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가신 후 어언 10여 년의 세월 동안 일년에도 몇 차례 묘소를 참배할 때마다 나는 아버지 생전의 나라사랑하신 뜻과 업적이 바르게 알려지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곤 한다.
그동안 아버지 평생의 신앙이었던 조국 근대화 과업의 기수로서 아버지와 신념을 같이 하여 헌신하셨던 각계의 여러분들과 지난 세월이 어떠했든 한결같이 아버지의 깊은 뜻을 이해하시고 추모해 오신 분들이 모여 추도를 하기 위해 찾아오실 적마다 아버지께서도 저승에서나마 매우 반가우셨을 것이다.
외세의 틈바구니에 끼여 가난과 수모로 점철된 오천년 역사의 한을 푸는 것. 왜 남들은 다 잘사는데 우리 겨레는 항상 이렇게 고생하며 못살아야 하는가. 우리의 후대에게는 결코 그와 같은 한을 물려줄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나라를 부강케 하기 위해 아버지께서 평생 모든 것을 바치셨던 집념의 원천이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조국에 대한 극진한 사랑과 동포애는 조국 근대화 과정에서 필히 겪을 수밖에 없었던 모든 고난을 소신과 결단력과 불굴의 정신으로 극복하시게 하였다.
아버진들 박수받고 싶지 않았을까
고속도로의 건설을 비롯하여 한일 국교회복, 포항제철의 건설과·월남파병등 하나에서 열까지 그 굵직굵직한 나라의 큰 일들이 심한 반대에 부딪히지 않고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당대에 박수받는 방법을 모르셨는가. 또 그때 그때를 속 편하게 모면하고 인기에 영합하는 방법을 모르셨는가. 그리고 만일 아버지께서 비난받기를 거부하고 그러한 반대에 모두 양보하고 말았더라면 어찌 오늘과 같은 조국의 번영이 있을 수 있었겠으며 어찌 짧은 기간 안에 이와 같은 엄청난 국력의 신장이 가능했겠는가.
흔히 열매가 달콤하면 그것이 맛있는 줄 알고 즐길 줄은 알아도 그러한 열매를 만들어낸 뿌리의 존재는 잊기가 쉬운 법이다. 그러나 아무리 열매가 기가 막혀도 그것은 뿌리의 노고의 소산이며 훌륭한 열매는 훌륭한 뿌리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것 역시 땅을 파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아버지의 집념과 결단,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는 어떤 어려움에도 결코 양보하지 않으셨던 소신은 바로 그 뿌리였다.
"그대 평화를 바라거든 전쟁에 대비하라."
아버지의 일기장에 크게 적혔는 이 옛 명언을 읽으며 아버지의 심정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제 26기 공군사관학교 졸업식78-4-4.
외국군에 의존하지 않고는 북한과 일대일 대결에서조차 승산이 없었던 당시, 북한은 전쟁준비를 완료하고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대한민국을 전복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었고, 미군은 철군을 서두르고 있었다. 일사불란한 체제로 우리를 노리는 적 앞에서 혼란이나 만만하게 보이는 일 자체는 그들에게 전쟁의 초대장을 보내는 것과 다름 없었다.
지금까지도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집단이며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다고 자타가 인정하면서 하물며 국력이 지금보다 훨씬 미약했던 당시의 우리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만큼 강하게 대처해야 했던 필요성을 굳이 외면하는 모순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남의 나라에 의지해서 간신히 나라를 지키는 약소국의 처량한 신세로서, 자기 나라를 자신의 힘으로 충분히 지키고 있는 나라식으로 제도를 갖추지 않는다고 욕하고 강요하는 모순에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자주의식, 자신감이 아버지 최대의 업적
국가를 보위한다는 것은 대통령 취임선서에도 첫번째로 나오는 국가 지도자의 엄숙한 임무인데, 그 임무수행에 혹여 차질을 빚었을 때 역사 앞에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아버지는 알고 계셨다.
