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써 있는 이 책을 통해 사람사는 세상에 예나 지금이나 정말로 필요한 것은 따뜻한 정이구나를 생각해본다.
머리말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은 내가 싫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는 힘을 갖출 때 비로소 협상의 문은 물론 평화의 길도 열린다. …
오래전부터 나는 영상을 통해 평화 정착에 기여하고자 고심해 왔다. 남북으로 갈라진 휴전선을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두 차례나 답사했고, 근년에 전쟁을 겪은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여러 번 방문했지만 결과는 여의치 않다. …
이 사진집은 그 아이들의 전쟁과 평화를 본 대로 느낀 대로 기록한 것이다."
-2004년 4월 20일 윤주영
1. 다친 아이들
캄보디아에는 지금도 약 600만 개의 지뢰가 묻혀 있다고 한다. 이 지뢰는 전문가가 인위적으로 제거하거나 사람이 잘못 밟아서 터지지 않는 한 영원히 살인무기로 남게 된다. 캄보디아의 농촌 어린이들은 매년 수없이 이런 참변을 당한다. 씨엠립 시에 사는 어느 독지가는 10명의 장애소년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표정은 밝고 활기에 차 있었다.
2. 아픈 상처
폴 포트 시대에 캄보디아에서는 국민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200여만 명이 처형당하거나 질병으로 죽었다. 그들이 반대자들을 고문하고 처단했던 한 학교는 오늘날 학살 박물관으로 남아서 잔학했던 그들의 만행을 상기시키고 있다. 전쟁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픈 상처를 남긴다. 전쟁으로 팔다리를 잃거나 눈이 멀게 된 당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불구의 아버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들이 더욱 애처롭다.
3. 잔혹한 무기
고엽제는 나뭇잎을 말라 궂게 하는 화학무기이다. 비행기로 뿌리는 이 오렌지색 가루는 밀림에 숨은 적을 죽이기 위해 살포되었고 순식간에 울창한 정글을 앙상한 페허로 만들었다. 그런데 고엽제의 피해를 입은 많은 임산부들이 머리가 맞붙거나 몸체가 분리되지 않은 기형아를 사산하고 때로는 손발이 없거나 손가락이 결락된 아이들을 출산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천진난만한 이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전쟁의 잔인성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4. 거리의 아이들
아이가 아이를 안고 구걸하며, 앞 못 보는 아버지가 아들의 뒤를 따르며 피리소리로 적선을 호소한다. 젖먹이를 안은 아낙네가 동냥 모자를 내밀어 허기를 호소하고, 젊은 엄마가 어린아이를 셋이나 거느리고 거리를 헤맨다. 이런 모습들은 우리도 일찍이 6.25 때 보았던 광경들이다. 오죽하면 아이에게 아이를 안겨 거리로 내보냈으랴마는 아이들 뒤에 숨은 어른들이 밉고 가증스럽다.
5. 고아원 풍경
부모를 잃은 아이들, 그리고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 그들의 모습에는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감돈다. 금세 울음은 터뜨릴 것 같지만, 그것을 참아 넘기려는 의연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네 위의 두 고아는 웃음을 잃은 지 오래이다. 나이 어린 아이들을 비교적 많이 수용하고 있는 이 고아원에서는 일손이 모라자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해먹'에 매달아 놓는다. 처음에는 울부짖으며 내려달라고 떼를 쓰지만 이내 잠든다. 아이들에게 자립심을 길러주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어쩐지 마음이 씁쓸했다.
6. 어린이 병원
식수가 오염되고 위생시설이 거의 없는 캄보디아의 농촌에서는 병원은커녕 의사조차 만나기 힘들다. 하물며 어린이 병원에 입원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엠립 시에는 두 군데의 어린이 병원이 있는데, 그 하나는 뉴욕에 거주하는 한 일본인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것이다. 지난 2월에 있었던 개원 10주년 기념식에는 캄보디아의 총리를 비롯한 고관들과 일본으로부터 100명 가까운 NGO멤버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될까?
7. 난민촌 생활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파키스탄으로 피난했다. 처음에 천막 생활로 시작했떤 그들은 곧 정착촌으로 이주했다. 교실이 부족하여 한창 배워야 할 아이들은 노천교실과 콩나물 교실에 의존했다. 우리나라에서도 6.25 당시 천막교실과 노천교실이 성황을 이루었다. 그 당시의 가난한 교육이 국가 재건의 동량을 길러낸 것이다. 그때의 학생들이 벌써 60세를 넘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으니 세월이 빠른 것인지 그들이 조로한 것인지 허망하다.
