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좀비 영화의 매력

이대근200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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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다 가버리기 전에, 약속했던(누구랑?) 몇 가지 일들을 서둘러 끝마쳐야겠다. 우선, 좀비 이야기. 사실 공포 영화에 대한 총괄적이고 체계적인 이야기를 이번 방학 동안 시도해볼 작정이었는데, 현재 내가 처해있는 상황으로 볼 때 결코 쉽사리 통제할 수 없는 몇 가지 이유들로 인해, 이 왕성한 창작 욕구는 잠시 한 켠에 빼돌려 둘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공포 영화 이야기도 글쎄, 우선 내가 겉으로 떠들고 다니는 것만큼 공포 영화에 통달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시점에서 고백한다면, ‘총괄적이고 체계적인 공포 영화 이야기’가 ‘좀비’라는 작은 이야기로 축소되어버린 사정에 대한 작은 변명 정도는 될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호러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흔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반화된 개념인 ‘호러 마니아’로 인정받기에는 몇 가지 자격 요건이 부족함을 부인할 수 없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공포 영화’가 아닌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호러 마니아)’에 대한 심리학적이고 인류학적인 ‘논문’을 작성할 계획을 품고 있기 때문에-이 시간에는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거의 광적으로 열광하다시피 하는 매력적인 장르 영화인 ‘좀비 영화’에 대해서 작지만 상세한 분석이 담긴 넋두리를 늘어놓아 보고자 한다.


이 시간, 여기 이 공간에서 자의로든 타의로든 이 매력적인 ‘좀비’라는 주제가 이야기의 핵심으로 자리를 지키기를 고집하고 있는 동안, 나는 나의 솔직한 삶의 태도와 가치관, 이성과 논리의 근거에 대해서 거짓 없이 실토해야만 하는 기분 좋은 위험의 순간들과 수차례나 마주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내가 정말로 특이한 취향을 지니고 있는 놈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순간, 처음 만나는 흥미진진한 사람들에게 내 자신을 어필해야만 하는 순간에는 언제나 ‘나는 이상하지 않다’는 사실을 대전제로 깔아두고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는 편이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체계적이고도 신중한 노력은, 나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녀석’으로 인식하게 되는 일을 ‘실질적으로’ 저지하는 데에는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일들로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하니, 또다시 나에게나, 읽는 독자에게나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주제인 ‘사회 저변’이니 ‘이념적 헤게모니’, ‘이데올로기적 인식 오류’ 따위의 개념들이 머리 속에 난무하기 시작하는데, 편의를 위해서 간략하게만 언급하고 끝내도록 하겠다. 나의 가장 큰 억울함, 나의 이러한 ‘존재론적 마이너리티’의 개념은 분명히 대한민국이라는 특수한 사회에서나 의미가 있는 것이지, 나는 내가 어느 순간 국경을 넘어 어디로든 갈 경우, 그곳에서 이 사회와 같은 불합리하고 소외된 ‘지위’로 전락하게 되는 일은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좀비영화를 좋아 한다’고 나의 취향을 솔직하게 고백했을 때, 그와 관련된 부연 설명이 뒤따르지 않고는 필연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의 이해 또는 공감을 구하는 일이 어려울 수밖에 없음을, 알고는 있지만 납득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내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짜증이 날 정도로 많이 고민하게 된 원인 중 하나이다. 내가 ‘멜로 영화를 좋아 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른, 그 ‘멜로 영화’라는 특별한 장르가 나에게 어떤 식으로, 어떤 형태로 기쁨 또는 카타르시스를 만끽하게 해주는 지를 머릿속으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공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비 영화’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장르의 매력에 대한 적절하고도 이해 가능한 어휘나 개념들을 얼른 떠올리지 못한다. 때문에 나는 항상 그와 관련된 부연 설명을 시도하거나, 아니면 이해도 공감도 바라지 않는다는 식의 자포자기 상태로 돌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사실을 말하자면,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 나의 행동 패턴은 당연히 후자 쪽이었다. ‘그래요 저 이상한 놈입니다요’. 아니, 난 이상하지 않다구! 좀비 영화가 얼마나 잼있는데! 내가 인식하는 좀비 영화의 매력이란 액션이나 멜로, 코미디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대중적 장르의 영화들이 지닌 매력과 성격을 크게 달리 하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많은 이들에게 이해시키고, 그들로부터 공감도 얻어내고 싶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 쓰고 있는 글의 취지가 바로 그런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따지고 보면 나는 아직 글쓰기가 민망할 정도로 미숙한데다, 알고 있는 지식도 얕은 수준이라서 이런 종류의 글에 논리적인 힘을 부여하는 재주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어쩌라고? 전에도 몇 차례 강조했지만, 내가 무슨 학계에서 발표될 논문을 작성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나에게는 젊음과 열정이 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계속 해나갈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나의 존재와 관련된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


