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본 소설 치고 밤 새워 읽지 않은 건 없다. 집에 교과서 외에 책이 없었고 소설책을 사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형편이어서 거의 다 빌려서 봤기 때문이다. 대본소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반에서 누가 읽을 만한 책을 가져오면 너도나도 빼앗듯이 빌려보려 했기 때문에 우리끼리 순서를 정했다.
그때 우리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설책은 일본의 '기쿠치 간'이라는 통속작가가 쓴 연애소설이었다. 누가 '기쿠치' 거 가져왔다고 하면 제목 같은 건 물을 필요도 없이 빨리 얻어보고 싶어 안달을 하곤 했다. 성교육이 따로 없었을 때라 내가 아는 성적 피식은 거의가 일본 통속소설에서 암시 받은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 수준을 벗어나 문학전집 같은 걸 끼고 다니는 제법 티내는 문학소녀 그룹이 따로 생겼을 때도 빌려봐야 하는 내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책 주인이나 내 다음 차례한테 독촉을 안 당하려면 하루 이틀 사이에 후딱 읽어버리는 게 수였다. 또 하룻밤 사이에 책 한 권쯤은 읽을 수 있다는 속독능력을 과시하고픈 이상한 허영심 같은 것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 새워 읽은 책, 하면 제일 먼저 에밀리 브론테의 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졸업만 무렵이었다. 문학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시달릴 때였다. 그때는 나도 신조사에서 나온 38권짜리 세계문학전집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그것 한 질만 있으면 원이 없을 줄 알았는데, 재미없는 것 몇 권 빼고 후딱 다 읽어치웠는데도 책에 걸신들린 것 같은 허기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내 앞에 앉은 애가 수업시간에 몰래 을 무릎 위에 얹어놓고 읽는 것을 보았다. 오빠가 문학청년이어서 집에 책이 많은 애였다. 그 책도 오빠 책인데 한번 보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어서 학교까지 가져왔다고 했다.
나는 문학전집 안에 포함된 를 읽은 뒤였기 때문에 의 저자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는 셈이었다. 즉각 빌려달라고 애걸했고 그 애가 다 보고 나서 빌려준 게 하필 시험 때였다. 오빠 책을 몰래 빌려주는 거니까 하루만 보고 돌려달라고 했다. 나는 시험이고 뭐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그날 밤을 꼬박 새가며 그 책을 다 읽었다.
다음날 시험을 망친 것은 물론이고, 읽는 동안도 그 친구가 시험을 망치라고 일부러 시험 날을 골라서 빌려주었을지도 모른다는 고약한 의구심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읽은 생각이 난다. 그럴 리가 없는 착한 친구였다. 또 요새처럼 급우들끼리의 경쟁이 그렇게 지능적이고 악랄한 때도 아니었다. 소설책에 빠져 시험공부를 포기한 자신이 하도 한심해서 누구 탓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대충 읽고 시험 공부도 좀 해야지 하는 생각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닌데도 나는 밤새도록 그 책의 집요한 흡인력에서 못 벗어났다. 그 흡인력이 그렇게 끈적끈적했던 것은 아마 책의 재미와 함께 남을 의심하는 어두운 마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1990년대 초 영국에서 석 달 가량 머문 적이 있는데 그 기회에 브론테 가(家)의 묘지와 생가가 보존돼 있는 요크서 지방의 하워드 마을을 여행하게 되었다. 속칭 무어(Moor)지방이라고 부르는 황량한 고장은 7월인데도 두툼한 스웨터를 껴입어야 할 정도로 기온이 낮았으나 의 엔셔 가의 아이들이 뛰어 놀았을 것 같은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브론테 기념관으로 올라가는 길은 샬롯, 에밀리 그리고 앤 등 브론테 가의 천재적인, 그러나 박명한 자매들을 온갖 방법으로 상품화한 기념품 가게, 식당 등이 번창하고 있었다.
자매의 이름이나 초상이 든 스푼이나 냅킨은 초보이고, 먹는 음식도 브론테 핫도그, 브론테 파이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알뜰하게 울궈먹으면서도 상가가 천박하지 않은 일정한 격조를 유지하고 있는 게 신기했다. 오랫동안 쌓인 연륜의 덕이라 해도 그만큼 장사가 된다는 소리이고, 장사꾼들 이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문화사업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은 긍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묵은 숙소도 방문이 우리의 옛날 대문 같이 생긴 불편한 집이었지만 브론테 가가 언덕 위 목사관에 살 때부터 있던 집이라는 걸 자랑스러워했다. 밤새도록 비도 뿌리고 바람도 불었다. 황무지를 거침없이 횡행하고 나서 널쪽 덧문을 흔드는 바람소리에는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동물적인 게 섞여 있어 창문만 열면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긴 그림자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빌어먹을, 그들은 왜 그렇게 영원한가? 나는 잠을 못 이루고 뒤척거렸다.