▲이충무공탄신421회기념행사66-4-29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의 인권에 대해 일부에서 그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여차했을 때의 책임과 비난은 그들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결국 4천만 국민의 생명을 보위하는 궁극적 책임은 아버지가 지셔야 한다는 것을 또한 아버지도 알고 계셨다. 그러하기에 때로는 힘든 결단을 내리시며, 후세 사가들의 평가를 생각하시며, 고독한 길을 걷기도 하셨다.
아버지께서 무엇보다 크게 남기고 가신 것은 한민족의 자주의식과 자신감으로 대표되는 정신 혁명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을 가질만한 역량이 없이 말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의 국방을 돕던 외국군이 일방적으로 철수한다고 할 때, 그 소매끝을 붙잡고 사정사정하며 제발 가지 말라고, 우리좀 살려 달라고 매달릴 수밖에 없는 허약한 국력을 가지고, 보릿고개에 배를 쫄쫄 굶을 때 그 누가 어떤 기막힌 연설을 어찌 우리 민족이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것이며 자신감과 자주의식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민주주의도 말로만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북한의 정식명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닌가.
▲한. 미연합사령부창설식 78-11-7
아버지께서는 자립경제와 자주국방등을 통해 우리나라의 참된 역량을 키우시고 자주의식을 심화시킴으로써 백마디의 번지르르한 말보다도 수백배 빨리 참된 민주주의의 이상을 펼칠 수 있는 기초를 닦으셨으며, 그 지름길을 달려오신 것이다.
새마을 운동으로 모습을 일신한 농촌집들을 보시며 우리 신당동 집은 명함도 내밀지 못하겠다고 흐뭇해 하시던 일들이 눈에 선하다.
조국 근대화 작업이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하시며 물러나시어 나무를 가꾸는 평화로운 만년을 그리셨으나 그 꿈은 펴지도 못하고 가셨음이 가슴 아프다.
생전의 말씀과 같이 조국의 제단에 몸바치신 아버지.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그 기반을 닦고 가신 아버지. 염원하셨던 조국이 평화통일이 이룩되는 날,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통곡할 것만 같다.
박근혜의 사부곡(思父曲)-아버지 생각하며 통곡할 날
염원하셨던 조국의 평화통일 이룩되는 날
1979 / 12 / 1
- 아버지 생각하며 통곡할 날 -
아버지께서 가신 후 어언 10여 년의 세월 동안 일년에도 몇 차례 묘소를 참배할 때마다 나는 아버지 생전의 나라사랑하신 뜻과 업적이 바르게 알려지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곤 한다.
그동안 아버지 평생의 신앙이었던 조국 근대화 과업의 기수로서 아버지와 신념을 같이 하여 헌신하셨던 각계의 여러분들과 지난 세월이 어떠했든 한결같이 아버지의 깊은 뜻을 이해하시고 추모해 오신 분들이 모여 추도를 하기 위해 찾아오실 적마다 아버지께서도 저승에서나마 매우 반가우셨을 것이다.
외세의 틈바구니에 끼여 가난과 수모로 점철된 오천년 역사의 한을 푸는 것. 왜 남들은 다 잘사는데 우리 겨레는 항상 이렇게 고생하며 못살아야 하는가. 우리의 후대에게는 결코 그와 같은 한을 물려줄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나라를 부강케 하기 위해 아버지께서 평생 모든 것을 바치셨던 집념의 원천이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조국에 대한 극진한 사랑과 동포애는 조국 근대화 과정에서 필히 겪을 수밖에 없었던 모든 고난을 소신과 결단력과 불굴의 정신으로 극복하시게 하였다.
아버진들 박수받고 싶지 않았을까
고속도로의 건설을 비롯하여 한일 국교회복, 포항제철의 건설과·월남파병등 하나에서 열까지 그 굵직굵직한 나라의 큰 일들이 심한 반대에 부딪히지 않고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당대에 박수받는 방법을 모르셨는가. 또 그때 그때를 속 편하게 모면하고 인기에 영합하는 방법을 모르셨는가. 그리고 만일 아버지께서 비난받기를 거부하고 그러한 반대에 모두 양보하고 말았더라면 어찌 오늘과 같은 조국의 번영이 있을 수 있었겠으며 어찌 짧은 기간 안에 이와 같은 엄청난 국력의 신장이 가능했겠는가.
