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거의 3개월만에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려놓고는, 이 책은 가지고만 있고, 다른 책들부터 읽었다. 글쎄, 한국 소설이라는 생각에, 연애소설일거라는 생각에 그저 뻔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제목에서 오는 진부한 느낌에, 아마도 그렇게도 계속, 지루하게도 제쳐놓았는지 모르겠다. 책상위에 두고는 한번 건들지도 않고, 계속 연장대출만 하다가 이제서야, 다른 책들 다 읽고나니, 빌렸으니 읽기는 해야겠지 싶은 마음에..그냥 무심결에 집어들은 것이 밤 11시부터 새벽 3시가 다되도록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제목 이해하기
당신에게는 그때가 참 행복했다..하는 때가 언제인가요? 그런 시간들이 있었던 적은 있나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사실, 이 제목이 나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보기에도 무척 진부해보이는 제목. 너무 평범해서 그다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제목. 너무도 평범했던 탓에 쉽게 책장을 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이 책에서, 이 제목에서 나는 이제 가슴에 아림을 느낀다. 아프다는 말 보다 아려온다는 말이 더 어울리게 가슴을 짓누르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당신은 있었는가..
진정으로 삶에서 행복하다고 느꼈던 순간이..
줄거리 + 내 느낌 살짝(?) 말해볼까요..
남자는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문동 모녀 강간,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곧 사형장의 이슬로 맺힐 사형수 였고, 여자는 벌써 세번재 자살이 미수에 그쳐 카톨릭 수녀인 모니카 고모에게 끌려 이 사형수를 만나게된, 가수도 잠깐. 화가도 잠깐. 전직이 화려한 서른의 교수였다.
삶이라는 것이 오로지 거추장스럽기만 하여 오로지 죽음으로의 통로에만 발을 들여놓으려는 이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만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세계에서만 살던 사람들. 자신이 살던 세계 이외에 다른 세계는 어떤지 , 아니 다른 세계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었다.
남자는 이렇게 모진 인생의 시간들을 겪게 했으니 발악할 권리라도 달라는 것 처럼, 그렇게 모진 인생에 맞서 살다 이제는 그조차도 모든 것을 포기 한 듯, 어쩌면, 자신에게 가장 어울릴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그 어둠에 묻힌 죽음의 공간으로 들어서려고만 한다. 그런 남자를 증오와 멸시와 환멸의 대상으로만 보던 한 여자는 서서히 그에게 다가선다.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서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만으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관대한 기운이 서려있기도 하다. 열다섯에 사촌오빠에게 강간을 당했었다는 사실과 진실이야 어떻든, 지금 눈 앞에 열일곱 소녀를 강간살해한 죄목의 사형수가 앉아있다는 사실. 당신같으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 존재만으로도 당장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버려도 시원치않을 그런 사람과 마주 앉아 있는 그녀의 심정이 어떨 것 같은가.
그러나, 마음 속에 온통 천사들이 웅뚱그리고 앉아 또아리를 틀고 있을 것 같은 모니카 수녀는 말한다.
" 난 저애를 오늘 처음 만났다. 유정아, 저 애랑 난 오늘 처음 만난거야. 그게 다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너는 누구를 처음 만나서, 이제껏 무슨무슨 나쁜짓을 하다가 여기서 이렇게 날 만나게 되었습니까? 하고 묻지는 않잖니. 자기 입으로 그 얘길하면 그냥 듣는거지. 나에게는 오늘 본 저애가 처음인 거다. 오늘의 저 아이가 내게는 저 아이의 전부야." p58
"착한 거, 그거 바보 같은거 아니야. 가엾게 여기는 마음, 그거 무른거 아니야. 남 때문에 우는 거, 자기가 잘못한 거 생각하면서 가슴아픈 거, 그게 설사 감상이든 뭐든 그거 예쁘고 좋은거야. 열심히 마음 주다가 상처받는 거, 그거 창피한 거 아니야.. 정말로 진심을 다하는 사람은 상처도 많이 받지만 극복도 잘하는 법이야. 고모가 너보다 많이 살면서 깨달은 거는 그거야." p160
힘든 일일 것이다. 아무리 천사같은 모니카 고모의 말처럼 그가 어떤 사람이었든지 지금 처음 본 저 애가 자신이 본 저 아이의 전부라는 그 말처럼 그 사람의 과오를 따지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 다는 것이. 그래서, 그녀에겐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로도 너무나 많은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모니카 고모의 말엔 어떤 천사의, 성스러운 기운이 서려있었던 것인지.. 서서히 그녀는 그를. 그는 그녀를. 이제는 서로가 이해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관대함으로 서로 마음의 한 부분 공유할 수가 있다. 그것은 언제 사형장으로 가 그 올가미에 목매달릴지 모르는 시한부의 그와, 이제는 삶에서 죽음이라는 어두움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게 된 그녀가 나누는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감정일 것이다.
