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P군은 H군에게, '니가 그렇게 힘들면, 걔도 결국 그렇게 힘든 날이 있을 거고, 니가 힘든만큼 좋은 날이 올거야.' 라는 얘기를 뭐랄까 거의 확실한 말투로 얘기를 하고, P양도 그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러다, 나는 '그건 원점회귀론적 얘기야. +가 있으면 -가 있고, -가 있으면, +가 있다는 방식이지.'라고 말했다가 H군에게 "형은 맨날 너무 이론적인 얘기만해요. 현실은 다르다구요!" 라는 말을 65532번째 들었다.
그렇지만, 이런 심리학적이고, 경제학적인 얘기는 수 많은 경험들로 인해 입증된 하나의 이론으로써 완벽히 자리 잡고 있다.. 이론이랑 현실이 도통 맞지 않는다면 이론따윈 만들 필요가 없지 않는가? 현실적으로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이론이란 이론으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에 '이론'이란 이름으로 불리지도 않는다.
그러한 얘기들중엔 두가지 이론이 있다. 방금 말했던, '원점회귀론'과 다른 한가지는 '총효율성이론'이다. 원점 회귀론은 이미 설명했으니 구태여 설명하지 않겠고, '총효율성이론'은, 원점회귀론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무렵, 즉 1890년대,(이미 120년이 넘었으니 참 오래도 됐다.) 영국의 'CH. G. 브리트넌'이라는 직물 제조업자가 최초로 내세운 이론이다. 직물공이었던 그는 '인간의 행복'에 관한 고민을 하다가 그러한 가설을 처음 만들어냈다. 처음 만들 당시에는 단지 한 개인의 '가설'로서 존재했지만, 그 후 많은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많은 논문에 인용되어, 이제는 학계에서는 가설이 아니라 이론으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하게 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 인간의 행복이란, 지금까지 행복했으면, 앞으로 불행하거나, 지금까지 불행했으면 앞으로 행복할 거라는 원점회귀론과는 달리, 인간에게는 주어진 생애가 있고, 그 주어진 생애동안 많이 행복할 수록 불행의 양은 줄어들고, 많이 불행할 수록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양은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낮이 길면, 밤이 짧고, 밤이 길면 낮이 짧다.'라는 말은 그의 주장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는 것은 아직도 학계에서 하나의 '이론'으로서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 증명하고 있고,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인간의 평균수명을 60세로 잡았을때, 30년동안 행복한 삶을 누렸으면 나머지 30년 동안은 불행하게만 보내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다.
만약 30년동안 계속 행복했던 사람이 있으면,(충분히 그럴 수 있다. 지구에는 60억 명이 사니까.) 그 사람은 앞으로 계속 불행해야만 한다는 것은 이상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행복했었고, 그 나름대로의 감각을 익힌 사람은 계속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미 30년동안 행복했으니 인생 전체에 있어서, 행복의 총량은 50%를 넘었다는 말이 된다. 30년동안 행복하고 다음날 죽었으면 100%가 행복했던 인생인 것이다.
물론, 행복을 가시적인 수치나 수량으로 나타낼 수 있는가는 학계에서 많은 논의가 이어졌지만, 결국, 불행했던만큼의 행복, 행복했던 만큼의 불행이라는 흑백논리인 '원점회귀론'은 이 '총효율성이론'에 의해 그 자존심에 꽤나 큰 상처를 받은 것이 사실이다. 요컨대, 원점회귀론이 딱 들어맞는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극단적으로 평생동안 불행하기만 한 사람도 있고, 평생동안 행복하기만 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것이 '일반적인 현상'인지 '특수한 경우'에 국한되었느냐다. 이것은 아직도 학계에서 치고받고 싸우고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인생에 비추어, 타인의 인생을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가 무언가에 대한 조언을 구하면, 해당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이상, '내가 이렇게 해서 성공했으니, 너도 이렇게 하면 될거야.'라는 식이다. 사실 나라도 그 정도밖에 말해줄 수 없다. 뭘 더 알아야 말해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내가 가진 근거라곤, '나'라는 개인이 고작 27년간 살아온 특수한 경험에 의한 빈약한 추측 뿐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정말 어떠한 근거도 없는 마구잡이식의 조언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다. 마치,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이 '난 7,14,18,27,35,42를 써서 당첨이 됐으니, 너도 그 번호를 계속 써봐라. 언젠간 당첨될 거다.'라는 식이다. 그런 방식은 도대체 사이버대학교의 학점 평가 방법만큼도 신뢰할 수가 없다.
어쨌든 다시 술자리로 돌아와서 난, 한가지 이론이 완벽하다는 식으로 몰아가지는 말자고 말하려고 했는데, H군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H군은 내가 무슨 말 만하면 '이론'을 들먹이며 듣기 싫어한다. 나보다 '이론'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는 걸로 보아, 혹시 어쩌면 나보다 '이론'에 대해 통달한 친구일 수도 있다. 라는 생각은 들진 않지만.
