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의 애가 뙤놈이 안되도록 싸우는 것이다...대조영 모친

최용일200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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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드라마라기 보단 블랙버스터 영화다!!! 연개소문과 주몽의 그것과 대비되는 전쟁신 또한 제대로 준비한 것이 맘에 든다. 극 초반 고구려와 당의 실감나는 대규모 전투인 요동성 전투와 안시성 전투가 등장한다.

 

 


실제 고구려-당의 전쟁을 그대로 화면으로 옮겨온 듯한 박진감 넘치는 장면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제작진이 도입한 기법은 바로 디지털 캐릭터 기법. 디지털 캐릭터 기법은 드라마에는 도입된 적이 없는 영화 기법으로 영화 ‘반지의 제왕’, ‘태극기 휘날리며’등에서 사용됐다.

 

 

 

100만 대군이 몰려왔다. 비록 그래픽임을 알지만 그게 史實이 아닌가? 동아시아 패권을 다투는 중국과 고구려의 전쟁을 무슨 소꿉장난 하듯 하는 다른 두 방송국의 드라마에 경종을 울려주었을 것이다.

 

 

 

대조영.. 컴퓨터 그래픽, 반지의 제왕 제작팀 들이 했다고 한다. 주몽이나 연개소문의 허접한 CG보다는 한결 괜찮아 보인다.

 

 


또한 무엇보다 양만춘의 카리스마 연기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탄성이 터지게 만드는 고구려의 자부심을 웅변으로 토하는 대사가 압권이다.  연개소문에서는 주인공 연개소문에 모든 것을 다했다. 사랑도 하고 전쟁도 하고 그래서 양만춘은 그저 허접한 장수로 나온다. 우리가 아는 연개소문은 그렇질 않았는데...그래서 대조영의 양만춘은 우리를 아프게 한다. 물론 연개소문도 나름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대조영의 어머니가 한 단 한마디 또한 역사적 자부심이었다. “지금 우리가 안시성 싸움에서 지면 내 뱃속의 아이는 당나라 사람이 된다. 내 자식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기 때문에 싸운다”고. 지금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왜곡을 상대할 우리에게 하는 말이지 싶다.


그게 역사인데 [연개소문]은 주인공의 대서사시를 쓰려다보니 동시대의 또 다른 영웅을 폄하한 것이다. [주몽] 역시 그러했다.

 

고구려와 주몽을 부각시키려다 보니 부여와 대소는 도맷금으로 매도당한다. 심지어는 주몽의 아버지로 나오는 해모수는 북부여의 시조자리에서 끌려 내려오고 부여의 건국시조에 해당하는 우태는 주몽의 땜방으로 소서노와 무늬만 결혼하는 대리서방으로 나온다. 주몽이 해모수의 아들임을 주장했다고 해모수와 금와를 동렬에 놓은 것은 재해석이 아니었다. 주몽과 소서노의 사랑을 그리기 위해서 한참 윗길인 우태를 주몽의 친구처럼 만들었다. 주몽에게 나라를 곱게 바친 것으로 그려진 송양왕이 오히려 주몽의 걸림돌로 나왔다.

 

연개소문은 김유신의 종이 되어 김유신의 동생과 사랑에 빠진다. 연개소문의 아버지는 갑자기 제갈량같은 신선이 된다. 연개소문과 세력을 분점했던 양만춘이 연개소문의 졸개로 나오고 연개소문이 안시성 싸움의 전공을 빼앗는다. 조상들을 다 파렴치범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건 또 다른 왜곡이 아닐 수 없으니 양만춘의 카리스마와 자부심을 토하는 대사가 지금 시대의 우리를 타이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사극, 고대사를 다루는 사극일수록 역사의 재해석이 필요하지만 역사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저토록 왜곡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왜 모를까? [대조영]도 주인공이 커가면서 그렇게 바뀔까 두렵다.

 

그렇지만 어제(9.24) 4부를 보면서 대조영은 충분히 안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역사에서는 그냥 “무너진 토산을 통해 당나라군에 일대 타격을 주고 격퇴시켰다”는 부분에 대해 원인도 모르는 신의 도움이 아니라 고구려군 스스로가 토산을 무너뜨리기 위해 땅굴을 판 것 정도로 해석하는 것은 역사의 고리를 연결하는 가벼운 것이 아닌가 싶다. 고구려의 후예인 북한이 땅굴을 또한 잘 파지 않는가? 파다가 잘못 부실공사를 해서 무너지기도 하지 않는가? 그러니 역사와 맥이 닿은 재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