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 !! ④

이성도200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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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 년 3 월 23 일 한나라당 제 6 차 전당 대회에서 박근혜 의원은 51.8 % 의 지지를 획득 , 홍사덕 28.8 김문수 12 % 등을 제치고 새로운 당 대표에 뽑혔다.

 

박 신임 대표는 전날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49.75 % 의 지지를 받은데 이어 이 날 대의원 투표에서도 절반이 넘는 1359 표 (53.9 %)를 얻어 1 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에 성공하며 완승을 거두었다.

 

평소 조국과 결혼했다는 말로 국가에 대한 헌신적인 충성을 강조해 온 박 대표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이 아닌 정치에에서 거둔 성적표로 심판 받겠다는 자세로 일관 하면서, 깨끗하고 기품있는 이미지로 한나라당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는데 성공했다.

 

박 대표는 2004 년 3 월 24 일 오후 6 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극락전을 찾아 108 배를 올리면서 신임 대표로서의 첫 날을 차떼기 정당등 한나라당 비난 여론에 대한 고해와 참회의 날로 시작했다. 이날 하루동안 명당 성당에서는 고해성사 영락 교회에서는 참회의 예배 조계사에서 108 배를 함으로서 3 대 종교의 참회 의식을 다 마쳤다.

 

 

박 대표는 지난 1998 년 대구 달성 보선을 통해 화려하게 여의도에 입성했다. 이어 2.000 년 16 대 총선에서 재선 의원이 됐다.  6 년여 길지 않은 기간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개혁적 행보를 취해 온 것이 박근혜 대표의 자산이었다.

 

박근혜 대표는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인 미래 연대와 함께 활동하면서 정치 개혁을 주장해 왔다.

 

2002 년 당시 이회창 총재에게 당 쇄신을 요구하다 받아 들여지지 않자 탈당 한국 미래 연합을 창당했다.

 

이 후 그의 요구가 관철되어 대선 직전 탈당 8 개월만에 한나라당에 복귀해 지금까지 줄곧 깨끗한 정치와 국민에게 사랑받는 정치로 새 시대의 리더로 자리 잡았다.

 

또 지난 2002 년에는 북한을 방문 김정일 국방 위원장과 전격 회담을 가져 남북 면회소 설치 및 육로 관광 개발 합의 등 의미있는 성과를 이뤄내 통일 시대의 걸맞은 대형 정치 지도자라는 평가도 아울러 받고 있다.

 

박 대표는 사석에서 누누이 정치란 국민을 잘 살게 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국민을 잘 살게 하지 못한다면 정치도 필요없고 한나라당도 필요 없다고 강조해 왔다.

 

 

박 대표는 취임하자 마자 천막 당사에 경제 상황판을 설치 실업률과 외환 보유고등 경제 수치를 매일 게시하도록 지시했다

 

한국 경제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게 한 것이다.

또 대한 교수 등 경제 전문가들을 주변에 포진, 경제 공부를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박근혜 대표의 당서 이 후 박 의원의 홈페이지에는 하도 기뻐서 엉엉 울었습니다.  눈물이 나네요 너무 감동적이에요. 등 박근혜 의원의 대표 선출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축전들이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한 네티즌은 드라마 대장금에 비교해 이 시대의 대장금되어 나라 살리는 의녀가 돼 주십시요 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박근혜 대표의 인기가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으로 이루어진 한 때의 거품이 아님을 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나는 지난 대선을 앞 둔 어느 날 조계종 종정 스님 추대식이 있어 조계사에 갔는데 거기에 박 의원이 오고 다른 대선 후보자들도 왔었다.

 

그런데 중년 여성들과 어르신네 등 수천명이 박 의원에게 몰려가 울음 바다를 이룬 가운데 불쌍해서 어떡해 하면서 박근혜 의원을 둘러싸고 몰러날 줄 모르는 것이었다.

 

그 때 노무현 후보를 비롯한 다른 의원들도 많이 참석 했었다.

그런데 유독 박 의원한테만 불자들이 모이더니 에워싸고는 울고 붙잡고 다시 법당으로 들어가고 난리가 났다.

 

그 날의 소동으로 조계사 측에서는 박 의원에게 이 곳에 오지않으면 좋겠다고 당부할 정도였다.

 

또한 법주사 미륵대불 점안법회 때에도 박 의원이 그 곳에 참석 했는데 그 때 역시 똑같은 현상이 일어 났다.  그 곳에 모인 불자들이 박근혜 박근혜를 연호하며 열정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이런 모습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꼭 불자들의 가슴에서만 이런 환호가 나오겠는가 ?

 

나는 박 의원이 출현할 때마다 나타나는 그런 모습들을 여러차례 직접 목격한 사람이다.

