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십 년을 두고 봐야 한다면, 이 아름다운 과경도 머잖아 독창성을 모조리 상실하고 모든 것이 반복되는, 전날이나 다음날이나 다를 게 없는 존재의 비극이 되어버릴 테니까,
27
모든 걸 체념한 듯한, 그토록 평온한 숙모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고. 그래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28
각자가 자기 몫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며, 자기 삶에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을 뿐이다.
40
어느 날 나는 산다는 게 다 그런 거라는, 삶은 아무것에도 이르지 못한다는, 아무런 변화도 없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거야. 그러고는 그 삶에 적응해가겠지
46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마치 당장이라도 달려가 글르 돕고 싶다는 듯 아주 근심스런 표정을 짓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그들 자신은 그나마 행복하다고, 삶이 그래도 그들에게는 관대했다고 믿으며 즐거워한다.
52
미친 사람이란 자기 세계속에서 사는 사람이야. 정신분열증환자, 성격이상자, 편집광처럼 말이야.다시 말해 뭇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이지
55
난 미친 여자로 남고 싶거든. 다른 사람들이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꿈꾸는 대로 내 삶을 살고 싶거든.
56
여기서는 비파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걸 말하고 자신이 원하는 걸 할 수 있어. 어쨌든 여긴 정신병원이니까.
66
그녀는 결코 냉정을 잃고 허둥댄 적이 없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차가운 표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걸 그녀는 일찌감치 터득한 터였다. 그런데 그 미친 사람들이 부끄러움, 분노, 살의를 일깨웠다. 그녀가 감히 입 밖에 내뱉은 적이 없는 말들로 그들에게 상처를 입하고 싶은 욕망을 그녀의 내부에 일깨워놓았던 것이다.
67
사춘기 시절, 그녀는 뭔가를 선택하기에는 아직 때가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었을 때는, 뭔가를 바꾸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다고 체념했다. 지금까지 무엇 하느라 내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거지? 그것도 내 삶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게 하느라고.
69
그녀는 어느 누구에게도 앙심을 품지 않았다. 그것은 반응한다는 걸 의미했고, 적과의 싸움을 초래했으며, 이어 예측할 수 없는, 예를 들면 복수 따위를 감수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삶에서 기대했던 거의 모든 것을 마침내 얻게 되었을 때, 베로니카는 자신의 삶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매일 매일이 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죽기로 결심했다.
71
아마도는 없어,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는걸." 모든 게 결정되었다는 사실에 그녀는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81
작별을 고하는 것. 그게 가장 힘든 일이었다. 일단 정신병원에 발을 들여놓으면, 누구나 광기의 세계가 제공하는 자유에 익숙해졌고, 결국에는 나쁜 습관이 들고 말았다. 짊어져야 할 책임도, 먹고살기 위해 싸울 필요도, 반복적이고 권태로운 활동에 매달려야 할 필요도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림만 바라보거나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를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보낼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이 용인되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정신병자였으니까.
82
어떤 의사들에 따르면, 최근에 발견된 세로토닌이라는 물질은 인간의 정신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한 요인이었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집중하고, 자고, 먹고, 삶의 행복한 순간들을 즐기는 능력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 물질이 아예 없으면, 인간은 절망, 비관주의, 자신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느낌, 과도한 피로, 불안, 결단력 결여에 시달리다 결국에는 완전한 무기력 상태, 나아가 자살에 이르는 만성적인 우울에 빠져들었다
90
의사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울증입니다. 가끔은 아주 하찮은 이유로도 발병하죠. 몸에 세로토닌이라는 화학물질이 부족해서 그래요."
92
미쳤다는 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해. 마치 네가 낯선 나라에 와 있는 것처럼 말이지. 너는 모든 것을 보고, 네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식하지만 너 자신을 설명할 수도 도움을 구할 수도 없어. 그 나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93
창살 너머, 한르에는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고, 산 뒤편으로는 반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시인들은 보름달을 좋아했고, 보름달에 수없이 많은 시를 바쳤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반달을 더 좋아햇다. 반달은 커지고 확장될 공간을, 자신의 전 표면을 빛으로 채울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이울어야 하는 보름달과는 달랐다.
96
한 여자는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울고 있었고, 또 한 여자는 슬픔의 이유도 모르는 채 위로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이 자연의 질서에 역행하려는걸까?
98
그랬다. 살아오는 동안, 그녀는 많은 일을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밀고 나갔다. 하지만 모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사과만 하면 간단히 끝날 불화를 계속 끈다거나, 관계가 밋밋하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남자에게 끝내 먼저 전화를 걸지 않는다거나 하는, 그녀는 가장 쉬운 일에서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강하며 무심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허약했고, 학업이나 운동시함에서 결코 두드러진 성적을 거둔 적이 없으며, 가정을 화목하게 가꾸지도 못했다.
그녀는 자잘한 결점들과 싸우느라 지쳐 정작 중요한 문제에서는 쉽게 무너졌다. 독립심 강한 여자처럼 행동했지만, 내심으로는 같이 지낼 사람을 열렬히 갈구했다. 그녀가 나타나면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지만, 그녀는 대개 홀로 밤을 보냈다. 수도원에서,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그녀는 모든 친구들에게 자신이 선망의 모델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의 이미지에 부합하려 애쓰느라 모든 에너지를 소비했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그녀에게는 자기자신 ㅡ 누구나 그렇듯, 행복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ㅡ이 되는 데 써야 할 힘이 더이상 남아 있지 않앗다. 타인들, 그들을 이해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지! 그들은 예측할 수 없는 반응을 보엿고, 그들 자신이 만든 방어막 속에 갇혀 그녀처럼 모든 것에 무관심했다. 좀 더 삶에 개방적인 누군가를 만나면, 그들은 그 사람을 즉각 거부하거나, 열등하고 '순진한' 사람으로 매도하여 상처를 입혔다.
좋다. 그녀가 고집과 결단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치자. 그런 그녀가 지금 도달한 곳은? 공허. 완전한 고독. 빌레트. 죽음의 앙티샹브르(대기실)
99
증오. 그녀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그 파괴적 에너지는 손에 잡힐 듯 생생했다. 그녀는 좋고 나쁨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그 감정이 솟아오르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그녀는 이제 자기 절제, 가면, 예의바른 태도라면 지긋지긋했다. 자신에게 남은 이삼 일 동안, 베로니카는 철저히 무례하게 행동하고 싶었다.
101
그녀는 자신에게 쏟아진 사랑을 증오했다. 그 사랑은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으므로. 그것은 자연법칙에 반하는 부조리하고 비현실적인 것이엇다.
그 사랑은 그녀를 죄책감으로 가득 채워놓았고, 그녀가 꿈꾸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그 사랑의 기대만큼은 충족시키고픈 욕망을 그녀에게 불어넣었다. 그 사랑은, 언젠가는 그녀도 삶의 험난함과 세상의 추악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것들에 맞서야만 하리라는 필연적인 현실을 외면한 채, 긴 세월 동안 그것들을 그녀에게 감추려 들었다.
103
무한과 영원이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가는 듯한 느낌이, 한계가 없는 우주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모든 비밀을 품고 있는 현재에 닻을 내리고 미동도 않는, 끝없는 시간의 존재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또 다시 그녀를 찾아들었다.
107
궁지에 몰리지 않으려면 항상 책임을 나눠 가져라.
108
교도소가 죄수를 훈화하기는커녕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르도록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병원도 입원한 환자들이 모든 것이 허락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전적으로 비현실적인 세계에 점점 더 익숙해지게 만들었다.
111
한 집단이 전쟁이나 초인플레이션, 혹은 페스트 같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자살자의 증가는 아주 미미하고 우울증, 편집증, 정신이상 환자들도 확연히 감소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려움이 극복됨과 동시에 그 수치는 평소대로 돌아왔다. 말하자면 인간은 각종 조건들이 양호할 때에만 정신이 이상해지는 사치를 부린다는 것이었다.