"이제 그 온기가 사라져버렸다. 온기가 사라지는 것이 죽음이라면 인간의 영혼에서 온기가 사라지는 순간 또한 죽음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도 한때, 그것도 모르고 살면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이미 죽음이었는지도 모르고." p294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그동안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반성하고, 깊이 사죄하고 자신의 잘못이 얼마나 큰 것이었나를 되짚어보게 된다. 그러면서,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일까. 신의 어린 순한양이 되어 다시금 새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신의 뜻인가.
그러고보면, 신이란 존재..존재한다는 말이 좀 이상하지만.. 신은 때로 참 모순덩어리라는 생각도 가끔 하곤 한다. 어째서 욥에게 그러한 시련을, 고통을 주면서도 가만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일까. 인간을 사랑한다면서, 우리들의 아버지라면서, 왜 늘 우리들을 고통속에 놓이게 하고, 시험하고, 그 시험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늘 우리를 속박하고 얽어매고, 그리고 종국에는 회개하게끔 만들어 눈물을 짜내고 감정의 밑바닥을 드러내게만든다. 그럼 그때에서야 비로소 신은 손길을 내민다.
마치, 자기가 내놓은 덫에 걸리기를 기다렸다가 덫에 걸린 그 동물이 살려달라는 애원의 눈물을 보이면 자비라도 베푸는 듯 놓아주는 사냥꾼 마냥.
마치, 날카로운 낚시바늘에 미끼물려 강물에 던져놓고는 한참을 잡히기를 기다리다 먹고 살겠다고 미끼를 덥썩 무는 물고기를 자신의 포획물인냥 의기양양하다 그래도 한점의 양심이라도 있는지 마찬가지로 자비를 베푸는 듯 찢어놓은 물고기 입 그대로, 난 풀어줬으니 상관없다는 식으로 다시 강물로 던져버리는 매몰찬 낚시꾼 마냥.
나는 인생을 즐기고자 신께 모든 것을 원했다.
그러나 신은 모든 것을 즐기게 하시려고 내게 인생을 주셨다.
내가 신에게 원했던 것은 무엇 하나 들어주시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당신의 뜻대로 라고 희망했던 것은 모두 다 들어주셨다.
-이태리 토리노에 있는 무명용사의 비-
그래서 때론, 난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신이라는 바로 그 분을 내 온 가슴 가득 믿으면서도 양가감정으로 그 분을 매우 미워한다. 그래서 자살도 살인이라고 하는 것인가. 내가 내 몸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게 아니라 신의 의지로 인해 태어난 생명이기 때문에, 넌 반드시 살아있어야 한다는 그 명령 때문에 난 살아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신이 날 부르면 난 또 그 명령에 맞춰 죽음을 맞이 해야하는가.
그 자체로 그것이 신의 사랑이기 때문이다..라고 한다면,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늘 신이 개입하는 것이라면, 이 세상에 신이란 없다고 말할 사람은 아마 나 말고도 무수히 많을지 모른다. 흠, 이렇게 대놓고 그분을 까대고 있다보니 꼭 나 무신론자 같다. 아주 못되먹은 기독교인. 그분께서 날 흘겨보고 계실 것이 눈에 선하다. 이렇게 말해서 벌받을까 겁도 난다. 사실..
