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간. 왠지 투박해보이고 서글픈 표정의 새하얗던 석고상. 빛나는 금색 잠자리가 예뻤던 4B연필과 유난히도 부들부들해서 잘 닳아졌던 지우개. 왠지 그 앞에 앉아있지만 해도 내가 대단한 화가라도 된 기분을 주는 이젤. 그리고 그 위에 놓여진 흰 도화지. 미술시간에 정밀묘사를 해 본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혼자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은, 미술시간에 정밀묘사를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차라리 미술시간처럼 내 앞에 확실히 서 있는 대상을 그리는 거였으면 훨씬 더 쉬웠을텐데, 슬쩍 슬쩍 이젤 너머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석고상을 보면서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었으면 훨씬 더 쉬웠을텐데.. 그 사람은, 석고상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날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결코 쉽게 그릴 수 없게 합니다. 한번 긋고 이게 아닌것 같아서 지우개로 쓱쓱 지우고. 또 두세번 그어보다가. 이게 아닌가?..하고 마치 희미해진 사진으로 남아 순간의 시간 속에 정지되어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을 끊임없이 내 기억속에서 끄집어 내려고 노력하면서 다시 지우개로 지우고.. 이게 맞나? ..긴가민가 하는 기분으로 오늘도 이젤 앞에서 그 사람을 하루 종일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그 사람이 내 앞에 섰을 때 그리고 내가 여지껏 그려놓았던 그림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때. 그 사람은 눈부시게 빛나는 새하얀 사람이었는데, 내 도화지 위의 그 사람은 4B연필로 그려진 새카만 사람이었음을 깨달았을때. 내 도화지 위의 그 사람은 문드러져 버린 지우개가 말해주듯, 지우개로 자꾸 지워서 일어나버린 도화지가 말해주듯, 내 자신없는 선들로 그려진 전혀 다른 사람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내 기억에서 수천번 수만번 나오느라 닳아질대로 닳아진 내 손 가는대로, 내 마음대로 그려버린, 전혀 다른 사람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눈부시게 새하얗게 빛나는 그 사람은 내 앞에서 눈부시게 시리도록 내 그림을 비웃고 갑니다. 나는 이젤 앞에서 울다가 도화지를 구겨버립니다. 그렇게 몹시도 피곤했던 그림그리기는 끝이납니다.
기억을 모델로 한 정밀묘사
미술시간.
왠지 투박해보이고 서글픈 표정의 새하얗던 석고상.
빛나는 금색 잠자리가 예뻤던 4B연필과
유난히도 부들부들해서 잘 닳아졌던 지우개.
왠지 그 앞에 앉아있지만 해도
내가 대단한 화가라도 된 기분을 주는 이젤.
그리고 그 위에 놓여진 흰 도화지.
미술시간에 정밀묘사를 해 본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혼자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은,
미술시간에 정밀묘사를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차라리 미술시간처럼
내 앞에 확실히 서 있는 대상을 그리는 거였으면
훨씬 더 쉬웠을텐데,
슬쩍 슬쩍 이젤 너머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석고상을 보면서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었으면 훨씬 더 쉬웠을텐데..
그 사람은,
석고상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날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결코 쉽게 그릴 수 없게 합니다.
한번 긋고 이게 아닌것 같아서
지우개로 쓱쓱 지우고.
또 두세번 그어보다가.
이게 아닌가?..하고
마치 희미해진 사진으로 남아
순간의 시간 속에 정지되어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을
끊임없이 내 기억속에서 끄집어 내려고 노력하면서
다시 지우개로 지우고..
이게 맞나? ..긴가민가 하는 기분으로
오늘도 이젤 앞에서
그 사람을 하루 종일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그 사람이 내 앞에 섰을 때
그리고
내가 여지껏 그려놓았던 그림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때.
그 사람은
눈부시게 빛나는 새하얀 사람이었는데,
내 도화지 위의 그 사람은
4B연필로 그려진 새카만 사람이었음을 깨달았을때.
내 도화지 위의 그 사람은
문드러져 버린 지우개가 말해주듯,
지우개로 자꾸 지워서 일어나버린 도화지가 말해주듯,
내 자신없는 선들로 그려진
전혀 다른 사람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내 기억에서 수천번 수만번 나오느라
닳아질대로 닳아진
내 손 가는대로, 내 마음대로 그려버린,
전혀 다른 사람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눈부시게 새하얗게 빛나는 그 사람은
내 앞에서 눈부시게 시리도록 내 그림을 비웃고 갑니다.
나는
이젤 앞에서
울다가
도화지를 구겨버립니다.
그렇게 몹시도 피곤했던 그림그리기는 끝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