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랑(香娘) 이야기

임열200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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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랑(香娘) 이야기

 

◈ 향랑비(香娘碑)와 향랑연(香娘淵)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이조 중엽쯤 되었다.  

  “아가, 철모르는 너를 두고 가자니 이 에미는 눈을 감을 수가 없구나. 흑흑…….”  

  너댓 살 쯤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의 손을 꼭 잡고 여인네는 눈물을 흘렸다.  

  “엄마, 왜 그래? 엄마 울지마!”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여인네의 숨결은 들릴락말락 했다. 핏기없는 얼굴에서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내렸다.  

  “이 불쌍한 것아, 내가 죽으면 너를 누가 길러 준단 말이냐.”  

  여인네가 힘없이 중얼거리자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도 짐작을 하는지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죽지마. 죽으면 안돼!”  

  “아가,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간신히 이 말을 마친 어린아이의 어머니는  

  “꼴깍!”  

  하고, 숨이 넘어갔다.  

 

  “엄마! 엄마!”  

  어린아이는 어머니를 흔들며 크게 소리내어 울었다. 이때 일을 나갔던 어린아이의 아버지가 돌아왔다.  

  “향랑아 왜 우니?”  

  “아버지!”  

  어린 아이의 이름은 향랑(香娘)이었다.

 

  향랑의 아버지는 아내가 숨져 있는 것을 보고 통곡을 했다.  

  “여보! 어린것하고 어찌 살라고 먼저 갔단 말이오? 여보, 여보! 하늘도 무심해라.”  

  아내의 시신(屍身)을 흔들며 울부짓는 남편. 그 옆에서 엄마를 애타게 부르는 어린 딸. 이 슬픈 정경을 보고 그 누가 눈물을 흘리지 않으랴. 마을 사람들도 향랑 어머니의 죽음을 몹시 애석해 했다.  

 

  경상북도 선산(善山) 땅 어느 마을이었다. 향랑이네 집은 아버지와 어머니, 이렇게 세 식구가 가난하지만 그래도 단란하게 살아왔다. 한데 몇 달 전에 향랑의 어머니는 우연히 병을 얻어서 자리에 눕게 되었으며 백약이 무효로 끝내는 영영 가고 만 것이다. 그동안 향랑의 아버지는 앓아 누운 아내의 뒷바라지를 하느라고 밤낮 쉴 사이가 없었다. 고생을 참아가며 아내가 쾌차할 때를 기다리던 남편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의 주선으로 향랑의 어머니의 장례가 치뤄졌다.  

 

  이렇듯 어머니를 일찍 여읜 향랑은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향랑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효성이 지극하고 품행이 단정했다.  

  “글쎄, 어린 것이 품팔이를 해가며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을 보면 심청이가 다시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러게 말예요. 에미도 없는 애가 그럴 수가 있어요. 인사성도 바르고, 효성이 지극하고….”  

  마을의 아낙네들은 향랑을 극구 칭찬했다.  

  “아버지, 이제 오세요. 힘드시죠.”  

  “아니다. 나는 괜찮다만 너야말로 오죽 힘들겠니.”  

  “아니에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향랑은 홀아비로 늙어가는 아버지가 측은했다.  

  “아버지!”  

  “왜? 무슨 일이 있었느냐?”  

  “그런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불쌍해요.”  

  “허허, 그게 무슨 소리냐. 에미 없이 자라는 네가 가엾어 못 보겠다.”  

  “아버지, 새 엄마를 얻으세요.”  

  “뭐라고?”  

  어린 딸의 말에 아버지는 자못 놀랬다.  

  “언제까지 외롭게 늙어가실 수야 없잖으세요? 하루라도 빨리 새 엄마를 얻도록 하세요.”  

  "얘야, 그게 무슨 소리냐? 난 너만 의지하고 이대로 살겠다. 그런 소리 아예 꺼내지 말아라.”  

  향랑의 아버지는 펄쩍 뛰었다.  

  그러나 향랑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버지에게 새 부인을 맞이하라고 졸라댔다.

 

  이윽고 향랑의 아버지도 마음이 움직였다.  

  ‘향랑의 말대로 홀아비로 늙어갈 수야 없지. 참한 과부가 있으면 장가를 들어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한 향랑의 아버지는 마땅한 과부를 수소문했다. 마침내 매파의 중매로 이웃 마을의 한 과부를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한데 새로 들어온 계모는 성질이 포악한데다가 인정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었다.  

  “이년아! 뭘 꾸물꾸물 대느냐? 어서 밭에 나가서 김을 매질 않고!”  

  계모는 향랑에게 이러는가 하면 어떤 때는  

  “아이구 내 팔자요. 저년이 죽든지 내가 죽든지 해야지 저 꼴을 어떻게 본담.”  

  하고, 공연히 향랑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이렇듯 계모는 향랑을 종처럼 부리고 몹시 학대했으나, 향랑은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친어머니 섬기듯 효성으로써 계모를 섬겼다.

 

  갖은 구박 속에서도 무심한 세월이 흘러서 어언 향랑은 시집갈 나이가 되었다. 중매쟁이 할멈이 향랑의 집을 들락거리더니 드디어 한 마을의 박 총각과 혼인을 맺게 되었다.  

  박총각은 그 마을에서 농사깨나 짓는 박서방의 아들이었다. 한데 박총각은 원래 성품이 거칠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향랑의 남편은 신방을 치룬 지 사흘도 안되어서 벌써 그 본성을 드러냈다.  