112
"~인간들은 행복해질 가능성이 크면 클수록 불행해지는구먼."
115
심각하게 병적인 몇몇 경우를 제외한다면, 사람들은 판에 박은 일상을 벗어나려 시도할 때 흔히 정신이상이 돼죠. 이해하시겠습니까?
126
타토토니 : 긴장병. 정신분열증의 한 형태. 혼미 상태와 흥분 상태가 번갈아 나타난다.
127
"자기만의 현실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현실이란 게 도대체 뭐죠?"
베로니카가 물었다.
"그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거라고 여기는 거야. 반드시 최선의 것이나 가장 논리적인 것이어야 하는 건 아냐. 집단적인 욕망에 딱 들어맞으면 되는 거지. 내가 지금 목에 매고 있는 게 뭐지?"
"넥타이요"
"그래. 넥타이야! 네 대답은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상적인 사람의 대답이지. 하지만 미친 사람은, 복잡한 방식으로 매달려 있는, 우스꽝스럽고 아무 쓰잘 데 없는 알록달록한 천조각이라고 말할 거야. 숨쉬기 어렵게 만들고 머리의 움직임을 방해할테니, 정신을 딴 데 팔며 환풍기 곁을 지나가다가 이 조그만 천조각 때문에 질식해 죽을 수도 있다고 말야. 만약 미친 사람이 넥타이는 무엇에 쓰는거냐고 묻는다면, 난 아무 쓸모도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거야. 노예처럼 일하는 사람이나 힘과 거만함의 상징이 되어버려 이제 장식적인 역할도 못 하니까. 쓸모가 있는 때는, 집에 들어가서 그걸 풀어버릴 때뿐이지. 해방감을 주니까. 뭔가 구속에서 벗어난 것 같고. 그게 뭔지 모르는게 문제긴 하지만.
그 안도감으로 넥타이의 존재가 정당화될 수 있냐구? 아니지. 그렇지만, 미친 사람과 정상인을 놓고 내가 목에 매고 있는 게 뭐냐고 물었을 때, '넥타이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정상인으로 간주될거야. 중요한건 옳은 답이 아니라 남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답이니까"
128
자기 목숨에 해를 가하는 것, 그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130
Amertume : 일차적인 의미로는 '쓴맛'을 . 은유적으로는' 회한, 쓰라림, 슬픔' 등을 뜻한다. 여기에서 이 단어는 독의 한 종류로, 그 형용사형인 아메르Amer는 그 독에 중독된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우리 모두가 결핵균을 보유하고 있듯이, 모든 인간의 신체는 다소 많은 양의 아메르튐을 지니고 있었다. 이 두 가지 병은 환자가 허약해져 있을 경우에만 모습을 드러냈다. 아메르튐의 경우, 발병 원인은 사람들이 흔히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공포였다.
외부로부터 어떠한 위협도 침투해 들어울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를 세우려 하는 사람들은 외부세계ㅡ모르는 사람, 낯선 장소, 새로운 경험ㅡ에 대한 벙어에만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정작 내부 세계는 방치해둔다. 바로 그 틈을 타서 아메르튐이 내부 세계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히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메르튐의 주표적은 의지엿다. 그 병에 걸린 사람들은 차츰차츰 모든 욕망을 상실하게 되고, 몇 년이 지나면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만다. 자신이 원하는 현실을 만들어 줄 높은 벽들을 샇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해버렸기 때문이다.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시을 보호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내적인 발전마저도 한정시켜버린 것이다. 그들은 계속 직장에 나가고,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교통이 막힌다고 불평을 늘어놓고, 자식들을 낳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조금의 내적 동요도 없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으므로.
아메르튐에 의한 중독이 가져다 주는 폐해는 증오, 사랑, 절망, 열광, 호기심 같은 정열들 역시 모습을 감춘다는 데 있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아메르는 더이상 아무런 욕망도 느낄 수 없었다.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았다. 바로 그것이 문제엿다.
132
만성적인 아메르는 일 주일에 단 한 번, 일요일 오후에만 자신이 병자라는 사실을 의식했다. 이 시간대에는 자신의 증상을 잊게 해줄 일이나 일상적인 잡사가 없기 때문에, 그는 그때에야 뭔가 정상이 아니란는 걸 깨달았다ㅡ 그 오후의 평온은 진저리나는 것이었고, 시간은 도통 흐르지 않았으며, 내부에 쌓여 있던 짜증은 거침없이 분출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월요일이 되면,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느니 주말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느니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자신의 증상을 곧 잊어버렸다.
135
그녀는 자신의 삶에 언제나 많은 사랑, 애정, 보호가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을 신의 축복으로 만들 수 있는 요소 하나가 부족했다는 사실 또한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만 더 미쳤어야 했다.
그녀의 부모는 어쨌거나 그녀를 계속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워 감히 자신의 꿈을 계속 밀고 나가지 못했다. 그녀의 기억 깊숙한 곳에 묻혀버린 그 꿈은 연주회에 간다거나 우연히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 가끔씩 되살아났다. 하지만 매전 그로 인해 엄청난 실망감만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녀는 곧 그 꿈을 다시 묻어버렸다.
136
엄마는 현실이 어떤것인지 이해할 만큼 풍부한 경험을 가졌으리라고 확신한 베로니카는 엄마의 말에 따랐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 훌륭한 성적으로 학위를 땄다. 하지만 그녀가 얻은 직업은 고작 도서관 사서직이었다.
"나는 좀 더 미친짓을 했어야만 했어." 하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럿듯, 그녀에게도 깨달음은 너무 늦게 찾아왔다.
141
여러부은 정신의 길을 나아가는 데 가장 힘든 두 가지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제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그 하나요, 여러분이 찾은 것에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그 둘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내 가르침을 드리겠습니다.
142
자존심이란게 뭔데? 모든 사람들이 널 착하고 예의 바르고,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는 사람으로 여기길 바라는 게 자존심이야? 자연을 봐. 동물 다큐멘터리를 더 자주 보라구. 짐승들이 자기 영토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싸우는지 관찰해봐. 우리는 모두 네가 그 사람의 뺨을 때리는 걸 보고 통쾌해했어."
144
현재는 언제나 아주 짧지. 무언가를 잔뜩 쌓아놓은 과거와 앞으로도 계속 쌓아갈 미래를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말이야.
145
잡념이 다시 떠오를겁니다. 그걸 막으려고들 해보세요. 자신의 정신을 지배하느냐 아니면 그것에 지배받느냐, 여러분은 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정신의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두려움, 신경증, 불안 등에 이리 저리 끌려다녓죠. 모든 사람에게는 이러한 자기 파괴의 성향이 있으니까요.
광기를 통제력의 상실과 혼동하지 마세요. 수피 전통에서는 모두가 스승-나스루딘-을 미친 사람이라 부른다는 걸 기억하세요. 모두가 그를 정신이상자로 여기기 때문에, 나스루딘은 생각하는 모든 것을 말하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중세에는 궁정의 광대들이 그 역할을 했어요. 그들은 대신들이 자리를 잃을까봐 감히 언급하지 못하는 것들을 스스럼없이 왕에게 알려주엇죠. 여러분들도 이처럼 되어야 합니다. 미친 사람이 되세요. 하지만 정상인들처럼 행동하세요. 남들과 다르다는 위험을 감수하세요. 하지만 주의를 끌지 않고 그렇게 하는 법을 배우세요. 이 꽃에 집중하세요. 그리고 여러분의 진정한 자아가 모습을 드러내도록 가만히 놓아두십시오.
"진정한 자아라는게 도대체 뭐죠?"
"사람들이 당신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이죠"
147
그녀는 자신이 곧 죽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두려워하지? 두려워한다고 해서 그녀에게 도움이 될 것도 없고, 곧 발생할 치명적인 심장 발작을 막을 수도 없었다. 그녀에게 남아 있는 며칠 혹은 몇 시간을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해보는데 사용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149
젊음이란 그런거야. 젊음은 몸이 얼마나 버텨낼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을 채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지. 하지만 몸은 언제나 버텨내.
