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길을 덜컹대며 달리는 지루한 완행버스에 올라서면 생판 얼굴도 모르는 낯선 할머니에게 '어머니, 어디 가세요?'라고 안부를 물어보세요. 길물음을 할 때도 심신이 쇠한 촌부나 섬마을 시악시에게 길을 물어 보세요.
길 위에서 타인에게 말을 거는 재미는 또 다른 여행의 기술입니다.
목적을 버리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우리다보면....
세상의 인심, 인생의 지혜도 묻고, 미래의 소망..... 앞으로 가야 할 길...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던 삶의 깊은 지혜를 얻을 지도 모릅니다
‘낯선 사람, 풍경에 어찌 쉽게 말을 걸까?’
말수가 적은 후배 녀석에 대한 이야기다.
녀석은 도통 수 년을 알아온 지인에게는 말을 걸지 않는 괴팍스런 성격을 지녔다.
다큐멘터리사진을 업으로 살아가는 녀석은 한 달이면 보름쯤은, 일 년이면 반년쯤은 사진을 찍느라 객지를 떠돌아다닌다. 그래 얼굴을 보기가 쉬운 편도 아니어서, 가끔 어렵사리 시간을 맞춰 소주잔을 기울여 봐도, 영 속내를 드러내거나 시원한 말을 내뱉지 않는다. 그래서 녀석을 따라 다니는 이력에 언제나 ‘ 크레물린(Kremlin)’이거나 ‘입맛’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니는 편이다.
간혹 여럿이 모인 술자 리에서도 녀석은 별로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멍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둘러보거나 끄덕끄덕 고개로 분위기를 따르는 편이다. 행여 한 마디라도 말을 할까 모두 시선을 집중하면 그 저 입맛만 다시듯 다시 말문을 닫아버린다.
녀석은 아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말을 걸지 않는다.
녀석은 언제나 길에 올라서야만 입을 연다. 뚜벅뚜벅 시장통 골목을 걷거나, 두메산골의 시골길을 덜컹대며 달리는 지루한 완행버스에 올라서거나, 술이 거나해져 새벽 어스름에 택 시에 올라타야만 녀석은 생뚱맞게도 말문을 연다. 그것도 함께 동행을 하는 이에게 말을 거 는 것이 아니라, 생판 얼굴도 모르는 낯선 타인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처음에는 워낙에 말이 없는 녀석이 말을 거니 겁이 덜컹 나기도 했다. 괜히 낯선 사람한테 시비를 거는 것 은 아닌가, 저 녀석이 왜 쓸데없이 아는 채를 하나. 그러다가 언제부턴가는 난 녀석이 어 떤 사람에게 말을 거나, 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나 궁금했고, 또 말을 받는 타인들의 이야 기를 귀 기울여 듣는 버릇이 생겼다.
녀석의 말상대를 분석하면 대강 이렇다. 주름이 깊고 꾸부정한 노인이거나, 아예 말을 잘 하지 못해 수화를 해야만 정확한 의사소통일 할 수 있는 청각장애인이거나, 또 어찌하였든 별로 말재주가 없거나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낯선 여행지에 서 길을 헤매다 길물음을 할라 쳐도, 심신이 쇠한 촌부들에게 길을 묻는다. 번번이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길을 잘못 가르쳐 주는 덕에 다시 온 길을 되돌아가게 되어도, 번번이 돌아가는 길물음을 한다. 또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도 옆에 앉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 어 동행하는 사람들을 민망하게 한다.
‘낯선 사람에게 어찌 쉽게 말을 걸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뚱한 표정으로 말을 받을라치면 참으로 어색하고 껄끄럽기까지 하다. 가끔은 오지 랖이 넓다는 소리를 듣는 나도 영 낯선 사람에게는 말을 잘 걸지 못하는 편이다. 일 때문 이거나, 무슨 목적이 있으면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녀석은 타인에게 말을 거는 재미를 오히려 즐기는 듯 했다.
‘별 의미 없이 말을 걸 어야 해요. 목적을 버려야 더 재밌죠.’
언뜻 녀석은 그래야만 힘든 세상을 두 배로 행복 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했다. 참으로 무모한 행위일지도 모르는 타인에게 말 걸기. 어쩌면 그 행위 자체가 마음을 열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녀석의 용기일지도 모른다는 생 각이 불현듯 났다.
‘함께 살아가는 연습일 게다’
낯선 택시 기사에게는 세상인심을 묻고, 지긋한 할머니에게는 살아온 인생을 묻고, 청각장애인에게는 미래의 소망을 묻는 연습. 타인에게 말 걸기는 분명 함께 살아가며 희망이거나 꿈이거나 사랑을 번지게 하는 괜찮은 방법인지도 모른다.
낯선 사람,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던 세상에 말 걸기.
더 많은 삶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살맛나는 기쁨을 선사할지도 모른다.
투어테크] - 낯선 사람, 풍경에 어찌 쉽게 말을 걸까?
