는 이러한 천황 숭배의 대표적인 잔재물이자 극우 세력들의 성지로 군림하고 있다.
전사자의 혼을 위로한다는 게 야스쿠니 신사가 내세우는 최대 명분이다. 하지만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 있는 부속 박물관인 유슈칸(遊就館) 등은 `전쟁 신사' `군국주의 신사'로서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과거의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육군성과 해군성이 직접 관리하고 육군대장이 최고 책임자였던 하나의 군사시설이기도 했다.
유슈칸은 1882년 개관한 일본 최초이자 가장 오래된 군사 박물관이다. 패전 후 폐쇄됐다가 다시 개관했으며 전에는 무기 박물관이었으나 지금은 본색을 감추고 역사 박물관으로 변신해 있다. 1992년 신관을 지어 새로 개장한 유슈칸에는 `대일본제국'의 영광과 일본군의 공적을 기리는 전쟁 전시물로 가득 차 있다. 전시ㆍ소장물은 10만여 점. 자살 공격을 감행한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원들의 유품.유서와, 해군 함상전투기, 인간어뢰 등의 무기들이 전시돼 있는가 하면 과거의 전쟁을 합리화하는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 정면에는 일본 육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郞)의 동상이 수호신처럼 버티고 있고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 회부된 전범 전원의 무죄를 주장했던 인도인 펄 판사의 비석이 경내에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군복 차림으로 무리지어 행진하는 옛 일본군들이나 우익단체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야스쿠니 신사가 과거에는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강요하는 피의 제단이었고 지금은 극우 세력들이 과거의 화려했던 일본제국을 회고하고 `황국'의 영광을 읊조리는 상징적인 시설임을 웅변해주고 있는 풍경들이다.
◇ 야스쿠니는 일본의 전쟁 책임을 망각, 은폐하는 시설 = 야스쿠니 신사의 진면목은 신사측이 공공연하게 표방하고 있는 역사관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야스쿠니 신사는 공식 웹사이트 등을 통해 태평양 침략 전쟁을 일본의 자존자위를 위한 전쟁, 정의의 전쟁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14명의 A급 전범에 대해서는 연합군의 날조 재판으로 전범의 오명을 뒤집어 쓴 순난자(殉難者)로 묘사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는 죽은 자국 병사의 영령을 떠받들고 있을 뿐 그 죽음을 초래한 전쟁의 성격은 묻지 않는다. 태평양전쟁 대신 `대동아전쟁', 중일전쟁 대신 `지나(支那)사변'이라는 용어를 고집한다.
이런 점에서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자신들을 침략전쟁의 가해자로 보지 않고 희생자로 보는 잘못된 국가 인식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가 처형됐거나 수감중 옥사한 전범들에 대해 `공무사'로 표현하는 등 `전범'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쓰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A급 전범 합사도 극동군사재판에서 전쟁책임을 졌던 사람들을 과거 국가가 관리했던 야스쿠니 신사가 제사 지냄으로써 일본의 전쟁책임과 전후처리 방식에 중대한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으로 희생된 한국인, 중국인 등은 제사 지내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자국민이라도 군인, 군속만 합사할 뿐 원폭 사망자나 도쿄 대공습 사망자 등 민간인 희생자는 외면하고 있다. 또 같은 군인, 군속이라도 천황에 대적해 싸우다 죽은 사람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야스쿠니 신사가 `천황의 신사'로 불리는 이유의 하나도 여기에 있다.
일본의 종교학자들은 사자(死者)를 차별하거나 편가르는 것은 일본 신도의 전통에서도 벗어난 것이라고 말한다.
