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바다 이야기 파문으로 도박중독이 관심의 초점이다. 흔히들 도박중독의 이유를 일확천금의 꿈이라고 말한다.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는 헛된 망상 때문에 도박에 빠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도박에 빠져든 사람들을 살펴보면 이것이 오해임을 알게 된다. 도박중독에 해당하는 공식적인 진단명은 ‘병적도박’인데, 이 병적 도박의 원인은 물질에 대한 욕심이 아니다. 자신의 욕구, 특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반복적으로 튀어나오는 욕구인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충동조절장애’가 도박중독의 근본 원인이다. 우리들도 일상생활을 하면서 가끔씩 비합리적이고 엉뚱한 짓을 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충동을 상황에 따라 적절히 표현하거나 억제할 줄 안다. 하지만 이런 충동조절 장애자들은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자신의 충동을 통제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자기 충동을 억제하지 못할까? 아직까지 그 이유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우울증상이나 불안증상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아 우울이나 불안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욕구의 반영일 수도 있고, 권위나 규칙에 도전함으로써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임을 확인하려는 욕구라고 보기도 한다. 충동조절 장애에는 ‘병적도박’ 뿐만 아니라 습관적으로 도둑질을 하는 ‘병적 도벽’, 불안하면 아무 이유 없이 습관적으로 불을 지르는 ‘병적 방화’, 자기 머리털을 계속 뽑아대는 ‘발모광증’이 있다.
발모광증 (Trichotillomania) 환자의 머리. 그 아까운 머리카락을 왜 뽑는 건지...-_-;;;
모두 일확천금의 헛된 꿈과는 상관이 없다. 그저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내적인 충동에 끌려가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연구에 의하면 이런 충동조절 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전체 인구의 1.5% 내외라고 한다. 어떤 문화권에서나 이 정도의 사람들은 문제를 겪는다는 얘기이며 어떤 활동에서라도 이 정도의 비율로 좀 지나치다 싶은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 문화관광정책연구원의 2005년 조사에서도 18세 이상의 일반 국민들 중 병적도박에 해당하는 비율은 1.6% 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특히 이런 문제에 더 시끄럽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효과적으로 대응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사실, ‘인터넷 중독’ 이나 ‘게임 중독’ 이라는 말을 우리나라처럼 쉽게 쓰는 곳은 드물다. 보통 중독은 중단하는 경우 심각한 금단증상이 나타나야 하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이 더 강하게 해야 만족하는 내성이 생겨야 한다. 알콜중독이나 니코틴 중독이 이런 기준에 가장 잘 부합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진짜’ 중독보다는 외국에서는 공인된 진단명으로 치지도 않는 ‘인터넷 중독’이나 ‘게임 중독’을 더 심각한 문제인 것 처럼 반응한다. 성추행을 저지르고서도 술에 취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너무도 태연하게 받아들이면서 하루에 몇 시간 게임이나 인터넷을 한다고 큰 일이 벌어질 것처럼 대응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나는 물질을 숭상하고 경험을 우습게 여기는 우리문화 특유의 가치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출근할 때마다 지하철에서 보는 참이슬 소주 광고. 그나마 이건 귀여운 편이고, 아예 주사를 부리는 남상미 버젼도 있다. 소주병 속에 두꺼비가 없어졌다며 "한병 더!" 를 외치는... 맥주도 아니고 소주 중독을 이렇게 귀엽게 그려주는 동네도 드물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당한 실용주의자들이다. 뭐든 돈이나 물질로 직접 환산이 되어야 그 가치를 인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 아니던가. 