책 한 권도 자유롭게 사 볼 수 없었던 소녀시절 시험공부를 희생하고까지 빌려온 을 읽으면서 내 생전에 그 와더린 하이츠(Wurhering Heights)의 현장에 이르게 될 줄을 어찌 꿈이나 꾸었을까. 을 읽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영어 선생님으로부터 브론테 자매의 문학을 연구한 원서를 빌려본 적이 있는데, 원서를 읽을 실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화보 때문이었다. 무어 지방과 목사관 주변의 사진만 보고도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나는 지금 공간뿐 아니라 시간까지 거스른 것처럼 그 시대가 고스란히 정지돼 있는, 그 동네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슴 설레는 동경 없이.
그래서 지금 행복한가? 나는 나에게 물었고, 동경 없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느냐고 대답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너무 늙었고 아무 데나 헤집고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한국 사람에 불과하다는 게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쇠장식이 투박한 덧문을 열고 창 밖을 보니 주차장에서 사람들이 차 트렁크를 열고 두툼한 점퍼를 덧입고 신도 등산화로 갈아 신고 있었다. 와더린 하이츠를 한바퀴 도는 관광코스로 떠나는 사람들이었다. 관광지도를 보니 도중에 편의시설이 없는 순전한 황무지였고, 상당히 오랜 기간을 요하는 긴 길이었지만 차량의 통행은 금지돼 있었다. 전혀 손대지 않은 태곳적 같은 황무지도 이런 세심한 보존의 결과였던 것이다.
나는 황무지 체험을 위해 아이들까지 데리고 떠나는 몇몇 가족을 식당 창문으로 물끄러미 내다만 보고 따라갈 엄두를 내진 않았다. 나는 갈 길이 바쁘다는 한국사람 특유의 조급증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열심히 브론테 자매의 문학을 사랑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그들이 체험하고자 하는 게 단지 히드밖에 못 자라는 황무지가 아니라 자유분방한 캐서린과 집념 깊은 히스클리프의 악령이 씌운 것 같은 운명적인 사랑의 자취일 테니까. 브론테 자매의 문학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저렇게 허풍을 떠나, 약간은 아니꼽게 보인 것도 아마 변방의 언어를 모국어로 가진 작가의 꼬인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무어 답사는 안 갔지만 기념관에 안 들를 순 없었다. 어디 갔다왑네, 하는 사진이나 기념 엽서 한두 장쯤은 남기고 싶은 것 또한 못 말리는 촌뜨기 근성이었으므로 옛날 그대로의 교회묘지와 목사관에도 줄 서서 들어가야 할만큼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오지라 그런지 거의 내국인들이어서 관광을 하는 게 아니라 순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브론테 자매들의 초상화는 별로 예쁜 것 같지는 않아도 민감하고 선병질적으로 보이는데 다들 결핵으로 요절했다는 것도 그 지방의 가혹한 기후조건과 19세기 중엽 유럽의 의학 수준을 짐작하게 했다. 기념관의 매장에서 자매들의 저서를 초등학생으로부터 중고등학생 수준까지 몇 단계의 수준 차로 나누어 요약을 해놓고 파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1,800단어 내에서 요약해 놓은 제일 수준 낮은 블 한 권 샀다. 2정도의 단어도 내 수준에는 넘쳐 대충 읽었는데도 왜 시간이 걸렸다.
다 읽고 나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소녀 적에 밤새워 읽은 것은 일본말로 완역된 거였다. 이건 영어이긴 해도 대강의 줄거리만 아주 쉽게 단순화시켜놓은 그림책이었다. 이를테면 피와 살은 다 떼버리고 뼈대만 남은 거였다. 나는 이 소설에서 아무리 다 털어내도 사랑의 집념만은 남아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어린이용 동화책에서 내가 발견한 건 그 무럽 영국사회의 관습과 상속법, 그리고 뿌리 없는 젊은이가 상류사회에 뿌리 내리기 위한 용의주도한 계략과 재산과 신분에 대한 집념이었다. 히스클리프를 움직인 원동력이 지독한 사랑이 아니라 돈과 복수심으로 읽힌 것은 내 나이 탓일까, 아니면 소녀 적의 독서가 오독이나 착시였을까.