8. 호수에 사는 삶
베트남 전쟁이 북쪽의 승리로 끝나자 많은 어민들이 캄보디아로 이주했다. 원래 캄보디아 사람들은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적었고 소수민족이 '참'족이 어업을 전담하다시피 해왔다. 그런데 폴 포트 시대의 대학살 이후 극소수의 '참'족만이 살아남게 되었고, 그 공백을 베트남 어민들이 메우게 된 것이다. 그 후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은 그곳에 남아서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배 위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벌써 장년이 되었고 또 그들이 낳은 3세들이 수상학교에 다니면서 집안일을 돕고 있다.
9. 물 위의 학교
호수 위에 떠 있는 학교는 어느 나라에서나 그다지 흔하지 않다. 그것도 건기와 우기 그리고 수량에 따라 장소가 수시로 바뀐다. 개교시간은 아침 일곱 시. 작은 배로 노를 저으며 등교하는 학생들은 아직 어두울 때 집을 나서기도 한다. 대개 아침을 굶고 오기 때문에 개교 시간대에는 빵과 국수 등을 파는 장삿배가 학교 앞에 와 있다. 정오가 되면 더위가 심해지기 때문에 학교는 열한 시쯤 파한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아이들은 귀가 도중 호수에 텀벙 뛰어들기도 한다.
10. 배움의 즐거움
캄보디아의 교실 사정은 여전히 열악하다. 최근 외국의 원조로 반듯한 교사가 선 곳도 있지만 아직도 농촌에 가면 2부제 수업과 콩나물 교실이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즐겁게 뛰어논다. 그들의 놀이 도구는 고무줄이 고작이다. 줄넘기나 달리기를 할 때에도 운동화를 신은 아이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아이들에 비하면 우리 어린이들은 얼마나 풍요로운가? 어른들이 땀 흘려 만든 잘 사는 나라. 그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우리 아이들이 더욱 성실하기를 빈다.
윤주영 사진집 『그 아이들의 평화』中
"책의 출판을 보지 못하고 떠난 아내의 영전에 이 사진첩을 바칩니다"
라고 써 있는 이 책을 통해 사람사는 세상에 예나 지금이나 정말로 필요한 것은 따뜻한 정이구나를 생각해본다.
머리말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은 내가 싫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는 힘을 갖출 때 비로소 협상의 문은 물론 평화의 길도 열린다. …
오래전부터 나는 영상을 통해 평화 정착에 기여하고자 고심해 왔다. 남북으로 갈라진 휴전선을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두 차례나 답사했고, 근년에 전쟁을 겪은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여러 번 방문했지만 결과는 여의치 않다. …
이 사진집은 그 아이들의 전쟁과 평화를 본 대로 느낀 대로 기록한 것이다."
-2004년 4월 20일 윤주영
1. 다친 아이들
캄보디아에는 지금도 약 600만 개의 지뢰가 묻혀 있다고 한다. 이 지뢰는 전문가가 인위적으로 제거하거나 사람이 잘못 밟아서 터지지 않는 한 영원히 살인무기로 남게 된다. 캄보디아의 농촌 어린이들은 매년 수없이 이런 참변을 당한다. 씨엠립 시에 사는 어느 독지가는 10명의 장애소년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표정은 밝고 활기에 차 있었다.
2. 아픈 상처
폴 포트 시대에 캄보디아에서는 국민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200여만 명이 처형당하거나 질병으로 죽었다. 그들이 반대자들을 고문하고 처단했던 한 학교는 오늘날 학살 박물관으로 남아서 잔학했던 그들의 만행을 상기시키고 있다. 전쟁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픈 상처를 남긴다. 전쟁으로 팔다리를 잃거나 눈이 멀게 된 당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불구의 아버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들이 더욱 애처롭다.
3. 잔혹한 무기
고엽제는 나뭇잎을 말라 궂게 하는 화학무기이다. 비행기로 뿌리는 이 오렌지색 가루는 밀림에 숨은 적을 죽이기 위해 살포되었고 순식간에 울창한 정글을 앙상한 페허로 만들었다. 그런데 고엽제의 피해를 입은 많은 임산부들이 머리가 맞붙거나 몸체가 분리되지 않은 기형아를 사산하고 때로는 손발이 없거나 손가락이 결락된 아이들을 출산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천진난만한 이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전쟁의 잔인성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4. 거리의 아이들
아이가 아이를 안고 구걸하며, 앞 못 보는 아버지가 아들의 뒤를 따르며 피리소리로 적선을 호소한다. 젖먹이를 안은 아낙네가 동냥 모자를 내밀어 허기를 호소하고, 젊은 엄마가 어린아이를 셋이나 거느리고 거리를 헤맨다. 이런 모습들은 우리도 일찍이 6.25 때 보았던 광경들이다. 오죽하면 아이에게 아이를 안겨 거리로 내보냈으랴마는 아이들 뒤에 숨은 어른들이 밉고 가증스럽다.