"그러고보니 그녀가 신문에 나든 그렇지 않든 나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다. 알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외삼촌이 슬픈어조로 내게 충고했듯이 깨달으려면 아파야 하는데, 그게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아프려면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하고, 이해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깨달음이 바탕이 되는 진정한 삶은 연민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민은 이해 없이 존재하지 않고, 이해는 관심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관심이다. 정말 몰랐다고, 말한 큰 오빠는 그러므로 나를 사랑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를 업어주고,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언제나 나를 걱정한다고 말했지만, 내가 왜 그렇게 변해가는지 그는 모르겠다, 라고 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모른다, 라는 말은 어쩌면 면죄의 말이 아니라, 사랑의 반대말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의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연민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이해의 반대말이기도 하며 인간들이 서로 가져야 할 모든 진정한 연대의식의 반대말이기도 한 것이다." p248
다만, 나는 신의 그 사랑이 무관심이 아니기만을 바랄뿐이다. 그것도 정말은 관심으로 바라보는 것이리라고, 그냥 그렇게 믿을 뿐이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그 분께서도 어쩌면 그렇게 우리를 아프게 하시고 자신은 더욱 더 가슴이 아파 울부짖을지 모르는 일이다.
사형제도는 그 벌을 당하는 자들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제도이다. 정신적으로 수개월 내지 수년 동안 육체적으로 생명이 다하지 않은 제 몸뚱이가 둘로 잘리는 절망적이고도 잔인한 시간 동안 그 형벌을 당하는 사형수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른 품위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니, 오직 진실이라는 품위라도 회복할 수 있도록 이 형벌을 제 이름으로 불러서 그것이 본질적으로 어떤지 인정하자. 사형의 본질은 '복수''라는 것을.
- 알베르 카뮈 -
나는, 어제 밤새 울었다. 우리나라의 사형제도가 날 아프게 했고, 억울하게 죽어간 그 슬픈 영혼들이 가슴 아팠고, 돈이 있고 없음에 따라 죽을 사람이 살고 살 사람이 죽는 다는 어이없는 사실이 또 그랬고 그 억울한 죽음을 막지 못하는 인간의 미약한 힘(힘이랄 것도 없는..)이 그랬고 법이 죽이기로 한 사람을 그가 죽을까 염려되어 링거를 맞히고 그렇게 살려놓은 다음, 그렇게 죽이는, 그 '집행' 이라는 것을 행한다는 것이 끔찍했고, 사람과 사람이 사는 세계가, 그렇게 다를 수도 있을까 모르고 있었던 그의 세계가 못내 서러웠고, 그에 비하면 꽤나 안락한 삶속에서 26년간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았구나 싶은 게 괜히 그에게 미안해지고 죄스러워지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내겐,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라는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를 가장 울렸던 책이었다. 아무리 감동적인 책을 보아도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그 눈물이라는 것이 씨종자가 말랐다고 생각될만큼 정말 메마른 감정의 소유자였던 나는 내게도 이렇게 눈물을 흘릴만큼 많은 양의 물이 눈에 들어있었다는게 놀라웠다.
휴지를 옆에두고 수북히 쌓일만큼, 책장을 덮을 때까지 눈물이 앞을 가리워 글씨가 보이지 않을 만큼 그렇게도 많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을, 그 감정이 북받쳐 올라 나중에는 이 책이 정말 슬퍼서 우는건지 자꾸 우니까 감정이 내 눈물을 자극하는 것인지 헛갈릴만큼 그렇게도 서럽게 오래도록, 아주 오래간만에 내 저 밑바닥에 고여있던 그 눈물을 보았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공지영
제목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작가 : 공지영
출판사 : 푸른숲
어떻게 시작해야할까..