◇ 야스쿠니는 국가신도의 본거지 = 야스쿠니 신사가 과거 어떤 시설이었는지는 2차 대전 종전 후 일본을 점령 통치했던 연합국 군최고사령부(GHQ)의 인식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일본이 패전하기 직전 맥아더 휘하의 연합군은 한때 야스쿠니 신사를 불태워 없애버리려는 계획을 입안했다. 야스쿠니 신사가 단순한 종교적 시설이라기보다 군국주의 숭배와 전투적인 국민정신을 함양하는 초국가주의 시설이라는 인식에 따라 점령정책 수행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후 미 점령군 사령부는 야스쿠니 신사가 국가신도 그 자체이며 종교시설에 걸맞지 않는 초국가주의 전당이라고 규정해 1945년 12월 `신도지령'을 내려 국가신도를 해체시키면서 야스쿠니 신사를 도쿄도에 등록된 일개 종교법인으로 격하시켰다. 이 과정에서 점령군은 야스쿠니 신사를 국가로부터 독립된 종교시설로 할지 아니면 전몰자 추도시설로 남을지 양자택일을 요구했고 일본정부는 전자를 선택했다.
국가신도란 과거 조선신궁과 대만신사를 설치했던 일본제국의 국가 제사 시스템으로 1868년 메이지(明治) 유신에서부터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의 약 80년 동안 일본인을 정신적으로 지배했던 국가종교다. 국가신도는 군국주의와 결합돼 국민들을 전쟁에 동원하는 이데올로기 역할을 했으며 국가신도의 근간을 담당했던 시설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였다.
일본이 점령군의 양자택일 요구에 야스쿠니 신사를 종교시설로 연명하는 길을 모색했던 것은 이러한 국가신도의 명맥을 어떻게든 이어보려는 측면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었다.
◇ 순국영령 합사는 시대착오적인 기만행위 = 도쿄 중심가인 지요다(千代田)구의 구단키타에 둥지를 틀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의 기원은 메이지(明治) 유신 때 천황을 위해 전사한 관군들을 기리기 위해 1869년 창건된 도쿄 초혼사(招魂社)다. 야스쿠니 신사라는 이름은 메이지 천황이 직접 명명한 것이다.
도쿄돔의 2배가 넘는 9만9천㎡ 면적의 야스쿠니 신사는 엄숙하고도 장엄한 분위기가 경내를 짓누른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전사자 유골이나 위패는 없고 전사자의 이름이 기재된 레이지보(靈璽簿. 합사 명부)가 봉안돼 제사를 지낸다. 야스쿠니 신사측은 연간 600만 명이 이곳을 참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는 전몰자 수는 메이지 유신 때 사망한 `천황의 충신' 들을 비롯해 일본이 100여년 동안 일으킨 크고작은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246여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 전몰자가 모두 자신이나 유족의 의향에 따라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종교나 유족들의 의향과는 무관하게 전쟁에 나가 사망하면 국가가 정한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야스쿠니 신사에 강제적이고 일방적으로 합사됐다.
이 때문에 일본 국내에서 기독교 유족들이 야스쿠니의 일방적인 합사에 항의해 법정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심지어 야스쿠니 신사는 한국인, 대만인 사망자까지 `일본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으로 비밀리에 합사함으로써 유족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고인과 유족들을 모욕하는 어처구니 없는 합사에 대해 신사측은 "전사한 시점에서는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괴한 논리를 펴며 한국과 대만의 합사 취소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가 천황제 이데올로기와 군국주의를 고양, 전파시키기 위해 병사들의 죽음을 국가 차원에서 이용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야스쿠니에 합사돼 있는 전몰자의 대부분은 태평양 침략전쟁과 중일전쟁에서 사망했다. 그 수는 각각 213만여 명과 19만여 명. 그런데 이들 전사자의 대부분이 전투가 아닌 기아로 사망했다는 게 정설이다.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가 무모하게 일으킨 잘못된 전쟁으로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개죽음을 당한 이들 전사자와 유족이 과연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는 것을 원하고 기뻐했을까.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인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 오사카(大阪)대 명예교수는 야스쿠니 신사의 전몰자 합사와 영령 현창에 대해 "일본제국의 연속성을 믿는 정치인이나 옛 군인들, 정치적 학자, 신관(神官)들의 상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시대착오적 기만행위"라고 비판한다.