평균적(In genenal)으로 말할때, 원점회귀 방식과, 총효율성이론의 방식은 모두 그럴싸하고, 아직까지 그 우열을 가릴수가 없다. 솔직히 나라도 아직은 어느게 더 우월한지 판단할 수가 없다. 나는 언제나 중립적이기 때문이고, 내 자신의 경험만을 가지고, 세계 전체를 판단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난 항상 시선을 객관적으로 유지하려고 노력을 하기 때문에, 내 이해관계에 얽힌 일에 대해 판단을 할 때는 상대방의 막무가내식 우기기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계속 손해만 보면서 산다. 화가 치민다.
돌아와서, 세계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며,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기란 어렵다. 정말 어렵다. 나의 이해관계에 얽혀있으면 더욱 어렵다. 사람들이란 자꾸 자기쪽에 유리하도록 말을 만들어가고, 상황을 만들어가기 마련이다. 그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니까. 하지만, 심지어는 자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에 까지도 열성적으로 자기 입장에서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왜곡시키는 사람도 있다. 이럴 때 보면 사람들이 무섭다. 공포영화보다 더 무섭다.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세상에는 A가 맞으면 B는 틀리는 식의 해답을 기대해도 좋을만한 문제는 많지 않다. A가 어느정도 맞고 B도 부분적으로 맞는 해답이 대부분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1965년 미국 버클리대학교의 L. A.자데 교수는 퍼지이론을 만들어냈다. 이런 걸 보면, 경제학자들보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공학자들이 더 세상을 뚜렸하게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내 주머니에서 빠져나간 수 많은 '돈'들은 지금쯤 어디를 헤메고 다니고 있을까. 다시 돌아올 방법은 없을까...갑자기 궁금하다.
아무튼, 총효율성이론의 기원에 대한 영국의 직물제조업자 이야기는 거짓말이다. 난 '직물제조업'이 무슨 일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심심해서 만들어냈다. 그리고, '원점 회귀론'이나 '총효율성이론' 같은 것도 없다. 이것도 그냥 내가 만들어 낸 것이다. H군, 괜히 네이버에서 찾아보고 없다고 따지지말길 바란다. 진심으로 미안하다.
[ 원점회귀와 총효율성 이론에 관한 고찰 ]
두환, 상혁, 경란과 나.
넷이서 술을 마실 때였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다가 문득, '연애질'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사실, '연애'에 관한 얘기라면 문득이 아니라 항상 나오는 얘기다.
어쨌든, P군은 H군에게, '니가 그렇게 힘들면, 걔도 결국 그렇게 힘든 날이 있을 거고, 니가 힘든만큼 좋은 날이 올거야.' 라는 얘기를 뭐랄까 거의 확실한 말투로 얘기를 하고, P양도 그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러다, 나는 '그건 원점회귀론적 얘기야. +가 있으면 -가 있고, -가 있으면, +가 있다는 방식이지.'라고 말했다가 H군에게 "형은 맨날 너무 이론적인 얘기만해요. 현실은 다르다구요!" 라는 말을 65532번째 들었다.
그렇지만, 이런 심리학적이고, 경제학적인 얘기는 수 많은 경험들로 인해 입증된 하나의 이론으로써 완벽히 자리 잡고 있다.. 이론이랑 현실이 도통 맞지 않는다면 이론따윈 만들 필요가 없지 않는가? 현실적으로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이론이란 이론으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에 '이론'이란 이름으로 불리지도 않는다.
그러한 얘기들중엔 두가지 이론이 있다. 방금 말했던, '원점회귀론'과 다른 한가지는 '총효율성이론'이다. 원점 회귀론은 이미 설명했으니 구태여 설명하지 않겠고, '총효율성이론'은, 원점회귀론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무렵, 즉 1890년대,(이미 120년이 넘었으니 참 오래도 됐다.) 영국의 'CH. G. 브리트넌'이라는 직물 제조업자가 최초로 내세운 이론이다. 직물공이었던 그는 '인간의 행복'에 관한 고민을 하다가 그러한 가설을 처음 만들어냈다. 처음 만들 당시에는 단지 한 개인의 '가설'로서 존재했지만, 그 후 많은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많은 논문에 인용되어, 이제는 학계에서는 가설이 아니라 이론으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하게 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 인간의 행복이란, 지금까지 행복했으면, 앞으로 불행하거나, 지금까지 불행했으면 앞으로 행복할 거라는 원점회귀론과는 달리, 인간에게는 주어진 생애가 있고, 그 주어진 생애동안 많이 행복할 수록 불행의 양은 줄어들고, 많이 불행할 수록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양은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낮이 길면, 밤이 짧고, 밤이 길면 낮이 짧다.'라는 말은 그의 주장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는 것은 아직도 학계에서 하나의 '이론'으로서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 증명하고 있고,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인간의 평균수명을 60세로 잡았을때, 30년동안 행복한 삶을 누렸으면 나머지 30년 동안은 불행하게만 보내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다.