우선 ‘좀비 영화를 좋아 한다’는 너무도 직설적이고, 솔직한 감정에 대해서 읽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내보도록 하자. 내가 좀비 영화를 좋아하게 된 사연은, 굉장히 오래된 과거로까지 이야기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까 그 시절, 하루의 반나절을 코 흘리는 친구들과 함께 고무 딱지를 바닥에 튕기거나 ‘오징어가세’를 하며 보내고, 아파트 앞 아스팔트 위를 집 안방 장판마냥 맨몸으로 굴러다니던 그 시절부터, ‘비디오 대여점’이라는 공간은 나에게는 ‘작은 로망’에 해당하는 거룩한 장소였다. 그 시절에 우리 부모님들의 바지 허벅지를 콧물과 눈물로 범벅이 되게끔 아이들의 졸라댐을 부추겼던 비디오 타이틀의 대부분은 물론 나 , 따위의 애니메이션이었지만(이 부분의 추억의 ‘예’를 보편적인 차원이 아닌 나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특수한 차원’으로 적용시켜보자면, , , 등 소녀취향의 애니메이션들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전에도 포스트 등을 통해서 언급한 사실인데, 어린 시절 집안에서 애니메이션 타이틀 선택 권한의 90%는 나보다 2살 위인 누이에게 있어, 대부분 꼬마 애 들이 열광했던 메카닉 애니메이션과 나는 만족할 만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수월하지 않았다. 물론 여기서 주지할만한 사실은, 당시 나는 이것에 대해 어떤 불만도 품어 본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들도 비슷한 또래의-약간 조숙한-남자애들이 보기에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열악한 조건 하에서도 나름대로 ‘어른들의 영역’에 어느 정도의 관심을 할당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정말로 인기가 좋은 영화 타이틀이 공개가 될 경우, 동네 꼬마들 사이에서 외국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흥미진진한 화제로 자리를 잡게 되는 ‘신기한 상황’도 몇 차례 발생하기는 하였지만, 그건 정말로, 지금 생각해도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극도로 적은 횟수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예컨대 나 같은 영화들이 출시되었을 때가 그러했다. 물론 나중에 꼬마 애들이 ‘아이들의 위한’ 대부분의 훌륭한 애니메이션들을 외면한 채 , 등의 무술 영화들로 달려간 시절이 있기는 하였으나, 그 ‘시대’의 나는 이미 아스팔트 바닥과 안방 장판의 목적론적 차이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명확한 이해에 도달한 단계였기 때문에, 이 경우에 그 이야기를 적용시키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아무튼, 그 어린 시절에 나 같은 꼬마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들 이외의 다른 ‘영화’들에 관심을 돌리는 것을 사실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천지도 모르는 그 나이에 무엇이 좋은 영화고 영화의 어떤 내용이 훌륭한 것인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그러한 ‘가능성’으로부터 완전히 배제시키는 것 또한 불합리한 일이기는 하다. 좋은 영화를 고르는 안목이 어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이 좋은 영화의 좋은 점들을 하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연치 않게 ‘좋은 영화’를 감상하게 된 행운을 누리게 된 아이는 그 스스로 그러한 ‘에피파니’의 가치를 내면으로 소화하고, 받아들이게 될 경우, 한 단계의 영적 진보를 이룩할 감동적인 기회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어린 시절 낮 동안에 멋모르고 들이켰던 커피 한모금의 영향으로 그러한 ‘기억할만한’ 일들을 몇 차례는 경험하였는데, 그 중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일은 아주 늦은 시간까지 자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토요 명화’를 보았던 일이다. , , 등이 당시 나에게 현현한 ‘계시’를 내려주었던 기억할만한 작품들이었다. 아무튼, 동네 꼬마들 중 대다수는 이런 식으로 자신만이 알고 있는 ‘좋은 영화’(물론 이는 아이들 내면의 숙성과정을 통해서 충분히 검증을 끝마친 개념이었다) 한두 편에 대한 이야기 거리를 모아놓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열악하기는 하였으나 나름대로 ‘영화’에 대한 소통이 아이들 사이에서 가능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희한한 일은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추억거리를 끄집어내자니 내 자신이 너무도 만족스러워 이야기의 주제를 놓치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는데, 얼른 정신을 차리고, 빨리 이 포스트의 화두로 올라있는 ‘좀비 영화’란 사냥감을 탐색하는 일로 되돌아와야겠다. 그러니까 그 코 흘리던 시절에도 내가 비디오 가게에서 전적으로 애니메이션 코너에만 관심을 집중하지 않았던 것은 인류학적으로 분석해 봐도 특별한 사례에 해당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일반 영화 코너에서 서성거리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것도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었으며, 그들은 당시 그들이 이룩한 로고스적 성찰의 수준에서는 절대로 제대로 된 이해에 도달할 수가 없는 난감한 영화들의 케이스를 들고는 뭔가 기대할만한 대단한 것이 적혀있기라고 한 것처럼 케이스 뒷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던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케이스에 그려진 그림들에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시켰기 때문이었다. 