여행길에 올라서면 낯선 사람과 풍경에게 말을 걸어 보세요.
시골길을 덜컹대며 달리는 지루한 완행버스에 올라서면 생판 얼굴도 모르는 낯선 할머니에게 '어머니, 어디 가세요?'라고 안부를 물어보세요. 길물음을 할 때도 심신이 쇠한 촌부나 섬마을 시악시에게 길을 물어 보세요.
길 위에서 타인에게 말을 거는 재미는 또 다른 여행의 기술입니다.
목적을 버리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우리다보면....
세상의 인심, 인생의 지혜도 묻고, 미래의 소망..... 앞으로 가야 할 길...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던 삶의 깊은 지혜를 얻을 지도 모릅니다
‘낯선 사람, 풍경에 어찌 쉽게 말을 걸까?’
말수가 적은 후배 녀석에 대한 이야기다.
녀석은 도통 수 년을 알아온 지인에게는 말을 걸지 않는 괴팍스런 성격을 지녔다.
다큐멘터리사진을 업으로 살아가는 녀석은 한 달이면 보름쯤은, 일 년이면 반년쯤은 사진을 찍느라 객지를 떠돌아다닌다. 그래 얼굴을 보기가 쉬운 편도 아니어서, 가끔 어렵사리 시간을 맞춰 소주잔을 기울여 봐도, 영 속내를 드러내거나 시원한 말을 내뱉지 않는다. 그래서 녀석을 따라 다니는 이력에 언제나 ‘ 크레물린(Kremlin)’이거나 ‘입맛’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니는 편이다.
간혹 여럿이 모인 술자 리에서도 녀석은 별로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멍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둘러보거나 끄덕끄덕 고개로 분위기를 따르는 편이다. 행여 한 마디라도 말을 할까 모두 시선을 집중하면 그 저 입맛만 다시듯 다시 말문을 닫아버린다.
녀석은 아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말을 걸지 않는다.
녀석은 언제나 길에 올라서야만 입을 연다. 뚜벅뚜벅 시장통 골목을 걷거나, 두메산골의 시골길을 덜컹대며 달리는 지루한 완행버스에 올라서거나, 술이 거나해져 새벽 어스름에 택 시에 올라타야만 녀석은 생뚱맞게도 말문을 연다. 그것도 함께 동행을 하는 이에게 말을 거 는 것이 아니라, 생판 얼굴도 모르는 낯선 타인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처음에는 워낙에 말이 없는 녀석이 말을 거니 겁이 덜컹 나기도 했다. 괜히 낯선 사람한테 시비를 거는 것 은 아닌가, 저 녀석이 왜 쓸데없이 아는 채를 하나. 그러다가 언제부턴가는 난 녀석이 어 떤 사람에게 말을 거나, 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나 궁금했고, 또 말을 받는 타인들의 이야 기를 귀 기울여 듣는 버릇이 생겼다.
녀석의 말상대를 분석하면 대강 이렇다. 주름이 깊고 꾸부정한 노인이거나, 아예 말을 잘 하지 못해 수화를 해야만 정확한 의사소통일 할 수 있는 청각장애인이거나, 또 어찌하였든 별로 말재주가 없거나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낯선 여행지에 서 길을 헤매다 길물음을 할라 쳐도, 심신이 쇠한 촌부들에게 길을 묻는다. 번번이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길을 잘못 가르쳐 주는 덕에 다시 온 길을 되돌아가게 되어도, 번번이 돌아가는 길물음을 한다. 또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도 옆에 앉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 어 동행하는 사람들을 민망하게 한다.
‘낯선 사람에게 어찌 쉽게 말을 걸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뚱한 표정으로 말을 받을라치면 참으로 어색하고 껄끄럽기까지 하다. 가끔은 오지 랖이 넓다는 소리를 듣는 나도 영 낯선 사람에게는 말을 잘 걸지 못하는 편이다. 일 때문 이거나, 무슨 목적이 있으면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녀석은 타인에게 말을 거는 재미를 오히려 즐기는 듯 했다.
‘별 의미 없이 말을 걸 어야 해요. 목적을 버려야 더 재밌죠.’
언뜻 녀석은 그래야만 힘든 세상을 두 배로 행복 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했다. 참으로 무모한 행위일지도 모르는 타인에게 말 걸기. 어쩌면 그 행위 자체가 마음을 열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녀석의 용기일지도 모른다는 생 각이 불현듯 났다.
‘함께 살아가는 연습일 게다’
낯선 택시 기사에게는 세상인심을 묻고, 지긋한 할머니에게는 살아온 인생을 묻고, 청각장애인에게는 미래의 소망을 묻는 연습. 타인에게 말 걸기는 분명 함께 살아가며 희망이거나 꿈이거나 사랑을 번지게 하는 괜찮은 방법인지도 모른다.
낯선 사람,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던 세상에 말 걸기.
더 많은 삶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살맛나는 기쁨을 선사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