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ch of Spice

김신애200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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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ch of Spice

어른이 된 소년의 할아버지와의 추억 깃든 고향으로의 여정을 담은 영화는 많은 점에서 오래 전에 본 '시네마천국'을 떠올리게 한다. 토토와 알프레도, 제제와 뽀루뚜까, 그리고 파니스와 파니스의 할아버지 바실리스.. 토토와 알프레도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영화였듯이, 파니스와 할아버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요리이고, 소년의 첫사랑의 추억으로, 토토에게 엘레나가 있었다면, 파니스에게는 사이메가 있다. 소년의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의 풍경속에는, 다양한 향과 맛을 아우르는 향신료와 요리가 있고, 마치 우리나라 또는 '음식남녀'에서와 같은 아시아의 대가족을 보듯 왁자지껄한 가족들이 모여앉은 식탁이 있고, "어른들이 익은 홍합이 입을 벌리듯 마음을 열"게 된다는 터키식 목욕탕 - 일명 터키탕,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있는 - 이 있고, 터키와 그리스 사이의 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흐른다.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리스인 아버지를 둔 파니스 가족은 그리스인이라는 이유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이스탄불"에서 추방을 당하지만, 그리스에서도 역시 이스탄불에서 왔다는 이유로 이방인인 채로 살아가야 한다. 2주 후에 뒤따라 간다던 파니스의 할아버지가 결국은 이스탄불에서 영면에 들고 마는 것은, 고향을 잃은 후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뿌리뽑힌 삶이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돌아갈 고향도 영혼을 의탁할 신도 가지지 못한, 태생부터, 뼛속까지 도시인인 나는, 이스탄불을 떠나지 못하는 파니스의 할아버지도, 추방과 이슬람의 개종 사이에서 망설인 5초의 악몽을 떨치지 못했던 파니스의 아버지도, 그 마음 밑바닥까지를 읽어낼 도리가 없다. 터키와 그리스의 분쟁 속에 수심에 찬 어른들과는 달리, 엄마의 딸 사이메와의 사랑 때문에 환희한 찬 시절을 보내던 소년 파니스에게 있어, '추방'은 사이메가 준 부엌놀이 장난감에 세관원의 생채기를 남기는 첫사랑과의 이별이자, 향신료의 다채로운 향기와 터키식 요리로 상징되는 안온했던 유년시절 추억과의 결별로 각인된다. (그리스에서 파니스는 끝내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부엌에 출입금지령이 내리고, 보이스카웃 단복을 입어야 했으니.) 유명한 영화감독의 꿈을 이루고도 고향으로 되돌아오지 못했던 토토처럼, 천문학자라는 말에는 '미식가'라는 말이 숨어있고, 우리가 보는 수많은 별들이 실은 별들의 잔영일 뿐이며, 사라져가는 별들처럼 세상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던 할아버지의 말에 영감을 얻어 천문학자가 된 파니스 역시, 할아버지의 임종에서야 비로소 이스탄불로 되돌아오는 이유가 잘 납득이 되지는 않는다. 꼭 엘레나 또는 사이메와의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회한 때문이 아니래도 - 이루지 못한 첫사랑 때문이라면, 똑같은 회한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수천 수만 수억은 되겠지 - 시간이 쏜 화살은 다시 주울 수 없는 것이고, 이미 흘러간 유년의 추억을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니, 그후에는 영영 유년으로부터의 추방과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기다리기 때문이라고, 그게 모든 소년의 운명이고 성장소설이 슬프고 아름다운 이유라고.. 그런 것일까? 터키인 외교관의 아들이자 사이메의 남편이 된 무스타파가 파시니와 좋은 친구가 될 거라는 할아버지의 예견은, "양념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거나 "음식을 이해하려면 양념의 섭리를 알아야 한다"는 대사들이 단순히 요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터키와 그리스의 정치적 배경에 던지는 메시지를 짐작케 한다. 장중한 신화와 역사의 아우라를 간직한 이스탄불과 아테네의 쇠락한 현대에 대한 연민이 들기도 한다. 사족, 파니스의 중년을 연기한 Georges Corraface라는 배우가 참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