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것은 서로의 인생이 얽혀버렸다는 사실이다. 세상에는 하찮은 인연이 끝까지 따라다니며 알게 모르게 그 사람의 인생을 잠식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연한 순간의 일이 그 사람 인생의 한 상징이 되어버리는 일도 적지 않다. 드렁칡이 된 사연부터가 그렇듯이 우리의 인생은 죽죽 뻗어가기보다는 그럭저럭 꼬여들었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 안에서 서열을 매기고 역할을 맡기고 죄과를 묻느라 수선을 떨었다. 남자의 인생과 사내들의 우주, 그 성취와 좌절에 대해 진지한 금언을 남기느라 목젖을 떨어댔으며 때로 소주잔 위에 눈물을 뿌리고 낯모르는 이의 부축을 받기도 했다. 누가 세계 최고 부자이며 최대의 바람둥이인가. 어느 나라 여자와 어느 나라 경치와 어느 나라 음식이 최고인가 아닌가 따위를 화제삼아 술을 마셨다. 끊임없이 투덜대면서도 어쨌거나 가족을 부양했고, 그런 틈틈이 겸연쩍어하면서도 모르는 척 자질구레한 죄를 저질렀다. 그러는 동안 우리 모두 공평하게 사십을 넘겼다. 만수산 드렁칡. 삶의 여정이란 것이 사실로도 칡처럼 하잘것없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었음을 깨달을 만한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러나 내 인생만은 좀 다른 것이리라 새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21
누구와도 깊이 얘기하는 것을 피했고 얘기를 한다해도 명쾌하기보다는 복잡하고 애매한 수사를 쓰기 좋아했다.
34
불만과 비관이란 세상에 대해 제대로 판단할 능력이 있는 지성인에게는 필연적으로 생기게 마련인 덕목이었다.
53
사람들은 자기에게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멈추고 돌아보니 그렇게 의식없이 보내버린 시간이 쌓여서 바로 자기 인생이 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뭐라고? 나는 좋은 인생이 오기를 바라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아직 인생다운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그런데 내가 무턱대고 살아왔던 그것이 바로 내 인생이었다고?
65
군대와 감옥에서 기쁜 일이란 시간가는 것밖에 없다는 형의 말이 맞다고 두환이 한마디했다.
76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게을러서가 아니고 사실은 자신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27
어디를 가나 사람에 치이는 일은 우리들이 태어날 때부터의 숙명이었다.
130
엮이다보면 남들은 그들을 하나의 단위로 취급한다. 단 한사람이 잘못한다 해도 그 이미지는 구성원 모두에게 파급되는 것이다. 내가 남들과 엮이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의심이 많고 대체로 남이 나만 못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132
최고가 되지 못할 바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자존심을 지켰던 것이다. 나는 일단 부딪치고 보는 조국과는 달랐다. 결과가 보장되고 완전히 조건이 갖춰져야만 뭔가 시작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었다.
138
모든 동업이 대게 그런 것처럼 부부관계는 결코 공평할 수 없다ㅡ
이것은 내 아내 운총의 입버릇인데 일리가 없지 않다. 불리한 측면을 더욱 많이 감당하는 쪽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부부가 일심동체라는 말은 부부 중 불리한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을 다독이고 구슬리려는 대단히 계산된 수사이다.
139
두환은 소희에게 수백번 되풀이했던 맹세를 얼마 전에 또 했다. 이제 다시는 고생 안 시킬게. 그리고 매우 파격적인 방식으로 그 맹세를 지켰다. 죽여버린 것이다.
170
마지막이 몇날 몇시인지 예측할 수 있다면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자기의 모습이 뭔지 생각해보고 스스로 최후를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게 자기의 살아온 인생을 제대로 정리하는 건지도 모른다.
171
자신이 순수하지 않다는 고민은 순수한 나이에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자기 삶에 아무 의미가 없다고 고민하는 삶이야말로 의미있는 삶인 것처럼.
172
인간관계란 애증이 섞여야만 깊어진다. 못보다는 나사가 벽면과의 공유면적이 더욱 많아 훨씬 더 단단히 박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아프게 할수록 관계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201
'저도 사람인데' '사람이 하는 일인데 설마' ㅡ 이런 용법에서 '사람'이란 뜻은 불완전한 구석이 있고 불합리한 인정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인간미' 라는 말도 완벽함보다는 불완전함에 대한 예찬이다.
*06。마이너리그,
사람들은 자기에게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멈추고 돌아보니
그렇게 의식없이 보내버린 시간이 쌓여서
바로 자기 인생이 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 때 그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뭐라고?
나는 좋은 인생이 오기를 바라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아직 인생다운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그런데 내가 무턱대고 살아왔던 그것이
바로 내 인생이었다고?