 

사람을 순식간에 울음 바다로 만드는 박 의원의 힘이한 과연 어떤 것인지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철부지 10 대 아이들이라면 모를까 사리 판단이 분명한 어른들이 한 여인을 향해 그렇게 열광할 수 있겠는가 ?

 

당시 기자들은 그 광경을 보고는 박근혜가 이렇게 인기가 좋은가 ?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민심은 영 다른데 있는 것 같다며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는 소리도 듣곤 했다.

 

박근혜 의원은 엄청난 바람을 몰고 다니는 위대한 성인과 같은 그런 저력이 있다. 그런 놀라운 현상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여러번 확인했다.  박근혜 의원은 2004 년 3 월 23 일 전당 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된지 2 년 3 개월만인 2006 년 6 월 16 일 한나라당 대표에서 물러 났다.

 

탄핵 정국으로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해 있을때 당 대표로 나서 당을 명실상부 제 1 야당으로 확실하게 자리잡게 한 뒤 명예롭게 대표직에서 물러난 것이다.

 

박 의원은 1997 년 한나라당 창당 이 후 이임식을 가진 첫번째 대표였다. 그 전에 조순, 이회창.서청원,최병렬 의원등이 대표를 지냈지만, 각종 정치적 사건이나 선거 패배 대선 출마등의 이유로 박 의원처럼 제대로 이임식을 치르지는 못했다.

 

박 의원은 또 대표로 있는 동안 모든 선거에서 불패 신화를 이뤄내는 등 정치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공적을 남겼다.

 

2004 년 6 월 지방 단체장 재보선에서 16 석을 얻어 겨우 3 석을 확보하는데 그친 열린 우리당을 이겼고,2005 년 4.30 재 보선에선 열린 우리당에게 이순신 장군의 승전 기록과 같은 23 : 0 으로 압승했고, 이어 10.26 재 보선에서도 4 : 0 의 승리를 따냈다.

 

 

2006 년 5.31 지방 선거에선 사상 유례없는 최대 승리를 얻어 내기도 했다. 취임 직 후에는 탄핵 역풍으로 121 석을 얻어 152 석을 얻은 여당에 패하긴 했지만, 당이 탄핵 위기를 걷어내고 회생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이끌어 냈다. 박 의원이 대표로 안정적인 리더쉽을 발휘하는 동안 열린 우리당은 무려 9 명의 당 의장 얼굴이 바뀌었다.

 

박 의원은 또 보수 정당 사상 첫 여성 대표로 뽑혔을 때만 해도 당 지지율이 열린 우리당 46.8 한나라당 15. 8 등으로 열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2006 년 5.31 지방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 53.8 열린 우리당이 21.6 % 로 완전히 역전됐다.

 

2002 년 지방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득표율 52.1 %를 넘어선 역대 최고 당 지지율을 경신한 것이다.

 

이같은 한나라당의 돌풍 중심에는 박근혜 대표가 있었다.

당 대표로서 취임할 당시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였다.

당이 존폐 기로에 서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위태로웠다. 그러나 박 대표는 4.15 총선에서 이른 바 박풍을 일으키며 당을 위기에서 구해 냈다.

 

당시 박 대표에게는 이렇다 할 만하게 내세울 조직도 사람도 없었다. 12 척의 배로 수만 왜군을 눈앞에 둔 이순신 장군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외로운 싸움이었지만, 박 대표는 이겨냈고, 승리를 거머 쥐었다. 그리고 그 달콤한 승리의 열매는 고스란히 한나라당의 몫이었다. 

 

한나라당이 살아날 희망을 찾은 것이다.

 

박 대표의 박풍은 연전 연승이었다. 불패 신화는 거듭됐고, 선거 유세때면 전국을 돌며 유권자들과 일일히 악수를 하느라 손이 아파 파스를 불여야 했다.

 

박 대표와 함께 한 당직자들은 유권자와 악수할 때 살살 잡아 달라는 부탁을 할 정도였다. 그 여린 손은 모든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미다스의 손이 되었고, 행운의 손이 되었다.

 

조직도 없고, 돈도 없었지만 박 의원은 모두 승리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강력한 추진력이 있었고, 사람들을 배려하면서도 끌어안는 구심력 위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당찬 돌파력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외유내강의 카리스마가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놀랐고, 두려워 하기 시작했다.

그 두려움은 존경심과 믿음에서 우러나는 진실된 마음이었다.

목련같은 순수함과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지극히 여성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나, 그 기운과 태도 마음가짐 같은 것들은 호랑이처럼 용맹하고 강인했다.

 

수첩공주니 온실 정치인이니 하는 따위의 일부 조롱섞인 별명은 더 이상 효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대표직에서 물러 나면서 박 의원은 다만 국가와 국민을 바라보고 나아갈 뿐이라고 했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선 뭐든지 할 것이란 마음을 가지고 앒으로 매진하려 한다고 했다.

 

대통령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책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