이 책을 거의 3개월만에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려놓고는, 이 책은 가지고만 있고, 다른 책들부터 읽었다. 글쎄, 한국 소설이라는 생각에, 연애소설일거라는 생각에 그저 뻔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제목에서 오는 진부한 느낌에, 아마도 그렇게도 계속, 지루하게도 제쳐놓았는지 모르겠다. 책상위에 두고는 한번 건들지도 않고, 계속 연장대출만 하다가 이제서야, 다른 책들 다 읽고나니, 빌렸으니 읽기는 해야겠지 싶은 마음에..그냥 무심결에 집어들은 것이 밤 11시부터 새벽 3시가 다되도록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제목 이해하기
당신에게는 그때가 참 행복했다..하는 때가 언제인가요? 그런 시간들이 있었던 적은 있나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사실, 이 제목이 나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보기에도 무척 진부해보이는 제목. 너무 평범해서 그다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제목. 너무도 평범했던 탓에 쉽게 책장을 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이 책에서, 이 제목에서 나는 이제 가슴에 아림을 느낀다. 아프다는 말 보다 아려온다는 말이 더 어울리게 가슴을 짓누르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당신은 있었는가..
진정으로 삶에서 행복하다고 느꼈던 순간이..
줄거리 + 내 느낌 살짝(?) 말해볼까요..
남자는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문동 모녀 강간,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곧 사형장의 이슬로 맺힐 사형수 였고, 여자는 벌써 세번재 자살이 미수에 그쳐 카톨릭 수녀인 모니카 고모에게 끌려 이 사형수를 만나게된, 가수도 잠깐. 화가도 잠깐. 전직이 화려한 서른의 교수였다.
삶이라는 것이 오로지 거추장스럽기만 하여 오로지 죽음으로의 통로에만 발을 들여놓으려는 이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만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세계에서만 살던 사람들. 자신이 살던 세계 이외에 다른 세계는 어떤지 , 아니 다른 세계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었다.
남자는 이렇게 모진 인생의 시간들을 겪게 했으니 발악할 권리라도 달라는 것 처럼, 그렇게 모진 인생에 맞서 살다 이제는 그조차도 모든 것을 포기 한 듯, 어쩌면, 자신에게 가장 어울릴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그 어둠에 묻힌 죽음의 공간으로 들어서려고만 한다. 그런 남자를 증오와 멸시와 환멸의 대상으로만 보던 한 여자는 서서히 그에게 다가선다.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서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만으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관대한 기운이 서려있기도 하다. 열다섯에 사촌오빠에게 강간을 당했었다는 사실과 진실이야 어떻든, 지금 눈 앞에 열일곱 소녀를 강간살해한 죄목의 사형수가 앉아있다는 사실. 당신같으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 존재만으로도 당장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버려도 시원치않을 그런 사람과 마주 앉아 있는 그녀의 심정이 어떨 것 같은가.
그러나, 마음 속에 온통 천사들이 웅뚱그리고 앉아 또아리를 틀고 있을 것 같은 모니카 수녀는 말한다.
" 난 저애를 오늘 처음 만났다. 유정아, 저 애랑 난 오늘 처음 만난거야. 그게 다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너는 누구를 처음 만나서, 이제껏 무슨무슨 나쁜짓을 하다가 여기서 이렇게 날 만나게 되었습니까? 하고 묻지는 않잖니. 자기 입으로 그 얘길하면 그냥 듣는거지. 나에게는 오늘 본 저애가 처음인 거다. 오늘의 저 아이가 내게는 저 아이의 전부야." p58
"착한 거, 그거 바보 같은거 아니야. 가엾게 여기는 마음, 그거 무른거 아니야. 남 때문에 우는 거, 자기가 잘못한 거 생각하면서 가슴아픈 거, 그게 설사 감상이든 뭐든 그거 예쁘고 좋은거야. 열심히 마음 주다가 상처받는 거, 그거 창피한 거 아니야.. 정말로 진심을 다하는 사람은 상처도 많이 받지만 극복도 잘하는 법이야. 고모가 너보다 많이 살면서 깨달은 거는 그거야." p160
힘든 일일 것이다. 아무리 천사같은 모니카 고모의 말처럼 그가 어떤 사람이었든지 지금 처음 본 저 애가 자신이 본 저 아이의 전부라는 그 말처럼 그 사람의 과오를 따지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 다는 것이. 그래서, 그녀에겐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로도 너무나 많은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모니카 고모의 말엔 어떤 천사의, 성스러운 기운이 서려있었던 것인지.. 서서히 그녀는 그를. 그는 그녀를. 이제는 서로가 이해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관대함으로 서로 마음의 한 부분 공유할 수가 있다. 그것은 언제 사형장으로 가 그 올가미에 목매달릴지 모르는 시한부의 그와, 이제는 삶에서 죽음이라는 어두움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게 된 그녀가 나누는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감정일 것이다.
