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급 영화이면서도 단순 오락에 머물지 않는 뭔가가 있는 듯한, 스필버그가 가진 나름의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필버그 영화에 별로 감흥을 느껴본 적이 없다. 오락영화든 쉰들러리스트처럼 노골적으로 아카데미를 겨냥하고 만든 영화든 이상스러울 정도로 눈길이 가지 않았고, 결국은 최근 몇 년 동안은 스필버그의 영화를 극장에서 만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을 만나고야 말았다. 내 귀를 얇게 만드는 몇몇 사람들의 추천이 있던 데다가, 무엇보다도 어제 저녁 영화를 보아야만 하는 약속이 있었는데 요즘이 딱 볼 만한 영화가 없는 시기였다. 투사부일체, 흡혈형사 나도열, 백만장자의 첫사랑, 구세주, 등등... 그 중에서 뭘 보겠냐고. -_-;;;
사실,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검은9월단'이 뮌헨올림픽에 참가한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잡아 인질극을 벌이다 전원 사살한 실화는, 오히려 영화보다도 더 영화같은 이야기다.
최근 한국의 인질극 실화로 영화를 만든 '홀리데이'가 개봉한 바도 있지만, 영화보다 훨씬 영화같은 실화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비록 홀리데이를 보지 못했지만, "실제 그 사건을 접했던 그때의 충격이 너무 커서 그런지 영화를 보는 내내 오히려 감흥이 없고 뭔가 아쉽더라"는 한 지인의 평에 고개를 끄덕였더랬다. 영화보다 훨씬 극적인 실화는 그 사건을 재현하는 것으로는 감동을 불러오기 어려울 거란 짐작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스필버그는 을 통해 영화보다 더 극적인 뮌헨올림픽의 테러라는 실화를 재현하는 어리석음 대신 테러 이후 이스라엘의 복수극에 초점을 맞춰 가해자의 심리극으로 영화를 이끌어간다.
스필버그는 2시간 40분이라는 기나긴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이 이스라엘의 암살단 리더인 에브너(에릭 바나)와 함께 국가와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한 사명감과 분노, 반복되는 복수에 대한 의구심, 공포, 허무를 고스란히 체험하게 하는 테러(!)를 자행하는 것이다.
기나긴 러닝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은 걸 보면 스필버그가 능력 있는 감독인 것 맞나 보다. 고전적인 범죄 스릴러 영화처럼 어둡고 축축한 화면과 주인공 에릭 바나를 비롯한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는 긴 러닝타임을 느낄 새 없이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드니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지루한 테러공방을 적과 아, 선과 악의 경계를 구분짓던 007시리즈류의 이분법을 떠난 암살자의 심리드라마로 그려낸 스필버그의 판단은 이스라엘로부터도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국가로부터도 면죄부를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올바름을 부여한다.
9.11테러 이후 함무라비 법전의 정신을 되살려 이라크를 응징한 미국이란 나라에서, 흥행보증수표인 주류영화 감독이 복수극의 지루함과 무의미함을 상기시켰다는 것에 대해서는 극찬이 나올 수도 있다.
더구나 스필버그 감독은 유태인이 아니던가.
그.러.나...
난 에 별 감흥이 없다. 연속되는 복수를 통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면서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것, 가해자 역시 누군가(국가, 민족, 이데올로기)의 피해자라는 것,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얘기다. 가까운 예로 한국에서 천만 관객을 불러들인 '태극기 휘날리며'도 비슷한 류의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물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얘기라고 해서 영화로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스필버그만의 새로운 이야기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몇 줄짜리로 정리될 이야기를 2시간 40분 동안 주절주절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효용성 면에서 한참 떨어져 보인다. 심리드라마를 만들려면 제대로 주인공 에브너(에릭 바나)의 내면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하지 않았을까? 2시간 넘게 이야길 들었는데도 뭔가 얘길 하려다 만 듯한 찝찝함이 남는다.
암살자의 심리에 깊이 천착하지 않은 드라마는 테러리즘에 대한 양비론적 휴머니즘으로 귀결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 휴머니즘이란 것도 영화 내내 수십번 반복되는 단어인 '가족'이라는 설명되지 않는 가치로 대체된다. 도대체 스필버그가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처럼 느껴지는 '가족'의 실체가 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모르겠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가족(형제)처럼 불쾌함까지는 아니었지만 미진함, 찝찝함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나마 극장을 나오면서 "유태인의 자기변명을 들은 느낌"이라는 일행의 말에 이 영화가 이룬 성과가 아예 없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테러리즘과 복수에 대해 제고할 수 있는 기회는 제공한 셈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미약한 성과를 위한 2시간 40분은 너무 길고 그 깊이는 너무 얕다.
뮌헨
다 좋은데, 그래서 뭐지?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를 만들었다면, 아카데미와 관객들은 우선 기대를 한다.