150
미친 사람들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 한 꼼작도 하지 않았다.
151
마리아의 생각으로는, 그 어려움은 카오스, 즉 질서의 붕괴 혹은 무정부 상태가 아니라 질서의 과잉에 기인하려는 것이었다. 사회는 점점 더 많은 규칙들로, 그 규칙들을 반박하기 위한 법률들로, 또 그 법률들을 반박하기 위한 새로운 규칙들로 넘쳐났다. 그것이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고,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법규를 일탈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
157
발레트에서는 누구나 담배를 피울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잔디 위에 다배꽁초를 버리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마리아는 그 금지된 행위를 하면서 쾌감을 느꼈다. 규정을 어기고도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이었다.
158
공황장애였다.
159
베로니카가 계속해서 죽음을 원하는 편이 나았다.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161
발레트에서 죽음은 아무에게도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은채 갑작스레, 혹은 오랜 투병생활 끝에 마치 축복이 내리듯 찾아왔다. 하지만 베로니카의 경우는 드라마틱했다. 그녀는 아직 젊고 다시 살고 싶어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라는 걸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171
그녀는 동료와 함께 엘살바도르에 관한 필름을 놓고 토론을 벌엿고, 지나가는 말로 매일 똑같은 일을 하는 게 이젠 피곤하다고 했다.
"아마 은퇴할 때가 됐나 봐"
"무슨 소리야. 당신은 여기 변호사들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해. 게다가 법조인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인정받는 흔치 않은 직업이야. 조금 오래 휴가를 가져보는게 어때? 장담컨대, 일할 욕심에 혈안이 되어서 돌아오게 될걸."
"내 삶에 새로운 계기를 부여하고 싶어. 모험에 뛰어들고, 남들을 돕고, 여태껏 해보지 못한 뭔가를 하고 싶어."
177
그녀는 정신병에 관한 모든 책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이 그 책들 속에 기술되어 있는 모든 병에 걸렸다고 믿어져서 곧 그만두고 말았다.
가장 끝찍스러운 것은 발작이 더이상 새로운 것이 아닌데도 현실에 대한 공포감, 낯설음,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무력감을 매번 똑같은 강도로 느낀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청소를 제외한 온갖 집안일을 떠맡아 두 배로 일할 수밖에 없는 남편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지나갔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마리아는 짜증을 심하게 부리기 시작했다. 걸핏하면 냉정을 잃고 소리를 질러댔고, 소란은 언제나 걷잡을 수 없는 눈물로 끝이 났다.
183
난 여기서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어. 한쪽은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쪽은 병이 완전히 나았는데도 삶의 짐을 짊어지고 싶지 않아 미친 척하는 사람들이야. 난 다시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싶어. 난 그럴 필요가 있어. 나와 관계된 결정을 나 혼자 내릴 수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해야만 해.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게로 떠밀려가진 않을 테야.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무슨 실수든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 단 한가지.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실수만 빼고.
187
lunatique 달의 영향으로 정신이상이 된 사람. 달이 뜨면 몽환에 빠지는 사람.
199
두 가지 부탁을 들어주셨으면 해요. 하나는, 내가 깨어 있을수 있도록, 내게 남은 일분 일분을 즐길 수 있도록 약이든 주사든 무엇이든 주세요. 잠이 쏟아지지만 난 자고 싶지 않아요. 할일이 너무 많아요. 내 삶이 영원하다고 믿었을 때 항상 나중으로 미루어왔던 것들요. 내 삶이 살아볼 만한 가치가 없다고 믿기 시작하면서 더이상 내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들요.
두번째 부탁은?
여기서 나가 밖에서 죽고 싶어요. 항상 내 눈앞에 있었지만, 단 한번도 가까이 다가가려는 호기심을 가져본 적이 없엇던 류블랴나 성에 가보고 싶어요. 겨울에는 군밤을, 봄에는 꽃을 파는 아줌마에게 할말이 있어요. 수없이 마주쳤는데 단 한 번도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본 적이 없거든요. 외투를 벗고 눈 속을 걷고 싶어요. 그 지독한 추위를 느끼고 싶어요ㅡ 난 감기 걸리는게 두려워 언제나 옷을 두둑이 입고 다녔거든요.
마지막으로, 이고르 박사님. 난 내 얼굴 위로 흐르는 빗물을 느껴보고 싶어요. 내 마음에 드는 남자들에게 미소를 보내고, 그들이 권하는 커피를 모두 마시고 싶어요. 늘 존재했지만 애써 감추어왔던 내 감정들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엄마에게 뽀뽀를 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품안에서 울고 싶어요. 아마 성당에도 들어가, 내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던 그 이미지들을 바라볼거에요. 이번엔 뭔가를 말해줄 것 같아요. 마음에 드는 남자가 클럽에 가자고 하면, 서슴없이 따라나서겠어요. 그리고 밤새 춤을 출 거에요. 지쳐 쓰러질 때까지. 그러고는 그와 함께 침대로 가겠어요. 이번에는 절대 그전처럼 나 자신을 통제하려 들거나 느끼지도 않는 쾌감을 느끼는 척하지 않을거에요. 난 나 자신을 송두리째 내던지고 싶어요. 한 남자에게, 도시에, 삶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에."
210
그 역시 많은 고독을 겪었기 때문에 타인의 고독을 존중할 줄 알았다.
213
에뒤아르는 이런 종류의 토론에는 신물이 났다. 바깥 세상에서는 그들이 아무리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도 우스꽝스럽게 여길게 뻔하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정신병원에 틀어박혀, 아무런 위험도 무릅쓰지 않은 채 세상을 구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사람들 각자가 모든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갖기ㅗ 있었고, 자신의 진실만이 옳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수다로 세월을 보냈다. 생각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의 문제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은 채, 좋건 나쁘건, 생각은 그것을 실천하려는 시도가 있을때에만 존재하는 것인데도.
214
수년간의 침묵을 통해 에뒤아르는 말없이 말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눈에 집중시킬 수 있었다. 베로니카가 그의 애정, 그의 사랑을 짐작했으리라는 걸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매달리는 그를 보고 마리아도 그의 절망을 이해하리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216
그래서 지난밤, 나 역시 내가 이 병원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생각해봤어. 광장에, 다리에, 사람들이 사과를 사고 날씨에 대해 얘기하는 극장 앞 시자에 있는 게 훨씬 더 신날 거라고 생각했지. 물론, 잊고 살았던 성가신 일들도 다시 시작해야겠지ㅡ 납부해야 할 고지서들, 이웃들과의 옥신각신, 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일부라고, 그 조그만 문제들을 우리의 문제로 인정하지 않고 피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맞서는 편이 결국은 수고를 더는 일이라고 생각해.
사실, 일생을 사는 동안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일은 오로지 우리 잘못에서 비롯되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그것에 대응했어. 우리는 격리된 현실이라는 쉬운 길을 택했던 거야.
217
난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 에뒤아르. 항상 저질러버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용기가 없어 포기했던 실수들을 저질러가며. 공포가 다시 엄습해올 수도 있겠지만, 그걸로는 죽지도 기절하지도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 기껏해야 날 지치게 하는 게 고작일 그 공포와 맞서 싸워가며. 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현자가 되기 위해 미치광이가 되는 법을 가르쳐줄 수도 있을거야. 난 그들에게 모범적인 삶의 교본들을 따르지 말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모험을 발견하라고, 살라고 충고할거야!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구약성서를, 회교도들에게는 코란을, 유대인들에게는 토라를, 무신론자들에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텍스트들을 인용해줄거야. 앞으로 두 번 다시 변호사 일은 하지 않을거야. 하지만 삶의 진실을 깨달았던 존재들에 대한 강연을 하면서 내 경험을 활용할 수는 있겠지. 그들이 남긴 글들은 모두 '살아라!' 이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어. 네가 산다면, 신께서도 너와 함께 살리라. 네가 위험을 무릅쓰길 거부한다면, 신께서도 하늘로 물러나 철학적 공론의 한 주제로 남으리라.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방향으로 첫발을 내디디려 하지 않아. 아마 미치광이 취급을 당할까봐 두려워서겠지. 적어도 우리한텐 그런 두려움이 없어. 에뒤아르. 우린 빌레트에서도 견뎌냈잖아.
