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사랑하면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이 당연한 도식처럼 여겨지고 있다. 더욱이 임신을 한 경우라면 결혼에 집착하는 게 지극히 당연하리라. 그런데 오늘날에도 불문율에 가까운 이러한 도식을, 종교적 구속력이 강했기에 당연히 보수적이었을 12세기에 깨뜨린 사랑이 있다. 그것도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문학작품을 통해 널리 알려진 허구적 사랑이 아니라, 실제로 생존한 남녀가 사랑 때문에 온갖 고초와 역경을 겪은 진짜 사랑으로 말이다.
허구가 아닌 진짜 사랑이야기
그 주인공은 아벨라르(1079~1142년)와 엘로이즈(1100~1164년)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신부이자 파리 대성당학교 교장으로서 명성을 떨치던 아벨라르가 삼십 대 후반인 반면, 엘로이즈는 겨우 열일곱 내지 열여덟 살의 꽃다운 처녀였을 때였다. 수녀원에서 학교 교육에 버금가는 교육을 받은 엘로이지는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지적인 수준이 상당한데다 미모까지 겸비한 처녀였기에, 그녀를 보는 남자들의 마음이 요동친 것은 너무도 당연했으리라.
아벨라르 역시 예외가 되지 못했다. 그때까지 오직 학문적 연구와 강의에만 몰두해 온 그로서는 아리따운 여인에게 처음 반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격정에 휩싸인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에게 다가가기 위해 계락을 세운다. 그리고 조카딸 엘로이즈를 끔찍이 아끼는 숙부 퓔베르를 설득하여 가정교사로 들어가, 자신의 욕망대로 엘로이즈를 유혹하는 데 성공한다.
질풍노도와 같은 연애감정에 사로잡힌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는 달콤한 사랑놀음에 빠져든다. 그러나 두 사람의 연애는 숙부 퓔베르에게 발각됨으로써 시련에 봉착한다. 게다가 엘로이즈가 임신하자 아벨라르는 엘로이즈를 누이가 있는 브르타뉴로 빼돌리고, 엘로이즈는 그곳에서 아들 아스트랄라브를 낳는다.
한편 격분한 퓔베르와의 화해를 모색하던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와의 결혼을 약속한다. 결혼 사실이 비밀로 지키지기만 한다면 결혼하겠다고 퓔베르에게 약속한 것이다. 엘로이즈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격렬하게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결국 숙부 퓔베르와 친척들이 참석한 가운데 비밀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일이 아벨라르의 기대와는 다르게 진행된다. 퓔베르나 칙척들은 두 사람의 결혼 사실을 계속 비밀로 숨기지 못한다. 이 일로 퓔베르와 엘로이즈의 충돌이 잦아지자 아벨라르는 엘로이즈를 생마리 수녀원으로 피신시킨다. 퓔베르는 아벨라르가 약속을 어기고 조카딸을 빼돌렸다고 분노한다. 그 결과 참으로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하수인들에게 아벨라르의 거세를 지시함을써 잔인한 복수를 행한 것이다.
학자로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아벨라르의 인생은 이제 그 방향을 달리하게 된다. 거세 사건 후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의 소망과는 무관하게 그녀에게 수녀원 입회를 강요하게 수녀복을 입게 하고, 그 자신도 수도원에 들어간다. 연인에서 부부의 연까지 맺었건만, 이제 각각 수도자로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엘로이즈는 자신의 성소와 상관없이 순전히 아벨라르의 명령 때문에 수녀가 되었지만, 수녀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나중에는 분원장이자 수녀원장으로서 손색없이 소임을 이행한다. 반면 아벨라르는 수사신부로서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학문적으로 대단히 오만했던 젊은 시절에도 적들이 많았지만, 수도자가 된 다음에도 그의 학문적 성과나 탁월한 강의능력은 곳곳에서 시기와 미움의 장벽을 만나게 된다. 황무지였던 파라클레에 학문공동체를 설립했지만, 교회에 고발당하여 공의회에서 유죄판결을 또다시 받게 된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낸 아벨라르는 말년에 클뤼니 수도원에 정착하고 그곳에서 눈을 감는다.
클뤼니 대수도원장 가경자 페트루스는 아벨라르가 클뤼니 수도원 소속이었음에도, 그의 시신을 엘로이즈에게 돌려준다. 이로써 두 사람은 채 1년도 되지 않은 짧은 연애와 결혼에 이어 20년 이상의 긴 이별을 지나 비로소 함께 있게 된다. 엘로이즈가 세상을 떠난 후 두 사람의 무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이장되었고, 마침내 1871년 11월 6일 페르라셰즈에 최종적으로 안식처를 얻게 된다. 엘로이즈가 세상을 떠난 지 650년 후의 일이다.