자, 당연한 이야기지만, 느끼한 마스크의 남자배우와 요염한 화장의 여자배우가 정열적인 눈빛을 교환하는 드라마 장르 쪽에서는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시킬만한 요소란 존재하지도 않았다. 옷도 제대로 못 챙겨 입은 아가씨들이 뭔가 잘 못 먹은듯한 표정으로 온몸을 뒤틀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성인 영화 코너는, 물론 아이들의 주의를 끄는 일에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으나, 그런 영화의 케이스에 손을 댈 만큼 용기 있는 아이들이 적어도 당시 내 주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동네 꼬마들의 호기심어린 시선과 손길의 주된 대상은 언제나 ‘공포 영화’들이었는데, 어린 시절 최고로 재미있게 읽은 책이 ‘괴수대백과 사전’이었다고 말한 서태지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무서운 이야기와 그림들이 아이들의 한결같은 관심의 대상이었다는 것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사실인 것이다. 하지만 ‘공포 영화’가 아무리 아이들의 관심을 끌만한 요소들을 가득 품고 있었다고 해도, 아이들의 비디오 대여 목록에서 여타의 애니메이션들보다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는데, 이 기묘한 현상의 원인은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관람 등급’과는 큰 관련이 없다. 물론 멋모르고 빌린 공포 영화에서 섹스장면이나 여성의 나체가 등장해 부모님께 혼쭐이 나게 되는 난감한 상황들이 공포 영화를 아이들로부터 멀어지게 했던 원인들 중 하나라는 것은 부인할 수는 없지만,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이보다 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답을 요구하고 있다. 바로 ‘무서웠기’ 때문이다. 흥미는 가지만 아이들이 결국 공포 영화 케이스를 계산대로 들고 가지 못했던 이유,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무서웠기 때문’인 것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나는 보편적인 기준에서 판단해보면, 겁이 많은 편에 속한다. 어릴 때도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겁이 많았다. 공포 영화 케이스만 보고도 악몽을 꿀 정도였으니 대충은 짐작을 할 것이다. 아무튼 겁도 무진장 많은 주제에, 나는 우리 동네의 어떤 꼬마보다도 많은 시간을 비디오 대여점의 공포 영화 코너에서 보냈으며, 당시 나의 탐욕스러운 시선과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들 중에는 지금부터 자세히 이야기하게 될 좀비 영화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뒤에 자세히 언급하게 되겠지만, 좀비 영화들 중에서 명성 있는 작품들은 국내에 온전한 형태를 지닌 채 출시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으며(라기보다는 아예 없었다), 당연히 비디오 대여점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들도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소수였기 때문에, 유달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작품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국내 출시 명 ‘좀비오’)와 (국내 출시 명 ‘쟘비’)였다. 미리 언급해두자면, 이 영화들은 좀비 영화계에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작품들로, 비록 많이 삭제당하기는 하였으나 이런 훌륭한 영화들이 국내에 적절한 시기에 소개가 되어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그 자체로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라 할 만하다. 물론 그렇다고 이 영화들이 이나 같은 유명한 공포 영화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명성 있는 작품이라도 ‘좀비’라는 장르의 영화는 언제나 한국에서는 비주류였으며, 위에 언급한 유명한 좀비 영화 두 편도 이 글을 읽게 될 사람들 중에서 본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리라고 스스로 납득해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뒤에 좀 더 자세히 하기로 하고, 나의 어린 시절에서 , 는 가장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이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결국 나는 그 비디오를 빌리지 못했다. 여기에는 ‘무서웠기 때문’이라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 이외에 그 어떤 부차적인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 글이 더 지루해지는 것을 통제하고자, 여기서 성급한 결론에 도달해보기로 하자. ‘가장 무서운 존재’에 대한 ‘가장 깊은 관심’이 좀비 영화에 대한 나의 ‘애정’의 시발점이다. 그렇다, 나는 공포 영화를 좋아하고, 언제나 ‘좀비 영화’가 나에게 가장 거대한 두려움을 안겨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기에 ‘좀비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다. 무서우면 무서울수록 좋은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공포 영화의 본질이다!!!!!



