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은 서로에 대하여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없는 나이. 알아야 할 것이 없기 보다는 그 어떤 것도 심드렁해지는 단계의 문턱을 넘고 있는 난 서른 세 살의 봄날을 기꺼이 맞아 들이고야 만다. 계절마다 냄새가 다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물론이고 늦겨울, 초여름, 낙엽은 뒹굴 거리지만 아직은 덜 쌀쌀한 가을의 경계선까지 모두. 완연한 30대의 초 봄이란 이럴 수 밖에 없도록 정해놓기라도 한 것 일까. 솜 털 같은 꽃가루보다는 허공에 날리는 모래먼지가 눈에 더 잘 띄고 봄의 냄새보다는 재채기를 유발하는 코 끝을 간지럽고 메마르게 하는 촉각이 먼저 느껴진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루에 한 번씩 출근과 퇴근을 경험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당신을 만나서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전혀 좁아질 기색이 없는 사상과 기조의 차이로 다툼하고 지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화해보다는 휴전에 가까운 합의를 보고 긴장을 푸는 그저 그렇고 대충 어물쩍 어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일들로 하루를 채운다. 테이프의 A면에는 업무를, B면에는 연애를 녹음해서 녹슨 카세트에 넣고는 쉼 없이 틀어놓는다. 끄면 허전하겠지만 계속 들으면 지리멸렬한 그 일상은 제 소리를 못 내고 늘어난 소리만 흥얼거리고 만다.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말했잖아. 꺼도 허전한데 사라지면 지나치게 삶이 헐거워지지 않겠느냐고.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는 부류는 크게 세가지다. 정해진 것은 아니고 내 주위를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능력이 출중한 사람, 능력이 없는 사람. 그리고 일말의 손해도 보고 싶지 않은 사람.
짐짓 심드렁하게 짧은 칼럼에서 등장할 법한 내용을 읊어댄다. 어색하지 않게 팔이 저리기 전 미리 팔 베개를 풀기 위한 당신의 닳고 닳은 방식이다.
“야, 어떤 예술가가 그러더라. 모든 예술가는 자기 자신을 반복하면서 산다”
“진부해. 지겨워 그런 거”
“뭔들 안 진부하겠니, 너가. 혹시 난 혹시 안 지겨워?”
그에게서 생각보다 쉽게 대답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나름대로 안정된 직장과 무시 당하지 않을 직급의 권력과 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유 있게 호기부리면서 혼수를 하고, 남자를 골라 결혼할 만한 재간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단 한 남자의 아침을 남은 일생 동안 차려주고 내 몸과 마음을 다 바쳐주어야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손해이자 속박으로 다가 왔다. 그렇다?난 결혼을 하지 않는 부류에 고루고루 속해있는 잡종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결혼을 하지 않는 다기 보단 못하고 있다는 쪽이 천상 더 가깝다. 나에게 지금 당장 자신의 아내가 되어 달라며 달라붙는 남자 하나 없으니 말이다.
“흠”
“흠이라니. 부정 안 하는 것 좀 봐.”
“당신은 왜 나에게 결혼하자는 말 안해?”
“글쎄”
“글쎄 라니.”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으니까. 너나 나나.”