오늘의 현대사회에서 야스쿠니 신사란 개인의 죽음을 `순국영령'이라는 이름의 공공물로 무단 영유해 공적인 희생을 찬미하고, 일부 정치인과 우익 세력들은 각자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추도'를 빙자해 제국의 영광을 되뇌이는 추악한 시설이다.
☆야스쿠니의 실체를 말한다&왜 참배해서는 안되나
전사자 추도보다는 공적인 희생 찬미가 본질적 역할
국가신도 본거지..영령 합사는 시대착오적 기만행위
(서울=연합뉴스) 김용수 편집위원 =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참배 강행으로 촉발된 야스쿠니(靖國)신사 문제는 이데올로기와 역사인식, 외교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미묘한 사안이다.
지난 8월 15일을 포함해 재임 중 무려 여섯 차례나 야스쿠니를 참배한 고이즈미 총리는 "나는 전쟁 희생자에 대한 추도 기분으로 참배할 뿐이다", "부전(不戰)의 결의를 새롭게 다지고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참배한다", "전쟁 미화나 정당화가 아니라 다시는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된다는 기분으로 참배하고 있다"고 설명해 왔다. 한국과 중국의 반발에 대해서는 "내정 간섭"이라고 일축해 왔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야스쿠니 신사는 근대 일본 국가가 형성된 시점부터 패전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주권을 행사해 치른 전쟁에서 공적인 희생자로 인정된 전몰자들을 제사 지내는 시설이었다. 이러한 야스쿠니 신사를 둘러싸고는 전쟁 신사, 전범 신사, 군국주의 신사, 천황의 신사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야스쿠니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호칭은 일본 총리가 이곳을 참배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 추도보다는 전사자를 떠받드는 게 야스쿠니 신사의 본질적 역할 = 야스쿠니 신사는 전사자들을 `신'으로 합사해 떠받드는 곳이다. 이른바 영령 현창(顯彰)이 야스쿠니 신사의 역할이다. 그렇다면 야스쿠니 신사는 왜 전사자들을 신으로 모셔왔는가.
일본은 멀리는 청일전쟁에서부터 러일전쟁, 만주침략,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을 징병해 전쟁에 내보내고 이들이 전사하면 줄어든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다시 징병해 전쟁터에 내보내는 징병-전쟁-전사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야스쿠니 신사는 이러한 순환을 원활히 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했다. `전장에 나아가 죽으면 신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진다'는 믿음을 심어줌으로써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비참함과 공포심을 마비, 은폐시키고 국민들을 전쟁터에 내몰 수 있었던 것. 이와 함께 전사자 유족을 달래기 위해서는 죽음 자체를 슬픔이 아닌 기쁘고 성스러운 것으로 승화할 필요가 있었다.
일본 사회에서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야스쿠니 정신'(국가와 사회를 위해서는 기쁘게 피와 눈물을 흘리라는 희생 정신)이나 `야스쿠니 신앙'(전쟁터에서 죽더라도 신이 돼 야스쿠니로 돌아간다며 생명을 버리게 하는 믿음. 천황과 국가를 위해 기쁘게 죽었을 것이라는 유족의 믿음 )이 생긴 배경이다. 야스쿠니 신사가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을 정신적으로 지탱했던 군국주의의 둥지였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부전ㆍ평화 시설이 아니라 황국의 영광을 노래하는 시설 = 야스쿠니 신사는 과거 천황 숭배와 군국주의의 상징이었다. 현재는 이러한 천황 숭배의 대표적인 잔재물이자 극우 세력들의 성지로 군림하고 있다.
전사자의 혼을 위로한다는 게 야스쿠니 신사가 내세우는 최대 명분이다. 하지만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 있는 부속 박물관인 유슈칸(遊就館) 등은 `전쟁 신사' `군국주의 신사'로서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과거의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육군성과 해군성이 직접 관리하고 육군대장이 최고 책임자였던 하나의 군사시설이기도 했다.