이 정도-앞 문단의 내용 정도-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으리라 낙관하지는 않겠다. 많은 이들이 짐작하고 있을 테지만, 나는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 일을 취미로 삼고 있을 정도로 이 일에 재미를 느끼고, 나름대로 능숙해져 있기는 하지만, 특별한 ‘목적’을 정해두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이 흥미진진한 일에 매달리게 될 경우, 이 작업을 하기 위한 육체적인 스태미나의 양을 몇 배나 초과하는 가공할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글의 취지를 의식하지 않는 차원에서 작업을 진행시키려고 노력해왔다. 물론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가장 두드러지는 부작용이란, 다름 아닌 글이 논점을 잃고 가고 싶은 방향으로 마음대로 나아간다는 것인데, 이 점을 많은 지인들로부터 지적당하기는 하였으나, 앞 문장에서 언급한 특별한 사정 때문에 내가 이 문제를 쉽게 통제할 수 없다는 것도 내 입장에서는 모두가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사정들 중의 하나이다. 그래도 딴에는 ‘부작용’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척’이라도 해야지 욕을 조금이라도 덜 얻어먹겠지? 서둘러서, 그리고 안정적으로 진행하자. 하지만 ‘좀비 영화’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야기의 주제 노선에 안정적으로 올라서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것은 어쩌면 좀비 영화가 초기 조지 로메로의 걸작들로부터 세월이 지나 완전한 비주류로 전락하기까지의 과정들에 대한 분석과도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근본적인 이야기, 그 일체의 것. 지금부터 시작해보겠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최초의 좀비 영화는 조지 로메로의 1968년 작 이다. 물론 그 이전에 벨라 루고시가 출연한 나 등의 좀비 영화가 있기는 하였으나,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공포의 대상’으로서 ‘좀비’의 개념을 완성시킨 것은 전적으로 조지 로메로의 공로였다. 그러니까 이 장르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대상의 개념을 일반화시키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좀비’는 원래 아이티 섬 부두교의 주술과 관련이 있는 존재인데, 간단히 말하면 ‘약에 취한 시체 같은 노동자’를 일컫는 말이었다. 아이티 섬에 존재하는 어떤 특수한 약(아마도 마약)을 먹은 인간은, 며칠간 신체가 가사 상태가 되어 겉에서 보기에는 완전히 죽은 존재처럼 변한다고 한다. 당연히 주위 사람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장사를 지내는데, 물론 그는 실제로는 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며칠 뒤 의식이 돌아와 무덤을 뚫고 살아나오게 된다. 하지만 당연히 며칠간의 가사 상태의 영향으로 뇌에 손상을 입은 그는 정상적인 사고력과 이성적 판단력을 상실하게 되고, 오로지 주술사가 제공하는 마약에만 본능적으로 반응하여 행동하게 된다. 이렇게 마약에 길들여진 좀비는 주술사의 통제에 따라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하는 좀비의 실체이다. 엄밀히 말하면 ‘리빙 데드’ 즉 살아서 돌아다니는 시체는 아닌 것이다. 더군다나 그 시체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니? 이 놀라운 발상은 분명 획기적인 것으로, 나는 이를 근거로 들어 ‘좀비’와 관련된 모든 이론의 원조 자격을 조지 로메로에게 부여하고 싶다. 물론 좀비 장르의 이야기 내러티브와 이것은 다른 문제이다. 조지 로메로의 이 리처드 매드슨의 괴기 소설 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물론 조지 로메로 본인으로부터 그 말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믿을 수도 없거니와,(실제로 는 이 공개되기 이전인 1964년에 라는 제목으로 한 차례, 그리고 1971년에 이라는 제목으로 또 한 차례, 즉 두 차례나 영화화 되었지만, 분위기상 이 작품들이 조지 로메로의 영화들과 비슷한 면모를 보이고 있지는 않았다. 물론 의 영화화는 어떻게 표현해내느냐에 따라서는 상당히 좀비 아포칼립스와 유사한 양태로 드러날 수 있는 개연성을 품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조지 로메로에게 부여되는 면죄부는 내 입장에서는 너무도 타당하고, 오히려 이탈리아의 스파게티 호러 쪽에서 와 유사한 설정들이 발견된다는 것은 이 시점에서 반드시 밝혀두고 싶은 중대한 진실 중의 하나이다. 조지 로메로의 의 세계적인 성공 이후 이탈리아에서 쏟아져 나온 ‘좀비’ 아류작 들 중에서 라는 작품이 내가 판단하기에는 와 가장 가까운 작품이다. 물론 최근작 중에서도 대니 보일 감독의 가 리처드 매드슨의 모티브를 받아들였다는 느낌도 든다.) 애초에 괴물이 등장해서 사람들을 습격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고만고만한 발상에서 출발하고 있어 어느 것이 원조니 하는 소모적인 논쟁에는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은 것이 내 입장이기 때문이다. 에 등장하는 아포칼립스의 모티브를 따지고 올라가면 가까운 시대의 리처드 매드슨이 아니라 H.P 러브크래프트나 브람 스토커, 메리 셸리의 상상력, 아니 아예 성경의 진짜 묵시록에서도 유사점을 찾을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길게 이야기 해봤자 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훌륭한 좀비 영화’란 애초에 스토리에 큰 구애를 받지 않았다. 조지 로메로가 을 작업하던 당시에는 말 그대로 풋내기 영화감독에 불과했으며 당시 재정적으로 궁핍했던 그로서는 적은 자본으로 영화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이외에는 달리 힘을 쏟을 방향성이란 것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물론 속편인 과 에서 그가 보여준 풍자 내러티브는 그에게 ‘거장’이라는 칭호를 안겨줄 정도로 인상적인 것이긴 하였으나, 어쨌든 좀비 영화에서 스토리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살아난 시체들의 밤. 좀비의 역사가 시작되다!)


