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교육 제도의 문제점은... 무엇보다 "선행학습"의 우월성에 있는 것 같다. 뭐든지 진도보다 먼저 나가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유치원 때에 구구단을 외우고,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중학교 수학을 떼고, 중학교 때는 정석을 푸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방금 네이버 뉴스에서, 초등학교 논술 교실에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가르친다는 기사를 읽었다. 초등학교 2학년 짜리에게, 3학년에 왔으면 머리가 굳어서 늦었을 텐데 다행이라고 말했단다. 학원 강사는 무슨 근거로 그런 커리큘럼을 짜고,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아이와 부모에게 한 것일까? 그 말을 듣고 한숨 놓고 안심했을 그 아이의 부모를 생각하면 더욱 어이가 없어진다. 자기들은 삼사십 년 사는 동안 니체의 책을 한번이라도 읽어 보았을까?
이러한 사건 뒤에 있는 근거는 바로 "선행교육"이 바로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서 가장 잘 먹히는 학습법이라는 사실이다. 한글을 4살 때 떼든, 8살 때 떼든, 그 아이가 20살이 되서 얼마나 글을 잘 쓰고 읽는가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들은 생각한다. 한글을 일찍 익힌 아이는, 영재가 아닐까....하고. 문제는, 한글을 배우지 않고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바보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아직 그것을 "안 배웠을" 뿐인데, 그것을 "못 하는"아이로 평가받는 것이 우리나라 교실의 현실이다.
"떼다"라는 말은 이러한 "선행학습" 시스템에서 매우 중요한 어휘이다. 우리는 "영어를 배운다"라는 말보다 "성문 기본을 뗀다"는 말이 더 익숙하고, "수학을 배운다"는 말보다 "정석을 뗀다"는 말이 더 익숙하다. 그래서 한글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떼고, 구구단을 배우는 게 아니라 뗀다. 이러다보니 논술도 떼고, 논리학도 뗀다. 무엇을 배웠냐보다는 무엇을 뗐느냐가 중요하다. 피아노를 잘 치는 것보다 "체르니 50번을 뗀" 것이 더 중요하다. 오랜 옛날, 천자문을 떼고 동몽선습을 떼는 전통적인 교육 시스템의 현대적 진화이다. "아랫말 정도령은 5세에 천자문을 떼고..."로 시작하는 우리나라 위인전 첫 머리처럼, 얼마나 빨리 이것들을 떼 나가는가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또한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의 특징이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는 신동 "모짜르트"가 악성 "베토벤"보다 위인으로 잘 먹히는 경향이 있다. "모짜르트 태교법"이라는 제목이 나올 정도니.... "영어 신동"이라는 말도 이런 시스템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건 거의 "걷기 신동", "숨쉬기 신동"과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부모도 아이도 학교도 학원도, 무엇을 배우는 것보다 무엇을 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수업시간에 미분 설명을 듣고 미분 문제를 풀기 위해 몸부림치는 노력하는 아이보다, 학원에서 미리 미분과 문제 푸는 방법을 배워 선생님이 설명하기도 전에 척척 풀어내는 아이를 똑똑하다고 부른다. 결국 이런 아이들이 좋은 학벌을 얻는다. "선행학습"과 "학벌주의"는 같이 갈 수밖에 없다. 진짜 자기 실력과는 상관없이, 먼저 "뗀" 아이들은 자기 실력과 상관없는 "학벌"을 등에 업고 사회에 나간다.
이러한 "선행학습" 시스템의 문제는 결국, 막상 배운 것을 써 먹을 때에 발생한다. 자기가 "뗀 것"과 자기가 "배운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멀리 가지 않아도 나에게서 찾을 수 있다; 난 5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서, "체르니 50번"까지 "뗐다". 이 정도 쳤다고 하면 "우와- 피아노 꽤 잘 치겠네요"라는 질문이 당연히 나오게 된다. 하지만 나는 단지 "뗐다". 하지만 내 실력은 피아노 칠 줄 아세요?라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할 수 있지만 피아노 잘 치세요?라는 질문에는 "아니요"라고 대답하는 수준이다.;; 손가락 번호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요령것 진도를 나가며 피아노를 배웠고, 초등학교 5학년 때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것을 그만 둔 다음에는 연습장에 동그라미 칠 일도 없기에, 피아노를 연습하지 않았다.
