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 최강 "YMCA야구단" 이야기!

정회석200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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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 최강 "YMCA야구단" 이야기!

영화 ‘YMCA 야구단’ 2006년 봄, 야구 때문에 온 국민이 행복한 보름을 보냈다. 월드베이스클래식 대회.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3월의 기적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면서 야구공 하나에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렸고, 우리 국가대표팀이 펼쳐 보인 기적 같은 드라마에 가슴이 뜨거워지곤 했다. 이제 대회는 끝났고 선수들이나 손에 땀을 쥐고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들은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갔지만, 3월의 기적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은 하나둘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한국 야구사 101년에 지금처럼 신바람 나고 즐거웠던 적은 없다’는 말에, 우리 야구사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생각나는 영화, 바로 ‘YMCA 야구단’.

우리나라에 야구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05년이다. 이 무렵 미국에서 선교사로 온 질레트(Gillett)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황성기독교청년회 회원들에게 야구를 가르친 것이 바로 한국 야구의 시작이다. 질레트는 훗날 ‘길예태(吉禮泰)’라는 한국 이름을 가질 만큼 우리나라에 야구를 보급하기 위해 애를 쓴 인물이다. 영화 ‘YMCA 야구단’은 바로 이 무렵의 풍경을 재미나면서도 쓸쓸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선비 이호창(송강호)은 글공부보다 운동을 더 좋아한다. 선비이면 으레 그렇듯 그의 유일한 꿈은 과거를 통해 출사를 하는 것. 그러나 구한말 혼돈기에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그는 삶의 목표를 잃고 별 볼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YMCA회관에서 야구를 하는 선교사들과 신여성 민정림(김혜수)을 보게 된다.

야구에 대한 호기심과 민정림에 대한 호감으로, 호창은 신문물인 야구를 시작하게 된다. 민정림이 발 벗고 나서고, 호창의 죽마고우 류광태(황정민)과 일본 유학생 출신 오대현(김주혁) 등과 함께 YMCA 야구단을 결성하게 된 것이다.

영화 속의 이야기는 물론 당시 상황을 기초로 한 가상의 이야기지만, 있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구한말은 옛 것과 새 것이 만나 충돌하던 시대였다. 옛 것의 향수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새 것을 맹신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옛 것과 새 것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한다. 이호창 같이 구식 지식인들은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야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을사조약이 강제로 맺어지면서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 본색은 더욱 노골화되고, 망국의 그림자는 점점 짙어지면서, 야구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또 하나의 돌파구가 된다. 적어도 사각의 그라운드, 야구장 안에서만큼은 일본을 이겨도 무방하다는 것.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희망의 빛이라곤 단 한 줄기도 찾을 수 없던 시대에, 야구시합은 망국의 울분으로 가득 찬 젊은이들, 더 나아가서는 조선사람들의 꽉 막힌 가슴을 뚫어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다른 어떤 국가 대항보다도 한`일전에 우리가 열뜨는 이유는 이때부터가 아니었을까?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면서도 침략과 저항의 역사로 얼룩진 한`일의 역사 때문에 한`일전은 지금도 뜨겁다. 지금까지 수많은 한`일전이 있었지만, WBC의 한`일전은 시계바늘을 100년 전으로 되돌리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1905년 한국 최초의 야구단도 물론 일본을 이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무렵 조선 사람들은 일본팀과 시합을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감격스러워했다. 현실 어디에서도 일본과 대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01년이 지난 지금은 다르다. 일본과 대적했을 뿐만 아니라, 세 번의 경기 중 두 번 일본의 콧대를 납짝하게 했다. 그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질만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