은 B급 호러의 상징과도 같은 걸작인데, 여기서 등장하는 ‘B급 호러’란 상징적인 의미에서 뿐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의미에서도 적용이 되는 개념이다. 즉, 우리가 흔히 ‘걸작’이라고 칭송하는 조지 로메로의 은, 안타깝게도 처절한 아마추어리즘이 영상 곳곳에서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는 굉장히 어설픈 작품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작품에 대한 효과 있는 비방이 되지는 못한다. 조지 로메로가 이 영화를 만들 당시의 환경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박수를 쳐야 마땅한 일이지, 이 상황에서 누군가 그를 비난할 수 있는 타당한 근거는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조지 로메로는 이 조잡한 영화 한편으로 당당히 주류 영화계의 관심을 받는 크리에이터로 등극하고, 1편과는 비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제작 환경의 지원을 받아 드디어 좀비 영화 전설의 걸작인 을 완성하게 되는데, 바야흐로 세상에 ‘좀비’라는 존재가 알려지게 된 것도 이 작품에 의해서였다.


 

(흑백 영상에 허접한 분장들로 디테일한 묘사와는 거리가 멀었던 전작에 비해 크게 진보한 특수효과와 내러티브의 완성도를 보여준 걸작)


은 뭐라고 해야 할까... 뭐라고..... 정말로, 그 어떤 찬사의 수식어도 이 영화 앞에서는 초라한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대단한 작품이었다. 과장되게 말하자면, 이 작품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좀비 영화’라는 장르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이 작품으로 인해서 ‘좀비 장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증폭되었던 것이다. 은 외국으로 수출이 되면서 라는 제목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당연히 이로 인해서 조지 로메로의 영화에 등장하는 괴물들이 ‘좀비’라는 개념으로 세계인들의 인식 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이 영화의 대본에는 어디에도 ‘좀비’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외국에 소개가 된 는 단순히 대중들에게 강렬한 서스펜스 적 충격을 안겨주는데 그치지 않고, 말 그대로 ‘좀비 열풍’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센세이셔널한 파장의 주인공이 되었는데, 특히 미국만큼이나 영상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유럽에서 이 장르의 매력에 대해 관심어린 시선을 보낸 것은 별로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다. 특히 이탈리아 출신의 감독들이 에서 받은 강렬한 영감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공포 영화들을 창조해내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감독이 을 조지 로메로와 함께 작업했던 ‘다리오 아르젠토’와 스파게티 호러의 거장인 ‘루시오 풀치’이다.