이젠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성문 기본 영어, 성문 종합 영어 뗐다는 사실이 영어를 잘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수능 외국어 영역 점수, 토익 토플 점수는 잘 받을지 몰라도, 외국인과 의사소통하는 일, 더 나아가 좋은 글을 쓰는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고등학교 때 답만 내면 되는 물리 공부를 잘 한 아이가 아니라 , 한 현상을 가지고 끝없이 씨름하는 아이가 스티븐 호킹이 되고, 컴퓨터 자격증이 수두룩한 아이가 아닌 모든 것 다 때려치고 프로그래밍 언어와 씨름하는 아이가 빌 게이츠가 된다는 것을....
그런데도,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학교는 학생들에게 아직도 "떼기"식의 "선행학습"을 요구한다. "우리 아이는 짜라투스트라를 읽고 글을 썼다우!";;;정도의 의미가 있을까? "짜라투스트라"는 한글을 뗀 아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읽을" 수 있다.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그 아이에게 그 이상의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을 읽게 하면 그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난 문득 그게 궁금했다. 3학년이 되면 머리가 굳어서 이해할 수 없다는;; 그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할까?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나는 정말로 우연히 어느 잡지에 실린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소개글을 읽었다. 니체가 누구인지 알 바 아니던 8살짜리 꼬마는 "짜라투스트라"에 대한 소개와, 이 책에 실린 내용을 인용하며 소개하던 그 글을 읽고 며칠 밤잠을 설쳤다. 부모님이 모두 잠든 밤에 마루 소파에 혼자 앉아 엉엉 울며 며칠간을 고민한 것이다. 왜? 다른 건 하나도 기억 안나고 "1999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그 예언의 소개만 기억에 남아서...-.-;; 스물 세살 꽃다운 나이에 죽는다니... 이런 생각에... 엉엉 울던 내게 엄마는 "네가 태어나던 1977년에도 지구가 멸망한다고 했지만 아무 일없이 네가 태어났어- 절대로 1999년에 멸망 안하니까 자^^ 엄마가 보장할께!"라고 말씀하셨고, 내게는 그 말이 세상 어떤 책에 쓰인 말보다 가장 믿을 수 있는 말이었다! 후에, 내가 그 책을 너무나 문자적으로 읽었고, 현실과 상상을, 실제와 사고를 구분할 수 없는 시기인 그 나이에 읽었기에, 그것을 덜컥 믿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그 책을 읽고 그 책의 사고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비판하거나 옹호하라는 요구를 받는다고 한다. 현실과 상상을 구분해나가는 연습을 해야 하는 아이들이, 추상적인 사고 체계를 이해하라는 요구를 받는다고 한다. 그 아이들이 그 결과로 내어 놓는 논술들은 정말 그 아이들의 글일까? 아니면 고등학교 이상의 어른들이 내어놓은 글을 흉내내는 요령을 익혀 써내려가는 글일까?