아들을 유치원 차량에 올려 보내느라 자주 출근 시간을 늦는 현정씨의 말에 따르면 그나마 처녀시절 기대했던 결혼의 장점이 무색해진다고 한다. 바야흐로 안하면 무책임하고, 못하면 무능력한 유부녀의 의무이자 일상이 버라이어티 하게 펼쳐진다는 것이다. 밥, 빨래, 청소 등의 기본적인 가사거리는 물론이거니와 대외적으로는 ‘아줌마’스럽지 않은 프로페셔널리티한 일 처리 능력 발휘와 옷맵시가 필요하다. 남 부럽지 않은 똘똘한 자식 농사와 더불어 밤에는 남편을 만족시켜줄 만한 테크니컬한 스킬 연구까지. 그야말로 초 강력 슈퍼 울트라 히로인이 되어야 그나마 제 구실하는 여자가 된다. 그러나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단 한번의 맥 끊김 없이 말하는 그녀의 유창유수와 같은 말솜씨가 더욱 더 존경스럽다. 내숭과 신비로움의 경계에서 널뛰기를 하는 처녀들을 손가락 질 할 정도의 직설적인 말의 내용 또한 마찬가지다. 그대를 감히 대한민국의 대표 유부녀 말빨로 임명하노라. 내가 달라진 것들이라 하면 여자답지 못하게 핑크 플로이드, 딥 퍼플, 주다스 프리스트 음악에 심취해서 형이하학적 문양의 블랙 박스티를 걸치고 담배에 찌들어 살다가 너바나와 건즈 엔 로지스까지도 무난히, 나름 열심히 듣다가 이제는 음악 자체를 자주 듣지 않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가끔 새벽 라디오를 들으면서 향수에 가끔 젖는 다는 것 정도? 20대 후반까지만 해도 자주 신었던 운동화가 지금 보면 낯부끄러울 때도 있다는 것 정도? 그러면서도 친구들 만날 때에는 당연한 듯 운동화 신고 나가는 정도? 순전히 취향 문제다. 제 3자의 변화를 굳이 말하자면 가끔 고향에 내려가면 부모님들의 눈 밑에는 그늘이 지고, 염려하는 기색이 역력한 정도가 끝이다. 결국 결혼이라는 제도만 사라지면 예전과 나는 그다지 다를 게 없다는 뜻이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그런 삶의 쳇바퀴가 답답해서 애써 변화를 취하려는 걸까? 그래 봤자 또 다른 쳇바퀴로 바꿔 타는 일일 뿐이거늘, 아직 날 뜨겁게 만들만한 일은 아니다.
“그럼 우리가 굳이 만나야 하는 까닭은 있어?”
“사랑하니까.”
“그럼 굳이 결혼해야 할 필요성도 있지 않을까?”
“생각 안 해봤는데.”
“그럼 생각 해봐.”
“지금?”
“아니, 며칠 후까지 대답해줘.”
“너 결혼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같이 살고 싶은 거야?”
“나 간다.”
그래도 조금은 낭만적인 몽상가적 기질이 남아있던 시절, 당신에게 반할 수 밖에 없었던까닭은 약간 엉뚱하고 낯간지럽고 사소한 행동하나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맺고 끊음이 분명한 태도가 매력적이었다고 해야 할까? H대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닭 꼬치 가게 앞에서 당신이 나에게 선사한 배려. 몇 마디 나누어보지 못한 사이였지만 며칠 뒤 있을 졸업작품 전시회를 무사히 끝마쳐야만 하는 암묵적 동질감에 그리 서먹한 것 같지만은 않다. 그러나 나도 여대생인지라 닭인지 비둘기인지 판단 내리기 어려운 고기 몇 조각을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엔 약간 겁이 났던 게 사실이다. 꼬챙이를 가로로 누인 다음 이로 자르면 양 볼에 소스가 묻을지도 모르고, 세로로 한 입을 베어 물으면 입 천장을 찔리기도 한다. 엉거주춤 먹기 위해 이리저리 고개를 움직이는 나를 본 당신은 다른 손님에게 무엇인가를 건네 받은 후 나의 꼬챙이를 그 것 사이에 끼워 넣는다. 탁. 순간 들려오는 소리는 정말 탁, 이었다. 길게 나온 꼬챙이 끝을 잘라준 후 씨익 웃고는 다시 자신의 것을 먹는 것에 정신이 없다. 탁, 소리에 졸음이 깨는 듯한 기분이었다면 당신의 쩝쩝 우물우물거리는 소리는 미끄럼틀에 모래 한 줌을 흘려 보냈을 때의 기분이었다. 정말 ‘뭣도 아닌 친절’에 온 몸의 가루들이 위에서 아래로 솨아 하고 내려가는 것처럼 나른해졌다. 그래 솔직히 말해보도록 하자. 그 전부터 누군가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반할 만만의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 같다. 자그마한 계기라도 닥치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자고 무의식 적으로 결심했던 것 같다. 그것이 하필이면 – 누구를 만나든 ‘하필이면’ 이라는 단어로 문장의 서두를 시작하겠지만 – 당신이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사랑 비슷한 감정은 결국 탁, 소리의 0.3초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결혼 비슷한 그 어떤 것도 예상치 못할 그 무엇이 계기가 되어 하지는 않을까? 충분히 나란 인간이면 그럴 가능성을 바라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단, 속도위반은 제외하고 말이다.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지. 너가 먼저 저번에 했던 마지막 질문에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아.”