  “어, 취한다! 이년아, 그래 남편이 술 좀 먹었기로서니 그 따위 눈으로 쳐다봐!”  남편은 욕설을 퍼부으며 손찌검까지 했다.  

  이러한 일은 하루가 멀다하고 되풀이되었다.  

  "이년아, 내 집에서 당장 나가거라. 네깐년은 꼴도 보기 싫다!”  

  남편의 학대는 날이 갈수록 더해갔다. 시집을 온 지 삼 년이 되던 해였다. 향랑은 남편의 학대에 견디가 못해 친정으로 돌아왔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람. 여자는 한 번 시집을 가면 출가외인인데 무슨 염치로 친정을 찾아온단 말이냐! 당장 시집으로 돌아가거라. 귀신이 되더라고 시집귀신이 되어야 한다.” 계모는 향랑을 보자 펄쩍 뛰며 내쫓다시피 하는 것이었다. 향랑은 기가 막혔다. 난폭한 남편에게 버림을 받고, 또한 친가에서마저 냉대를 당하니 갈 곳이 없었다.  

 

  “어머니! 어머니!”  

  향랑은 죽은 어머니를 입 속으로 불러보며 눈물을 흘렸다. 살 길이 막연한 향랑은 마침내 죽기로 결심을 했다.  

  ‘이렇게 살아선 뭔하나. 차라리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가자.’  

  향랑은 무거운 발걸음을 한 발자국씩 떼며 마을 앞 연못으로 나갔다. 연못에 이른 향랑은  

  “아버지, 용서하세요. 저는 먼저 가겠사오니 부디 행복하게 사시다가 오세요.”  

  하고, 울먹이면서 친정집을 향해 절을 했다. 이윽고 향랑은 치마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연못으로 뛰어 들었다.  

 

  이튿날  

  “앗! 연못에 시체가 떠 있다!”  

  연못 앞을 지나가던 사람이 소리치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누굴까?”  

  “가엾게시리 누군지 자결을 했군.”  

  사람들은 한 마디씩 지껄이며 서둘러 연못의 시체를 건졌다.  

  “아니, 이건 향랑이가 아닌가!”  

  “뭐? 향랑이?”  

  마을 사람들을 몹시 놀랐다.  

  “그토록 효성이 남다르고 얌전하던 향랑이가 죽다니.”  

  “참다 참다 못해 그만 연못에 몸을 던졌군, 쯧쯧.”  

  마을 사람들은 모두 슬퍼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스물 다섯 살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난 향랑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비각을 세워 주기로 했다. 그래서 향랑이 빠져 죽은 연못 위에다 향랑비(香娘碑)를 세우고 그녀의 혼을 위로했다. 그리고 그 연못을 향랑연(香娘淵)이라고 불렀다.       

 

                                                        -박영준 편, 『한국의 전설』 7권,

                                                  「경상북도 선산군」(한국 문화도서출판사, 1972)

 

 

◈산유화   

  하늘은 어이하여 높고도 멀며 天何高遠 (천하고원)   

  땅은 어이하여 넓고도 아득한고 地何廣邈 (지하광막)   

  천지가 비록 크다고 하나 天地雖大 (천지수대)   

  이 한몸 의탁할 곳 없구나 一身靡託 (일신미탁)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寧投江水 (영투강수)   

  물고기 뱃속에 장사 지내리 葬於魚服 (장어어복)       

                  - 조구상(趙龜祥), 『유현집(猶賢集)』  

 

  “남편이 나에게 화를 내고 내 어버니와 숙부도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았으며,  

  내 시부모님조차 차마 나에게 개가하라고 하시니 내가 어디로 돌아갈 것이냐.  

  죽어서 내 어머니가 뵈오리라.  

  너에게 내 신발 한 쌍을 맡기니 이걸 가지고 우리집에가서  

  ‘향랑이 돌아갈 곳이 없음을 슬퍼하다가 저 강 속에 몸을 던졌다’고 전해다오”  

  동네아이에게 이렇게 부탁한 후,   한 곡조를 부르며 물에 뛰어들었다 한다.

 

 

◈향랑, 그녀는 누구인가?  

  향랑은 17세기 후반을 살다가 18세기로 접어든 숙종 28년(1702)에 자결한 여인이다. 18세기 여러 문인들은 전형적인 열녀담의 형식으로 향랑의 자결을 형상화했는데, 이로 인해 향랑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열녀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향랑은 여느 양반 계층의 열녀들처럼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결한 여인이 아니었다. 또한 다소곳하고 얌전하게 자신을 죽이고 살았던 여인도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냈던 서민층의 평범한 여성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렇듯 평범한 여인이었던 향랑이 왜 자결을 하게 되었을까?  

  향랑은 17세에 같은 마을에 사는 임천순의 아들 칠봉과 혼인을 했는데, 칠봉은 향랑을 미워하여 폭력을 행사하기 일쑤였다. 그 폭력을 견디다 못한 향랑은 칠봉과 갈라서고 친정으로 돌아오지만 친정 부모는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숙부 집에 몸의 의탁하나, 숙부가 개가하기를 요구하자 향랑은 이를 거부하고 다시 시댁으로 찾아간다. 그러나 시아버지 또한 그녀에게 개가를 권유하며 받아주지 않는다. 개가를 원치 않았던 향랑은 자결을 결심하게 되는데, 그녀의 자결은 자신의 의지가 통용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었다.

 

 

*글출처: 서신혜 편역 『열녀 향랑을 말하다』

*그 림: 박항률 - Meditation at N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