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Blu 1 Piedi Della Bambora

백지현200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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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Blu 1 Piedi Della Bambora

1. 인형의 다리 Piedi Della Bambora

 

이 거리에는 늘 햇살이 비치고 있다.

 

여기 온 이후로 하루라도 맑은 하늘을 보지 못한 날이 없다.

푸른 하늘은 끝도 없이 높고,

엷은 물감을 뿌려 놓은 그림처럼 시원스럽게 뚫려 있다.

안개같은 구름은 마치 그리다 만 화선지의 여백처럼

그 하늘 위를 은밀히 떠 다니며

즐겁게 바람과 빛과 어울려 노닌다.

이렇게 두오모 곁에 선 채 대성당의 벽면을 따라

쏟아져 내리는 빛의 원천을 올려다보며,

중세 사람들의 고양된 의식을 상상하는 것이

나의 일과가 되고 말았다.

두오모는 피렌체의 거리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어

어느 방향에서나 쉽게 눈에 띈다.

천재 건축가 부르넬레스키가 세운 둥근 지붕 '쿠폴라'는

스커트를 부풀린 중세의 귀부인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푸근하다. 도시의 중심지를 찾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이정표도 없을 것이다.

하양, 초록, 분홍 대리석으로 장식된 대성당 꽃의 성모교회는

위엄과 우아함이 넘쳐 흐르고,

올려다 보는 사람을 압도해 버린다.

일을 끝내고 스승의 아뜰리에를 나와

퐁데 베키오(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옮긴이) 앞에서

저녁 노을에 물들어 가는 두오모의 쿠폴라를 바라보면,

왜일까,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렇게 기분 좋은 저녁시간에는 두오모까지

성큼성큼 걸어가고 싶은 욕망이 일어난다.

또한, 이렇게 두오모를 올려다보면

좀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는 이유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내가 이 거리에 살면서도 아직 두오모에 오르지 않은

이유와도 통한다. 사소한 도박이라고나 할까,

아마도 나 홀로 기억하고 있을 어떤 약속에 유래하는 것이다.

 

아직도 아오이가 잊혀지지 않는다.

 

왜 사람에겐 만남이란 게 있을까. 그런 개똥 철학 같은 의문이,

이 르네상스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거리에서,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나처럼 목에 통증을 느끼면서

위를 올려다보는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그래, 저 사람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거야, 하고

내 멋대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피렌체의 건축은 정말 대단해요! 그렇게 생각지 않으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어색한 이탈리아 어에 놀라고,

수상쩍은 동양인의 얼굴에 압도되어

시선도 마추지 않고 황망히 그 자리를 떠나고 만다.

아오이도 그런 나의 성격이 사람을 질리게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자기는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고 사람 곤란하게 하는

 그런 농담만 해."

물론 아오이는 다름 사람들처럼 시선을 피하면서

나를 떠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나의 어법을

은근히 재미있어하는 편이었다

"쥰세이는 정말 특이해. 그게 마음에 들어."

괴팍한 나를 멀리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서 단 한사람,

그녀만이 나를 이해하고 받아 주었다.

 

인간이란 잊으려 하면 할수록 잊지 못하는 동물이다.

망각에는 특별한 노력따위는 필요도 없는 것이다.

끝도 없이 밀려오는 새로운 일들 따윈,

거의 모두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잊었다는 것조차 모르는게 보통이다.

어느 때 문득, 그러고 보니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떠올리기도 하지만 그걸 또 머리속에 새겨두지 않으니,

기억이란 덧없는 아지랑이의 날개처럼

햇살 아래 녹아 내려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5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잊으려 하면 할수록 아오이는 기억 속에서,

이를테면 횡단보도를 건너갈 때,

지각하지 않으려고 마구 달릴 때,

심할 경우는 메미를 바라보고 있을 때,

망령처럼 불쑥 모습을 드러내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잊을 수 없는 여자가 있다고 해서

지금이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매일매일 이 거리의 푸르고 투명한 하늘처럼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아오이와의 사랑을 회복하고 싶지도 않다.

아오이와는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도 들고,

실제로 만난다 해도 아무 소용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건 분명 기억의 심술이다.