“결혼하고 싶은지, 아니면 같이 살고 싶은지?”
“응”
“글쎄, 나이도 나이인 만큼 구차하게 동거는 별로야. 결혼을 생각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부모님 성화도 포함되거든.”
“그렇군. 아무튼. 극히 현실적으로 바라보자면 아직은 시기 상조인 것 같다라는 게 내 의견. 번듯한 집 사는 것도 힘들고, 내 직장이 안정적인 평생 몸담고 있을 수 있는 데도 아니고.”
“너는 ‘사’짜 직업 남편을 만나는 것은 힘들어도 ‘원’짜 직업 남편 이하는 절대 안 된다.” 술 몇 잔을 기울이고 집에 들어온 아버지가 입 버릇처럼 하는 말씀이다. ‘원’이라 하면 뭐가 있을지 생각해보니, 경찰 공무원, 교육 공무원 등의 공무원 일체가 포함되며 연구원, 회사원 등의 직업원 일체 또한 광범위하게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인 직업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하루에 4시간씩 화방에서 하는 파트타임과, 그 나머지 시간 대부분을 그림에 쏟고 있는 풋내기 예술가였다. 그럼 ‘가’짜 들어가는 직업은 싫으신가요, 하고 조심스럽게 두 서너 개 풀어헤친 남방 속까지 붉어진 채 벌러덩 누워계신 아버지께 여쭤보니 “자수성 ‘가’한 사업’가’? 우리 사위 사업가면 이 드럽고 치사한 수위 따위 때려 칠란다…!” 라는 말과 함께 그대로 혼수상태처럼 잠에 나락에 젖어 들어버리셨다.
노산은 산모에게나 아이에게나 힘든 일이다라는 말에 홀깃 해서 당신 모르게 선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사’, ‘원’, ‘가’의 직함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가끔은 연구’원’이자 의’사’처럼 두 개 이상의 이름을 꿰차고 있는 남자도 있었다. 나를 동물원의 기린 보듯 아래 위로 몇 번을 훑는가 하면, 다짜고짜 연봉을 묻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프리랜서이기에 일정한 수입이 없다고 친절하?설명하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것과 다름 없군요.’라며 조롱 섞인 비웃음을 던진다. 이런 인간들 닮은 2세를 낳는다고 생각하니 눈 앞이 컴컴해지고 만다. 차라리 노산을 택하리라 마음까지 먹는다. 적어도 당신을 닮은 아기는 손재주도 섬세하고, 콧날도 높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허리와 이어지는 골반의 곡선이 감탄스러울 만큼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니까 나도 그다지 결혼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하기 싫은 것은 아니기에 하는 쪽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상대가 지나치게 까칠하다거나, 나와 핀트가 안 맞지는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마음들이 욕심 이려나. 그럼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하겠지. 네가 아직 덜 배고파서 그런 것이라고. 더 굶어봐야 정신을 차린다고 말이다.
“어려운 문제네.”
“어렵다기 보단 서글픈 거지 뭐.” 순간 내 눈이 정말로 서글퍼 보였나 보다.
“그럼 우리 동거할까? 그냥 네가 짐만 들고 우리 집에 들어오면 끝일 텐데.”
“혜민이…… 결혼한 데. 다음 달에.”
“……” 몇 주 전, 고등학교 동창회가 강남 역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열렸다. 똑같은 단발머리에 감청색 교복을 입고 깔깔거리던 그녀들은 이제 같은 나이로 보기엔 얼굴로 보나 살아온 환경에 따라 너무도 큰 차이를 보였다. 이미 아이가 걷기 시작했다는 친구의 말을 신기한 듯 경청하는 두 달 차 신혼의 다른 친구. 그리고 각자 다른 이유로 해서 결국 나처럼 아직 결혼의 문 턱을 넘지 못한 친구들까지. 늦은 나이에 낯부끄럽다던 치아의 보철까지 활짝 보여가며 해맑게 웃던 혜민이는 그 자리에서 다음 달 결혼한다는 소식을 공표했다. 그리고 나를 보며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말하기를, 부케는 꼭 네가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릴 적 누군지도 기억 못할 친구들과 했던 수많은 약속 들 중의 하나가 문득 떠오른다. 우리 꼭 먼저 결혼하는 친구가 상대방에게 부케를 던져주자고. 생각해보니 난 그 약속을 아마도 혜민이와 했던 것 같다. 분명히 새끼 손가락을 걸고 도장까지 찍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도 서로 자신이 던져줄 생각만 했지 받을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으리라. 그러나 결국은 내가 그 부케를 받는 구나. 난 지금까지 신부들의 손에 있던 부케를 3번 정도 받았고, 이번에 드디어 혜민이에게 그 4번째 꽃을 건네 받게 될 것이다. 당신에게 받은 꽃은 8년 전 어색한 정장 차림으로 안겨 준 검붉은 장미와 끝이 약간 마른 안개꽃 이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구나…… 미안해.”