"이제 그 온기가 사라져버렸다. 온기가 사라지는 것이 죽음이라면 인간의 영혼에서 온기가 사라지는 순간 또한 죽음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도 한때, 그것도 모르고 살면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이미 죽음이었는지도 모르고." p294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그동안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반성하고, 깊이 사죄하고 자신의 잘못이 얼마나 큰 것이었나를 되짚어보게 된다. 그러면서,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일까. 신의 어린 순한양이 되어 다시금 새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신의 뜻인가.
그러고보면, 신이란 존재..존재한다는 말이 좀 이상하지만.. 신은 때로 참 모순덩어리라는 생각도 가끔 하곤 한다. 어째서 욥에게 그러한 시련을, 고통을 주면서도 가만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일까. 인간을 사랑한다면서, 우리들의 아버지라면서, 왜 늘 우리들을 고통속에 놓이게 하고, 시험하고, 그 시험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늘 우리를 속박하고 얽어매고, 그리고 종국에는 회개하게끔 만들어 눈물을 짜내고 감정의 밑바닥을 드러내게만든다. 그럼 그때에서야 비로소 신은 손길을 내민다.
마치, 자기가 내놓은 덫에 걸리기를 기다렸다가 덫에 걸린 그 동물이 살려달라는 애원의 눈물을 보이면 자비라도 베푸는 듯 놓아주는 사냥꾼 마냥.
마치, 날카로운 낚시바늘에 미끼물려 강물에 던져놓고는 한참을 잡히기를 기다리다 먹고 살겠다고 미끼를 덥썩 무는 물고기를 자신의 포획물인냥 의기양양하다 그래도 한점의 양심이라도 있는지 마찬가지로 자비를 베푸는 듯 찢어놓은 물고기 입 그대로, 난 풀어줬으니 상관없다는 식으로 다시 강물로 던져버리는 매몰찬 낚시꾼 마냥.
나는 인생을 즐기고자 신께 모든 것을 원했다.
그러나 신은 모든 것을 즐기게 하시려고 내게 인생을 주셨다.
내가 신에게 원했던 것은 무엇 하나 들어주시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당신의 뜻대로 라고 희망했던 것은 모두 다 들어주셨다.
-이태리 토리노에 있는 무명용사의 비-
그래서 때론, 난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신이라는 바로 그 분을 내 온 가슴 가득 믿으면서도 양가감정으로 그 분을 매우 미워한다. 그래서 자살도 살인이라고 하는 것인가. 내가 내 몸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게 아니라 신의 의지로 인해 태어난 생명이기 때문에, 넌 반드시 살아있어야 한다는 그 명령 때문에 난 살아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신이 날 부르면 난 또 그 명령에 맞춰 죽음을 맞이 해야하는가.
그 자체로 그것이 신의 사랑이기 때문이다..라고 한다면,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늘 신이 개입하는 것이라면, 이 세상에 신이란 없다고 말할 사람은 아마 나 말고도 무수히 많을지 모른다. 흠, 이렇게 대놓고 그분을 까대고 있다보니 꼭 나 무신론자 같다. 아주 못되먹은 기독교인. 그분께서 날 흘겨보고 계실 것이 눈에 선하다. 이렇게 말해서 벌받을까 겁도 난다. 사실..