여기가 마침 시간이 정지해 버린 거리여서 그런지,

나는 어딘지 모르게 과거에 흔들리는 나 자신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즐긴다고?

아오이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는 그런 여자이고,

나 역시 그런 걸 기대할 사내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될 그런 때가 있는 법이다.

예를 들면 사별 같은 것......

아오이와 나는 과거에 그런 이별을 했다.

나는 이미 그녀가 죽어 버렸다고 믿으려 했다.

 

세계의 미술품 중 3분의 1은 이탈리아에 있다고 한다.

내가 미술품 복원 공부를 하러 여기에 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복원사가 많고,

내가 가르침을 받는 선생은

유채화 복원 분야에서 세계 최고다.

조반나는 나의 스승일 뿐만 아니라,

일찍 어머니를 여읜 내개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녀의 주문대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마치 신의 손바닥 위에 놓인 듯 잘 제어되어 기분도 좋다.

 

선생은 가끔 나의 나체를 그린다. 일이 빨리 끝나면,

"쥰세이, 오늘 시간 있니?"

하고 다른 제자들 몰래 나를 부르는 것이다.

나는 선생의 방에서 시키는 대로 포즈를 취한다.

아뜰리에의 천창을 통해 비쳐 드는 은은한 햇살 아래서,

피부로 정적에 감싸인 공기를 빨아들이며,

나는 내 육체가 그녀의 시선 아래 있음에 환희한다.

선생은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나의 감정을 일부러 도발하는 법도 없이,

그냥 묵묵히 동양인의 근육질 신체를 데생 해 나간다.

마치 부처님께 귀의한 승려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스케치의 피사체가 되고 있을 동안 가끔 아오이를 생각한다.

옷을 걸치지 않은 탓에, 마음이 대담해지면 질수록

모든 속박에서 해방되어 먼 과거로 날아가 아오이를 만난다.

내가 즐겁게 선생의 모델이 되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다.

나도 예전에는, 다시 말해 대학 시절에는

아오이를 모델로 데생을 하곤 했다.

아오이는 달빛 아래서만 옷을 벗었다.

깡마른 몸매에 서양 도자기 인형 같은 아오이의 나체는

섹시하다기 보다는 그냥 투명하고 아름다웠다.

특히 발목은 살 하나 없이 가늘었다. 나는 그 가는 다리에

살짝 달라붙어 늘어진 장딴지를 즐겨 그렸다.

그럴 때면 조건이 하나 있다. 나도 벌거벗을 것.

 

만일 약속한 날 나의 기대가 깨어지면,

아오이는 그 날로 미술관 창고 한 구석에서

복구 불가능한 조각처럼 잠들게 될 것이다.

바로 그 날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두오모를 올려다보고,

이 거리를 숨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억에 죽음을 선고하기 위해서?

 

메미는 모든 점에서 아오이와 정반대다.

여윈 몸매에 볼만 통통한 아오이와는 대조적으로

메미의 육감적인 몸은, 그녀의 핏줄에서 유래하겠지만,

나를 당혹스럽게 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그럼에도 볼은 쏙 들어가 있고, 콧날은 오뚝 솟았고,

입술은 가만 다물고 있으면 마치 대리석 조각 같다.

그러나 성격은 그냥 천진무구한 어린애다.

아오이와는 정반대로 학생 시절 그렇게 까불고

활달하던 내가 오히려 얌전해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메미는 왈가닥이다.

 

아오이는 어둠 속에서만 나를 원했다.

밝은 곳에서는 키스조차 주저했다.

다 큰 사람이 왜 그리 부끄럼을 타느냐고 놀리면,

나도 잘 알아, 하고 겨울날의 외풍 같은 목소리로 말하곤 했다.

그러나 메미는 밝은 곳에서 안기를 좋아한다.

대낮부터, 그것도 창을 열어둔 채로 나를 원한다.

커튼을 치라고 하면,

안돼, 다른 사람이 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스릴 있어 좋잖아, 하면서

들은 척도 않는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피렌체 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일 정도로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눈 아래로는 아르노 강이 흐른다.