  (루시오 풀치의 대표작 )


루시오 풀치의 대표작인 는 이미 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지 로메로의 (유럽에는 라는 제목으로 소개가 됨)의 뒤를 잇는, 대놓고 ‘아류작’일 것을 표방한 영화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작품은 조지 로메로의 좀비 영화들과는 확연히 구분이 되는 두드러지는 매력을 몇 가지 지니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루시오 풀치의 상징 아니, 이탈리아 스파게티 호러 전체의 상징과도 같은 다소 끈적한 고어 씬의 연출이었다. 특히 샤워중인 여인이 좀비의 습격을 당하는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데, 조지 로메로가 소극적이었던(그래서 아마 많은 사람들을 실망하게 했던) 공포 영화의 전형적인 연출 아이템인 ‘알몸의 여인’ 시퀀스에도 이 영화는 바람직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데다, 여인이 결국 뾰족한 나무 조각에 의해 눈알이 파괴되어 죽는다는 끔찍한 연출은, 이탈리아 스파게티 호러가 지닌 강렬하면서 독특한 매력을 한 눈에 확인하게 해준 가장 완성도 높은 양태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후 루시오 풀치는 이런 유의 고어 연출에 맛을 들이게 되어, 그가 연출한 영화에는 항상 (아무리 별 볼일 없는 영화라 해도)볼만한 고어씬 한 장면은 꼭 들어있다는, 호러 마니아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언급되는 속설이 등장하게 되었다.


 

(역시 공포 영화에 이런 장면이 빠지면 섭섭하다)


이후 유럽 쪽에서는 루시오 풀치가 직접 제작한 의 속편들은 물론이거니와 ‘루시오 풀치 좀비 영화의 아류’를 표방한 B급 좀비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 영화들의 대부분은 루시오 풀치와 마찬가지로 끈적끈적한 고어씬 들에 치중한 일관된 성향의 영화들이었다. 물론 다리오 아르젠토 적인 오컬트 감성이 결합된 독특한 좀비 영화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비슷비슷한 느낌의 공포와 재미를 선사하는 좀비 영화들로 굳어지는 것이 유럽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조지 로메로의 고향인 미국은 그 양상이 완전히 달랐는데, 이는 조지 로메로의 입장에서나, 우리 좀비 광들의 입장에서나,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한 꽤나 흥미진진한 양상이었다.


‘포스트 조지 로메로’를 표방한 재기 넘치는 신예 호러 감독들의 괴상망측한 상상력의 근원에 대해서 논하는 일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괴기 소설의 거장 ‘H.P 러브크래프트’에 대한 재조명이다. 러브크래프트는 그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며 초월적인 창조력으로 영화, 만화, 게임 등 다방면의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영화에서는 특히, 극도로 마니악한 장르인 좀비 영화와 크리처 호러 장르에 끼친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인 과 , 으로 대표되는 ‘크툴루 전설’의 이야기는 영화의 크리처 호러 장르에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동양권에 소개가 되면서 일본 환상 문학이나 만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몬스터들에 대한 영감을 제공해주었으며, 유럽 문화권에서도 환상 문학과 ‘던전 앤 드래곤’ 등의 T-RPG 설정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러브크래프트의 문학 속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아이콘인 ‘전설의 책 ’은 그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한 설정들로 스튜어트 고든, 브라이언 유즈나, 토브 후퍼, 샘 레이미, 클라이브 바커 등의 재기 넘치는 영화감독들에게 강렬한 영감을 주었다. 조지 로메로의 ‘좀비’를 H.P 러브크래프트의 그로테스크 감성과 결합시키려는 눈에 띄는 작업을 최초로 시도했고, 또 그로 인해 주목을 받았던 최초의 인물이 지금은 로 흥행 감독의 반열에 올라선 ‘샘 레이미’이다. 그의 1982년 작 는 러브크래프트의 을 소재로 삼아 조지 로메로 식의 좀비와 흡사한 괴물과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으로 제작된, 너무도 끔찍하지만 흥미진진한 걸작 공포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샘 레이미가 보여준 상상력이란, 조지 로메로의 발상에서 단순히 외형적인 꾸밈에만 치중했던 루시오 풀치와 다리오 아르젠토 등의 ‘관록 있는’ 호러 감독들의 발상과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바야흐로 호러 영화계에 젊은 감독들의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가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음을 알린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고 할 만하다.