폭풍의 언덕 그들은 왜 그렇게 영원한가
그들은 왜 그렇게 영원한가-박완서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가 박완서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본 소설 치고 밤 새워 읽지 않은 건 없다. 집에 교과서 외에 책이 없었고 소설책을 사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형편이어서 거의 다 빌려서 봤기 때문이다. 대본소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반에서 누가 읽을 만한 책을 가져오면 너도나도 빼앗듯이 빌려보려 했기 때문에 우리끼리 순서를 정했다.
그때 우리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설책은 일본의 '기쿠치 간'이라는 통속작가가 쓴 연애소설이었다. 누가 '기쿠치' 거 가져왔다고 하면 제목 같은 건 물을 필요도 없이 빨리 얻어보고 싶어 안달을 하곤 했다. 성교육이 따로 없었을 때라 내가 아는 성적 피식은 거의가 일본 통속소설에서 암시 받은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 수준을 벗어나 문학전집 같은 걸 끼고 다니는 제법 티내는 문학소녀 그룹이 따로 생겼을 때도 빌려봐야 하는 내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책 주인이나 내 다음 차례한테 독촉을 안 당하려면 하루 이틀 사이에 후딱 읽어버리는 게 수였다. 또 하룻밤 사이에 책 한 권쯤은 읽을 수 있다는 속독능력을 과시하고픈 이상한 허영심 같은 것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 새워 읽은 책, 하면 제일 먼저 에밀리 브론테의 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졸업만 무렵이었다. 문학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시달릴 때였다. 그때는 나도 신조사에서 나온 38권짜리 세계문학전집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그것 한 질만 있으면 원이 없을 줄 알았는데, 재미없는 것 몇 권 빼고 후딱 다 읽어치웠는데도 책에 걸신들린 것 같은 허기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내 앞에 앉은 애가 수업시간에 몰래 을 무릎 위에 얹어놓고 읽는 것을 보았다. 오빠가 문학청년이어서 집에 책이 많은 애였다. 그 책도 오빠 책인데 한번 보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어서 학교까지 가져왔다고 했다.
나는 문학전집 안에 포함된 를 읽은 뒤였기 때문에 의 저자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는 셈이었다. 즉각 빌려달라고 애걸했고 그 애가 다 보고 나서 빌려준 게 하필 시험 때였다. 오빠 책을 몰래 빌려주는 거니까 하루만 보고 돌려달라고 했다. 나는 시험이고 뭐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그날 밤을 꼬박 새가며 그 책을 다 읽었다.
다음날 시험을 망친 것은 물론이고, 읽는 동안도 그 친구가 시험을 망치라고 일부러 시험 날을 골라서 빌려주었을지도 모른다는 고약한 의구심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읽은 생각이 난다. 그럴 리가 없는 착한 친구였다. 또 요새처럼 급우들끼리의 경쟁이 그렇게 지능적이고 악랄한 때도 아니었다. 소설책에 빠져 시험공부를 포기한 자신이 하도 한심해서 누구 탓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대충 읽고 시험 공부도 좀 해야지 하는 생각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닌데도 나는 밤새도록 그 책의 집요한 흡인력에서 못 벗어났다. 그 흡인력이 그렇게 끈적끈적했던 것은 아마 책의 재미와 함께 남을 의심하는 어두운 마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1990년대 초 영국에서 석 달 가량 머문 적이 있는데 그 기회에 브론테 가(家)의 묘지와 생가가 보존돼 있는 요크서 지방의 하워드 마을을 여행하게 되었다. 속칭 무어(Moor)지방이라고 부르는 황량한 고장은 7월인데도 두툼한 스웨터를 껴입어야 할 정도로 기온이 낮았으나 의 엔셔 가의 아이들이 뛰어 놀았을 것 같은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브론테 기념관으로 올라가는 길은 샬롯, 에밀리 그리고 앤 등 브론테 가의 천재적인, 그러나 박명한 자매들을 온갖 방법으로 상품화한 기념품 가게, 식당 등이 번창하고 있었다.
자매의 이름이나 초상이 든 스푼이나 냅킨은 초보이고, 먹는 음식도 브론테 핫도그, 브론테 파이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알뜰하게 울궈먹으면서도 상가가 천박하지 않은 일정한 격조를 유지하고 있는 게 신기했다. 오랫동안 쌓인 연륜의 덕이라 해도 그만큼 장사가 된다는 소리이고, 장사꾼들 이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문화사업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은 긍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묵은 숙소도 방문이 우리의 옛날 대문 같이 생긴 불편한 집이었지만 브론테 가가 언덕 위 목사관에 살 때부터 있던 집이라는 걸 자랑스러워했다. 밤새도록 비도 뿌리고 바람도 불었다. 황무지를 거침없이 횡행하고 나서 널쪽 덧문을 흔드는 바람소리에는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동물적인 게 섞여 있어 창문만 열면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긴 그림자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빌어먹을, 그들은 왜 그렇게 영원한가? 나는 잠을 못 이루고 뒤척거렸다.