혜민이가 결혼을 한다는데 대체 미안할 것이 뭐가 있던 것 일까.
“노처녀의 노가 늙을 노가 아니라, 성낼 노인 것 같아. 아무래도.”
“나도 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 거 아니잖아. 왜 그래, 대체.”
“차라리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거였으면 좋겠어.”
“흠……”
“헤어질까? 우리.”
“마음대로 해. 피곤해. 집에 들어가라.”
뒤돌아 눕는 당신의 벗은 등이 새우처럼 굽어진다. 고개를 베개 아래에 파묻은 채 더 이상 묵묵부답인 채로 잠을 청하려는 기색이다. 사귄 지 8년하고도 5개월이라는 세월과 함께 더 이상 이십 대의 냄새가 지워지고 있는 우리로서는 결혼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헤어짐에 대한 까닭이 될 수 있었다. 그의 좁고 얇은 등 뒤로 다시 몸을 누이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했지만, 이젠 감정에 이끌리는 대로 충동처럼 행동할 만한 기력은 없었다. 청춘의 얇고 헤진 외투를 벗고 나니 삶은 맹렬한 추위였고, 잔인한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려왔으며, 희망이 이루어질 만한 가능성은 대부분 그다지 높지 않았다. 호적에 첨가된 당신 이름 몇 줄은 바코드와도 같았다. 나이와 사랑과 불안감을 모두 털어서 당신이라는 외투를 산다. 제 옷처럼 딱 맞지는 않겠지만 나름대로 걸치고 다닐 수는 있을만한 겉옷이다. 남자라는, 아니 당신이라는 외투를 몸에 걸치고 생을 살고 싶었나 보다.
혼자가 되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 정처 없이 떠밀려 제 위치도 못 찾고 둥둥 휩쓸리다가 한 없이 아래로 아래로 추락해버릴 것만 같은 서른 세 살의 나는 당신이란 사람을 부둥켜 안고 놓아주지 않으려고만 했던 것이다. 집에 있는 스푼 보다 몇 배는 많을 당신의 그림 붓들처럼 얼마나 흔들리고 낡아져 버렸나. 그리고 당신은 그런 나를 보면서 얼마나 막막했을까.
집까지 걸어오면서 나의 지독히도 이기적인 생각의 과정에 대하여 돌이켜 보았다. 유난히도 쌀쌀한 봄의 바람은 두 눈이 시렵고 연거푸 재채기를 일으키며 그렇게 지나간다. 당신의 집에서부터 계속 손에 들고 있던 낡은 핸드폰에서 작은 진동이 울린다.
[미안해, 사랑한다, 정말 근데 배고프네. 부끄럽게시리 씻고 너네 집 앞으로 갈게 따뜻하고 맛있는 거 사먹자]
무엇이든 그 처음의 시작은 냉정하면서도 강하다.
모든 것이 새롭게 태어날 것만 같은 봄을 알리는 바람의 흔적들도 마찬가지로 괴롭히면서 확실하게 그 사실을 알리고 간다. 생각해보면 삼십 대의 처음이며, 지금보다도 더 찐득찐득하고 진중한 연애 생활도 이제부터 시작이 될지도 모르겠다. 변하지 않은 것들은 어떻게든 그 형태를 유지하면서 덜커덩덜커덩 앞으로 간다. 끊어질 듯 하면서도 끊어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계절도 그렇고 청춘은 없어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만 목숨을 걸고 실천할 수 있는 애정도 운명의 방식이다. 결국 봄은 언제나 달콤하니까. 그리도 우리도 언제나 사랑할 수 밖에 없으니.
[단편] 서른 두 살, 남자에게 청혼하다.
