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엮인 글 ;; 인문학의 위기

이양자2006.09.28
조회297
`인문학은 지팡이 없어 못 걷는 노인학문 아니다` [중앙일보] `열림과 소통의 인문학` 해법은
기조 강연 -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인문학의 위기는 세계적 현상인가, 한국적 현상인가. 한국 인문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과 해법을 나누는 '인문 주간' 행사가 26일 시작됐다.

행사장 중 하나인 이화여대 LG컨벤션홀에서 이어령(사진) 중앙일보 고문은 "인문학은 지팡이가 없으면 걷지 못하는 노인의 학문이 아니다"며 "정치.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인문학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문학을 돕자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 조건은 지원은 하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고문의 강연 요지.

우리는 그동안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어려운 말을 하다가 인문학의 고립과 위기를 자초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아주 쉬운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중국의 본토를 잃고 국부군이 대만으로 진입했을 때 군인들은 수도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철물가게에서 수도꼭지를 사다 벽에 박고 틀어봤지만 물이 나올 리 없었습니다. 군인들은 상인에게 속은 줄 알고 가게에 쳐들어가 총을 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담론의 장을 펼치게 된 것은 수돗물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벽 뒤에 그리고 땅속에 묻혀 있는 수도관을 통해 나온다는 사실을 밝혀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문학의 위기를 외치는 인문학자들은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에 나온 각종 이익집단의 목소리와 다를 게 없을 것입니다.

인문학이란 모든 학문, 그리고 '스텝(STEP)'이라 말하는 사회(society), 기술(technology), 경제(economy), 정치(politics) 분야의 수원지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 수원지가 마르면, 그리고 수도관이 터지거나 녹슬면 문명의 발판인 STEP은 중세와 같은 페스트(PEST)로 변하게 됩니다. 말장난이 아닙니다.



 

뉴스 엮인 글 ;; 인문학의 위기

 

전국 80여개 대학교 인문대 학장들이 26일 서울 이화여대 국제교육관에서 열린 인문주간 개막식에서 '인문학 연구 및 교육에 대한 지원확대' 등의 주장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윤평현 전남대학교 인문대학장(연단 앞에 선 사람)이 성명서를 읽고 있다. 신동연 기자


똑같은 글자라도 그 우선순위를 바꿔놓으면 STEP이 PEST로 변하는 것처럼, 학문의 첫 글자였던 인문학의 우선순위가 바뀌게 되면 나라 전체가 역병에 감염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 대학들은 어떻습니까. 202개의 전국 종합대학 총장 가운데 인문계 출신의 총장은 5, 6명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지금 세계의 대학들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영대학들은 엔론의 부정 문제가 터지고 난 뒤부터 경영학을 불신하고 MBA 출신을 더 이상 우대하지 않으려는 기업풍토의 영향으로 지망생이 30%나 감소하는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 결과 경영대학들은 윤리경영 등 수도꼭지에서 수원지로 눈을 돌리는 개혁으로 지난해부터 차츰 회복세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토지 버블로 잃어버린 10년의 불황을 맞는 동안 토지자본을 지식자본으로 전향하기 위한 대대적인 대학개혁을 감행했습니다. 전국의 인문학 연구소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하는 법인화가 이뤄졌으며, 관료의 온상.망국 대학이라 불리던 도쿄대학은 교육 서비스 분야에서 트리플A의 평가를 받는 새 대학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을 찾아가면 인문학이라는 수원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인문학이란 문사철(文史哲)의 분야에서 볼 수 있듯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밝히고 깨닫게 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문학은 단순히 '등 따습고 배부르면 그만'인 실용적인 도구 학문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문과 과학을 통틀어 가리키는 '사이언스'라는 말 혹은 논리적 시스템을 뜻하는 '로지(logy)'가 아니라 상상력과 창조력을 의미하는 '시학(poetics)'이란 말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시스템과 공감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인식 기능으로 되어 있어 공감하는 능력을 잃으면 시스템 사고의 과잉으로 자폐증 현상에 이른다는 사실을 여러 실험을 통해 밝혀준 코엔 같은 학자들도 있습니다.

단순하게 말해 '휴머니티즈'라는 말 그대로 인문학의 힘은 시스템을 중시하는 다른 학문과 달리 기계가 할 수 없는 '공감(empathy)'의 능력을 길러주는 데 오늘의 큰 역할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공감은 타자에 대한 '열림과 소통'의 기능을 가져다 주는 힘으로 오늘과 같이 글로벌화하는 세계환경 속에서는 절대에 가까운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9.11 테러 이튿날 밤 예일대의 유대계 미국인 학생들은 무슬림 외국인 유학생과 함께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타인에 대한 관용과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 그것이 바로 인문학의 토대 위에 서 있는 대학의 힘이요, 인간의 문명을 움직이는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문학이 만약 농산품과 같은 상품이라면 그것은 비닐하우스에서 촉성 재배해 파는 채소가 아니라 6~7년은 길러야 상품이 되는 인삼밭이라고 하는 것을 강조해 두려고 합니다. 영어를 배우려는 사람은 많지만 영문학을 하려는 사람은 드물고, 프랑스 말을 배워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려는 사람은 있지만 불문학이나 그 역사를 전공하려는 학생은 드물다면 그것은 꽃만 꺾어 화병에 꽂는 것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값지고 뜻있는 담론이 이제부터 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수원지의 물이 오염되지 않았나부터 따져야 합니다. 진정 열림과 소통으로서의 인문학이 바로 서게 된다면 더 이상 수돗물이 수도꼭지에서 나온다는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정치가.경제인, 그리고 기술자들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뉴스 엮인 글 ;; 인문학의 위기


 

 

다른 학문 흡수에 인색` 자성 줄 이어 [중앙일보]

 대학장단 `인문한국위원회` 설치 제안
인문주간 학술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