막상 이런 사고와 비판을 요구하는 글을 써야하는 시기인 고등학교, 대학교 때에는 이미 이런 글을 쓰는 연습은 초등학교 때 이미 선행학습 했으므로(!) 이런 책도 읽지 않고, 이런 글도 쓰지 않으면서.... 그냥 이러겠지? "자 논술 쓰는 요령은 초등학교 때 다 배웠지? 이제 논술 써봐! 1200자 내외!"-.-;
갑자기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떠오른다. 초등학생은 이런 글을읽어야 한다!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데는 다양한 층위가 존재한다. (내가 근거로 하고 있는 인지 발달 과정은 중학교 가정 시간엔가 배웠다.) 초등학교 시절은 현실과 상상을 잘 구별할 수 없다. (그래서 종종 아이들은 세탁기 속에서 헤엄치는 광고를 보고 동생들을 세탁기 안에 넣고 돌리기도 한다 "내가 너 재미있게 해줄께"하면서;) 어릴 적 읽었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상상의 세계이자, 어린 내게는 있을 법한 세계인 것이다. 그 세계로 놀러가서 이상한 말장난을 하는 말하는 토끼도 만나고, 무서운 카드 여왕님도 만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바로 그 때의 책읽기인 것이다. 그때 독후감을 쓴다면, 이러한 상상의 세계를 다녀온 기행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대해 학자들이 분석하는 또 다른 층위의 읽기(정신분석이라던가, 기표와 기의라던가....등등)는, 바로 이러한 현실과 상상이 분리되고, 타인의 사고와 나의 사고가 다름을 인식하는 훨씬 이후(중학교 때 혼돈기를 겪은 후 비로소 가능하다고 배웠다;)에나 가능하다. 그런데,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읽고 초등학생 아이에게 이런 비판적인 글을 쓰라고 하는 것은, 이 아이에게 즐거운 여행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기들이 10개월에 걸음마를 하든 15개월에 걸음마를 하든, 그 아이가 5살 때 걷는 걸음 걸이는 똑같다. 그 아이가 기고 걷고 넘어지면서 이 세상에 대해 느낄 많은 것들을, 빨리 뛰는 것을 배우게 하느라고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10개월에 걸음마를 한 아이가 100미터를 9초에 달리고, 15개월에 걸음마를 한 아이가 20초에 달리는 것이 아니듯... 왜 우리는 일찍 걷고, 빨리 뛰지 못해 안달일까...
"짜라투스트라"를 읽는 초등학생?...
요즘 아이들은 뭐든 일찍 시작해서 빨리 배우는 게 일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의 문제점은... 무엇보다 "선행학습"의 우월성에 있는 것 같다. 뭐든지 진도보다 먼저 나가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유치원 때에 구구단을 외우고,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중학교 수학을 떼고, 중학교 때는 정석을 푸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방금 네이버 뉴스에서, 초등학교 논술 교실에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가르친다는 기사를 읽었다. 초등학교 2학년 짜리에게, 3학년에 왔으면 머리가 굳어서 늦었을 텐데 다행이라고 말했단다. 학원 강사는 무슨 근거로 그런 커리큘럼을 짜고,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아이와 부모에게 한 것일까? 그 말을 듣고 한숨 놓고 안심했을 그 아이의 부모를 생각하면 더욱 어이가 없어진다. 자기들은 삼사십 년 사는 동안 니체의 책을 한번이라도 읽어 보았을까?
이러한 사건 뒤에 있는 근거는 바로 "선행교육"이 바로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서 가장 잘 먹히는 학습법이라는 사실이다. 한글을 4살 때 떼든, 8살 때 떼든, 그 아이가 20살이 되서 얼마나 글을 잘 쓰고 읽는가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들은 생각한다. 한글을 일찍 익힌 아이는, 영재가 아닐까....하고. 문제는, 한글을 배우지 않고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바보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아직 그것을 "안 배웠을" 뿐인데, 그것을 "못 하는"아이로 평가받는 것이 우리나라 교실의 현실이다.