블록버스터급 영화이면서도 단순 오락에 머물지 않는 뭔가가 있는 듯한, 스필버그가 가진 나름의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필버그 영화에 별로 감흥을 느껴본 적이 없다. 오락영화든 쉰들러리스트처럼 노골적으로 아카데미를 겨냥하고 만든 영화든 이상스러울 정도로 눈길이 가지 않았고, 결국은 최근 몇 년 동안은 스필버그의 영화를 극장에서 만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을 만나고야 말았다. 내 귀를 얇게 만드는 몇몇 사람들의 추천이 있던 데다가, 무엇보다도 어제 저녁 영화를 보아야만 하는 약속이 있었는데 요즘이 딱 볼 만한 영화가 없는 시기였다. 투사부일체, 흡혈형사 나도열, 백만장자의 첫사랑, 구세주, 등등... 그 중에서 뭘 보겠냐고. -_-;;;
사실,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검은9월단'이 뮌헨올림픽에 참가한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잡아 인질극을 벌이다 전원 사살한 실화는, 오히려 영화보다도 더 영화같은 이야기다.
최근 한국의 인질극 실화로 영화를 만든 '홀리데이'가 개봉한 바도 있지만, 영화보다 훨씬 영화같은 실화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비록 홀리데이를 보지 못했지만, "실제 그 사건을 접했던 그때의 충격이 너무 커서 그런지 영화를 보는 내내 오히려 감흥이 없고 뭔가 아쉽더라"는 한 지인의 평에 고개를 끄덕였더랬다. 영화보다 훨씬 극적인 실화는 그 사건을 재현하는 것으로는 감동을 불러오기 어려울 거란 짐작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스필버그는 을 통해 영화보다 더 극적인 뮌헨올림픽의 테러라는 실화를 재현하는 어리석음 대신 테러 이후 이스라엘의 복수극에 초점을 맞춰 가해자의 심리극으로 영화를 이끌어간다.
스필버그는 2시간 40분이라는 기나긴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이 이스라엘의 암살단 리더인 에브너(에릭 바나)와 함께 국가와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한 사명감과 분노, 반복되는 복수에 대한 의구심, 공포, 허무를 고스란히 체험하게 하는 테러(!)를 자행하는 것이다.
기나긴 러닝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은 걸 보면 스필버그가 능력 있는 감독인 것 맞나 보다. 고전적인 범죄 스릴러 영화처럼 어둡고 축축한 화면과 주인공 에릭 바나를 비롯한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는 긴 러닝타임을 느낄 새 없이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드니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지루한 테러공방을 적과 아, 선과 악의 경계를 구분짓던 007시리즈류의 이분법을 떠난 암살자의 심리드라마로 그려낸 스필버그의 판단은 이스라엘로부터도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국가로부터도 면죄부를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올바름을 부여한다.
9.11테러 이후 함무라비 법전의 정신을 되살려 이라크를 응징한 미국이란 나라에서, 흥행보증수표인 주류영화 감독이 복수극의 지루함과 무의미함을 상기시켰다는 것에 대해서는 극찬이 나올 수도 있다.
더구나 스필버그 감독은 유태인이 아니던가.
그.러.나...
난 에 별 감흥이 없다. 연속되는 복수를 통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면서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것, 가해자 역시 누군가(국가, 민족, 이데올로기)의 피해자라는 것,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얘기다. 가까운 예로 한국에서 천만 관객을 불러들인 '태극기 휘날리며'도 비슷한 류의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물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얘기라고 해서 영화로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스필버그만의 새로운 이야기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몇 줄짜리로 정리될 이야기를 2시간 40분 동안 주절주절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효용성 면에서 한참 떨어져 보인다. 심리드라마를 만들려면 제대로 주인공 에브너(에릭 바나)의 내면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하지 않았을까? 2시간 넘게 이야길 들었는데도 뭔가 얘길 하려다 만 듯한 찝찝함이 남는다.
암살자의 심리에 깊이 천착하지 않은 드라마는 테러리즘에 대한 양비론적 휴머니즘으로 귀결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 휴머니즘이란 것도 영화 내내 수십번 반복되는 단어인 '가족'이라는 설명되지 않는 가치로 대체된다. 도대체 스필버그가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처럼 느껴지는 '가족'의 실체가 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모르겠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가족(형제)처럼 불쾌함까지는 아니었지만 미진함, 찝찝함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나마 극장을 나오면서 "유태인의 자기변명을 들은 느낌"이라는 일행의 말에 이 영화가 이룬 성과가 아예 없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테러리즘과 복수에 대해 제고할 수 있는 기회는 제공한 셈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미약한 성과를 위한 2시간 40분은 너무 길고 그 깊이는 너무 얕다.
2006. 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