230
세상에는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항상 똑같고 누구에게나 가치가 있는 절대적인 것들이 존재해. 사랑이 그 중 하나야.
232
네가 또 '난 곧 죽을 거야'라고 말하기 전에, 이걸 말해주고 싶어. 네가 지난밤에 경험한 그런 순간을 찾아 일생을 헤매지만 결국은 찾 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러니 네가 지금 당장 죽어야 한다면,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죽어. 넌 잃을 게 아무것도 없어. 미래와 과거와 관련된 많은 것들이 걸려 있어서 감히 사랑에 빠져들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 네 경우엔, 존재하는 건 오직 현재뿐이야.
233
나 자신의 눈으로 삶을 바라보고 싶어. 이곳에 도착했을 때, 난 실의에 빠져 있었지. 이제, 난 미친 여자가 되었어. 그리고 그게 자랑스러워. 밖에 나가면, 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할 거야. 슈퍼마켓에 가서 장도 보고, 친구들과 잡담도 나누고, 텔레비전 앞에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기도 할거야. 하지만 난 내 영혼이 자유롭다는 걸, 내가 꿈꿀 수 있다는 걸,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 존재를 짐작조차 못 했던 다른 세계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걸 이젠 알고 있어.
.. 그가 웃으면서 내게 말하겠지. '당신 미쳤군!' 그럼 난 이렇게 대답할거야. '물론이죠. 난 빌레트에 있던 여잔걸요! 광기가 날 해방시켜주었어요. 그러니 여보, 매년 휴가를 내서 나를 산으로 데려가줘요. 사의 험난함을 경험할 수 있게 말이에요. 내게 필요한 건 살아 있음의 위험을 무릎쓰는 일이니까요.'
237
난 소위 '정상적'이라는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나보다 앞서 많은 의사들이 그 연구를 했고, 정상적인 상태라는 것은 사회적 합의의 문제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달리 말하자면, 대다수 사람들이 어떤 것을 올바르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올바른게 되는거죠. 어떤 것들은 가장 초보적인 상식에 의해 좌우됩니다. 단추를 셔츠 앞쪽에 다는 것은 논리의 문제겠죠. 단추들을 옆에 달아놓는다면 채우기가 아주 어려울테고, 등뒤에 달아놓는다면 아예 불가능할 테니까요. 하지만 다른 것들은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것들은 그래야만 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정상으로 치부되는 겁니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죠. 타자기 자판의 문자들이 왜 그런 식으로 배열되어 있는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으십니까?
239
타자기와 컴퓨터의 자판은 더 빨리가 아니라 더 천천히 치게 하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문자들의 자리를 이리저리 한 번 바꾸어보세요. 그런 자판은 아마 아무도 사지 않을 겁니다. 자판을 처음 보았을 때, 마리아는 왜 문자들이 알파벳 순으로 배열되어 있지 않을까 하고 잠시 궁금하게 여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빨리 치기 위한 최선의 배치일거라 믿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240
개개의 인간은 모두 유일해요. 자기 자신마의 자질, 본능, 쾌락의 형태, 모험을 추구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사회는 집단적인 행동 양식을 강요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그런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게되죠. 그들은 그걸 받아들여요. 타자수들이 아제르티Azerty 자판이 최선의 자판이라는 사실을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였듯이, 시계바늘이 왜 왼쪽이 아니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을 만난적이 있으세요?
241
남들과 다른 존재가 될 용기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게 됩니다.
242
마리아는 다년간의 법정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즉시 그걸 활용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첫 전략은, 또 다른 추론을 전개 할 때 상대방을 손쉽게 함정으로 몰아넣기 위해 우선은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는 척하는 것이었다.
저는 새 삶을, 또 다시 하나하나 습관을 들여야만 할 새 삶을 다시 시작할 의욕을 상실했었어요.
243
난 내 영혼을 어디다 팽개쳐버린 것일까? 내 과거 어딘가에. 내 것이기를 간절히 소망한 그 삶 속에. 저는 집과 남편, 직업-해방되고 싶었지만 감히 그럴 용기가 없어 버리지 못했던- 이 있던 그 순간의 포로가 되도록 제 영혼을 방치했어요.
제 영혼은 과거속에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 이곳에 있어요. 저는 다시 이 몸 속에서 열기로 가득한 제 영혼을 느낄 수 있어요.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아는 건, 삶은 저를 다른 길로 나아가도록 부추겼지만 정작 제 자신은 그걸 원치 않았다는걸 이해하는데 삼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거에요. "
261
그들의 삶은 전혀 비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적선을 요구했고 왕들에게 아첨을 떨엇다. 법을 어기거나 권력자들의 분노에 맞섰다. 협상을 하기도 했고 완력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을 가로막는 모든 어려움을 이용할 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282
언제나 똑같은 물을 품고 있는 연못이 아니라, 넘쳐 흐르는 샘처럼 되라
난 이곳의 삶이 바깥의 삶과 동일하다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어요. 거기서도 여기처럼, 사람들은 그룹들끼리 모이고, 벽 뒤에 숨어 모르는 이가 그들의 보잘것없는 삶을 방해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해요. 그들은 습관적으로 섹스를 하죠.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들을 연구하고, 즐겨야만 하기 때문에 즐겨요. 나머지 세상이야 어찌 됐건 자기 삶만 어찌어찌 꾸려나가면 그만인 거죠. 기껏해야, 우리가 늘 그랬듯, 오로지 각종 문제들과 불의로 가득찬 세상에서 그래도 그들만은 정말 행복하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텔레비전 뉴스를보죠.
.. 하지만 사람은 변해요. 지금 나는 모험을 찾아 떠나요. 내 나이가 예순다섯이고, 이 나이 때문에 많은 제한이 따를 거라는걸 잘 알면서도. 난 보스니아로 갑니다. 거기엔 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직 그들도 내가 누군지 모르고 나 역시 그들이 누군지 모르지만요. 하지만 내가 쓸모가 있으리라는 걸, 모험에서 마주치는 위험이 천 일 동안의 안녕과 안락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걸 난 이제 알아요.
296
죽음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더 치열하게 살도록 자극한다.
297
하지만 금지된 주제에 대한 연구를 감행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몰이해에 맞설 용기를 갖추어야만 하는 법이다.
*01。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무엇이 두렵냐 물었다.
무엇이 두렵나 생각했다.
지금 이 열정없는 일상 속의 내 자신이 두려웠고,
현재의 고된 인내 끝에 주어진 내 미래가
과연 생각만큼 행복하거나 썩 만족스럽지 못할까 두려웠다.
사실 현실속에서 날 괴롭히는 것들은 없었다. 아무것도.
난 내 상상속의 걱정과 고통속에서 시름하고 있었다.
베로니카! 그녀가 죽음을 결심한,
무려 298 페이지 분량의 책을 읽으며 나는
소름끼치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꼈다.
슬로베니아의 베로니카 그녀는,
내 모습이었고, 나는 마치 파울로 코엘료에 의해,
낱낱이 발가벗겨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어떤지 설명하지 않아도
한 눈에 나를 다 알아본 사람 앞에서
긴장감을 놓칠수가 없어 이내 흥분감에 들떠있었지만,
나는 그래서 더욱 베로니카 그녀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다.
누군가의 혹은 내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타인을 의식한 삶 속에서,
나는 진정으로 내가 기쁘고 즐거울 수 있는 것들을
배제한 다른 생각으로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충족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을 이겨낼 수 없었고,
일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인내와 용기의 부재로 감정의 응어리만 더 커져갈 뿐이었다.