이번에 흥행기록을 세운 영화 도 꼭 소나타 몇 천대 판셈으로 환산해야 뿌듯해진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했던 소피스트들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실용주의자들에게는 언제나 물질이 만물의 척도인 셈이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에는 기묘한 금욕주의가 만연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금욕의 대상은 물질적인 성취와 상관이 없는 모든 경험이다. 다시 말해서 돈벌이나 출세와 직결되지 않는 활동은 무시되거나 금지된다. 그냥 그 일이 좋아서 한다는 말은 철없는 아이들이나 하는 말이다. 그 아이들조차도 결국에는 좋은 대학가기 위해서 모든 시간을 희생해야 한다. 경험은 언제나 물질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하지 경험 그 자체가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니 인터넷이나 컴퓨터 게임이 얼마나 위험해 보일지 이해가 된다. 인터넷이 어디 눈에 보이는 물질이던가, 사이버 공간은 마음속에 있는 건데, 그 물질과 무관한 세계로 뛰쳐 들어가겠다니 얼마나 걱정스럽겠나. 그나마 돈 되는 정보도 돌아다니는 인터넷에 대해서도 이 정도인데, 스크린 위에서 깜빡거리는 이미지에 목숨을 거는 컴퓨터게임에 대해서야 오죽하겠는가. 결국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이나 컴퓨터게임 몰입을 과감하게 ‘중독증’이라고 진단내고 난리법석을 떠는 이유는 그것이 ‘돈 버는 일과 무관한 경험 그 자체에의 몰입’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굳이 경제효과를 계산하려면 당장 눈에 보이는 수입과 고용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한국 영화는 '한국'이라는 브랜드의 인지도와 값어치를 높여주는 광고라고 봐야 한다. 이미지 출처: 한겨레 신문 2006년 2월 14일자.
문제는 앞으로 산업이 발전하고 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수록 경험 그 자체를 위한 경험의 중요성이 더욱 더 커진다는 점이다. 가면 갈수록 물질이 아니라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귀하고 비싸진다. 선진국일수록 경험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국제학회에서 파티라는 데에 참석해보면 정말 황당하다. 잔뜩 먹고 마셔야 파티인 즐 알았는데 그 동네 사람들은 2시간동안 맥주나 포도주 한잔만 들고 돌아다니며 대화를 할 뿐이었다. 음식이라는 물질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체험이 파티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경험에의 몰입을 병으로 취급하는 우리와는 정 반대로 서양에서는 물질에의 몰입을 병으로 취급한다. 보통 말하는 약물중독은 크게 ‘물질남용’(substance abuse) 이라는 병증의 일부다. 뭐든지 물질남용이 될 수 있다. 술을 지나치게 마셔도, 약물을 과용해도, 심지어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어도 모두 물질남용이다. 아마 파티만 열었다 하면 배가 터지도록 먹고 꼭지가 돌아가도록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은 이들의 눈에는 모두 물질남용으로 비춰질지도 모른다.
또 다른 문제는 이렇게 경험을 우습게 여기다 보니 뒤늦게 경험의 쾌감을 맛 본 사람들은 어처구니없이 간단하게 경험의 포로가 된다는 점이다. 스스로 자율적인 판단을 내리고 행동해야 하는 성인들이 도박에 빠진 탓을 국가나 정부에 돌리는 모습을 보면 씁쓸하다. 그러나 일단 한번 해보면 빠지지 않을 수 없다는 그들의 항변에도 일리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별로 해본 적이 없고, 그 짜릿한 ‘경험의 쾌감’ 앞에서 어떻게 자기 통제력을 발휘해야 하는지 배운 적도 드물기 때문이다. ‘경험금욕주의’라는 빡빡한 규제를 따라가며 인생의 초반 20년을 보낸 사람들이 자율성을 습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 아니겠는가. 청소년을 위한다던 각종 규제와 금지가 결국 그 청소년들을 철없는 어른으로 키워내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경험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이 도박공화국에서 벗어나는 길이 아닐까. 축구든 야구든 음악이던 무용이든 심지어 게임이라도 대학진학에 도움이 되면 신주단지처럼 떠받들다가 진학과 무관하다 싶으면 쓰레기 취급을 하는 문화부터 고치자는 얘기다. 어떤 활동이든 그 자체의 즐거움에 빠져본 경험이야 말로 도박중독의 근본적인 면역이 될 것이다.
