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던 영화였다. 의 몇몇 에피소드를 만들었던 감독이 만든 영화고, 선댄스영화제 개막작이고, 뭐 그런 정보들도 구미를 더욱 당기게 했지만, 무엇보다도 '네 명의 여자친구들 이야기'라는 것이 끌렸다. 여자+친구+거기다 제목이 말하듯 돈까지 더해졌을 때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웬간한 극장에서는 개봉하지 않는 '그런 류'의 영화였고, 결국 놓쳤다. 그리고 평소 같으면 정말 안 하는 짓 중 하나,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이 영화를 보았다. 집중도가 50% 이상은 떨어졌을 것이 분명하고, 그래서 지금 쓰는 글 역시 이 영화의 당도를 50% 이상 떨어지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영화 속 네 명의 여자들 중 세 명은 돈이 많다. 프래니는 갑부고, 크리스틴은 꽤 잘 나가는 작가고, 제인은 유명짜한 디자이너다. 단 하나 올리비아만 일당 65달러와 50달러 사이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가정부다. 돈 많은 세 친구들은 결혼을 했고, 돈 없는 올리비아는 독거처녀다.
이런 구도에서 그럴듯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 감독이라면 제일 돈 많은 프래니는 남편이 바람이라도 나서 우울증에 시달리고, 독거처녀 올리비아는 자기 주장이 확실하고 줏대 있는 싱글쯤으로 만들었을 텐데, 이 영화 전혀 다른 길로 간다.
공동작업으로 작품을 쓰고 있지만 도무지 이해라고는 모르는 남편 데이빗과 일상에서는 늘 부딪히며 결혼의 파국으로 치닫는 크리스틴이나, 디자이너로서 명성도 얻었고 자상하고 세심하고 섬세한 취향의 남편(애런)도 있지만 무기력과 짜증에 빠져 있는 제인과 달리, 프래니는 등장인물 중 가장 안정된 정서(까탈스러운 독거처녀 올리비아를 끝까지 챙기려는 넓은 오지랖이라니)와 부부관계를 자랑한다.
또 선생을 하다가 아니다 싶어 때려치우고 가정부로 일하는 독거처녀 올리비아는 관객이 보기엔 사기꾼에 또라이로 한눈에 견적 나오는 남자(프레니의 헬스 트레이너)한테도 휙휙 잘 넘어가는 맹탕에다가 오래 전 헤어진, 자신을 원나잇스탠드 상대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결혼한 전 남자친구 집에 전화해서 만나달라고 애걸하는 지지리궁상까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나 싶다.
그럼 뭐냐, 도대체 이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게. 별로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보여준다. 20대 때 사귄(그때는 취향도 처지도 계급도 비슷했겠지.) 친구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이 들어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는지.
그들은 자선파티든 일상적인 사교모임이든 부부동반 저녁식사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들의 대화는 위태위태한 외줄타기 같다.
부자 애들 가르치는 선생질 그만두고 가정부 따위나 하는 올리비아를 세 친구들이 이해할 수 없고, 화장품 매장을 다 돌며 같은 브랜드 샘플을 모아 쓰는 올리비아가 자선파티에 100만달러를 선뜻 내놓는 프래니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또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고 평안해 보이지만 위태로운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크리스틴이 돈도 많고 금슬도 좋아뵈는 프레니 앞에서 자신의 실체가 드러나길 바라지 않을 것이고, 부와 명성을 다 얻은 제인이 왜 저렇게 까탈스럽고 신경질적으로 구는지 친구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화기애애 웃으며 대화를 한다. 그들의 화기애애를 방해하는 것은 거의 언제나 올리비아다. 프래니의 남편 마이크는 올리비아의 자존심이 구겨지는 것은 생각도 않고(그럴 수 있다는 것조차 전혀 모르는 얼굴로)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가정부 일을 하는 올리비아에게 왜 가정부를 하냐고 꼬치꼬치 묻는다. 매번 올리비아가 가정부라는 것이 식탁의 주제로 올라와 친구들이 한목소리로 걱정한다. 물론 올리비아가 가만히 듣고만 있지 않기 때문에 화기애애한 식탁에 'Fuck'을 내뱉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만찬은 화기애애를 유지한다.
이유는, 서로에게 진심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진심이 드러나는 대목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각자 자신의 남편 혹은 애인과 차를 타고 있는 그 시간이다. 프레니가 행복한 것은 '돈이 많기 때문'이라고 비꼬고, 크리스틴은 남편과 1년에 채 1번도 섹스를 하지 않는다고 뒷담화를 한다. 제인의 남편 애런은 분명 게이일 것이라고 수근거린다. 진심이 드러나는 이 공간에서 화기애애한 만찬의 불순물 올리비아는 유일하게 온전한 동정과 측은지심의 대상이 된다.
예전에 어느 영화잡지에서 읽은 이 영화에 대한 글에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표현이 있었다. 속 30대 그녀들의 진심은 그녀들이 함께 모인 공간에서 힘을 발휘했지만, 속 40대 그녀들의 진심은 헤어지는 길에서 나타난다고. 중년 여성의 관계는 서로의 불행으로 유지된다고.
글쎄,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부정할 수만은 없는 현실이 담겨 있다는 생각도 든다. 골다공증과 루게릭병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 아무리 샴푸를 바꾼들 달라질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된 나이가 되었을 때, 타인의 불행으로 자신을 안심시키는 것이 관계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것.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내 나이 마흔살에 봐도 좋을 것을, 왜 이렇게 빨리 봐 버렸을까, 후회 비슷한 느낌이 든 것은.