창에서 얼굴을 내밀면 바로 앞에 퐁테 베키오가 보인다.

피렌체 거리의 색바랜 오랜지색 지붕, 지붕, 지붕,

그래서 아무도 이 방 안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그녀의 장난이기도 하다.

노출광, 하고 귀에 대고 속삭이면 얼굴을 붉히며 내 가슴에

볼을 기대는 메미를 나는 마치 새끼고양이 다루듯 귀여워한다.

창을 열어두면 뛰쳐나가는 고양이처럼

며칠이고 제멋대로 마실을 다니다가

담배 연기에 절어 돌아오곤 한다.

그녀의 길다란 머리카락에 벤 역겨운 다른 남자의 냄새.

그래도 나는 불평 한마디 한 적이 없다.

 

더 이상 상대를 옭아매는 연애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과연 나는 기억을 지울 수 있을까.

 

아오이를 일상에서 쫓아 내지 못하는 한,

메미를 진심으로 사랑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들고양이 같은 그녀에게 화도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을 나는, 상대를 옭아매고 싶지 않으니까, 하고

얼버무린다. 결국 아오이가 내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상,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난 아직 아오이를 가슴속에서 내몰아 버릴 정도의

연애를 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딱 한번 메미를 아오이로 착각한 적이 있다.

사랑을 나누는 동안 돌발적으로 내 입에서

그 이름이 터져 나왔다. 감정이 이성을 넘어선 상태였다.

우리는 섹스에 깊이 빠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메미를 안은 것이 실수였다.

그렇게도 어둠을 경계하고 있었음에도.

나는 메미의 머리를 내 가슴에 꼭 끌어안으면서,

아오이, 하고 불렀다.

내가 얼마나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는지,

의식보다도 육체가 먼저 민감하게 반응했다.

적당히 얼버무리기에는 두 사람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메미의 육체 속에서 나는 갈 곳을 잃고 위축되어 갔다.

 

메미와 떨어진 후, 우리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상대의 심리를 살폈다. 아프리카 여행이나 갈까, 그런

터무니없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냉정을 가장한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터져나온 열정은

갈 곳을 몰라 하며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메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외쳤다.

"아오이, 누구야?"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적당히 얼버무리려했지만,

메미는 그녀답지 않게 심각한 표정으로 따지고 들었다.

아오이는 내 가슴속에서 사라지려 하지 않았다.

과거가 너무도 거대하고 잔혹해서, 내 마음이 현실에 발을

내리지 못할 따름이라고 자기 분석해 보기도 한다.

너무도 생생한 아오이와의 나날들, 그 망령과도 같은 과거가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햇빛은 여전히 쿠폴라 위에 머물러 있다.

나는 저 햇살을 기뻐해야 할까.

아니면 햇살을 잘게 부수는 바람을 기뻐해야 할까.

 

아오이와의 나날들은 이 피렌체의 하늘처럼 화사한 색채는

아니다. 회색에다 징크화이트를 적당히 뒤섞은 듯한 느낌.

그것이 나의 5년 전을 상징하는 색채다.

도쿄에서는 이런 하늘을 볼 수 없었다.

늘 고개를 숙이고 걸어다녔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뉴욕의 하늘은 더 멀고 좁았다.

낡은 콘도미니엄에서

꼴도 보기 싫은 아버지와 둘이서 살았기에.

한번도 품에 안겨 보지 못한 어머니를 그리며,

어린 나는 늘 작은 창가에 앉아

조각 그림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일주일에 세번 집안일을 도우러 오는 중국인 노파는

전쟁중에 배웠다는 서툰 일본어로,

엄마는 밤일을 하고, 라는 노래를 불러 주었다.

"밤일이 뭔데?"

나는 다음 날 아버지에게 묻는 것이었다.

 

하늘만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어,

어린 시절 나는 그런 꿈을 꾸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때부터인가 하늘을 탐색하는

여행을 시작했다. 같은 지구상의 하늘이지만,

하늘은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정말 마음에 와 닿는 하늘도 있다.

도쿄의 하늘. 뉴욕의 하늘. 피렌체의 하늘.