내 진실을, 진심을,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매일 발전없는 일상에 진부함을 느끼는 것으로 인해,
내 삶에, 내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 너무도 자연스런ㅡ당연한 일이었다.
왜 나는 미치지 못하는가,
나는 분명 더 미쳐야만 했다,
하지만 자유란 그리 쉽게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정상인'이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결코 그 앞에 최선이란 단어를 감히 붙이지는 못하겠지만)
'정상인'임에 자부심을 느끼고,
그것이 허영인지 자만인지 구별하지도 못하고 있었으니까.
한 달도 전부터, 아니 그 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내가 가진 고민과 걱정들은 한결 같았다.
어느 날 누군가가 '니 삶의 무료함으로 인해
걱정할 것이 없어서 생기는 걱정들일 뿐'이라고
나름 내 진중한 고민과 고뇌를 그리 너무도
쉽게 치부해버리는 것이 사실 많이 원망스러웠지만,
결국 그 모든 애매한 질문과 방황의 답을 찾는 길 역시,
내 안에 있음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됨으로서,
나는 조금 얕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며,
짧지 않은 글을 끄적여본다.
모든 것이 '반짝'하는 순간에 변화하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은 이해되지 않은 것을 혹은 이해해주지 않는 것을
억지로 이해하려는 것에 에너지를 소모하진 않으리라.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몇 십 년을 두고 봐야 한다면, 이 아름다운 과경도 머잖아 독창성을 모조리 상실하고 모든 것이 반복되는, 전날이나 다음날이나 다를 게 없는 존재의 비극이 되어버릴 테니까,
27
모든 걸 체념한 듯한, 그토록 평온한 숙모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고. 그래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28
각자가 자기 몫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며, 자기 삶에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을 뿐이다.
40
어느 날 나는 산다는 게 다 그런 거라는, 삶은 아무것에도 이르지 못한다는, 아무런 변화도 없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거야. 그러고는 그 삶에 적응해가겠지
46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마치 당장이라도 달려가 글르 돕고 싶다는 듯 아주 근심스런 표정을 짓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그들 자신은 그나마 행복하다고, 삶이 그래도 그들에게는 관대했다고 믿으며 즐거워한다.
52
미친 사람이란 자기 세계속에서 사는 사람이야. 정신분열증환자, 성격이상자, 편집광처럼 말이야.다시 말해 뭇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이지
55
난 미친 여자로 남고 싶거든. 다른 사람들이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꿈꾸는 대로 내 삶을 살고 싶거든.
56
여기서는 비파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걸 말하고 자신이 원하는 걸 할 수 있어. 어쨌든 여긴 정신병원이니까.
66
그녀는 결코 냉정을 잃고 허둥댄 적이 없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차가운 표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걸 그녀는 일찌감치 터득한 터였다. 그런데 그 미친 사람들이 부끄러움, 분노, 살의를 일깨웠다. 그녀가 감히 입 밖에 내뱉은 적이 없는 말들로 그들에게 상처를 입하고 싶은 욕망을 그녀의 내부에 일깨워놓았던 것이다.
67
사춘기 시절, 그녀는 뭔가를 선택하기에는 아직 때가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었을 때는, 뭔가를 바꾸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다고 체념했다. 지금까지 무엇 하느라 내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거지? 그것도 내 삶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게 하느라고.
69
그녀는 어느 누구에게도 앙심을 품지 않았다. 그것은 반응한다는 걸 의미했고, 적과의 싸움을 초래했으며, 이어 예측할 수 없는, 예를 들면 복수 따위를 감수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삶에서 기대했던 거의 모든 것을 마침내 얻게 되었을 때, 베로니카는 자신의 삶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매일 매일이 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죽기로 결심했다.
71
아마도는 없어,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는걸." 모든 게 결정되었다는 사실에 그녀는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다.
81
작별을 고하는 것. 그게 가장 힘든 일이었다. 일단 정신병원에 발을 들여놓으면, 누구나 광기의 세계가 제공하는 자유에 익숙해졌고, 결국에는 나쁜 습관이 들고 말았다. 짊어져야 할 책임도, 먹고살기 위해 싸울 필요도, 반복적이고 권태로운 활동에 매달려야 할 필요도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림만 바라보거나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를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보낼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이 용인되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정신병자였으니까.
82
어떤 의사들에 따르면, 최근에 발견된 세로토닌이라는 물질은 인간의 정신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한 요인이었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집중하고, 자고, 먹고, 삶의 행복한 순간들을 즐기는 능력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 물질이 아예 없으면, 인간은 절망, 비관주의, 자신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느낌, 과도한 피로, 불안, 결단력 결여에 시달리다 결국에는 완전한 무기력 상태, 나아가 자살에 이르는 만성적인 우울에 빠져들었다
90
의사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울증입니다. 가끔은 아주 하찮은 이유로도 발병하죠. 몸에 세로토닌이라는 화학물질이 부족해서 그래요."
92
미쳤다는 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해. 마치 네가 낯선 나라에 와 있는 것처럼 말이지. 너는 모든 것을 보고, 네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식하지만 너 자신을 설명할 수도 도움을 구할 수도 없어. 그 나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93
창살 너머, 한르에는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고, 산 뒤편으로는 반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시인들은 보름달을 좋아했고, 보름달에 수없이 많은 시를 바쳤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반달을 더 좋아햇다. 반달은 커지고 확장될 공간을, 자신의 전 표면을 빛으로 채울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이울어야 하는 보름달과는 달랐다.
96
한 여자는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울고 있었고, 또 한 여자는 슬픔의 이유도 모르는 채 위로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이 자연의 질서에 역행하려는걸까?
98
그랬다. 살아오는 동안, 그녀는 많은 일을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밀고 나갔다. 하지만 모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사과만 하면 간단히 끝날 불화를 계속 끈다거나, 관계가 밋밋하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남자에게 끝내 먼저 전화를 걸지 않는다거나 하는, 그녀는 가장 쉬운 일에서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강하며 무심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허약했고, 학업이나 운동시함에서 결코 두드러진 성적을 거둔 적이 없으며, 가정을 화목하게 가꾸지도 못했다.
그녀는 자잘한 결점들과 싸우느라 지쳐 정작 중요한 문제에서는 쉽게 무너졌다. 독립심 강한 여자처럼 행동했지만, 내심으로는 같이 지낼 사람을 열렬히 갈구했다. 그녀가 나타나면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지만, 그녀는 대개 홀로 밤을 보냈다. 수도원에서,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그녀는 모든 친구들에게 자신이 선망의 모델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의 이미지에 부합하려 애쓰느라 모든 에너지를 소비했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그녀에게는 자기자신 ㅡ 누구나 그렇듯, 행복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ㅡ이 되는 데 써야 할 힘이 더이상 남아 있지 않앗다. 타인들, 그들을 이해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지! 그들은 예측할 수 없는 반응을 보엿고, 그들 자신이 만든 방어막 속에 갇혀 그녀처럼 모든 것에 무관심했다. 좀 더 삶에 개방적인 누군가를 만나면, 그들은 그 사람을 즉각 거부하거나, 열등하고 '순진한' 사람으로 매도하여 상처를 입혔다.
좋다. 그녀가 고집과 결단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치자. 그런 그녀가 지금 도달한 곳은? 공허. 완전한 고독. 빌레트. 죽음의 앙티샹브르(대기실)
99
증오. 그녀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그 파괴적 에너지는 손에 잡힐 듯 생생했다. 그녀는 좋고 나쁨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그 감정이 솟아오르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그녀는 이제 자기 절제, 가면, 예의바른 태도라면 지긋지긋했다. 자신에게 남은 이삼 일 동안, 베로니카는 철저히 무례하게 행동하고 싶었다.
101
그녀는 자신에게 쏟아진 사랑을 증오했다. 그 사랑은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으므로. 그것은 자연법칙에 반하는 부조리하고 비현실적인 것이엇다.