도박중독: 경험금욕주의의 부작용
야후블로거 싸이코짱가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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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중독: 경험금욕주의의 부작용
2006/09/12 오후 10:58 | 가상현실과 게임 이야기요즘 바다 이야기 파문으로 도박중독이 관심의 초점이다.
흔히들 도박중독의 이유를 일확천금의 꿈이라고 말한다.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는 헛된 망상 때문에 도박에 빠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도박에 빠져든 사람들을 살펴보면 이것이 오해임을 알게 된다. 도박중독에 해당하는 공식적인 진단명은 ‘병적도박’인데, 이 병적 도박의 원인은 물질에 대한 욕심이 아니다. 자신의 욕구, 특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반복적으로 튀어나오는 욕구인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충동조절장애’가 도박중독의 근본 원인이다. 우리들도 일상생활을 하면서 가끔씩 비합리적이고 엉뚱한 짓을 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충동을 상황에 따라 적절히 표현하거나 억제할 줄 안다. 하지만 이런 충동조절 장애자들은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자신의 충동을 통제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자기 충동을 억제하지 못할까? 아직까지 그 이유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우울증상이나 불안증상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아 우울이나 불안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욕구의 반영일 수도 있고, 권위나 규칙에 도전함으로써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임을 확인하려는 욕구라고 보기도 한다. 충동조절 장애에는 ‘병적도박’ 뿐만 아니라 습관적으로 도둑질을 하는 ‘병적 도벽’, 불안하면 아무 이유 없이 습관적으로 불을 지르는 ‘병적 방화’, 자기 머리털을 계속 뽑아대는 ‘발모광증’이 있다.
발모광증 (Trichotillomania) 환자의 머리. 그 아까운 머리카락을 왜 뽑는 건지...-_-;;;
모두 일확천금의 헛된 꿈과는 상관이 없다. 그저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내적인 충동에 끌려가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연구에 의하면 이런 충동조절 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전체 인구의 1.5% 내외라고 한다. 어떤 문화권에서나 이 정도의 사람들은 문제를 겪는다는 얘기이며 어떤 활동에서라도 이 정도의 비율로 좀 지나치다 싶은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 문화관광정책연구원의 2005년 조사에서도 18세 이상의 일반 국민들 중 병적도박에 해당하는 비율은 1.6% 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특히 이런 문제에 더 시끄럽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효과적으로 대응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사실, ‘인터넷 중독’ 이나 ‘게임 중독’ 이라는 말을 우리나라처럼 쉽게 쓰는 곳은 드물다. 보통 중독은 중단하는 경우 심각한 금단증상이 나타나야 하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이 더 강하게 해야 만족하는 내성이 생겨야 한다. 알콜중독이나 니코틴 중독이 이런 기준에 가장 잘 부합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진짜’ 중독보다는 외국에서는 공인된 진단명으로 치지도 않는 ‘인터넷 중독’이나 ‘게임 중독’을 더 심각한 문제인 것 처럼 반응한다. 성추행을 저지르고서도 술에 취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너무도 태연하게 받아들이면서 하루에 몇 시간 게임이나 인터넷을 한다고 큰 일이 벌어질 것처럼 대응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나는 물질을 숭상하고 경험을 우습게 여기는 우리문화 특유의 가치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출근할 때마다 지하철에서 보는 참이슬 소주 광고.
그나마 이건 귀여운 편이고, 아예 주사를 부리는 남상미 버젼도 있다.
소주병 속에 두꺼비가 없어졌다며 "한병 더!" 를 외치는...