돈 많은 친구들
내 나이 마흔살에 알 게 될 것들
보고 싶던 영화였다. 의 몇몇 에피소드를 만들었던 감독이 만든 영화고, 선댄스영화제 개막작이고, 뭐 그런 정보들도 구미를 더욱 당기게 했지만, 무엇보다도 '네 명의 여자친구들 이야기'라는 것이 끌렸다. 여자+친구+거기다 제목이 말하듯 돈까지 더해졌을 때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웬간한 극장에서는 개봉하지 않는 '그런 류'의 영화였고, 결국 놓쳤다. 그리고 평소 같으면 정말 안 하는 짓 중 하나,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이 영화를 보았다. 집중도가 50% 이상은 떨어졌을 것이 분명하고, 그래서 지금 쓰는 글 역시 이 영화의 당도를 50% 이상 떨어지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영화 속 네 명의 여자들 중 세 명은 돈이 많다. 프래니는 갑부고, 크리스틴은 꽤 잘 나가는 작가고, 제인은 유명짜한 디자이너다. 단 하나 올리비아만 일당 65달러와 50달러 사이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가정부다. 돈 많은 세 친구들은 결혼을 했고, 돈 없는 올리비아는 독거처녀다. 이런 구도에서 그럴듯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 감독이라면 제일 돈 많은 프래니는 남편이 바람이라도 나서 우울증에 시달리고, 독거처녀 올리비아는 자기 주장이 확실하고 줏대 있는 싱글쯤으로 만들었을 텐데, 이 영화 전혀 다른 길로 간다. 공동작업으로 작품을 쓰고 있지만 도무지 이해라고는 모르는 남편 데이빗과 일상에서는 늘 부딪히며 결혼의 파국으로 치닫는 크리스틴이나, 디자이너로서 명성도 얻었고 자상하고 세심하고 섬세한 취향의 남편(애런)도 있지만 무기력과 짜증에 빠져 있는 제인과 달리, 프래니는 등장인물 중 가장 안정된 정서(까탈스러운 독거처녀 올리비아를 끝까지 챙기려는 넓은 오지랖이라니)와 부부관계를 자랑한다. 또 선생을 하다가 아니다 싶어 때려치우고 가정부로 일하는 독거처녀 올리비아는 관객이 보기엔 사기꾼에 또라이로 한눈에 견적 나오는 남자(프레니의 헬스 트레이너)한테도 휙휙 잘 넘어가는 맹탕에다가 오래 전 헤어진, 자신을 원나잇스탠드 상대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결혼한 전 남자친구 집에 전화해서 만나달라고 애걸하는 지지리궁상까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나 싶다. 그럼 뭐냐, 도대체 이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게. 별로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보여준다. 20대 때 사귄(그때는 취향도 처지도 계급도 비슷했겠지.) 친구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이 들어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는지. 그들은 자선파티든 일상적인 사교모임이든 부부동반 저녁식사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들의 대화는 위태위태한 외줄타기 같다. 부자 애들 가르치는 선생질 그만두고 가정부 따위나 하는 올리비아를 세 친구들이 이해할 수 없고, 화장품 매장을 다 돌며 같은 브랜드 샘플을 모아 쓰는 올리비아가 자선파티에 100만달러를 선뜻 내놓는 프래니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또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고 평안해 보이지만 위태로운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크리스틴이 돈도 많고 금슬도 좋아뵈는 프레니 앞에서 자신의 실체가 드러나길 바라지 않을 것이고, 부와 명성을 다 얻은 제인이 왜 저렇게 까탈스럽고 신경질적으로 구는지 친구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화기애애 웃으며 대화를 한다. 그들의 화기애애를 방해하는 것은 거의 언제나 올리비아다. 프래니의 남편 마이크는 올리비아의 자존심이 구겨지는 것은 생각도 않고(그럴 수 있다는 것조차 전혀 모르는 얼굴로)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가정부 일을 하는 올리비아에게 왜 가정부를 하냐고 꼬치꼬치 묻는다. 매번 올리비아가 가정부라는 것이 식탁의 주제로 올라와 친구들이 한목소리로 걱정한다. 물론 올리비아가 가만히 듣고만 있지 않기 때문에 화기애애한 식탁에 'Fuck'을 내뱉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만찬은 화기애애를 유지한다. 이유는, 서로에게 진심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진심이 드러나는 대목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각자 자신의 남편 혹은 애인과 차를 타고 있는 그 시간이다. 프레니가 행복한 것은 '돈이 많기 때문'이라고 비꼬고, 크리스틴은 남편과 1년에 채 1번도 섹스를 하지 않는다고 뒷담화를 한다. 제인의 남편 애런은 분명 게이일 것이라고 수근거린다. 진심이 드러나는 이 공간에서 화기애애한 만찬의 불순물 올리비아는 유일하게 온전한 동정과 측은지심의 대상이 된다. 예전에 어느 영화잡지에서 읽은 이 영화에 대한 글에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표현이 있었다. 속 30대 그녀들의 진심은 그녀들이 함께 모인 공간에서 힘을 발휘했지만, 속 40대 그녀들의 진심은 헤어지는 길에서 나타난다고. 중년 여성의 관계는 서로의 불행으로 유지된다고. 글쎄,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부정할 수만은 없는 현실이 담겨 있다는 생각도 든다. 골다공증과 루게릭병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 아무리 샴푸를 바꾼들 달라질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된 나이가 되었을 때, 타인의 불행으로 자신을 안심시키는 것이 관계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것.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내 나이 마흔살에 봐도 좋을 것을, 왜 이렇게 빨리 봐 버렸을까, 후회 비슷한 느낌이 든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