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주먹질

신용연2006.09.18
조회52


 

슬픈 주먹질

 

`모래판의 황태자"라 불리던 천하장사가 이종격투기선수로 변신했습니다. 이종 격투기란 권투, 레슬링, 씨름, 유도 등 각종 무술로 무장한 선수들이 싸우는 경기입니다. 맨 몸으로 온갖 기술을 동원하여 상대를 쓰러뜨리는, 한마디로 싸움판입니다. 철저히 흥행을 위해 고안된 경기는 예상대로 젊은이들을 열광시켰고, 욕구에 비례하여 경기는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갈수록 떨어지는 인기와 수입이 그를 모래판이 아닌 사각의 링에 오르도록 했을겁니다. 하지만 샅바가 아닌, 주먹을 쥔 그의 모습이 슬퍼보였습니다.

 

이종격투기 특설링은 `현대판 콜로세움"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로마시대 검투사들이 그랬듯이 이종격투기 선수들의 거친 호흡과 흐르는 피는 사람들을 흥분시킵니다. 문명의 위용이 하늘을 찌르는데도 왜 현대인은 `원시적 폭력"에 취할까요? 로마인들이 검투사들의 목숨 건 칼싸움을 즐겼듯이, 시공을 넘어 우리는 이종격투기 선수들의 주먹질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그 많은 세월에 무엇을 숙성시키고 무엇을 발효시켰는지요? 로마인과 현대인은 무엇이 다른지요?

 

지난 일요일, 천하장사가 피를 흘렸습니다. 우리의 전통놀이 씨름도 함께 피를 흘렸습니다. 애처러웠습니다. 두들겨 맞고 경기에 져서가 아닙니다. 그가 주먹을 쥐고 싸움꾼으로 나설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이 슬펐습니다.

 

〈김택근/시인〉경향신문 아침글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