 

(샘 레미이의 재기넘치는 상상력의 산물 )

 

 

(H.P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은 실제하지는 않으나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의 크로테스크한 창조적 영감의 기폭제가 되었다.)

 

‘천재’ 스튜어트 고든과 브라이언 유즈나가 그 ‘재능’을 유감없이 뽐내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절이었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의 천재성과 괴짜성을 닮은 캐릭터를 표현해내는 일에 의도적인 흥미가 동했다는 듯이, H.P 러브크래프트의 라는 작품에 기괴한 손질을 가하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탄생한 걸작 는 샘 레이미의 이후 여러 크리에이터들의 관심을 끌게 된 ‘좀비 스플래터’라는 장르를 획기적인 발상으로 완성시키며 공포 영화사에 그 거룩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펌]좀비 영화의 매력

(좀비 스플래터의 걸작! 는 좀비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작품으로 칭송받을 정도로 절정의 완성도와 오락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스튜어트 고든의 기발한 상상력은 이렇게 '호러 영화 역사상 가장 선정적인 장면'으로 기록될 정도로 대단히 자극적인 고어+에로틱의 영상을 창조해내게 된다.)

 


이렇듯 젊고 재기 넘치는 영화감독들에게 ‘좀비’란 너무도 매력적인 소재였다. 그들은 이 장르를 통해 오락영화의 극한까지도 도달할 수 있다는 ‘심각한 착각’에 빠지기 까지 한 것 같은데, 그러한 시도가 엿보였던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이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Based on True story’라는 발칙한 문구를 내걸며 오락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조지 로메로의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소문은 좀비 마니아들의 기대심리가 낳은 다소 황당무계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대놓고 의 아류임을 표방하고 있는 (이 영화의 원제는 ‘The Return of The Living Dead’로 한 눈에도 조지 로메로의 의 아류임을 알 수 있는 제목이다)이 도입부에 ‘이 영화는 실화에 기초한다’는 당돌한 문구를 깔아 버리다니, 아마 많은 이들이 ‘이런 정신 나간 것들’ 하며 혀를 찼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는 과연 ‘제대로 정신 나간 영화’란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 영화의 말도 안 되는 설정들과 극도로 오락적인 상상력의 수위에 대해서는 이런 글들을 통해 자세히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한 번 보라. 그러면 저절로 ‘미친...!’ 이라는 단말마와 함께 상상할 수 없는 오락적 쾌감에 도달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극도로 오락적인 좀비 영화’. 재기 넘치는 크리에이터들의 통제 불능의 상상력은 결국 저러한 말도 안 되는 영화까지 완성시켜 버린 것이다.


 

(이건..정말.. 말이 필요없는... 핀로드가 뽑은 최고로 재미있는 좀비 영화??)


조지 로메로의 ‘좀비’는 남반구의 크리에이터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뉴질랜드 출신의 피터 잭슨의 대표작 는 이블데드-리애니메이터를 거쳐 가며 기틀을 잡아 오던 좀비 스플래터 장르가 극한의 완성도에 도달했음을 보여준 걸작 중의 걸작이었다. 이 영화는 유의 경쾌한 오락성에 테마를 맞추고 있으면서도, 나 를 능가하는 가공할 스플래터 영상을 보여주는 일에도 소극적이지 않아, 훗날 과 등의 작품으로 B급 정서를 통해 주류 영화계의 지배적 헤게모니와 소통하는 피터 잭슨 식의 탁월한 재능을 엿보여준 최고의 영화라고 할 만하다.