서른 두 살, 봄과 결혼과 당신의 연관성
더 이상은 서로에 대하여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없는 나이.
알아야 할 것이 없기 보다는 그 어떤 것도 심드렁해지는 단계의 문턱을 넘고 있는 난 서른 세 살의 봄날을 기꺼이 맞아 들이고야 만다. 계절마다 냄새가 다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물론이고 늦겨울, 초여름, 낙엽은 뒹굴 거리지만 아직은 덜 쌀쌀한 가을의 경계선까지 모두.
완연한 30대의 초 봄이란 이럴 수 밖에 없도록 정해놓기라도 한 것 일까. 솜 털 같은 꽃가루보다는 허공에 날리는 모래먼지가 눈에 더 잘 띄고 봄의 냄새보다는 재채기를 유발하는 코 끝을 간지럽고 메마르게 하는 촉각이 먼저 느껴진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루에 한 번씩 출근과 퇴근을 경험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당신을 만나서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전혀 좁아질 기색이 없는 사상과 기조의 차이로 다툼하고 지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화해보다는 휴전에 가까운 합의를 보고 긴장을 푸는
그저 그렇고 대충 어물쩍 어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일들로 하루를 채운다.
테이프의 A면에는 업무를, B면에는 연애를 녹음해서 녹슨 카세트에 넣고는 쉼 없이 틀어놓는다. 끄면 허전하겠지만 계속 들으면 지리멸렬한 그 일상은 제 소리를 못 내고 늘어난 소리만 흥얼거리고 만다.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말했잖아. 꺼도 허전한데 사라지면 지나치게 삶이 헐거워지지 않겠느냐고.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는 부류는 크게 세가지다. 정해진 것은 아니고 내 주위를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능력이 출중한 사람, 능력이 없는 사람. 그리고 일말의 손해도 보고 싶지 않은 사람.
짐짓 심드렁하게 짧은 칼럼에서 등장할 법한 내용을 읊어댄다.
어색하지 않게 팔이 저리기 전 미리 팔 베개를 풀기 위한 당신의 닳고 닳은 방식이다.
“야, 어떤 예술가가 그러더라.모든 예술가는 자기 자신을 반복하면서 산다”
“진부해. 지겨워 그런 거”
“뭔들 안 진부하겠니, 너가.
혹시 난 혹시 안 지겨워?”
그에게서 생각보다 쉽게 대답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흠”나름대로 안정된 직장과 무시 당하지 않을 직급의 권력과 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유 있게 호기부리면서 혼수를 하고, 남자를 골라 결혼할 만한 재간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단 한 남자의 아침을 남은 일생 동안 차려주고 내 몸과 마음을 다 바쳐주어야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손해이자 속박으로 다가 왔다. 그렇다?난 결혼을 하지 않는 부류에 고루고루 속해있는 잡종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결혼을 하지 않는 다기 보단 못하고 있다는 쪽이 천상 더 가깝다. 나에게 지금 당장 자신의 아내가 되어 달라며 달라붙는 남자 하나 없으니 말이다.
“흠이라니. 부정 안 하는 것 좀 봐.”
“당신은 왜 나에게 결혼하자는 말 안해?”
“글쎄”
“글쎄 라니.”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으니까. 너나 나나.”
아들을 유치원 차량에 올려 보내느라 자주 출근 시간을 늦는 현정씨의 말에 따르면
그나마 처녀시절 기대했던 결혼의 장점이 무색해진다고 한다.
바야흐로 안하면 무책임하고, 못하면 무능력한 유부녀의 의무이자 일상이 버라이어티 하게 펼쳐진다는 것이다. 밥, 빨래, 청소 등의 기본적인 가사거리는 물론이거니와 대외적으로는 ‘아줌마’스럽지 않은 프로페셔널리티한 일 처리 능력 발휘와 옷맵시가 필요하다. 남 부럽지 않은 똘똘한 자식 농사와 더불어 밤에는 남편을 만족시켜줄 만한 테크니컬한 스킬 연구까지. 그야말로 초 강력 슈퍼 울트라 히로인이 되어야 그나마 제 구실하는 여자가 된다.
그러나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단 한번의 맥 끊김 없이 말하는 그녀의 유창유수와 같은 말솜씨가 더욱 더 존경스럽다. 내숭과 신비로움의 경계에서 널뛰기를 하는 처녀들을 손가락 질 할 정도의 직설적인 말의 내용 또한 마찬가지다.