유슈칸은 1882년 개관한 일본 최초이자 가장 오래된 군사 박물관이다. 패전 후 폐쇄됐다가 다시 개관했으며 전에는 무기 박물관이었으나 지금은 본색을 감추고 역사 박물관으로 변신해 있다. 1992년 신관을 지어 새로 개장한 유슈칸에는 `대일본제국'의 영광과 일본군의 공적을 기리는 전쟁 전시물로 가득 차 있다. 전시ㆍ소장물은 10만여 점. 자살 공격을 감행한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원들의 유품.유서와, 해군 함상전투기, 인간어뢰 등의 무기들이 전시돼 있는가 하면 과거의 전쟁을 합리화하는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 정면에는 일본 육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郞)의 동상이 수호신처럼 버티고 있고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 회부된 전범 전원의 무죄를 주장했던 인도인 펄 판사의 비석이 경내에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군복 차림으로 무리지어 행진하는 옛 일본군들이나 우익단체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야스쿠니 신사가 과거에는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강요하는 피의 제단이었고 지금은 극우 세력들이 과거의 화려했던 일본제국을 회고하고 `황국'의 영광을 읊조리는 상징적인 시설임을 웅변해주고 있는 풍경들이다.
◇ 야스쿠니는 일본의 전쟁 책임을 망각, 은폐하는 시설 = 야스쿠니 신사의 진면목은 신사측이 공공연하게 표방하고 있는 역사관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야스쿠니 신사는 공식 웹사이트 등을 통해 태평양 침략 전쟁을 일본의 자존자위를 위한 전쟁, 정의의 전쟁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14명의 A급 전범에 대해서는 연합군의 날조 재판으로 전범의 오명을 뒤집어 쓴 순난자(殉難者)로 묘사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는 죽은 자국 병사의 영령을 떠받들고 있을 뿐 그 죽음을 초래한 전쟁의 성격은 묻지 않는다. 태평양전쟁 대신 `대동아전쟁', 중일전쟁 대신 `지나(支那)사변'이라는 용어를 고집한다.
이런 점에서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자신들을 침략전쟁의 가해자로 보지 않고 희생자로 보는 잘못된 국가 인식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가 처형됐거나 수감중 옥사한 전범들에 대해 `공무사'로 표현하는 등 `전범'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쓰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A급 전범 합사도 극동군사재판에서 전쟁책임을 졌던 사람들을 과거 국가가 관리했던 야스쿠니 신사가 제사 지냄으로써 일본의 전쟁책임과 전후처리 방식에 중대한 문제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으로 희생된 한국인, 중국인 등은 제사 지내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자국민이라도 군인, 군속만 합사할 뿐 원폭 사망자나 도쿄 대공습 사망자 등 민간인 희생자는 외면하고 있다. 또 같은 군인, 군속이라도 천황에 대적해 싸우다 죽은 사람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야스쿠니 신사가 `천황의 신사'로 불리는 이유의 하나도 여기에 있다.
일본의 종교학자들은 사자(死者)를 차별하거나 편가르는 것은 일본 신도의 전통에서도 벗어난 것이라고 말한다.
◇ 야스쿠니는 국가신도의 본거지 = 야스쿠니 신사가 과거 어떤 시설이었는지는 2차 대전 종전 후 일본을 점령 통치했던 연합국 군최고사령부(GHQ)의 인식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일본이 패전하기 직전 맥아더 휘하의 연합군은 한때 야스쿠니 신사를 불태워 없애버리려는 계획을 입안했다. 야스쿠니 신사가 단순한 종교적 시설이라기보다 군국주의 숭배와 전투적인 국민정신을 함양하는 초국가주의 시설이라는 인식에 따라 점령정책 수행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후 미 점령군 사령부는 야스쿠니 신사가 국가신도 그 자체이며 종교시설에 걸맞지 않는 초국가주의 전당이라고 규정해 1945년 12월 `신도지령'을 내려 국가신도를 해체시키면서 야스쿠니 신사를 도쿄도에 등록된 일개 종교법인으로 격하시켰다. 이 과정에서 점령군은 야스쿠니 신사를 국가로부터 독립된 종교시설로 할지 아니면 전몰자 추도시설로 남을지 양자택일을 요구했고 일본정부는 전자를 선택했다.
