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지인한테서 이런 얘길 들었다. "예전에 비해 타락한거 아냐?" 물론 반농담이지만, 틀린 얘기도 아니다. 심각하게 이성과 감성,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오랜만에 또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예전의 나... 성인과 같은, 존경할 만한 사람들의 인품을 닮고 싶었고, 그리 되려고 참 많은 노력을 하던 때가 있었다. 수많은 벽을 느끼고 무너지고 쓰러지면서 내가 가장 가까이 바라볼 수 있는 경지는 모든 내 행위를 이성 우위로 하는 것이었다. 가장 밑바닥에 이성이 있으며, 그 위의 감성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 사람이 매우 차가워 보이기도 하지만, 거의 항상 합리적이고 미래를 냉정하게 예측하고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믿지 않으며, 자신의 위치와 자신이 가진 능력만을 철저하게 믿는 상태. 그리고 대부분의 욕구를 배제하고 정진해야 할 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태. 기쁠 때 웃지 않으며 슬플 때 울지 않는, 얻는 것도 적고 잃는 것도 적었으며, 이성적 비전과 의지는 있으나 희망이라는 감성에 불타지도 않으며 절망적 상황에서도 절대 좌절하지 않는 그런, 말그대로의 인생의 정.석... 만족스러웠다. 뭐든 내 이성이 원하는대로 되어 갔으니까... 하지만 벽은 있었다. 그 벽을 깨달은 것은 언제였을까? 대충 1999년~2000년 사이였던 것 같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건만 이성과 다른 요소들이 주는 인생의 재미와 보람, 살아간다는 느낌은 가끔씩 실수로 치부하는 감성이 주는 행복을 갈망하고 있었다. 또한 독립개체가 아니라는 상황 하에서의 독단적 감성 배제는 사람과의 관계라는 면에서는 거의 항상 악재로 작용했다. 어쩌면 짓누르던 감성의 혁명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 이후로 나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바뀌었다. 이성을 밑바탕 아래에 두고 그 위에 감성을 솔직하게 들어내고 표현하는 것. 곧 주위의 반응들도 180도 바뀌었고, 나는 솔직하고 진솔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차갑던 이미지에서 쿨한 이미지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 억눌렸던 감성의 욕구를 하나하나 풀어가며 인생의 또다른 행복들을 많이 누리게 되었다. 세상에는 참 재밌는 일들이 많았고, 각각은 모두 나름의 행복과 재미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몇 년... 그때까지의 내 감성이라는 것은 순간이었다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감성은 성장에 따라 적절한 조절이 필요한 법인데, 그저 솔직하고자 모든 끈을 풀어놓았던 것이다. 그런 감성은 순간적이고, 극히 충동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마치 동물들의 행위처럼... 이성적으로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적 위치는 예전처럼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람들과 관계에서도 순간적으로는 좋아 보였지만, 진실로 좋다고 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순간적인 것이었으니까... 그 때 뿐이었던 거다.. 그러면서 예전의 내가 그리워지고, 마치 인생의 전성기 같은 느낌까지 들 정도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생각에 예전의 나는 강한 정신력과 육체를 소유한 멋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참 많이 그리워했고, 그러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제약을 풀기는 쉬워도 다시 조이기는 어려운 법...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난 인생에 치여갔다. 세월은 날 따라잡았고, 난 과거로 계속 흘러가 과거 속에서 허우적 대고 있었다. 마치 장거리 경주에서 한번 뒤쳐진 사람은 계속 점점 더 지쳐가는 것처럼 난 너무 지쳐갔다. 그렇게 생각했다. 쉬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은 그런게 아닌데... 최근 들어서 난 한가지 깨달았다. 좀 더 현명한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있다는 것을...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성인의 느낌이 그런 것이라는 것을... 이성은 항상 우리 깊은 곳에서 잠자며,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무거운 추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감성. 인생을 참 행복하게 해주고, 나를 솔직하게 받아들이게 해주는 그런 감성. 그 감성을 내가 생각하는 내 능력보다 조금은 작게 이성 위에 쌓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 위에 감성을 그대로 실현하며 항상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중용의 이성을 가미하면 완성! 세상을 중용적 입장에서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이상을 언제나 고려하면서 감성에 솔직할 수 있는 그런 자세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겉모습과 사소한 태도들은 가볍고 편하게 보이지만, 언제나 항상 같은 곳을 향해서 정진하는 사람. 