*파리 페르라셰즈 공원묘지 소재 :
각기 다른 곳에 매장되어 있다가 1811년에 합장.
엘로이즈의 기도문
"오 하나님, 당신은 인류 창조를 시작할 때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혼인성사를 제정하셨으며,
몸소 처녀의 몸을 통해 인간이 되시고
첫번째 기적을 혼인잔치에서 베푸시어
혼인을 영예롭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무절제하고 나약한 저에게도 일찍이
혼인을 치유 방법으로 허여하셨습니다.
당신의 여종이 드리는 청을 물리치지 마소서.
저와 제가 사랑하는 이가 지은 죄를 대신하여,
거룩하신 당신 앞에 겸허한 마음으로 청합니다.
오, 대자대비하신 분, 자비 그 자체이신 하나님, 용서하소서.
우리의 죄가 아무리 크고 많다 할지라도 용서하소서.
그리하여 수없이 많은 우리의 잘못에 비해 당신의 자비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보여주소서..."
-출처: 『중세 최대의 연애사건-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금단의 사랑』,
에버하르트 호르스트 저, 모명숙 엮, (주)생각의나무
기다림은 내 체질상 맞지 않고,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운명이 내게 다가온다면 어쩔 것인가?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그 오랜 기다림과 헌신적 사랑은 너무 힘들게만 보인다. 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신학자, 사역자의 삶이라지만, 어디 인간의 본성을 어찌 숨기고, 없애고 살 수 있겠는가?
중세 최대의 연애사건 - 엘로이즈와 아벨라르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그림: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젊고 생기발랄한 나이였던 내가
나 스스로를 음울한 수녀원 생활로 끌어들인 것은
깊은 신앙심이 아니라 오직 당신의 명령 때문이었습니다.
내 마음은 나의 것이 아니었고 당신 곁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이 당신 곁에 없다면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 됩니다.
당신이 없으면 내 마음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나는 당신의 뜻을 따르기 위해 모든 기쁨을 포기했습니다.
내게 남은 게 있다면, 전적으로 당신에게 속하는 것뿐입니다."
-엘로이즈가 아벨라르에게 보내는 글
*생활에 필요한 것 이상을 자신을 위해
소지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의 목을 조르는 것이다.
*너는 그 누구에게도 폭력을 써서
너의 신앙을 갖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 또한 네가 명령을 따르는 것이 되게 하라.
네가 원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한다면,
그 일은 확실히 네게 유익할 것이다.
부당하게 너는
뭔가가 부당하게 일어났다고 판단하는구나.
한 분이신 하나님의 최고 이성은
모든 일에 우선한다.
자신에게 아무리 좋지 않은 일이 닥치더라도
의인의 마음속에서는 분노가 일지 않는다.
하나님의 섭리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의인은 만사가 대단히 좋다고 여긴다.
-아벨라르가 아들 아스트랄라브에게 바친 시
*14세기 작가 장 드 묑의 소설 '장미설화'에 나온 채색화짧은 사랑과 긴 이별, 그리고 영원한 하나
남녀가 사랑하면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이 당연한 도식처럼 여겨지고 있다. 더욱이 임신을 한 경우라면 결혼에 집착하는 게 지극히 당연하리라. 그런데 오늘날에도 불문율에 가까운 이러한 도식을, 종교적 구속력이 강했기에 당연히 보수적이었을 12세기에 깨뜨린 사랑이 있다. 그것도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문학작품을 통해 널리 알려진 허구적 사랑이 아니라, 실제로 생존한 남녀가 사랑 때문에 온갖 고초와 역경을 겪은 진짜 사랑으로 말이다.
허구가 아닌 진짜 사랑이야기
그 주인공은 아벨라르(1079~1142년)와 엘로이즈(1100~1164년)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신부이자 파리 대성당학교 교장으로서 명성을 떨치던 아벨라르가 삼십 대 후반인 반면, 엘로이즈는 겨우 열일곱 내지 열여덟 살의 꽃다운 처녀였을 때였다. 수녀원에서 학교 교육에 버금가는 교육을 받은 엘로이지는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지적인 수준이 상당한데다 미모까지 겸비한 처녀였기에, 그녀를 보는 남자들의 마음이 요동친 것은 너무도 당연했으리라.
아벨라르 역시 예외가 되지 못했다. 그때까지 오직 학문적 연구와 강의에만 몰두해 온 그로서는 아리따운 여인에게 처음 반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격정에 휩싸인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에게 다가가기 위해 계락을 세운다. 그리고 조카딸 엘로이즈를 끔찍이 아끼는 숙부 퓔베르를 설득하여 가정교사로 들어가, 자신의 욕망대로 엘로이즈를 유혹하는 데 성공한다.
