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의 이상한 여행 - 1. 말하는 고양이와 기차

주민식200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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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하는 고양이와 기차

 

 

  어제는 너무 과음을 했던 모양이다. 속이 쓰려 아침에 일어나기가 쉽지가 않았다. 혼자 사는 사내의 쾌쾌한 냄새때문에 구토가 올라왔다. 가까스로 참으며 화장실로 거의 기어가듯 들어갔다. 거울에 비친 몰골에 씁스름한 표정을 지어본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걸, 이젠 나도 술 좀 줄여야지'

속으로 이런 다짐을 하며 사내는 목욕을 시작했다. 물줄기는 시원했다.

  아침밥은 먹기가 힘들 것 같아 우유 한 잔에 위만 채웠다. 간단히 옷을 걸쳐입고 사내는 지하철로 향했다. 역시나 우유로는 쓰린 속을 가라앉히기는 힘들었다.

  신림 지하철 역안은 말그대로 시간대를 가리지않고 수많은 사람들을 퍼담기도 하고 퍼내기도 한다. 모르는 사람들끼로 서로 몸을 부비며 지나다녀야 하고 갈 방향을 잃어 해매기도 한다. 매일같이 이곳 지하철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같은 시간에 같은 얼굴을 마주치기도 한다. 그렇다고 서로간에 인사를 나누지는 않는다.

  그는 오늘도 신림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간다. 방금 지하철이 도착했는지 한꺼번에 많은 인파가 계단위로 떼지어 올라오고 있었다. 이리저리 몸을 피하며 내려가보지만 속도를 내기는 힘들다. 가까스로 선로앞까지 내려왔다. 기차는 아직 전역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여기도 수많은 사람들이 줄도없이 뒤엉켜 서있다. 옆에는 눈에 띄게 아름다은 여자가 서있다. 짧은 청치마에 귀엽게 생긴 그녀에게 주위 남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향한 듯 하다.

  "아저씨, 롱다리 아저씨.."

  누군가 바로 옆에서 부르는 듯 또렷한 소리가 사내의 귀에 울려퍼졌다. 주위를 둘러보지만 아는이는 없었다.

  "아저씨, 빨리 올라타세요, 어서요, 곧 출발할꺼예요."

  좀전의 그 목소리다. 개구장이 어린 여자애 목소리다. 그 목소리는 앞쪽에서 들렸다. 사람들을 피해 앞을 내다보니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열차가 곧 도착할 예정이오니 선로앞에서 한발짝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원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역안에 가득 울려퍼졌다. 시청행 열차가 전역을 출발하여 곧 들어올 모양이다. 사람들은 눈앞의 신기한 광경이 보이지 않는 듯 열차가 들어는 방향으로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는 바로 앞의 광경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아저씨, 어서요, 열차가 들어온대잖아요. 우리는 지금 출발할꺼예요. 어서 서둘러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온몸이 하얀털로 뒤덮힌 상당히 큰 고양이였다. 덩치에 비해 표정은 어린꼬마애처럼 귀여웠고 꼬리 끝부분은 하늘색으로 물들여있었다. 고양이는 그에게 어서타라는듯 발짓(마치 손짓처럼)을 하고 객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뭔가에 이끌리듯 그 이상한 열차에 올라탔다.

 

  그가 올라탄 기차는 기관실과 두 개의 객실밖에 없는 작은 열차였다. 기관실은 고양이의 얼굴처럼 보였고 두번째 객샐 뒤에는 꼬리처럼 솜뭉치가 달려있었다. 온통 검은색인 열차의 외관과는 달리 객실 내부는 하얀색 일색이다. 객실안은 그래도 꽤 넓어 보였다. 중앙 통로 좌우로 일반 열차처럼 두 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앞뒤로 마주보고 있었고 그 사이에 원통테이블이 놓여있었다. 4개의 테이블씩 좌우로 총 8개의 테이블이 마주하고 있었다. 꼬리에 하늘빛을 달고 다니는 흰 고양이는 왼편 마지막 테이블 창가에 앉아있었다.

  "롱다리 아저씨. 문앞에서 그렇게 서있지만 말고 여기와 앉으세요. 저랑 재밌는 얘기 나눠요. 지금은 저 혼자 뿐이지만 다음 정거장부터 친구들이 더 탈꺼예요. 다음 정거장까지는 꽤 가야하거든요. 이번 여행은 정말 재밌는 여행이 될꺼예요. 다들 무척이나 들떠있다구요. 5년만에 돌아온 여행이거든요. 저도 지금 무척 신나요. 아저씨는 어떠세요?"

  빠르게 혼자말을 해대는 고양이는 어린애처럼 주절주절 말을 쏟아냈다.

  그는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 건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출근을 해야되는 것도 잊었다. 흰 고양이 앞에 앉으며 그는 고양이와 창밖을 번갈아 보다가 멀둥하니 창밖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열차는 이미 출발하여 지하를 달리고 있었다. 지하철역을 지날때마다 보이는 사람들은 그가 타고있는 열차가 보이지 않는 듯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고양이의 여행길에 그는 동참하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그는 지겨운 회사생활을 떠올리며 차라리 잘되었다고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