"떼다"라는 말은 이러한 "선행학습" 시스템에서 매우 중요한 어휘이다. 우리는 "영어를 배운다"라는 말보다 "성문 기본을 뗀다"는 말이 더 익숙하고, "수학을 배운다"는 말보다 "정석을 뗀다"는 말이 더 익숙하다. 그래서 한글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떼고, 구구단을 배우는 게 아니라 뗀다. 이러다보니 논술도 떼고, 논리학도 뗀다. 무엇을 배웠냐보다는 무엇을 뗐느냐가 중요하다. 피아노를 잘 치는 것보다 "체르니 50번을 뗀" 것이 더 중요하다. 오랜 옛날, 천자문을 떼고 동몽선습을 떼는 전통적인 교육 시스템의 현대적 진화이다. "아랫말 정도령은 5세에 천자문을 떼고..."로 시작하는 우리나라 위인전 첫 머리처럼, 얼마나 빨리 이것들을 떼 나가는가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또한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의 특징이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는 신동 "모짜르트"가 악성 "베토벤"보다 위인으로 잘 먹히는 경향이 있다. "모짜르트 태교법"이라는 제목이 나올 정도니.... "영어 신동"이라는 말도 이런 시스템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건 거의 "걷기 신동", "숨쉬기 신동"과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부모도 아이도 학교도 학원도, 무엇을 배우는 것보다 무엇을 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수업시간에 미분 설명을 듣고 미분 문제를 풀기 위해 몸부림치는 노력하는 아이보다, 학원에서 미리 미분과 문제 푸는 방법을 배워 선생님이 설명하기도 전에 척척 풀어내는 아이를 똑똑하다고 부른다. 결국 이런 아이들이 좋은 학벌을 얻는다. "선행학습"과 "학벌주의"는 같이 갈 수밖에 없다. 진짜 자기 실력과는 상관없이, 먼저 "뗀" 아이들은 자기 실력과 상관없는 "학벌"을 등에 업고 사회에 나간다.
이러한 "선행학습" 시스템의 문제는 결국, 막상 배운 것을 써 먹을 때에 발생한다. 자기가 "뗀 것"과 자기가 "배운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멀리 가지 않아도 나에게서 찾을 수 있다; 난 5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서, "체르니 50번"까지 "뗐다". 이 정도 쳤다고 하면 "우와- 피아노 꽤 잘 치겠네요"라는 질문이 당연히 나오게 된다. 하지만 나는 단지 "뗐다". 하지만 내 실력은 피아노 칠 줄 아세요?라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할 수 있지만 피아노 잘 치세요?라는 질문에는 "아니요"라고 대답하는 수준이다.;; 손가락 번호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요령것 진도를 나가며 피아노를 배웠고, 초등학교 5학년 때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것을 그만 둔 다음에는 연습장에 동그라미 칠 일도 없기에, 피아노를 연습하지 않았다.
이젠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성문 기본 영어, 성문 종합 영어 뗐다는 사실이 영어를 잘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수능 외국어 영역 점수, 토익 토플 점수는 잘 받을지 몰라도, 외국인과 의사소통하는 일, 더 나아가 좋은 글을 쓰는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고등학교 때 답만 내면 되는 물리 공부를 잘 한 아이가 아니라 , 한 현상을 가지고 끝없이 씨름하는 아이가 스티븐 호킹이 되고, 컴퓨터 자격증이 수두룩한 아이가 아닌 모든 것 다 때려치고 프로그래밍 언어와 씨름하는 아이가 빌 게이츠가 된다는 것을....