만약 30년동안 계속 행복했던 사람이 있으면,(충분히 그럴 수 있다. 지구에는 60억 명이 사니까.) 그 사람은 앞으로 계속 불행해야만 한다는 것은 이상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행복했었고, 그 나름대로의 감각을 익힌 사람은 계속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미 30년동안 행복했으니 인생 전체에 있어서, 행복의 총량은 50%를 넘었다는 말이 된다. 30년동안 행복하고 다음날 죽었으면 100%가 행복했던 인생인 것이다.
물론, 행복을 가시적인 수치나 수량으로 나타낼 수 있는가는 학계에서 많은 논의가 이어졌지만, 결국, 불행했던만큼의 행복, 행복했던 만큼의 불행이라는 흑백논리인 '원점회귀론'은 이 '총효율성이론'에 의해 그 자존심에 꽤나 큰 상처를 받은 것이 사실이다. 요컨대, 원점회귀론이 딱 들어맞는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극단적으로 평생동안 불행하기만 한 사람도 있고, 평생동안 행복하기만 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것이 '일반적인 현상'인지 '특수한 경우'에 국한되었느냐다. 이것은 아직도 학계에서 치고받고 싸우고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인생에 비추어, 타인의 인생을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가 무언가에 대한 조언을 구하면, 해당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이상, '내가 이렇게 해서 성공했으니, 너도 이렇게 하면 될거야.'라는 식이다. 사실 나라도 그 정도밖에 말해줄 수 없다. 뭘 더 알아야 말해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내가 가진 근거라곤, '나'라는 개인이 고작 27년간 살아온 특수한 경험에 의한 빈약한 추측 뿐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정말 어떠한 근거도 없는 마구잡이식의 조언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다. 마치,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이 '난 7,14,18,27,35,42를 써서 당첨이 됐으니, 너도 그 번호를 계속 써봐라. 언젠간 당첨될 거다.'라는 식이다. 그런 방식은 도대체 사이버대학교의 학점 평가 방법만큼도 신뢰할 수가 없다.
어쨌든 다시 술자리로 돌아와서 난, 한가지 이론이 완벽하다는 식으로 몰아가지는 말자고 말하려고 했는데, H군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H군은 내가 무슨 말 만하면 '이론'을 들먹이며 듣기 싫어한다. 나보다 '이론'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는 걸로 보아, 혹시 어쩌면 나보다 '이론'에 대해 통달한 친구일 수도 있다. 라는 생각은 들진 않지만.
평균적(In genenal)으로 말할때, 원점회귀 방식과, 총효율성이론의 방식은 모두 그럴싸하고, 아직까지 그 우열을 가릴수가 없다. 솔직히 나라도 아직은 어느게 더 우월한지 판단할 수가 없다. 나는 언제나 중립적이기 때문이고, 내 자신의 경험만을 가지고, 세계 전체를 판단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난 항상 시선을 객관적으로 유지하려고 노력을 하기 때문에, 내 이해관계에 얽힌 일에 대해 판단을 할 때는 상대방의 막무가내식 우기기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계속 손해만 보면서 산다. 화가 치민다.
돌아와서, 세계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며,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기란 어렵다. 정말 어렵다. 나의 이해관계에 얽혀있으면 더욱 어렵다. 사람들이란 자꾸 자기쪽에 유리하도록 말을 만들어가고, 상황을 만들어가기 마련이다. 그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니까. 하지만, 심지어는 자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에 까지도 열성적으로 자기 입장에서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왜곡시키는 사람도 있다. 이럴 때 보면 사람들이 무섭다. 공포영화보다 더 무섭다.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세상에는 A가 맞으면 B는 틀리는 식의 해답을 기대해도 좋을만한 문제는 많지 않다. A가 어느정도 맞고 B도 부분적으로 맞는 해답이 대부분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1965년 미국 버클리대학교의 L. A.자데 교수는 퍼지이론을 만들어냈다. 이런 걸 보면, 경제학자들보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공학자들이 더 세상을 뚜렸하게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내 주머니에서 빠져나간 수 많은 '돈'들은 지금쯤 어디를 헤메고 다니고 있을까. 다시 돌아올 방법은 없을까...갑자기 궁금하다.
아무튼, 총효율성이론의 기원에 대한 영국의 직물제조업자 이야기는 거짓말이다. 난 '직물제조업'이 무슨 일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심심해서 만들어냈다. 그리고, '원점 회귀론'이나 '총효율성이론' 같은 것도 없다. 이것도 그냥 내가 만들어 낸 것이다. H군, 괜히 네이버에서 찾아보고 없다고 따지지말길 바란다. 진심으로 미안하다.
(퍼지 이론은 진짜다. 네이버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