그대를 감히 대한민국의 대표 유부녀 말빨로 임명하노라.
내가 달라진 것들이라 하면 여자답지 못하게 핑크 플로이드, 딥 퍼플, 주다스 프리스트 음악에 심취해서 형이하학적 문양의 블랙 박스티를 걸치고 담배에 찌들어 살다가 너바나와 건즈 엔 로지스까지도 무난히, 나름 열심히 듣다가 이제는 음악 자체를 자주 듣지 않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가끔 새벽 라디오를 들으면서 향수에 가끔 젖는 다는 것 정도? 20대 후반까지만 해도 자주 신었던 운동화가 지금 보면 낯부끄러울 때도 있다는 것 정도? 그러면서도 친구들 만날 때에는 당연한 듯 운동화 신고 나가는 정도? 순전히 취향 문제다. 제 3자의 변화를 굳이 말하자면 가끔 고향에 내려가면 부모님들의 눈 밑에는 그늘이 지고, 염려하는 기색이 역력한 정도가 끝이다.
결국 결혼이라는 제도만 사라지면 예전과 나는 그다지 다를 게 없다는 뜻이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그런 삶의 쳇바퀴가 답답해서 애써 변화를 취하려는 걸까? 그래 봤자 또 다른 쳇바퀴로 바꿔 타는 일일 뿐이거늘, 아직 날 뜨겁게 만들만한 일은 아니다.
“그럼 우리가 굳이 만나야 하는 까닭은 있어?”“사랑하니까.”
“그럼 굳이 결혼해야 할 필요성도 있지 않을까?”
“생각 안 해봤는데.”
“그럼 생각 해봐.”
“지금?”
“아니, 며칠 후까지 대답해줘.”
“너 결혼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같이 살고 싶은 거야?”
“나 간다.”
그래도 조금은 낭만적인 몽상가적 기질이 남아있던 시절, 당신에게 반할 수 밖에 없었던까닭은 약간 엉뚱하고 낯간지럽고 사소한 행동하나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맺고 끊음이 분명한 태도가 매력적이었다고 해야 할까?
H대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닭 꼬치 가게 앞에서 당신이 나에게 선사한 배려. 몇 마디 나누어보지 못한 사이였지만 며칠 뒤 있을 졸업작품 전시회를 무사히 끝마쳐야만 하는 암묵적 동질감에 그리 서먹한 것 같지만은 않다. 그러나 나도 여대생인지라 닭인지 비둘기인지 판단 내리기 어려운 고기 몇 조각을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엔 약간 겁이 났던 게 사실이다. 꼬챙이를 가로로 누인 다음 이로 자르면 양 볼에 소스가 묻을지도 모르고, 세로로 한 입을 베어 물으면 입 천장을 찔리기도 한다. 엉거주춤 먹기 위해 이리저리 고개를 움직이는 나를 본 당신은 다른 손님에게 무엇인가를 건네 받은 후 나의 꼬챙이를 그 것 사이에 끼워 넣는다.
탁. 순간 들려오는 소리는 정말 탁, 이었다. 길게 나온 꼬챙이 끝을 잘라준 후 씨익 웃고는 다시 자신의 것을 먹는 것에 정신이 없다. 탁, 소리에 졸음이 깨는 듯한 기분이었다면 당신의 쩝쩝 우물우물거리는 소리는 미끄럼틀에 모래 한 줌을 흘려 보냈을 때의 기분이었다.
정말 ‘뭣도 아닌 친절’에 온 몸의 가루들이 위에서 아래로 솨아 하고 내려가는 것처럼 나른해졌다. 그래 솔직히 말해보도록 하자. 그 전부터 누군가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반할 만만의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 같다. 자그마한 계기라도 닥치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자고 무의식 적으로 결심했던 것 같다. 그것이 하필이면 – 누구를 만나든 ‘하필이면’ 이라는 단어로 문장의 서두를 시작하겠지만 – 당신이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사랑 비슷한 감정은 결국 탁, 소리의 0.3초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결혼 비슷한 그 어떤 것도 예상치 못할 그 무엇이 계기가 되어 하지는 않을까? 충분히 나란 인간이면 그럴 가능성을 바라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단, 속도위반은 제외하고 말이다.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지.