수줍어하는 하늘을 보고 있을 때면,

난 절대로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세이조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귀국하던 날,

10년 만에 도쿄의 하늘을 보았다. 기내 방송에서,

도쿄는 쾌청, 이라는 자랑스런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게 쾌청인가, 하고 나는 깜짝 놀랐다.

비행기 창너머로 바라보이는 하늘은

회색으로 뿌옇게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 거리가 내 마음에 드는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관대하게 펼쳐진 기분 좋은 하늘 때문이다.

그냥 하늘에 지나지 않지만 올려다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온화해진다.

필시 두오모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피렌체의 텅 빈 하늘은

나를 압도할 것이다. 푸르게 펼쳐진 하늘은

이 지상에 달라붙어 있는 스물일곱의 나를

그 기억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훨훨 날아가게 할 것이다.

오르고 싶다.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

 

그림쟁이가 되고 싶었던 내가 그것을 단념했을 때,

아오이도 내 곁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데이트를 하던 날,

우리는 미술관에 갔다.

그 곳은 우리가 처음 만났던 추억의 장소였다.

우연히 그 곳에서는 이라는

타이틀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복원된 중세의 명화가 관내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 곁에는 복원 전의 무참한 모습이 사진으로 걸려 있었다.

상처투성이 명화를 원래 상태로 복원시키는 복원사의 기술에

나는 감동했다. 어떤 기술이기에 이렇게 생생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살려 낼 수 있단 말인가.

같은 그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복원 후의 그림에는

생명력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사라져 가는 생명을 되살리는 그들의 존재를 느끼면서

내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오이와 나는 그 날, 그 때까지 침전물처럼 쌓이고 쌓인

서로의 감정을 일거에 폭발시키고 미술관에서 싸우고 말았다.

평소 그렇게 온화하던 그녀의 표변한 얼굴을 본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얼굴을 뒤틀고 큰소리로 외치던 아오이의 모습이

명화의 여인들과 겹쳐서 내 기억속에 선명히 새겨져 있다.

소리 없는 기억. 조용한 미술관의 회색 관 내에,

액자도 없이 아오이는 그냥 서 있다. 정지 화면이지만,

표정은 묘하게 약동적인 것이 무척 인상적이다.

복원 작업을 할 때,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미세한 부분에 이르면,

어김없이 그 때 그녀의 표정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아오이의 얼굴은 화면 속에서 진동하며,

내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놓는다. 잊을 수 없는 기억 하나.

 

나는 그녀와 파국을 맞이하면서

유채화 복원의 길로 점점 기울어져갔다.

절대로 그림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실제로 지금도 그림을 그리고 있고 앞으로도 그릴 것이다.

그림을 못그려서 복원사의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니다.

복원 일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잃어버린 시간을 돌이키는

세계에서 유일한 직업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떄문이다.

잃어버린 생명을 되살리는 작업......

 

세계의 역사적 예술품은 대체로 세 단계의시기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살아 숨쉬고 있다.

제 1기는 그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인데, 그것은 화가가 그 시대에 보고 느낀 것에 감동하여 순수한 마음과 힘으로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던 시원의 순간이며, 제 2기는 그 작품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화려한 매력을 발산하고, 각광을 받던 시간이다.

그리고 제 3기. 너무 오래 살아 버린, 그래서 과거의 영광도 사라지고 사멸해가는 명화를 현대의 복원사들이 혼을 불어넣어 다시 살려 내는 단계.

내 일은 이 제3기에 위치해 있다.

사라져 가는 명화들을 어떻게 하면 제 1기에 가까운 상태로

되살려 내는가 하는 것이다. 나의 의식을 과거로 돌려,

화가가 어떤 생각으로 그 그림을 그렸는지 상상하는 데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화가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다.

때로 그 인물 자신이 되어 그림을 그리듯이 복원해 간다.

그것은 마치 사자를 되살리는 듯한 작업과도 같다.

화가가 캔버스를 빌려 생명의 숨결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을

가슴에 새기면서.

 

내가 복원한 작품이 천 년 후에 또 다른 누군가의 손에 의해 복원될 것이라는 상상을 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천 년 후의 사람들에게, 나는 배턴을 건네 줄 임무를 맡고 있다.