 

(피터 잭슨의 B급 감성을 만끽할 수 있는 명작 )


조지 로메로의 이후 활성화된 좀비 장르 영화계에 뛰어든 재기 넘치는 몇몇 감독들과 그 감독들의 괴상하면서 매력적인 영화들로 인해 발생했던 긍정적인 영향들은 앞의 문단에서 그 영화들을 소개함과 동시에 대충 모두 언급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부정적인 측면들도 존재한다. 이 영화들은 어떤 측면에서는, 대단히 흥미진진한 작품들이지만,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건 한 마디로 ‘난장판’이 아니고 무언가? , , , ... 정말 맨 정신으로는 보기 힘든 이런 영화들은 좀비 영화계를 광기가 지배하는 난장판의 소굴로 만들어버렸고, 90년대 이후 이 장르가 호러의 주류 장르에서 완전히 밀려나 버린 것에도 큰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자기들끼리 신나서 영화를 만든 것 까지는 좋은데, 이후 후발주자들이 이 장르에 뛰어들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해버린 것이다. ‘아니 좀비 영화는 전부 이래야 하나? 이게 영화야? 이게 제정신으로 만든 영화가 맞아?’ 도대체 ‘어떤’ 상상력이라야지 와 같은 영화들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인가? 일반적인 천재적인 영감과는 다른 이질적인 느낌의, 그러니까 ‘허버트 웨스트’ 유의 광기의 천재성만이 도달할 수 있는 그런 영역. 그곳으로 좀비 장르는 혼자 멋대로 달려와 버린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피터 잭슨의 이후 좀비 장르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몰락으로 향해가던 좀비 장르에 대한 구원의 손길은 의외로 지금껏 이 장르에서 이렇다할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작은 섬나라, 일본에서 시작된다. 그것도 영화가 아닌 ‘게임’에서. 나와 비슷한 세대 또는 나보다 젊은 세대의 좀비 마니아들은 나같이 오랜 세월동안 품어왔던 이 장르에 대한 ‘짝사랑’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 같은 좀비 소재의 게임들을 통해 좀비라는 존재를 알아왔고, 그 매력을 이해해왔다. 물론 조지 로메로의 시체 시리즈 같은 전통적인 좀비 영화들이 선사하는 매력과 이런 종류의 액션 게임으로 느낄 수 있는 재미는 분명히 성질을 달리하는 것이긴 할 테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구분될 만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실제로 의 모티브는 조지 로메로의 시체 시리즈이며, 애초에 ‘호러 게임’을 표방하고 있는 이런 게임의 서스펜스의 강도는 ‘게임’이라는 기묘한 조건하에서도 결코 소극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미 내가 앞 문단에 뭐라고 언급을 했는가? 이 시점에 ‘좀비 장르’는 완전한 ‘난장판’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니 여기서 무엇이 전통이고 무엇이 법칙이니 하는 것들을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 ‘사람을 잡아먹는 시체’라는 원형만 유지된다면 그것으로 뭔 짓을 하든지 그건 곧 하는 놈의 자유. 그야말로 ‘다 받아주어라’의 시대였던 것이다. 아무튼 이런, ‘게임 세대’라는 저변의 지원을 받아 드디어 밀라 요보비치 주연의 액션 영화 로 좀비 장르는 화려한 부활을 알리게 되고, 이후 의 리메이크 작인 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좀비 장르는 새로운 중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여세를 몰아 전통파 좀비의 모습을 현대적 감각으로 완성시킨 조지 로메로 감독의 20년 만의 속편인 는 영화 자체의 완성도를 떠나서 그 자체로 상징적 의미가 큰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는 전통적인 형식으로 제작되었지만 의외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데 성공한다.)


2007년. 기대되는 작품들에 대한 정보가 속속 공개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좀비 장르’는 여전히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이제는 좀비 마니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시리즈의 3번째 작품과 35년 만에 다시 영화화되는 (윌 스미스 주연)까지... 이러한 시점에서 나는 ‘좀비 장르’를 이해하기 위한 구체적인 논리와 지식을 강조하고픈 마음은 없다. 지금까지 길게 적어놓은 내용들에서 그와 관련된 정보는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거니와, 실제로 나는 그런 것들이 존재하는지 알고 있지도 못하다. ‘좀비 장르’는 현재는 안타깝게도 비주류에 머물러 있지만 그 기상천외하고 엽기적인 난장판의 상황에서도 결국은 살아남았고, 이제는 주류 영화계에까지 조금씩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 다시 한 번 처음의 주장을 반복하겠다. 나는 이상하지 않다. 좀비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조금도 ‘유별한 취향’이 아니다. 좀비 장르는 원래 지독하게 재미있는 장르였고, 세월이 지나 지금의 멜로나 액션, 코미디 장르처럼 많은 대중들의 유쾌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일도 특별할 것도 없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좀비, 만세!!!!


 


  (2007년 개봉 예정인 의 원작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