너가 먼저 저번에 했던 마지막 질문에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아.”
“결혼하고 싶은지, 아니면 같이 살고 싶은지?”
“응”
“글쎄, 나이도 나이인 만큼 구차하게 동거는 별로야.
결혼을 생각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부모님 성화도 포함되거든.”
“그렇군. 아무튼.
극히 현실적으로 바라보자면 아직은 시기 상조인 것 같다라는 게 내 의견.
번듯한 집 사는 것도 힘들고, 내 직장이 안정적인 평생 몸담고 있을 수 있는 데도 아니고.”
“너는 ‘사’짜 직업 남편을 만나는 것은 힘들어도 ‘원’짜 직업 남편 이하는 절대 안 된다.”
술 몇 잔을 기울이고 집에 들어온 아버지가 입 버릇처럼 하는 말씀이다.
‘원’이라 하면 뭐가 있을지 생각해보니, 경찰 공무원, 교육 공무원 등의 공무원 일체가 포함되며 연구원, 회사원 등의 직업원 일체 또한 광범위하게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인 직업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하루에 4시간씩 화방에서 하는 파트타임과, 그 나머지 시간 대부분을 그림에 쏟고 있는 풋내기 예술가였다.
그럼 ‘가’짜 들어가는 직업은 싫으신가요, 하고 조심스럽게
두 서너 개 풀어헤친 남방 속까지 붉어진 채 벌러덩 누워계신 아버지께 여쭤보니
“자수성 ‘가’한 사업’가’? 우리 사위 사업가면 이 드럽고 치사한 수위 따위 때려 칠란다…!”
라는 말과 함께 그대로 혼수상태처럼 잠에 나락에 젖어 들어버리셨다.
노산은 산모에게나 아이에게나 힘든 일이다라는 말에 홀깃 해서 당신 모르게 선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사’, ‘원’, ‘가’의 직함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가끔은 연구’원’이자 의’사’처럼 두 개 이상의 이름을 꿰차고 있는 남자도 있었다.
나를 동물원의 기린 보듯 아래 위로 몇 번을 훑는가 하면, 다짜고짜 연봉을 묻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프리랜서이기에 일정한 수입이 없다고 친절하?설명하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것과 다름 없군요.’라며 조롱 섞인 비웃음을 던진다. 이런 인간들 닮은 2세를 낳는다고 생각하니 눈 앞이 컴컴해지고 만다. 차라리 노산을 택하리라 마음까지 먹는다.
적어도 당신을 닮은 아기는 손재주도 섬세하고, 콧날도 높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허리와 이어지는 골반의 곡선이 감탄스러울 만큼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니까 나도 그다지 결혼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하기 싫은 것은 아니기에 하는 쪽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상대가 지나치게 까칠하다거나, 나와 핀트가 안 맞지는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마음들이 욕심 이려나.
그럼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하겠지.
네가 아직 덜 배고파서 그런 것이라고. 더 굶어봐야 정신을 차린다고 말이다.
“어려운 문제네.”
“어렵다기 보단 서글픈 거지 뭐.” 순간 내 눈이 정말로 서글퍼 보였나 보다.
“그럼 우리 동거할까? 그냥 네가 짐만 들고 우리 집에 들어오면 끝일 텐데.”
“혜민이…… 결혼한 데. 다음 달에.”
“……”
몇 주 전, 고등학교 동창회가 강남 역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열렸다.
똑같은 단발머리에 감청색 교복을 입고 깔깔거리던 그녀들은 이제 같은 나이로 보기엔 얼굴로 보나 살아온 환경에 따라 너무도 큰 차이를 보였다. 이미 아이가 걷기 시작했다는 친구의 말을 신기한 듯 경청하는 두 달 차 신혼의 다른 친구. 그리고 각자 다른 이유로 해서 결국 나처럼 아직 결혼의 문 턱을 넘지 못한 친구들까지.