내 이름은 후세에 남지 않지만,

내가 품었던 뜻은 확실히 남겨질 것이다.

내가 되살려 낸 명화의 생명이 또다시 후대 사람의 손에 의해

더 먼 미래로 이어져 가는 것을 꿈꾸어 본다.

그것이 지금 내 삶의 의미이다.

나는 화가가 살았던 먼 과거를 현대로 이끌어 와서,

다시 미래로 보내는 시간의 우체부인 셈이다.

이탈리아 어로 르네상스를 'Rinascimennto'라 한다.

원래는 '재생'이란 뜻이지만, 15.6세기에 걸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문화 운동을 가리키는 말로 정착되었다.

피렌체는 그 리나시멘토의 발상지이다.

여기서 근대적인 빌딩을 찾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16세기 이후, 시간이 멈춰 버린 거리. 거리 전체가 미술관이다.

겨울은 난방이 안 되어 얼어붙을 듯이 춥고,

여름은 바람이 통하지 않아 찔듯이 덥다.

그것을 사랑할 수  없으면 여기서 살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거리에서 나 자신을 재생시킬 수 있을까.

내 안에 르네상스를 일으킬 수 있을까.

 

정오를 알리는 사원의 종이 울리고,

쿠폴라에서 몇 마리 비둘기가 날아오른다.

나는 눈을 깜빡거린다. 순간, 현기증이 일면서

의식이 멀어지는듯한 감각마비 현상이 일어난다.

오랜 시간 고개를 들고 위를 올려다본 탓에

다리가 휘청거린다. 기억이 빛에 의해 마구 뒤섞이더니

늘 그렇듯이 플래시백이 일어난다.

부드러운 바람이 귀를 간질인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눈꺼풀 안쪽으로 햇빛을 느끼며, 어깨 힘을 빼고,

턱을 끌어당긴다. 이대로 눈을 뜨면 나는 현기증 때문에

그냥 쓰러지고 말지도 모른다. 터질 듯한 감정을 억누르며

숫자를 헤아려 본다. 1,2,3,4,5,6......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뜬다.

 

대성당 서쪽 길에서 이쪽으로 달려오는 메미를 바라본다.

그녀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나도 흔든다.

빛은 우리 사이에 비처럼 쏟아진다.

농도 짙은 빛이 무수한 알갱이로 쏟아지는 것이 보인다.

나만 그것을 볼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이 광장에 있는 모든 관광객들도 보고 있는 것일까.

 

메미는 내 팔에 그녀의 팔을 끼워 넣는다. 말이 없다.

어제 우리는, 정말로 필요할 때가 아니면 말을 하지 않기로

정했던 것이다. 아무 뜻도 없이 하는 놀이의 하나이다.

물론 먼저 입을 여는 건 언제나 나다.

 

그녀는 그냥 웃고만 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하지만, 쓸데없는 약속 때문에 그 이유를 물을 수도 없다.

그녀의 마음을 읽기에는, 난 너무 그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메미는 내 앞을 가로막더니

아무 거리낌 없이 목에 두 팔을 두르고, 돋움발을 하고

입을 맞추었다. 시원한 그녀의 입술 감촉에 나는 놀랐다.

왜 이리 차가우냐고 말하려다가, 이건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서둘러 입을 닫아 버리는 것이다.

 

정말 필요한 게 있는 걸까.

그 정도로 중요한 것이 과연 우리 주위에 얼마나 있단 말인가.

적어도 이 우아한 피렌체 거리에서,

지금 당장 해야만 할일 따위는 없다.

 

입을 다문 메미는 어딘가 아오이와 닮았다.

메미의 지금 나이가 옛날 아오이의 나이와 같은 탓에,

나는 마치 학생 시절처럼 아오이와 걸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입을 다물고 있는 메미는

점점 아오이에 접근해 간다.

아오이는 필요한 말 이외는 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결말이 나 버린 것일까......

그 때 그녀의 기분을, 지금이라면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요 때문에 입을 열어야 할 일은 사실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이 거리에는 늘 비처럼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 츠지 히토나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