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찍] 홍대에 나타나신 거리공연의 달인 윤효상씨

이재영2006.09.27
조회1,155

저번주에 찍은건데 지금 올리는군요 ^^;

 

원래 대학로와 인사동쪽에서 17년째 거리공연을 하시고 계신 윤효상씨입니다.

 

정말 통기타 하나만으로 마이크도 없이 수백명의 사람을 웃기고 열광 시키는 거리공연의 달인이십니다~!

 

홍대앞 지하철역 6번출구에 불현듯 나타나셔서 사람들을 자지러지게 했습니다 ~

 

 

공연이 끝나고 작은 기부 행사도 있었는데, 모든 금액은 소년소녀 가장 돕기 진다고합니다.

 

공연 내용중에 이야기 하지만, 정말 이분이 자기가 한푼 써보겠다고 하면 이런 공연 못한다고 합니다.

 

대단한 분입니다..유머니스트 윤효상씨~!

 

제가 찍은 공연이랑 다른데서 스크랩한 공연 하나 더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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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위크지 인터뷰중

 

 따사로운 봄 햇살이 유난하던 대학로의 어느 일요일 오후.

 "여러분,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참으로 죄송한 말씀이지만, 대학로 한복판에서 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당신을 보고 약장수 내지는 노래 한 곡에 공연료를 강요하는 걸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 세월의 굴곡을 겹겹이 담아 낸 눈가의 짙은 주름. 소리 지르는데 이골이 난 듯한 쉰 목소리. 더구나 당신의 인상이 '친근함' 과는 거리가 멀지 않습니까. "도대체 뭘하길래?"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한번 들어나 보자는 심산에 보았습니다. 한참 노래를 부르던 당신은 "따라 부르지 말란 말야!" "핸드폰 받지 말랬지! 또 다른 세상을 만났을 땐 잠시 꺼두셔도 좋다고!" "아직 안끝났다고! 박수치지마!" 라며 성질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삼삼오오 모이던 객들은 이내 수백으로 늘었고, 당신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박장대소를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당신의 구령. "나를 따르라~. 팔로우 미!" 무엇에 홀린 것처럼 사람들은 우루루 쫓아가기 시작했고. 대학로의 또 다른 거리에서 당신의 작은 콘서트는 시작되었습니다. 목구멍이 횡경막에 붙을 정도로 웃어 댔던.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깔깔거리던 우리들을 홀린 것은 윤효상. 당신이 보여 준 팔딱팔딱 살아 있는 유머였습니다. 그 험악한 인상에 묻혀 있던 당신의 해맑은 웃음이 톡터질 때, 우리는 그렇게 건강하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윤효상 당신은 이런 거리의 공연을 18년째 하고 계셨더군요. 40분정도의 짧은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의 자유의지에 따라 지원금을 받아 전액을 20명의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전달한다는 당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무런 대가 없는 이런 공연을 시작하게 되신 겁니까.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시대에 길을 가다 한번쯤 박장대소하고 웃을 수 있도록 하는게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그렇다면 16년 전 왜 이런 공연을 시작하게 되신 거죠? "제가 어린 시절 많이 가난했고 불우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장에 다녔어요. 미싱을 배워 보려고요. 그런데 미싱을 가르쳐 주는 여자가 너무 무식한 거예요. 사람을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 자랑을 너무 심하게 하는거죠. 한번은 자기 애인이 자전거 면허를 땄다고 막 자랑을 해요. 아니, 자전거 면허가 어디있냐고. 또 하루는 일을 하고 있는데 와서는 "효상이. 너 어제 가요톱십봤어?" 그러는 거예요. 참다 참다 더이상 못하겠더라고요. 가요톱십. 이건 아니잖아요. 군대 갔다 오고 대학로를 지나가는데 한 친구가 노래를 참 잘하더라고요. 그 친구 옆에서 아부하고 같이 껴서 놀다가 결국 그 거리 공연 맛이 들린 거죠."

 하하 그렇군요. 하지만 돈을 한참 벌어야할 20대 중반에 선천적인 광대의 기운을 느끼고, '어찌하지 못함'음 뿌리치지 못하다니 무모한 것은 아닐런지요. 더구나 당신은 상업적인 웃음이 아닌, 자신이 좋을 따름인 웃음을 추구하지 않습니까. 또 그 젊은 날의 호기를 마흔을 앞둔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니. 당신은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갈 줄 아는 '낭만쟁이', 혹은 터무니없는 '비현실주의자'가 아닐까요. "돈을 위한 웃음이라면 재미가 없잖아요. 지금이야 대학로에서 노래를 부르면 다들 재미있어 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욕도 많이 먹었어요. 명동에서 노래를 시작했는데 골때렸었죠. 사람들이 모이니까 주변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신고를 하는 거예요. 경찰이 와서는 도로교통법 위반과 고성방가죄로 파출소에 끌고 가요. 별거 아니니까 금방 풀려나면 또 노래를 불렀죠. 미친놈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야, 이 미친놈아. 딴 데 가서 해' 그러면 전 그랬죠. '야, 개ㅇㅇ야, 니가 한번 해볼래. 얼마나 재미있는데.' 지금은 사람들 의식이 많이 바뀌고, 저를 보고 즐거워 해주니까 너무 좋죠." 당신은 정말 제 멋대로이군요. 당신의 그 선천적 방랑기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가 아마도 우리의 눈물을 쏙 빼놓던 웃음의 원천이었나 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윤효상 당신은 앰프를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그렇게 목이 쉬어 있을 정도로 힘든데, 굳이 육성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대학로에서 거리 공연을 한다 하면 대부분 저 멀리까지 쿵쿵 울리는 앰피를 쓰곤 하는데요. "전 우리나라의 거리 문화가 너무 아쉬워요. 문화와 공연의 거리 대학로에서마저 거리 문화가 사라지고 있죠. 대부분 소음에 가까운 엠프를 틀어 놓고 문화를 방자한 PR이나 하고 있죠. 왜 듣기 싫은 사람들에게까지 방해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전 제 공연을 보던 사람들이 나중에 자식을 데리고 대학로를 찾을 때까지 공연을 할 거예요." 당신은 이미 대학로의 보이지 않는 이정표에 다름없습니다. 당신의 공연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절대 잊지를 못하니까요.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당신의 다큐멘터리를 담은 한 TV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아내와 개구진 세 명의 아이들. 행복한 가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결혼 초기 수입이 없는 상태, 경제적 능력도 없이 기타 치고 노래부르는 것에만 빠져있는 당신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부족함이 없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아내에게 늘 고마워요. 레크리에이션이나 이벤트를 해서 버는 돈은 다 아내에게 갖다주죠. 한 때는 더 이상 안 되겠어서 야간업소도 나가봤어요. 하지만 못 하겠더라고요. 거리의 냄새가 그리웠죠. 작고하신 장인께서 항상 그러셨어요. "웃음과 인간미를 담을 수 있는 유머니스트가 되어라.' 저에겐 가족이 무엇보다 소중해요. 따뜻한 웃음을 만들 수 있는 원천이 되는 것이 가정이죠." 작지만 큰 사람, 윤효상 당신으로 인해 '사람은 정말 꽃보다 아름답다'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각박한 우리네 삶에서 꼭 필요한 사람,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대학로 거리를 뚝심있게 지켜내는 사람. 당신은 진정한 유머니스트 입니다.

 

 

Mary From Dungloe / Phil Coul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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