책 한 권도 자유롭게 사 볼 수 없었던 소녀시절 시험공부를 희생하고까지 빌려온 을 읽으면서 내 생전에 그 와더린 하이츠(Wurhering Heights)의 현장에 이르게 될 줄을 어찌 꿈이나 꾸었을까. 을 읽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영어 선생님으로부터 브론테 자매의 문학을 연구한 원서를 빌려본 적이 있는데, 원서를 읽을 실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화보 때문이었다. 무어 지방과 목사관 주변의 사진만 보고도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나는 지금 공간뿐 아니라 시간까지 거스른 것처럼 그 시대가 고스란히 정지돼 있는, 그 동네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슴 설레는 동경 없이.
그래서 지금 행복한가? 나는 나에게 물었고, 동경 없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느냐고 대답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너무 늙었고 아무 데나 헤집고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한국 사람에 불과하다는 게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쇠장식이 투박한 덧문을 열고 창 밖을 보니 주차장에서 사람들이 차 트렁크를 열고 두툼한 점퍼를 덧입고 신도 등산화로 갈아 신고 있었다. 와더린 하이츠를 한바퀴 도는 관광코스로 떠나는 사람들이었다. 관광지도를 보니 도중에 편의시설이 없는 순전한 황무지였고, 상당히 오랜 기간을 요하는 긴 길이었지만 차량의 통행은 금지돼 있었다. 전혀 손대지 않은 태곳적 같은 황무지도 이런 세심한 보존의 결과였던 것이다.
나는 황무지 체험을 위해 아이들까지 데리고 떠나는 몇몇 가족을 식당 창문으로 물끄러미 내다만 보고 따라갈 엄두를 내진 않았다. 나는 갈 길이 바쁘다는 한국사람 특유의 조급증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열심히 브론테 자매의 문학을 사랑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그들이 체험하고자 하는 게 단지 히드밖에 못 자라는 황무지가 아니라 자유분방한 캐서린과 집념 깊은 히스클리프의 악령이 씌운 것 같은 운명적인 사랑의 자취일 테니까. 브론테 자매의 문학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저렇게 허풍을 떠나, 약간은 아니꼽게 보인 것도 아마 변방의 언어를 모국어로 가진 작가의 꼬인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무어 답사는 안 갔지만 기념관에 안 들를 순 없었다. 어디 갔다왑네, 하는 사진이나 기념 엽서 한두 장쯤은 남기고 싶은 것 또한 못 말리는 촌뜨기 근성이었으므로 옛날 그대로의 교회묘지와 목사관에도 줄 서서 들어가야 할만큼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오지라 그런지 거의 내국인들이어서 관광을 하는 게 아니라 순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브론테 자매들의 초상화는 별로 예쁜 것 같지는 않아도 민감하고 선병질적으로 보이는데 다들 결핵으로 요절했다는 것도 그 지방의 가혹한 기후조건과 19세기 중엽 유럽의 의학 수준을 짐작하게 했다. 기념관의 매장에서 자매들의 저서를 초등학생으로부터 중고등학생 수준까지 몇 단계의 수준 차로 나누어 요약을 해놓고 파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나는 1,800단어 내에서 요약해 놓은 제일 수준 낮은 블 한 권 샀다. 2정도의 단어도 내 수준에는 넘쳐 대충 읽었는데도 왜 시간이 걸렸다.
다 읽고 나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소녀 적에 밤새워 읽은 것은 일본말로 완역된 거였다. 이건 영어이긴 해도 대강의 줄거리만 아주 쉽게 단순화시켜놓은 그림책이었다. 이를테면 피와 살은 다 떼버리고 뼈대만 남은 거였다. 나는 이 소설에서 아무리 다 털어내도 사랑의 집념만은 남아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어린이용 동화책에서 내가 발견한 건 그 무럽 영국사회의 관습과 상속법, 그리고 뿌리 없는 젊은이가 상류사회에 뿌리 내리기 위한 용의주도한 계략과 재산과 신분에 대한 집념이었다. 히스클리프를 움직인 원동력이 지독한 사랑이 아니라 돈과 복수심으로 읽힌 것은 내 나이 탓일까, 아니면 소녀 적의 독서가 오독이나 착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