늦은 나이에 낯부끄럽다던 치아의 보철까지 활짝 보여가며 해맑게 웃던 혜민이는 그 자리에서 다음 달 결혼한다는 소식을 공표했다. 그리고 나를 보며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말하기를, 부케는 꼭 네가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릴 적 누군지도 기억 못할 친구들과 했던 수많은 약속 들 중의 하나가 문득 떠오른다. 우리 꼭 먼저 결혼하는 친구가 상대방에게 부케를 던져주자고. 생각해보니 난 그 약속을 아마도 혜민이와 했던 것 같다. 분명히 새끼 손가락을 걸고 도장까지 찍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도 서로 자신이 던져줄 생각만 했지 받을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으리라. 그러나 결국은 내가 그 부케를 받는 구나. 난 지금까지 신부들의 손에 있던 부케를 3번 정도 받았고, 이번에 드디어 혜민이에게 그 4번째 꽃을 건네 받게 될 것이다.
당신에게 받은 꽃은 8년 전 어색한 정장 차림으로 안겨 준 검붉은 장미와 끝이 약간 마른 안개꽃 이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구나…… 미안해.”
혜민이가 결혼을 한다는데 대체 미안할 것이 뭐가 있던 것 일까.
“노처녀의 노가 늙을 노가 아니라, 성낼 노인 것 같아. 아무래도.”
“나도 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 거 아니잖아. 왜 그래, 대체.”
“차라리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거였으면 좋겠어.”
“흠……”
“헤어질까? 우리.”
“마음대로 해. 피곤해. 집에 들어가라.”
뒤돌아 눕는 당신의 벗은 등이 새우처럼 굽어진다. 고개를 베개 아래에 파묻은 채 더 이상 묵묵부답인 채로 잠을 청하려는 기색이다. 사귄 지 8년하고도 5개월이라는 세월과 함께 더 이상 이십 대의 냄새가 지워지고 있는 우리로서는 결혼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헤어짐에 대한 까닭이 될 수 있었다. 그의 좁고 얇은 등 뒤로 다시 몸을 누이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했지만, 이젠 감정에 이끌리는 대로 충동처럼 행동할 만한 기력은 없었다. 청춘의 얇고 헤진 외투를 벗고 나니 삶은 맹렬한 추위였고, 잔인한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려왔으며, 희망이 이루어질 만한 가능성은 대부분 그다지 높지 않았다.
호적에 첨가된 당신 이름 몇 줄은 바코드와도 같았다. 나이와 사랑과 불안감을 모두 털어서 당신이라는 외투를 산다. 제 옷처럼 딱 맞지는 않겠지만 나름대로 걸치고 다닐 수는 있을만한 겉옷이다. 남자라는, 아니 당신이라는 외투를 몸에 걸치고 생을 살고 싶었나 보다.
혼자가 되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 정처 없이 떠밀려 제 위치도 못 찾고 둥둥 휩쓸리다가
한 없이 아래로 아래로 추락해버릴 것만 같은 서른 세 살의 나는 당신이란 사람을 부둥켜 안고 놓아주지 않으려고만 했던 것이다. 집에 있는 스푼 보다 몇 배는 많을 당신의 그림 붓들처럼 얼마나 흔들리고 낡아져 버렸나. 그리고 당신은 그런 나를 보면서 얼마나 막막했을까.
집까지 걸어오면서 나의 지독히도 이기적인 생각의 과정에 대하여 돌이켜 보았다.
유난히도 쌀쌀한 봄의 바람은 두 눈이 시렵고 연거푸 재채기를 일으키며 그렇게 지나간다.
당신의 집에서부터 계속 손에 들고 있던 낡은 핸드폰에서 작은 진동이 울린다.
[미안해, 사랑한다, 정말근데 배고프네. 부끄럽게시리
씻고 너네 집 앞으로 갈게
따뜻하고 맛있는 거 사먹자]
무엇이든 그 처음의 시작은 냉정하면서도 강하다.
모든 것이 새롭게 태어날 것만 같은 봄을 알리는 바람의 흔적들도 마찬가지로 괴롭히면서 확실하게 그 사실을 알리고 간다.
생각해보면 삼십 대의 처음이며, 지금보다도 더 찐득찐득하고 진중한 연애 생활도 이제부터 시작이 될지도 모르겠다. 변하지 않은 것들은 어떻게든 그 형태를 유지하면서 덜커덩덜커덩 앞으로 간다. 끊어질 듯 하면서도 끊어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계절도 그렇고 청춘은 없어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만 목숨을 걸고 실천할 수 있는 애정도 운명의 방식이다.
결국 봄은 언제나 달콤하니까. 그리도 우리도 언제나 사랑할 수 밖에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