그 사랑은 그녀를 죄책감으로 가득 채워놓았고, 그녀가 꿈꾸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그 사랑의 기대만큼은 충족시키고픈 욕망을 그녀에게 불어넣었다. 그 사랑은, 언젠가는 그녀도 삶의 험난함과 세상의 추악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것들에 맞서야만 하리라는 필연적인 현실을 외면한 채, 긴 세월 동안 그것들을 그녀에게 감추려 들었다.
103
무한과 영원이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가는 듯한 느낌이, 한계가 없는 우주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모든 비밀을 품고 있는 현재에 닻을 내리고 미동도 않는, 끝없는 시간의 존재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또 다시 그녀를 찾아들었다.
107
궁지에 몰리지 않으려면 항상 책임을 나눠 가져라.
108
교도소가 죄수를 훈화하기는커녕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르도록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병원도 입원한 환자들이 모든 것이 허락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전적으로 비현실적인 세계에 점점 더 익숙해지게 만들었다.
111
한 집단이 전쟁이나 초인플레이션, 혹은 페스트 같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자살자의 증가는 아주 미미하고 우울증, 편집증, 정신이상 환자들도 확연히 감소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려움이 극복됨과 동시에 그 수치는 평소대로 돌아왔다. 말하자면 인간은 각종 조건들이 양호할 때에만 정신이 이상해지는 사치를 부린다는 것이었다.
112
"~인간들은 행복해질 가능성이 크면 클수록 불행해지는구먼."
115
심각하게 병적인 몇몇 경우를 제외한다면, 사람들은 판에 박은 일상을 벗어나려 시도할 때 흔히 정신이상이 돼죠. 이해하시겠습니까?
126
타토토니 : 긴장병. 정신분열증의 한 형태. 혼미 상태와 흥분 상태가 번갈아 나타난다.
127
"자기만의 현실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현실이란 게 도대체 뭐죠?"
베로니카가 물었다.
"그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거라고 여기는 거야. 반드시 최선의 것이나 가장 논리적인 것이어야 하는 건 아냐. 집단적인 욕망에 딱 들어맞으면 되는 거지. 내가 지금 목에 매고 있는 게 뭐지?"
"넥타이요"
"그래. 넥타이야! 네 대답은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상적인 사람의 대답이지. 하지만 미친 사람은, 복잡한 방식으로 매달려 있는, 우스꽝스럽고 아무 쓰잘 데 없는 알록달록한 천조각이라고 말할 거야. 숨쉬기 어렵게 만들고 머리의 움직임을 방해할테니, 정신을 딴 데 팔며 환풍기 곁을 지나가다가 이 조그만 천조각 때문에 질식해 죽을 수도 있다고 말야. 만약 미친 사람이 넥타이는 무엇에 쓰는거냐고 묻는다면, 난 아무 쓸모도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거야. 노예처럼 일하는 사람이나 힘과 거만함의 상징이 되어버려 이제 장식적인 역할도 못 하니까. 쓸모가 있는 때는, 집에 들어가서 그걸 풀어버릴 때뿐이지. 해방감을 주니까. 뭔가 구속에서 벗어난 것 같고. 그게 뭔지 모르는게 문제긴 하지만.
그 안도감으로 넥타이의 존재가 정당화될 수 있냐구? 아니지. 그렇지만, 미친 사람과 정상인을 놓고 내가 목에 매고 있는 게 뭐냐고 물었을 때, '넥타이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정상인으로 간주될거야. 중요한건 옳은 답이 아니라 남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답이니까"
128
자기 목숨에 해를 가하는 것, 그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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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tume : 일차적인 의미로는 '쓴맛'을 . 은유적으로는' 회한, 쓰라림, 슬픔' 등을 뜻한다. 여기에서 이 단어는 독의 한 종류로, 그 형용사형인 아메르Amer는 그 독에 중독된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우리 모두가 결핵균을 보유하고 있듯이, 모든 인간의 신체는 다소 많은 양의 아메르튐을 지니고 있었다. 이 두 가지 병은 환자가 허약해져 있을 경우에만 모습을 드러냈다. 아메르튐의 경우, 발병 원인은 사람들이 흔히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공포였다.
외부로부터 어떠한 위협도 침투해 들어울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를 세우려 하는 사람들은 외부세계ㅡ모르는 사람, 낯선 장소, 새로운 경험ㅡ에 대한 벙어에만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정작 내부 세계는 방치해둔다. 바로 그 틈을 타서 아메르튐이 내부 세계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히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메르튐의 주표적은 의지엿다. 그 병에 걸린 사람들은 차츰차츰 모든 욕망을 상실하게 되고, 몇 년이 지나면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만다. 자신이 원하는 현실을 만들어 줄 높은 벽들을 샇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해버렸기 때문이다.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시을 보호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내적인 발전마저도 한정시켜버린 것이다. 그들은 계속 직장에 나가고,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교통이 막힌다고 불평을 늘어놓고, 자식들을 낳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조금의 내적 동요도 없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으므로.
아메르튐에 의한 중독이 가져다 주는 폐해는 증오, 사랑, 절망, 열광, 호기심 같은 정열들 역시 모습을 감춘다는 데 있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아메르는 더이상 아무런 욕망도 느낄 수 없었다.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았다. 바로 그것이 문제엿다.
132
만성적인 아메르는 일 주일에 단 한 번, 일요일 오후에만 자신이 병자라는 사실을 의식했다. 이 시간대에는 자신의 증상을 잊게 해줄 일이나 일상적인 잡사가 없기 때문에, 그는 그때에야 뭔가 정상이 아니란는 걸 깨달았다ㅡ 그 오후의 평온은 진저리나는 것이었고, 시간은 도통 흐르지 않았으며, 내부에 쌓여 있던 짜증은 거침없이 분출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월요일이 되면,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느니 주말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느니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자신의 증상을 곧 잊어버렸다.
135
그녀는 자신의 삶에 언제나 많은 사랑, 애정, 보호가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을 신의 축복으로 만들 수 있는 요소 하나가 부족했다는 사실 또한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만 더 미쳤어야 했다.
그녀의 부모는 어쨌거나 그녀를 계속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워 감히 자신의 꿈을 계속 밀고 나가지 못했다. 그녀의 기억 깊숙한 곳에 묻혀버린 그 꿈은 연주회에 간다거나 우연히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 가끔씩 되살아났다. 하지만 매전 그로 인해 엄청난 실망감만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녀는 곧 그 꿈을 다시 묻어버렸다.
136
엄마는 현실이 어떤것인지 이해할 만큼 풍부한 경험을 가졌으리라고 확신한 베로니카는 엄마의 말에 따랐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 훌륭한 성적으로 학위를 땄다. 하지만 그녀가 얻은 직업은 고작 도서관 사서직이었다.
"나는 좀 더 미친짓을 했어야만 했어." 하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럿듯, 그녀에게도 깨달음은 너무 늦게 찾아왔다.
141
여러부은 정신의 길을 나아가는 데 가장 힘든 두 가지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제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그 하나요, 여러분이 찾은 것에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그 둘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내 가르침을 드리겠습니다.
142
자존심이란게 뭔데? 모든 사람들이 널 착하고 예의 바르고,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는 사람으로 여기길 바라는 게 자존심이야? 자연을 봐. 동물 다큐멘터리를 더 자주 보라구. 짐승들이 자기 영토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싸우는지 관찰해봐. 우리는 모두 네가 그 사람의 뺨을 때리는 걸 보고 통쾌해했어."
144
현재는 언제나 아주 짧지. 무언가를 잔뜩 쌓아놓은 과거와 앞으로도 계속 쌓아갈 미래를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말이야.
145
잡념이 다시 떠오를겁니다. 그걸 막으려고들 해보세요. 자신의 정신을 지배하느냐 아니면 그것에 지배받느냐, 여러분은 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정신의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두려움, 신경증, 불안 등에 이리 저리 끌려다녓죠. 모든 사람에게는 이러한 자기 파괴의 성향이 있으니까요.