5. 고아원 풍경
부모를 잃은 아이들, 그리고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 그들의 모습에는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감돈다. 금세 울음은 터뜨릴 것 같지만, 그것을 참아 넘기려는 의연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네 위의 두 고아는 웃음을 잃은 지 오래이다. 나이 어린 아이들을 비교적 많이 수용하고 있는 이 고아원에서는 일손이 모라자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해먹'에 매달아 놓는다. 처음에는 울부짖으며 내려달라고 떼를 쓰지만 이내 잠든다. 아이들에게 자립심을 길러주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어쩐지 마음이 씁쓸했다.
6. 어린이 병원
식수가 오염되고 위생시설이 거의 없는 캄보디아의 농촌에서는 병원은커녕 의사조차 만나기 힘들다. 하물며 어린이 병원에 입원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엠립 시에는 두 군데의 어린이 병원이 있는데, 그 하나는 뉴욕에 거주하는 한 일본인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것이다. 지난 2월에 있었던 개원 10주년 기념식에는 캄보디아의 총리를 비롯한 고관들과 일본으로부터 100명 가까운 NGO멤버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될까?
7. 난민촌 생활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파키스탄으로 피난했다. 처음에 천막 생활로 시작했떤 그들은 곧 정착촌으로 이주했다. 교실이 부족하여 한창 배워야 할 아이들은 노천교실과 콩나물 교실에 의존했다. 우리나라에서도 6.25 당시 천막교실과 노천교실이 성황을 이루었다. 그 당시의 가난한 교육이 국가 재건의 동량을 길러낸 것이다. 그때의 학생들이 벌써 60세를 넘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으니 세월이 빠른 것인지 그들이 조로한 것인지 허망하다.
8. 호수에 사는 삶
베트남 전쟁이 북쪽의 승리로 끝나자 많은 어민들이 캄보디아로 이주했다. 원래 캄보디아 사람들은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적었고 소수민족이 '참'족이 어업을 전담하다시피 해왔다. 그런데 폴 포트 시대의 대학살 이후 극소수의 '참'족만이 살아남게 되었고, 그 공백을 베트남 어민들이 메우게 된 것이다. 그 후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은 그곳에 남아서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배 위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벌써 장년이 되었고 또 그들이 낳은 3세들이 수상학교에 다니면서 집안일을 돕고 있다.
9. 물 위의 학교
호수 위에 떠 있는 학교는 어느 나라에서나 그다지 흔하지 않다. 그것도 건기와 우기 그리고 수량에 따라 장소가 수시로 바뀐다. 개교시간은 아침 일곱 시. 작은 배로 노를 저으며 등교하는 학생들은 아직 어두울 때 집을 나서기도 한다. 대개 아침을 굶고 오기 때문에 개교 시간대에는 빵과 국수 등을 파는 장삿배가 학교 앞에 와 있다. 정오가 되면 더위가 심해지기 때문에 학교는 열한 시쯤 파한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아이들은 귀가 도중 호수에 텀벙 뛰어들기도 한다.
10. 배움의 즐거움
캄보디아의 교실 사정은 여전히 열악하다. 최근 외국의 원조로 반듯한 교사가 선 곳도 있지만 아직도 농촌에 가면 2부제 수업과 콩나물 교실이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즐겁게 뛰어논다. 그들의 놀이 도구는 고무줄이 고작이다. 줄넘기나 달리기를 할 때에도 운동화를 신은 아이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아이들에 비하면 우리 어린이들은 얼마나 풍요로운가? 어른들이 땀 흘려 만든 잘 사는 나라. 그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우리 아이들이 더욱 성실하기를 빈다.
책의 마지막에는 소설가 김훈이 이렇게 말한다.
그의 사진은 끊어진 팔다리의 실종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팔다리를 잘려서 빼앗기고 나서도 여전히 인간에게 남아 있는 것들을 보여준다. …
윤주영의 사진들은 훼손된 아이들의 생명의 아름다움을 드러냄으로써,
그 아름다움을 능멸하는 폭력의 의미를 가혹하게 묻고 있다.
인간에게 호소하는 것이 이미 부질업어 보이는 세상에서도
인간은 인간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인간을 향해서 외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어쩔 수 없다. 윤주영이 이 어쩔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김훈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