국가신도란 과거 조선신궁과 대만신사를 설치했던 일본제국의 국가 제사 시스템으로 1868년 메이지(明治) 유신에서부터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의 약 80년 동안 일본인을 정신적으로 지배했던 국가종교다. 국가신도는 군국주의와 결합돼 국민들을 전쟁에 동원하는 이데올로기 역할을 했으며 국가신도의 근간을 담당했던 시설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였다.
일본이 점령군의 양자택일 요구에 야스쿠니 신사를 종교시설로 연명하는 길을 모색했던 것은 이러한 국가신도의 명맥을 어떻게든 이어보려는 측면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었다.
◇ 순국영령 합사는 시대착오적인 기만행위 = 도쿄 중심가인 지요다(千代田)구의 구단키타에 둥지를 틀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의 기원은 메이지(明治) 유신 때 천황을 위해 전사한 관군들을 기리기 위해 1869년 창건된 도쿄 초혼사(招魂社)다. 야스쿠니 신사라는 이름은 메이지 천황이 직접 명명한 것이다.
도쿄돔의 2배가 넘는 9만9천㎡ 면적의 야스쿠니 신사는 엄숙하고도 장엄한 분위기가 경내를 짓누른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전사자 유골이나 위패는 없고 전사자의 이름이 기재된 레이지보(靈璽簿. 합사 명부)가 봉안돼 제사를 지낸다. 야스쿠니 신사측은 연간 600만 명이 이곳을 참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는 전몰자 수는 메이지 유신 때 사망한 `천황의 충신' 들을 비롯해 일본이 100여년 동안 일으킨 크고작은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246여만 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 전몰자가 모두 자신이나 유족의 의향에 따라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종교나 유족들의 의향과는 무관하게 전쟁에 나가 사망하면 국가가 정한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야스쿠니 신사에 강제적이고 일방적으로 합사됐다.
이 때문에 일본 국내에서 기독교 유족들이 야스쿠니의 일방적인 합사에 항의해 법정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심지어 야스쿠니 신사는 한국인, 대만인 사망자까지 `일본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으로 비밀리에 합사함으로써 유족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고인과 유족들을 모욕하는 어처구니 없는 합사에 대해 신사측은 "전사한 시점에서는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괴한 논리를 펴며 한국과 대만의 합사 취소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가 천황제 이데올로기와 군국주의를 고양, 전파시키기 위해 병사들의 죽음을 국가 차원에서 이용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야스쿠니에 합사돼 있는 전몰자의 대부분은 태평양 침략전쟁과 중일전쟁에서 사망했다. 그 수는 각각 213만여 명과 19만여 명. 그런데 이들 전사자의 대부분이 전투가 아닌 기아로 사망했다는 게 정설이다.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가 무모하게 일으킨 잘못된 전쟁으로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개죽음을 당한 이들 전사자와 유족이 과연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는 것을 원하고 기뻐했을까.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인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 오사카(大阪)대 명예교수는 야스쿠니 신사의 전몰자 합사와 영령 현창에 대해 "일본제국의 연속성을 믿는 정치인이나 옛 군인들, 정치적 학자, 신관(神官)들의 상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시대착오적 기만행위"라고 비판한다.
오늘의 현대사회에서 야스쿠니 신사란 개인의 죽음을 `순국영령'이라는 이름의 공공물로 무단 영유해 공적인 희생을 찬미하고, 일부 정치인과 우익 세력들은 각자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추도'를 빙자해 제국의 영광을 되뇌이는 추악한 시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