_
아마도 내 삶은 좀 다를 것이라고,
내 삶은 좀 더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 역시, 그리고 너 역시,
마이너리그, 은희경
작가의 말
1.의형제
2.숙부인
3.교유
4.출분
5.국상
6.출사표
7.반정
8.휴거
9.화적
10.상도
11.태평성대
해설/이성욱
17
분명한 것은 서로의 인생이 얽혀버렸다는 사실이다. 세상에는 하찮은 인연이 끝까지 따라다니며 알게 모르게 그 사람의 인생을 잠식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연한 순간의 일이 그 사람 인생의 한 상징이 되어버리는 일도 적지 않다. 드렁칡이 된 사연부터가 그렇듯이 우리의 인생은 죽죽 뻗어가기보다는 그럭저럭 꼬여들었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 안에서 서열을 매기고 역할을 맡기고 죄과를 묻느라 수선을 떨었다. 남자의 인생과 사내들의 우주, 그 성취와 좌절에 대해 진지한 금언을 남기느라 목젖을 떨어댔으며 때로 소주잔 위에 눈물을 뿌리고 낯모르는 이의 부축을 받기도 했다. 누가 세계 최고 부자이며 최대의 바람둥이인가. 어느 나라 여자와 어느 나라 경치와 어느 나라 음식이 최고인가 아닌가 따위를 화제삼아 술을 마셨다. 끊임없이 투덜대면서도 어쨌거나 가족을 부양했고, 그런 틈틈이 겸연쩍어하면서도 모르는 척 자질구레한 죄를 저질렀다. 그러는 동안 우리 모두 공평하게 사십을 넘겼다. 만수산 드렁칡. 삶의 여정이란 것이 사실로도 칡처럼 하잘것없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었음을 깨달을 만한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러나 내 인생만은 좀 다른 것이리라 새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21
누구와도 깊이 얘기하는 것을 피했고 얘기를 한다해도 명쾌하기보다는 복잡하고 애매한 수사를 쓰기 좋아했다.
34
불만과 비관이란 세상에 대해 제대로 판단할 능력이 있는 지성인에게는 필연적으로 생기게 마련인 덕목이었다.
53
사람들은 자기에게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멈추고 돌아보니 그렇게 의식없이 보내버린 시간이 쌓여서 바로 자기 인생이 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뭐라고? 나는 좋은 인생이 오기를 바라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아직 인생다운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그런데 내가 무턱대고 살아왔던 그것이 바로 내 인생이었다고?
65
군대와 감옥에서 기쁜 일이란 시간가는 것밖에 없다는 형의 말이 맞다고 두환이 한마디했다.
76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게을러서가 아니고 사실은 자신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27
어디를 가나 사람에 치이는 일은 우리들이 태어날 때부터의 숙명이었다.
130
엮이다보면 남들은 그들을 하나의 단위로 취급한다. 단 한사람이 잘못한다 해도 그 이미지는 구성원 모두에게 파급되는 것이다. 내가 남들과 엮이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의심이 많고 대체로 남이 나만 못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132
최고가 되지 못할 바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자존심을 지켰던 것이다. 나는 일단 부딪치고 보는 조국과는 달랐다. 결과가 보장되고 완전히 조건이 갖춰져야만 뭔가 시작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었다.
138
모든 동업이 대게 그런 것처럼 부부관계는 결코 공평할 수 없다ㅡ
이것은 내 아내 운총의 입버릇인데 일리가 없지 않다. 불리한 측면을 더욱 많이 감당하는 쪽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부부가 일심동체라는 말은 부부 중 불리한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을 다독이고 구슬리려는 대단히 계산된 수사이다.
139
두환은 소희에게 수백번 되풀이했던 맹세를 얼마 전에 또 했다. 이제 다시는 고생 안 시킬게. 그리고 매우 파격적인 방식으로 그 맹세를 지켰다. 죽여버린 것이다.
170
마지막이 몇날 몇시인지 예측할 수 있다면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자기의 모습이 뭔지 생각해보고 스스로 최후를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게 자기의 살아온 인생을 제대로 정리하는 건지도 모른다.
171
자신이 순수하지 않다는 고민은 순수한 나이에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자기 삶에 아무 의미가 없다고 고민하는 삶이야말로 의미있는 삶인 것처럼.
172
인간관계란 애증이 섞여야만 깊어진다. 못보다는 나사가 벽면과의 공유면적이 더욱 많아 훨씬 더 단단히 박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아프게 할수록 관계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201
'저도 사람인데' '사람이 하는 일인데 설마' ㅡ 이런 용법에서 '사람'이란 뜻은 불완전한 구석이 있고 불합리한 인정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인간미' 라는 말도 완벽함보다는 불완전함에 대한 예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