광기를 통제력의 상실과 혼동하지 마세요. 수피 전통에서는 모두가 스승-나스루딘-을 미친 사람이라 부른다는 걸 기억하세요. 모두가 그를 정신이상자로 여기기 때문에, 나스루딘은 생각하는 모든 것을 말하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중세에는 궁정의 광대들이 그 역할을 했어요. 그들은 대신들이 자리를 잃을까봐 감히 언급하지 못하는 것들을 스스럼없이 왕에게 알려주엇죠. 여러분들도 이처럼 되어야 합니다. 미친 사람이 되세요. 하지만 정상인들처럼 행동하세요. 남들과 다르다는 위험을 감수하세요. 하지만 주의를 끌지 않고 그렇게 하는 법을 배우세요. 이 꽃에 집중하세요. 그리고 여러분의 진정한 자아가 모습을 드러내도록 가만히 놓아두십시오.
"진정한 자아라는게 도대체 뭐죠?"
"사람들이 당신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이죠"
147
그녀는 자신이 곧 죽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두려워하지? 두려워한다고 해서 그녀에게 도움이 될 것도 없고, 곧 발생할 치명적인 심장 발작을 막을 수도 없었다. 그녀에게 남아 있는 며칠 혹은 몇 시간을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해보는데 사용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149
젊음이란 그런거야. 젊음은 몸이 얼마나 버텨낼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을 채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지. 하지만 몸은 언제나 버텨내.
150
미친 사람들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 한 꼼작도 하지 않았다.
151
마리아의 생각으로는, 그 어려움은 카오스, 즉 질서의 붕괴 혹은 무정부 상태가 아니라 질서의 과잉에 기인하려는 것이었다. 사회는 점점 더 많은 규칙들로, 그 규칙들을 반박하기 위한 법률들로, 또 그 법률들을 반박하기 위한 새로운 규칙들로 넘쳐났다. 그것이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고,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법규를 일탈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
157
발레트에서는 누구나 담배를 피울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잔디 위에 다배꽁초를 버리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마리아는 그 금지된 행위를 하면서 쾌감을 느꼈다. 규정을 어기고도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이었다.
158
공황장애였다.
159
베로니카가 계속해서 죽음을 원하는 편이 나았다.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161
발레트에서 죽음은 아무에게도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은채 갑작스레, 혹은 오랜 투병생활 끝에 마치 축복이 내리듯 찾아왔다. 하지만 베로니카의 경우는 드라마틱했다. 그녀는 아직 젊고 다시 살고 싶어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라는 걸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171
그녀는 동료와 함께 엘살바도르에 관한 필름을 놓고 토론을 벌엿고, 지나가는 말로 매일 똑같은 일을 하는 게 이젠 피곤하다고 했다.
"아마 은퇴할 때가 됐나 봐"
"무슨 소리야. 당신은 여기 변호사들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해. 게다가 법조인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인정받는 흔치 않은 직업이야. 조금 오래 휴가를 가져보는게 어때? 장담컨대, 일할 욕심에 혈안이 되어서 돌아오게 될걸."
"내 삶에 새로운 계기를 부여하고 싶어. 모험에 뛰어들고, 남들을 돕고, 여태껏 해보지 못한 뭔가를 하고 싶어."
177
그녀는 정신병에 관한 모든 책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이 그 책들 속에 기술되어 있는 모든 병에 걸렸다고 믿어져서 곧 그만두고 말았다.
가장 끝찍스러운 것은 발작이 더이상 새로운 것이 아닌데도 현실에 대한 공포감, 낯설음,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무력감을 매번 똑같은 강도로 느낀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청소를 제외한 온갖 집안일을 떠맡아 두 배로 일할 수밖에 없는 남편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지나갔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마리아는 짜증을 심하게 부리기 시작했다. 걸핏하면 냉정을 잃고 소리를 질러댔고, 소란은 언제나 걷잡을 수 없는 눈물로 끝이 났다.
183
난 여기서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어. 한쪽은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쪽은 병이 완전히 나았는데도 삶의 짐을 짊어지고 싶지 않아 미친 척하는 사람들이야. 난 다시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싶어. 난 그럴 필요가 있어. 나와 관계된 결정을 나 혼자 내릴 수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해야만 해.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게로 떠밀려가진 않을 테야.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무슨 실수든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 단 한가지.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실수만 빼고.
187
lunatique 달의 영향으로 정신이상이 된 사람. 달이 뜨면 몽환에 빠지는 사람.
199
두 가지 부탁을 들어주셨으면 해요. 하나는, 내가 깨어 있을수 있도록, 내게 남은 일분 일분을 즐길 수 있도록 약이든 주사든 무엇이든 주세요. 잠이 쏟아지지만 난 자고 싶지 않아요. 할일이 너무 많아요. 내 삶이 영원하다고 믿었을 때 항상 나중으로 미루어왔던 것들요. 내 삶이 살아볼 만한 가치가 없다고 믿기 시작하면서 더이상 내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들요.
두번째 부탁은?
여기서 나가 밖에서 죽고 싶어요. 항상 내 눈앞에 있었지만, 단 한번도 가까이 다가가려는 호기심을 가져본 적이 없엇던 류블랴나 성에 가보고 싶어요. 겨울에는 군밤을, 봄에는 꽃을 파는 아줌마에게 할말이 있어요. 수없이 마주쳤는데 단 한 번도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본 적이 없거든요. 외투를 벗고 눈 속을 걷고 싶어요. 그 지독한 추위를 느끼고 싶어요ㅡ 난 감기 걸리는게 두려워 언제나 옷을 두둑이 입고 다녔거든요.
마지막으로, 이고르 박사님. 난 내 얼굴 위로 흐르는 빗물을 느껴보고 싶어요. 내 마음에 드는 남자들에게 미소를 보내고, 그들이 권하는 커피를 모두 마시고 싶어요. 늘 존재했지만 애써 감추어왔던 내 감정들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엄마에게 뽀뽀를 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품안에서 울고 싶어요. 아마 성당에도 들어가, 내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던 그 이미지들을 바라볼거에요. 이번엔 뭔가를 말해줄 것 같아요. 마음에 드는 남자가 클럽에 가자고 하면, 서슴없이 따라나서겠어요. 그리고 밤새 춤을 출 거에요. 지쳐 쓰러질 때까지. 그러고는 그와 함께 침대로 가겠어요. 이번에는 절대 그전처럼 나 자신을 통제하려 들거나 느끼지도 않는 쾌감을 느끼는 척하지 않을거에요. 난 나 자신을 송두리째 내던지고 싶어요. 한 남자에게, 도시에, 삶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에."
210
그 역시 많은 고독을 겪었기 때문에 타인의 고독을 존중할 줄 알았다.
213
에뒤아르는 이런 종류의 토론에는 신물이 났다. 바깥 세상에서는 그들이 아무리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도 우스꽝스럽게 여길게 뻔하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정신병원에 틀어박혀, 아무런 위험도 무릅쓰지 않은 채 세상을 구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사람들 각자가 모든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갖기ㅗ 있었고, 자신의 진실만이 옳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수다로 세월을 보냈다. 생각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의 문제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은 채, 좋건 나쁘건, 생각은 그것을 실천하려는 시도가 있을때에만 존재하는 것인데도.
214
수년간의 침묵을 통해 에뒤아르는 말없이 말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눈에 집중시킬 수 있었다. 베로니카가 그의 애정, 그의 사랑을 짐작했으리라는 걸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매달리는 그를 보고 마리아도 그의 절망을 이해하리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216
그래서 지난밤, 나 역시 내가 이 병원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생각해봤어. 광장에, 다리에, 사람들이 사과를 사고 날씨에 대해 얘기하는 극장 앞 시자에 있는 게 훨씬 더 신날 거라고 생각했지. 물론, 잊고 살았던 성가신 일들도 다시 시작해야겠지ㅡ 납부해야 할 고지서들, 이웃들과의 옥신각신, 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일부라고, 그 조그만 문제들을 우리의 문제로 인정하지 않고 피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맞서는 편이 결국은 수고를 더는 일이라고 생각해.