맥주도 아니고 소주 중독을 이렇게 귀엽게 그려주는 동네도 드물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당한 실용주의자들이다. 뭐든 돈이나 물질로 직접 환산이 되어야 그 가치를 인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 아니던가. 이번에 흥행기록을 세운 영화 도 꼭 소나타 몇 천대 판셈으로 환산해야 뿌듯해진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했던 소피스트들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실용주의자들에게는 언제나 물질이 만물의 척도인 셈이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에는 기묘한 금욕주의가 만연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금욕의 대상은 물질적인 성취와 상관이 없는 모든 경험이다. 다시 말해서 돈벌이나 출세와 직결되지 않는 활동은 무시되거나 금지된다. 그냥 그 일이 좋아서 한다는 말은 철없는 아이들이나 하는 말이다. 그 아이들조차도 결국에는 좋은 대학가기 위해서 모든 시간을 희생해야 한다. 경험은 언제나 물질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하지 경험 그 자체가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니 인터넷이나 컴퓨터 게임이 얼마나 위험해 보일지 이해가 된다. 인터넷이 어디 눈에 보이는 물질이던가, 사이버 공간은 마음속에 있는 건데, 그 물질과 무관한 세계로 뛰쳐 들어가겠다니 얼마나 걱정스럽겠나. 그나마 돈 되는 정보도 돌아다니는 인터넷에 대해서도 이 정도인데, 스크린 위에서 깜빡거리는 이미지에 목숨을 거는 컴퓨터게임에 대해서야 오죽하겠는가. 결국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이나 컴퓨터게임 몰입을 과감하게 ‘중독증’이라고 진단내고 난리법석을 떠는 이유는 그것이 ‘돈 버는 일과 무관한 경험 그 자체에의 몰입’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굳이 경제효과를 계산하려면 당장 눈에 보이는 수입과 고용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한국 영화는 '한국'이라는 브랜드의 인지도와 값어치를 높여주는 광고라고 봐야 한다.
이미지 출처: 한겨레 신문 2006년 2월 14일자.
문제는 앞으로 산업이 발전하고 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수록 경험 그 자체를 위한 경험의 중요성이 더욱 더 커진다는 점이다. 가면 갈수록 물질이 아니라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귀하고 비싸진다. 선진국일수록 경험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국제학회에서 파티라는 데에 참석해보면 정말 황당하다. 잔뜩 먹고 마셔야 파티인 즐 알았는데 그 동네 사람들은 2시간동안 맥주나 포도주 한잔만 들고 돌아다니며 대화를 할 뿐이었다. 음식이라는 물질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체험이 파티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경험에의 몰입을 병으로 취급하는 우리와는 정 반대로 서양에서는 물질에의 몰입을 병으로 취급한다. 보통 말하는 약물중독은 크게 ‘물질남용’(substance abuse) 이라는 병증의 일부다. 뭐든지 물질남용이 될 수 있다. 술을 지나치게 마셔도, 약물을 과용해도, 심지어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어도 모두 물질남용이다. 아마 파티만 열었다 하면 배가 터지도록 먹고 꼭지가 돌아가도록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은 이들의 눈에는 모두 물질남용으로 비춰질지도 모른다.
또 다른 문제는 이렇게 경험을 우습게 여기다 보니 뒤늦게 경험의 쾌감을 맛 본 사람들은 어처구니없이 간단하게 경험의 포로가 된다는 점이다. 스스로 자율적인 판단을 내리고 행동해야 하는 성인들이 도박에 빠진 탓을 국가나 정부에 돌리는 모습을 보면 씁쓸하다. 그러나 일단 한번 해보면 빠지지 않을 수 없다는 그들의 항변에도 일리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별로 해본 적이 없고, 그 짜릿한 ‘경험의 쾌감’ 앞에서 어떻게 자기 통제력을 발휘해야 하는지 배운 적도 드물기 때문이다. ‘경험금욕주의’라는 빡빡한 규제를 따라가며 인생의 초반 20년을 보낸 사람들이 자율성을 습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 아니겠는가. 청소년을 위한다던 각종 규제와 금지가 결국 그 청소년들을 철없는 어른으로 키워내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경험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이 도박공화국에서 벗어나는 길이 아닐까. 축구든 야구든 음악이던 무용이든 심지어 게임이라도 대학진학에 도움이 되면 신주단지처럼 떠받들다가 진학과 무관하다 싶으면 쓰레기 취급을 하는 문화부터 고치자는 얘기다. 어떤 활동이든 그 자체의 즐거움에 빠져본 경험이야 말로 도박중독의 근본적인 면역이 될 것이다.
- 2006. 9. 따듯한 디지털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