질풍노도와 같은 연애감정에 사로잡힌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는 달콤한 사랑놀음에 빠져든다. 그러나 두 사람의 연애는 숙부 퓔베르에게 발각됨으로써 시련에 봉착한다. 게다가 엘로이즈가 임신하자 아벨라르는 엘로이즈를 누이가 있는 브르타뉴로 빼돌리고, 엘로이즈는 그곳에서 아들 아스트랄라브를 낳는다.
한편 격분한 퓔베르와의 화해를 모색하던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와의 결혼을 약속한다. 결혼 사실이 비밀로 지키지기만 한다면 결혼하겠다고 퓔베르에게 약속한 것이다. 엘로이즈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격렬하게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결국 숙부 퓔베르와 친척들이 참석한 가운데 비밀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일이 아벨라르의 기대와는 다르게 진행된다. 퓔베르나 칙척들은 두 사람의 결혼 사실을 계속 비밀로 숨기지 못한다. 이 일로 퓔베르와 엘로이즈의 충돌이 잦아지자 아벨라르는 엘로이즈를 생마리 수녀원으로 피신시킨다. 퓔베르는 아벨라르가 약속을 어기고 조카딸을 빼돌렸다고 분노한다. 그 결과 참으로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하수인들에게 아벨라르의 거세를 지시함을써 잔인한 복수를 행한 것이다.
학자로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아벨라르의 인생은 이제 그 방향을 달리하게 된다. 거세 사건 후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의 소망과는 무관하게 그녀에게 수녀원 입회를 강요하게 수녀복을 입게 하고, 그 자신도 수도원에 들어간다. 연인에서 부부의 연까지 맺었건만, 이제 각각 수도자로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엘로이즈는 자신의 성소와 상관없이 순전히 아벨라르의 명령 때문에 수녀가 되었지만, 수녀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나중에는 분원장이자 수녀원장으로서 손색없이 소임을 이행한다. 반면 아벨라르는 수사신부로서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학문적으로 대단히 오만했던 젊은 시절에도 적들이 많았지만, 수도자가 된 다음에도 그의 학문적 성과나 탁월한 강의능력은 곳곳에서 시기와 미움의 장벽을 만나게 된다. 황무지였던 파라클레에 학문공동체를 설립했지만, 교회에 고발당하여 공의회에서 유죄판결을 또다시 받게 된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낸 아벨라르는 말년에 클뤼니 수도원에 정착하고 그곳에서 눈을 감는다.
클뤼니 대수도원장 가경자 페트루스는 아벨라르가 클뤼니 수도원 소속이었음에도, 그의 시신을 엘로이즈에게 돌려준다. 이로써 두 사람은 채 1년도 되지 않은 짧은 연애와 결혼에 이어 20년 이상의 긴 이별을 지나 비로소 함께 있게 된다. 엘로이즈가 세상을 떠난 후 두 사람의 무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이장되었고, 마침내 1871년 11월 6일 페르라셰즈에 최종적으로 안식처를 얻게 된다. 엘로이즈가 세상을 떠난 지 650년 후의 일이다.
*파리 페르라셰즈 공원묘지 소재 :
각기 다른 곳에 매장되어 있다가 1811년에 합장.
엘로이즈의 기도문
"오 하나님, 당신은 인류 창조를 시작할 때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혼인성사를 제정하셨으며,
몸소 처녀의 몸을 통해 인간이 되시고
첫번째 기적을 혼인잔치에서 베푸시어
혼인을 영예롭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무절제하고 나약한 저에게도 일찍이
혼인을 치유 방법으로 허여하셨습니다.
당신의 여종이 드리는 청을 물리치지 마소서.
저와 제가 사랑하는 이가 지은 죄를 대신하여,
거룩하신 당신 앞에 겸허한 마음으로 청합니다.
오, 대자대비하신 분, 자비 그 자체이신 하나님, 용서하소서.
우리의 죄가 아무리 크고 많다 할지라도 용서하소서.
그리하여 수없이 많은 우리의 잘못에 비해 당신의 자비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보여주소서..."
-출처: 『중세 최대의 연애사건-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금단의 사랑』,
에버하르트 호르스트 저, 모명숙 엮, (주)생각의나무
기다림은 내 체질상 맞지 않고,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운명이 내게 다가온다면 어쩔 것인가?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그 오랜 기다림과 헌신적 사랑은 너무 힘들게만 보인다. 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신학자, 사역자의 삶이라지만, 어디 인간의 본성을 어찌 숨기고, 없애고 살 수 있겠는가?
인간적으로 그들에게 연민과 한편으로 부러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