그런데도,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학교는 학생들에게 아직도 "떼기"식의 "선행학습"을 요구한다. "우리 아이는 짜라투스트라를 읽고 글을 썼다우!";;;정도의 의미가 있을까? "짜라투스트라"는 한글을 뗀 아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읽을" 수 있다.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그 아이에게 그 이상의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을 읽게 하면 그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난 문득 그게 궁금했다. 3학년이 되면 머리가 굳어서 이해할 수 없다는;; 그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할까?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나는 정말로 우연히 어느 잡지에 실린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소개글을 읽었다. 니체가 누구인지 알 바 아니던 8살짜리 꼬마는 "짜라투스트라"에 대한 소개와, 이 책에 실린 내용을 인용하며 소개하던 그 글을 읽고 며칠 밤잠을 설쳤다. 부모님이 모두 잠든 밤에 마루 소파에 혼자 앉아 엉엉 울며 며칠간을 고민한 것이다. 왜? 다른 건 하나도 기억 안나고 "1999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그 예언의 소개만 기억에 남아서...-.-;; 스물 세살 꽃다운 나이에 죽는다니... 이런 생각에... 엉엉 울던 내게 엄마는 "네가 태어나던 1977년에도 지구가 멸망한다고 했지만 아무 일없이 네가 태어났어- 절대로 1999년에 멸망 안하니까 자^^ 엄마가 보장할께!"라고 말씀하셨고, 내게는 그 말이 세상 어떤 책에 쓰인 말보다 가장 믿을 수 있는 말이었다! 후에, 내가 그 책을 너무나 문자적으로 읽었고, 현실과 상상을, 실제와 사고를 구분할 수 없는 시기인 그 나이에 읽었기에, 그것을 덜컥 믿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그 책을 읽고 그 책의 사고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비판하거나 옹호하라는 요구를 받는다고 한다. 현실과 상상을 구분해나가는 연습을 해야 하는 아이들이, 추상적인 사고 체계를 이해하라는 요구를 받는다고 한다. 그 아이들이 그 결과로 내어 놓는 논술들은 정말 그 아이들의 글일까? 아니면 고등학교 이상의 어른들이 내어놓은 글을 흉내내는 요령을 익혀 써내려가는 글일까?
막상 이런 사고와 비판을 요구하는 글을 써야하는 시기인 고등학교, 대학교 때에는 이미 이런 글을 쓰는 연습은 초등학교 때 이미 선행학습 했으므로(!) 이런 책도 읽지 않고, 이런 글도 쓰지 않으면서.... 그냥 이러겠지? "자 논술 쓰는 요령은 초등학교 때 다 배웠지? 이제 논술 써봐! 1200자 내외!"-.-;
갑자기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떠오른다. 초등학생은 이런 글을읽어야 한다!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데는 다양한 층위가 존재한다. (내가 근거로 하고 있는 인지 발달 과정은 중학교 가정 시간엔가 배웠다.) 초등학교 시절은 현실과 상상을 잘 구별할 수 없다. (그래서 종종 아이들은 세탁기 속에서 헤엄치는 광고를 보고 동생들을 세탁기 안에 넣고 돌리기도 한다 "내가 너 재미있게 해줄께"하면서;) 어릴 적 읽었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상상의 세계이자, 어린 내게는 있을 법한 세계인 것이다. 그 세계로 놀러가서 이상한 말장난을 하는 말하는 토끼도 만나고, 무서운 카드 여왕님도 만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바로 그 때의 책읽기인 것이다. 그때 독후감을 쓴다면, 이러한 상상의 세계를 다녀온 기행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대해 학자들이 분석하는 또 다른 층위의 읽기(정신분석이라던가, 기표와 기의라던가....등등)는, 바로 이러한 현실과 상상이 분리되고, 타인의 사고와 나의 사고가 다름을 인식하는 훨씬 이후(중학교 때 혼돈기를 겪은 후 비로소 가능하다고 배웠다;)에나 가능하다. 그런데,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읽고 초등학생 아이에게 이런 비판적인 글을 쓰라고 하는 것은, 이 아이에게 즐거운 여행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기들이 10개월에 걸음마를 하든 15개월에 걸음마를 하든, 그 아이가 5살 때 걷는 걸음 걸이는 똑같다. 그 아이가 기고 걷고 넘어지면서 이 세상에 대해 느낄 많은 것들을, 빨리 뛰는 것을 배우게 하느라고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10개월에 걸음마를 한 아이가 100미터를 9초에 달리고, 15개월에 걸음마를 한 아이가 20초에 달리는 것이 아니듯... 왜 우리는 일찍 걷고, 빨리 뛰지 못해 안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