항상 여유로워 보이지만 시간을 쓸데없는 곳에 또는 아깝게 소비하지 않는 사람. 그런 성인의 자세를 그렇게 받아들이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리 힘들지도 않아 보인다. 자연스러우니까... 그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고, 감히 쳐보다보지 못하던 너무나 멀던 그들이 이젠 가깝게 느껴진다. 경주에서 포기하는 것도 나고,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상승 곡선을 타는 것을 결정하는 것도 나다. 앞 사람과의 벌어진 격차를 보고 힘들어 하고, 자신의 순위를 보고 힘들어 할 필요는 없다. 인생이라는 경주는 스포츠와 달라서 내가 숨이 다하는 순간이 끝이고, 누구나 한번쯤은 쉬게 되어 있으며, 누군가를 이길 필요도 없다. 절대적인 순위는 없으니깐... 결국 인생은 경주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의 수많은 즐거울 만한 일들이 줄 행복의 질, 정도 등이 느껴진다. 물론 직접 느끼는 것도 즐겁겠지만, 해보지 않고도 측량됨으로써 욕심이 조금은 날아가는 느낌이랄까... 여담이지만 많은 성공서를 읽어보면 저자들의 태도 내 최초의 태도를 따르고 강요한다(물론 좀 더 완화된 경우다). 이성에 정확하게 호소하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가슴까지 와닿지 않기 때문이고, 그 행위와 규칙들이 쉽게 측량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 성공적인 삶을 산 사람들은(아마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은 것이다) 그런 것을 이미 모두 깨우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이 왠지 불쌍하단 생각이 든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얼마나 회색같은 인생을 살았을까? 하지만 그들을 연구하고 평가하는 자들이 그걸 깨우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고 그것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파한다는게 한편으로는 못마땅스럽게도 생각된다. 물론 내가 무지하여 그들을 이해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저자들이 그들의 마음을 글로 잘 표현하기 힘들었기 때문에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내 태도를 바꿔야 할 때이다. 앞으로 1년. 1년이면 많이 바뀔 수 있을거 같다. 그때까지는 방종스럽던 내 감성이 오염시켜 버린 이성과 몇몇 감성 자체를 정화할 필요가 있다. 이제부터 그렇게 내 영혼을 정화해 나간다. 뭐, 바뀌어도 지인의 말은 그대로 듣겠지만 말이다. ^^ (참고로 지인이 아는 나란 존재는 최초의 태도일 때의 나다) 3월의 밤하늘. 왠지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BE POSITIVE..!1
지금은 영혼을 정화하는 중...
오랜만에 만난 지인한테서 이런 얘길 들었다.
"예전에 비해 타락한거 아냐?"
물론 반농담이지만, 틀린 얘기도 아니다.
심각하게 이성과 감성,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오랜만에 또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예전의 나...
성인과 같은, 존경할 만한 사람들의 인품을 닮고 싶었고,
그리 되려고 참 많은 노력을 하던 때가 있었다.
수많은 벽을 느끼고 무너지고 쓰러지면서
내가 가장 가까이 바라볼 수 있는 경지는
모든 내 행위를 이성 우위로 하는 것이었다.
가장 밑바닥에 이성이 있으며, 그 위의 감성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
사람이 매우 차가워 보이기도 하지만,
거의 항상 합리적이고 미래를 냉정하게 예측하고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믿지 않으며, 자신의 위치와
자신이 가진 능력만을 철저하게 믿는 상태. 그리고 대부분의
욕구를 배제하고 정진해야 할 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태.
기쁠 때 웃지 않으며 슬플 때 울지 않는, 얻는 것도 적고
잃는 것도 적었으며, 이성적 비전과 의지는 있으나
희망이라는 감성에 불타지도 않으며 절망적 상황에서도
절대 좌절하지 않는 그런, 말그대로의 인생의 정.석...
만족스러웠다. 뭐든 내 이성이 원하는대로 되어 갔으니까...
하지만 벽은 있었다. 그 벽을 깨달은 것은 언제였을까?
대충 1999년~2000년 사이였던 것 같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건만 이성과 다른 요소들이 주는
인생의 재미와 보람, 살아간다는 느낌은 가끔씩 실수로
치부하는 감성이 주는 행복을 갈망하고 있었다.
또한 독립개체가 아니라는 상황 하에서의 독단적 감성
배제는 사람과의 관계라는 면에서는 거의 항상 악재로
작용했다. 어쩌면 짓누르던 감성의 혁명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 이후로 나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바뀌었다.
이성을 밑바탕 아래에 두고 그 위에 감성을 솔직하게
들어내고 표현하는 것. 곧 주위의 반응들도 180도 바뀌었고,
나는 솔직하고 진솔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차갑던 이미지에서 쿨한 이미지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 억눌렸던 감성의 욕구를 하나하나 풀어가며
인생의 또다른 행복들을 많이 누리게 되었다.