사실, 일생을 사는 동안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일은 오로지 우리 잘못에서 비롯되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그것에 대응했어. 우리는 격리된 현실이라는 쉬운 길을 택했던 거야.
217
난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 에뒤아르. 항상 저질러버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용기가 없어 포기했던 실수들을 저질러가며. 공포가 다시 엄습해올 수도 있겠지만, 그걸로는 죽지도 기절하지도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 기껏해야 날 지치게 하는 게 고작일 그 공포와 맞서 싸워가며. 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현자가 되기 위해 미치광이가 되는 법을 가르쳐줄 수도 있을거야. 난 그들에게 모범적인 삶의 교본들을 따르지 말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모험을 발견하라고, 살라고 충고할거야!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구약성서를, 회교도들에게는 코란을, 유대인들에게는 토라를, 무신론자들에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텍스트들을 인용해줄거야. 앞으로 두 번 다시 변호사 일은 하지 않을거야. 하지만 삶의 진실을 깨달았던 존재들에 대한 강연을 하면서 내 경험을 활용할 수는 있겠지. 그들이 남긴 글들은 모두 '살아라!' 이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어. 네가 산다면, 신께서도 너와 함께 살리라. 네가 위험을 무릅쓰길 거부한다면, 신께서도 하늘로 물러나 철학적 공론의 한 주제로 남으리라.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방향으로 첫발을 내디디려 하지 않아. 아마 미치광이 취급을 당할까봐 두려워서겠지. 적어도 우리한텐 그런 두려움이 없어. 에뒤아르. 우린 빌레트에서도 견뎌냈잖아.
230
세상에는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항상 똑같고 누구에게나 가치가 있는 절대적인 것들이 존재해. 사랑이 그 중 하나야.
232
네가 또 '난 곧 죽을 거야'라고 말하기 전에, 이걸 말해주고 싶어. 네가 지난밤에 경험한 그런 순간을 찾아 일생을 헤매지만 결국은 찾 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러니 네가 지금 당장 죽어야 한다면,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죽어. 넌 잃을 게 아무것도 없어. 미래와 과거와 관련된 많은 것들이 걸려 있어서 감히 사랑에 빠져들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 네 경우엔, 존재하는 건 오직 현재뿐이야.
233
나 자신의 눈으로 삶을 바라보고 싶어. 이곳에 도착했을 때, 난 실의에 빠져 있었지. 이제, 난 미친 여자가 되었어. 그리고 그게 자랑스러워. 밖에 나가면, 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할 거야. 슈퍼마켓에 가서 장도 보고, 친구들과 잡담도 나누고, 텔레비전 앞에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기도 할거야. 하지만 난 내 영혼이 자유롭다는 걸, 내가 꿈꿀 수 있다는 걸,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 존재를 짐작조차 못 했던 다른 세계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걸 이젠 알고 있어.
.. 그가 웃으면서 내게 말하겠지. '당신 미쳤군!' 그럼 난 이렇게 대답할거야. '물론이죠. 난 빌레트에 있던 여잔걸요! 광기가 날 해방시켜주었어요. 그러니 여보, 매년 휴가를 내서 나를 산으로 데려가줘요. 사의 험난함을 경험할 수 있게 말이에요. 내게 필요한 건 살아 있음의 위험을 무릎쓰는 일이니까요.'
237
난 소위 '정상적'이라는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나보다 앞서 많은 의사들이 그 연구를 했고, 정상적인 상태라는 것은 사회적 합의의 문제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달리 말하자면, 대다수 사람들이 어떤 것을 올바르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올바른게 되는거죠. 어떤 것들은 가장 초보적인 상식에 의해 좌우됩니다. 단추를 셔츠 앞쪽에 다는 것은 논리의 문제겠죠. 단추들을 옆에 달아놓는다면 채우기가 아주 어려울테고, 등뒤에 달아놓는다면 아예 불가능할 테니까요. 하지만 다른 것들은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것들은 그래야만 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정상으로 치부되는 겁니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죠. 타자기 자판의 문자들이 왜 그런 식으로 배열되어 있는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으십니까?
239
타자기와 컴퓨터의 자판은 더 빨리가 아니라 더 천천히 치게 하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문자들의 자리를 이리저리 한 번 바꾸어보세요. 그런 자판은 아마 아무도 사지 않을 겁니다. 자판을 처음 보았을 때, 마리아는 왜 문자들이 알파벳 순으로 배열되어 있지 않을까 하고 잠시 궁금하게 여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빨리 치기 위한 최선의 배치일거라 믿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240
개개의 인간은 모두 유일해요. 자기 자신마의 자질, 본능, 쾌락의 형태, 모험을 추구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사회는 집단적인 행동 양식을 강요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그런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게되죠. 그들은 그걸 받아들여요. 타자수들이 아제르티Azerty 자판이 최선의 자판이라는 사실을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였듯이, 시계바늘이 왜 왼쪽이 아니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을 만난적이 있으세요?
241
남들과 다른 존재가 될 용기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게 됩니다.
242
마리아는 다년간의 법정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즉시 그걸 활용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첫 전략은, 또 다른 추론을 전개 할 때 상대방을 손쉽게 함정으로 몰아넣기 위해 우선은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는 척하는 것이었다.
저는 새 삶을, 또 다시 하나하나 습관을 들여야만 할 새 삶을 다시 시작할 의욕을 상실했었어요.
243
난 내 영혼을 어디다 팽개쳐버린 것일까? 내 과거 어딘가에. 내 것이기를 간절히 소망한 그 삶 속에. 저는 집과 남편, 직업-해방되고 싶었지만 감히 그럴 용기가 없어 버리지 못했던- 이 있던 그 순간의 포로가 되도록 제 영혼을 방치했어요.
제 영혼은 과거속에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 이곳에 있어요. 저는 다시 이 몸 속에서 열기로 가득한 제 영혼을 느낄 수 있어요.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아는 건, 삶은 저를 다른 길로 나아가도록 부추겼지만 정작 제 자신은 그걸 원치 않았다는걸 이해하는데 삼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거에요. "
261
그들의 삶은 전혀 비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적선을 요구했고 왕들에게 아첨을 떨엇다. 법을 어기거나 권력자들의 분노에 맞섰다. 협상을 하기도 했고 완력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을 가로막는 모든 어려움을 이용할 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282
언제나 똑같은 물을 품고 있는 연못이 아니라, 넘쳐 흐르는 샘처럼 되라
난 이곳의 삶이 바깥의 삶과 동일하다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어요. 거기서도 여기처럼, 사람들은 그룹들끼리 모이고, 벽 뒤에 숨어 모르는 이가 그들의 보잘것없는 삶을 방해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해요. 그들은 습관적으로 섹스를 하죠.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들을 연구하고, 즐겨야만 하기 때문에 즐겨요. 나머지 세상이야 어찌 됐건 자기 삶만 어찌어찌 꾸려나가면 그만인 거죠. 기껏해야, 우리가 늘 그랬듯, 오로지 각종 문제들과 불의로 가득찬 세상에서 그래도 그들만은 정말 행복하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텔레비전 뉴스를보죠.
.. 하지만 사람은 변해요. 지금 나는 모험을 찾아 떠나요. 내 나이가 예순다섯이고, 이 나이 때문에 많은 제한이 따를 거라는걸 잘 알면서도. 난 보스니아로 갑니다. 거기엔 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직 그들도 내가 누군지 모르고 나 역시 그들이 누군지 모르지만요. 하지만 내가 쓸모가 있으리라는 걸, 모험에서 마주치는 위험이 천 일 동안의 안녕과 안락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걸 난 이제 알아요.
296
죽음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더 치열하게 살도록 자극한다.
297
하지만 금지된 주제에 대한 연구를 감행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몰이해에 맞설 용기를 갖추어야만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