"그러고보니 그녀가 신문에 나든 그렇지 않든 나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다. 알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외삼촌이 슬픈어조로 내게 충고했듯이 깨달으려면 아파야 하는데, 그게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아프려면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하고, 이해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깨달음이 바탕이 되는 진정한 삶은 연민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민은 이해 없이 존재하지 않고, 이해는 관심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관심이다. 정말 몰랐다고, 말한 큰 오빠는 그러므로 나를 사랑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를 업어주고,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언제나 나를 걱정한다고 말했지만, 내가 왜 그렇게 변해가는지 그는 모르겠다, 라고 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모른다, 라는 말은 어쩌면 면죄의 말이 아니라, 사랑의 반대말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의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연민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이해의 반대말이기도 하며 인간들이 서로 가져야 할 모든 진정한 연대의식의 반대말이기도 한 것이다." p248
다만, 나는 신의 그 사랑이 무관심이 아니기만을 바랄뿐이다. 그것도 정말은 관심으로 바라보는 것이리라고, 그냥 그렇게 믿을 뿐이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그 분께서도 어쩌면 그렇게 우리를 아프게 하시고 자신은 더욱 더 가슴이 아파 울부짖을지 모르는 일이다.
사형제도는 그 벌을 당하는 자들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제도이다. 정신적으로 수개월 내지 수년 동안 육체적으로 생명이 다하지 않은 제 몸뚱이가 둘로 잘리는 절망적이고도 잔인한 시간 동안 그 형벌을 당하는 사형수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른 품위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니, 오직 진실이라는 품위라도 회복할 수 있도록 이 형벌을 제 이름으로 불러서 그것이 본질적으로 어떤지 인정하자. 사형의 본질은 '복수''라는 것을.
- 알베르 카뮈 -
나는, 어제 밤새 울었다. 우리나라의 사형제도가 날 아프게 했고, 억울하게 죽어간 그 슬픈 영혼들이 가슴 아팠고, 돈이 있고 없음에 따라 죽을 사람이 살고 살 사람이 죽는 다는 어이없는 사실이 또 그랬고 그 억울한 죽음을 막지 못하는 인간의 미약한 힘(힘이랄 것도 없는..)이 그랬고 법이 죽이기로 한 사람을 그가 죽을까 염려되어 링거를 맞히고 그렇게 살려놓은 다음, 그렇게 죽이는, 그 '집행' 이라는 것을 행한다는 것이 끔찍했고, 사람과 사람이 사는 세계가, 그렇게 다를 수도 있을까 모르고 있었던 그의 세계가 못내 서러웠고, 그에 비하면 꽤나 안락한 삶속에서 26년간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았구나 싶은 게 괜히 그에게 미안해지고 죄스러워지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내겐,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라는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를 가장 울렸던 책이었다. 아무리 감동적인 책을 보아도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그 눈물이라는 것이 씨종자가 말랐다고 생각될만큼 정말 메마른 감정의 소유자였던 나는 내게도 이렇게 눈물을 흘릴만큼 많은 양의 물이 눈에 들어있었다는게 놀라웠다.
휴지를 옆에두고 수북히 쌓일만큼, 책장을 덮을 때까지 눈물이 앞을 가리워 글씨가 보이지 않을 만큼 그렇게도 많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을, 그 감정이 북받쳐 올라 나중에는 이 책이 정말 슬퍼서 우는건지 자꾸 우니까 감정이 내 눈물을 자극하는 것인지 헛갈릴만큼 그렇게도 서럽게 오래도록, 아주 오래간만에 내 저 밑바닥에 고여있던 그 눈물을 보았다.
+++++++
아주 긴 글을 읽어주시느라 고생하셨어요.
함께 느끼고 함께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공지영씨의 이번 소설로 참 가슴이 많이 아프기도 하고,
따뜻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미 나온지는 좀 된 책이라서 읽으신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읽으신 분들이라면 저와 생각을 공유해주시면 좋겠구요.
아직 안 읽으신 분들이라면, 감히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조금은 쌀쌀해진 월요일입니다.
그래선지 독한 감기에 걸렸네요.
주말 내내 약을 먹고, 자고, 약을 먹고 했는데도 쉬이 낫지 않아 걱정입니다.
친구 녀석 말대로, 이번감기가 독하기는 한가봅니다.
여러분들은 감기 걸리지 않도록 늘 조심 조심!!
★ 즐거운 상상하기 대한민국 화이3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