흔히 열매가 달콤하면 그것이 맛있는 줄 알고 즐길 줄은 알아도 그러한 열매를 만들어낸 뿌리의 존재는 잊기가 쉬운 법이다. 그러나 아무리 열매가 기가 막혀도 그것은 뿌리의 노고의 소산이며 훌륭한 열매는 훌륭한 뿌리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것 역시 땅을 파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아버지의 집념과 결단,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는 어떤 어려움에도 결코 양보하지 않으셨던 소신은 바로 그 뿌리였다.
"그대 평화를 바라거든 전쟁에 대비하라."
아버지의 일기장에 크게 적혔는 이 옛 명언을 읽으며 아버지의 심정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제 26기 공군사관학교 졸업식78-4-4.
외국군에 의존하지 않고는 북한과 일대일 대결에서조차 승산이 없었던 당시, 북한은 전쟁준비를 완료하고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대한민국을 전복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었고, 미군은 철군을 서두르고 있었다. 일사불란한 체제로 우리를 노리는 적 앞에서 혼란이나 만만하게 보이는 일 자체는 그들에게 전쟁의 초대장을 보내는 것과 다름 없었다.
지금까지도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집단이며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다고 자타가 인정하면서 하물며 국력이 지금보다 훨씬 미약했던 당시의 우리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만큼 강하게 대처해야 했던 필요성을 굳이 외면하는 모순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남의 나라에 의지해서 간신히 나라를 지키는 약소국의 처량한 신세로서, 자기 나라를 자신의 힘으로 충분히 지키고 있는 나라식으로 제도를 갖추지 않는다고 욕하고 강요하는 모순에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자주의식, 자신감이 아버지 최대의 업적
국가를 보위한다는 것은 대통령 취임선서에도 첫번째로 나오는 국가 지도자의 엄숙한 임무인데, 그 임무수행에 혹여 차질을 빚었을 때 역사 앞에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아버지는 알고 계셨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의 인권에 대해 일부에서 그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여차했을 때의 책임과 비난은 그들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결국 4천만 국민의 생명을 보위하는 궁극적 책임은 아버지가 지셔야 한다는 것을 또한 아버지도 알고 계셨다. 그러하기에 때로는 힘든 결단을 내리시며, 후세 사가들의 평가를 생각하시며, 고독한 길을 걷기도 하셨다.
아버지께서 무엇보다 크게 남기고 가신 것은 한민족의 자주의식과 자신감으로 대표되는 정신 혁명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을 가질만한 역량이 없이 말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의 국방을 돕던 외국군이 일방적으로 철수한다고 할 때, 그 소매끝을 붙잡고 사정사정하며 제발 가지 말라고, 우리좀 살려 달라고 매달릴 수밖에 없는 허약한 국력을 가지고, 보릿고개에 배를 쫄쫄 굶을 때 그 누가 어떤 기막힌 연설을 어찌 우리 민족이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것이며 자신감과 자주의식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민주주의도 말로만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북한의 정식명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닌가.
아버지께서는 자립경제와 자주국방등을 통해 우리나라의 참된 역량을 키우시고 자주의식을 심화시킴으로써 백마디의 번지르르한 말보다도 수백배 빨리 참된 민주주의의 이상을 펼칠 수 있는 기초를 닦으셨으며, 그 지름길을 달려오신 것이다.
새마을 운동으로 모습을 일신한 농촌집들을 보시며 우리 신당동 집은 명함도 내밀지 못하겠다고 흐뭇해 하시던 일들이 눈에 선하다.
조국 근대화 작업이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하시며 물러나시어 나무를 가꾸는 평화로운 만년을 그리셨으나 그 꿈은 펴지도 못하고 가셨음이 가슴 아프다.
생전의 말씀과 같이 조국의 제단에 몸바치신 아버지.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그 기반을 닦고 가신 아버지.
염원하셨던 조국이 평화통일이 이룩되는 날,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통곡할 것만 같다.
박근혜 박정희 前(전)대통령 장녀 -한국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