세상에는 참 재밌는 일들이 많았고, 각각은 모두 나름의
행복과 재미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몇 년...
그때까지의 내 감성이라는 것은 순간이었다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감성은 성장에 따라 적절한 조절이 필요한 법인데,
그저 솔직하고자 모든 끈을 풀어놓았던 것이다.
그런 감성은 순간적이고, 극히 충동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마치 동물들의 행위처럼...
이성적으로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적 위치는 예전처럼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람들과 관계에서도 순간적으로는
좋아 보였지만, 진실로 좋다고 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순간적인 것이었으니까... 그 때 뿐이었던 거다..
그러면서 예전의 내가 그리워지고, 마치 인생의 전성기 같은
느낌까지 들 정도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생각에 예전의
나는 강한 정신력과 육체를 소유한 멋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참 많이 그리워했고, 그러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제약을 풀기는 쉬워도 다시 조이기는 어려운 법...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난 인생에 치여갔다.
세월은 날 따라잡았고, 난 과거로 계속 흘러가 과거 속에서
허우적 대고 있었다. 마치 장거리 경주에서 한번 뒤쳐진 사람은
계속 점점 더 지쳐가는 것처럼 난 너무 지쳐갔다.
그렇게 생각했다. 쉬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은 그런게 아닌데...
최근 들어서 난 한가지 깨달았다.
좀 더 현명한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있다는 것을...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성인의 느낌이 그런 것이라는 것을...
이성은 항상 우리 깊은 곳에서 잠자며,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무거운 추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감성. 인생을 참 행복하게
해주고, 나를 솔직하게 받아들이게 해주는 그런 감성.
그 감성을 내가 생각하는 내 능력보다 조금은 작게 이성 위에
쌓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 위에 감성을 그대로 실현하며
항상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중용의 이성을
가미하면 완성!
세상을 중용적 입장에서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이상을 언제나
고려하면서 감성에 솔직할 수 있는 그런 자세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겉모습과 사소한 태도들은 가볍고 편하게 보이지만,
언제나 항상 같은 곳을 향해서 정진하는 사람. 항상 여유로워
보이지만 시간을 쓸데없는 곳에 또는 아깝게 소비하지 않는 사람.
그런 성인의 자세를 그렇게 받아들이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리 힘들지도 않아 보인다. 자연스러우니까...
그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고, 감히 쳐보다보지 못하던 너무나
멀던 그들이 이젠 가깝게 느껴진다.
경주에서 포기하는 것도 나고,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상승 곡선을 타는 것을 결정하는 것도 나다.
앞 사람과의 벌어진 격차를 보고 힘들어 하고,
자신의 순위를 보고 힘들어 할 필요는 없다.
인생이라는 경주는 스포츠와 달라서 내가 숨이 다하는
순간이 끝이고, 누구나 한번쯤은 쉬게 되어 있으며, 누군가를
이길 필요도 없다. 절대적인 순위는 없으니깐...
결국 인생은 경주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의 수많은 즐거울
만한 일들이 줄 행복의 질, 정도 등이 느껴진다. 물론 직접 느끼는
것도 즐겁겠지만, 해보지 않고도 측량됨으로써 욕심이 조금은
날아가는 느낌이랄까...
여담이지만 많은 성공서를 읽어보면 저자들의 태도
내 최초의 태도를 따르고 강요한다(물론 좀 더 완화된 경우다).
이성에 정확하게 호소하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가슴까지 와닿지 않기 때문이고,
그 행위와 규칙들이 쉽게 측량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 성공적인 삶을 산 사람들은(아마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은 것이다) 그런 것을 이미 모두 깨우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이 왠지 불쌍하단 생각이 든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얼마나 회색같은 인생을 살았을까?
하지만 그들을 연구하고 평가하는 자들이 그걸 깨우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고 그것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파한다는게 한편으로는 못마땅스럽게도 생각된다.
물론 내가 무지하여 그들을 이해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저자들이 그들의 마음을 글로 잘 표현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내 태도를 바꿔야 할 때이다.
앞으로 1년. 1년이면 많이 바뀔 수 있을거 같다.
그때까지는 방종스럽던 내 감성이 오염시켜 버린
이성과 몇몇 감성 자체를 정화할 필요가 있다.
이제부터 그렇게 내 영혼을 정화해 나간다.
뭐, 바뀌어도 지인의 말은 그대로 듣겠지만 말이다. ^^
(참고로 지인이 아는 나란 존재는 최초의 태도일 때의 나다)
3월의 밤하늘.
왠지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BE POSI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