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못 볼 거란 느낌이 들면, 어떻게 해서든 보려는 오기 같은 게 날 극장으로 이끈 영화다.
그저 한번 볼까, 생각했는데... 화요일까지밖에 안 한단다. 그래서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화요일 밤 극장으로 뛰어갔다.
영화를 본 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씨제이와 사이더스가 만든 연애 3부작의 최종 결정판'이란 홍보문구가 눈에 띈다. , , 그리고 ... 그러고 보니 세 편을 다 봤다.
전작 2편에 대한 나의 평은 '엄지손가락 번쩍'이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는?
글쎄...올씨다...이다.
영화 자체로 본다면, 극장을 나올 때의 느낌이 그런대로 좋았던, 괜찮은 영화였다. 그리고, 여러가지 생각도 많이 하게 해주는 영화였고.
그러나 이 영화가 과연 연애 3부작 중 마지막 영화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왜 영화제목을 '연애'라고 지었을까 궁금했으니까.
는 연애영화일까?
물론, 이 영화의 주인공 어진(혹은 윤정)은 연애를 한다. 그리고 흔히 연애영화에 나올 법한 판타지 위에서가 아니라, 지지리 궁상이다 못해 약 먹고 콱 죽는 게 나을 것 같은 현실 위에서 낯선 떨림과 설렘을 경험한다.
연기생활 16년만에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는 배우 전미선은 연애로 도입할 당시, 누구나(판타지 위에 있든 끔찍한 현실 위에 있든) 겪을 수밖에 없는 미묘한 떨림, 어색함을 과장 없이 표현한다.
호기심과 약간의 호감이 담긴 민수(장현성 분)가 던진 "나랑 친구할래요?"는 한번도 제대로 된 연애는 못한 채, 먹기 싫은 과자까지 담겨 있는 종합선물세트같은 결혼부터 치러버린 어진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러나 어진에게 떨림과 흥분을 던져준 "친구할래요?"는 민수에게는 '쿨'하게 손익계산서를 뽑을 수 있는 '편안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연애의 달콤한 흥분 뒤의 끔찍한 대가를 치르고 어진은 다시 혼자가 되지만, 살아있는 한 마지막 연애란 없다는 전화친구 하늘(김유석 목소리)의 말대로, 어진의 연애는 여기서 끝이 아닐 듯하다.
연애란, 어진처럼 끔찍한 파국을 겪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비극적 종말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미친 짓, 인 결혼으로 막을 내리든, 사랑이 증오의 감정으로 변질되든, 가슴 아픈 이별로 결말을 내든, 연애의 종착역은 결국 언해피엔딩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기에, 두렵지만 설레는 연애를 기다리고 갈망하고, 또 그런 기회가 오면 몸과 마음을 내던진다. 연애는, 그래서 미친 짓이기도 한 것이다.
는 호스티스물일까?
그리 많이 보지 않았으나 80년대를 주름잡던 영화장르는 시리즈로 대표되는 호스티스물이다. 지금은 호스티스물이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하는지 임권택 감독의 에서 그 계보는 끊긴 것 같다.
는 끊어진 한국영화의 호스티스물 계보를 잇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카드빚 5백만 원도 갚을 능력이 없는 남편과 사는 어진이 흐르고 흘러 보도방 여자가 된다는 설정은, 이전 호스티스물들이 갖고 있는 설정(가난한 집안을 구하기 위해 시골에서 상경해 공장을 다니다 돈 많이 벌 수 있다는 유혹에 이끌려, 혹은 성폭력 이후 성매매여성이 된다는 식의)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1980년대에서 2000년대로 시간이 흐른 만큼 10대 말 20대 초의 여자가 아니라 30대 기혼여성이 그 주인공이란 점, 결혼한 아줌마 성매매여성 수요가 유흥가의 노래방 수만큼이나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점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전의 호스티스물들이 짓밟힌(?) 성매매여성의 절규를 통해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발했다면, 의 성매매여성들은 특별히 불쌍한 비련의 여주인공이라기보다 직업여성의 일부로 보인다.
물론, 직업여성의 일부로 보인다고 해서 성매매여성에 대해 '버려진 여자' '걸레'라는 인식이 사라졌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 성매매여성을 짓밟는 가부장적 폭력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욱 강화됐다.
그러나 는 거기에 남자의 계급문제를 하나 더 얹는다. 돈없는 섹스수요자 남성들의 추태와 돈많은 섹스수요자 남성의 고상한 매너와 친절은 확실히 대비된다.(주인공 어진이 돈많은 섹스수요자 민수에게 '연애' 감정을 느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다고 돈많은 섹스수요자 남성의 손을 들어주진 않는다. 민수의 '쿨'한 거래는 돈많은 남성의 면죄부를 한순간에 갈갈이 찢어버린다. 오히려 관계와 믿음, 거기다 자존심의 밑바닥까지 철저히 파괴한다는 점에서 돈많은 남성의 폭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는 성매매여성과 한 남자의 연애와 파국 속에서 간단치 않은(선과 악이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비정함을 드러낸다.
는 여성영화일까?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제일 꽂혔던(!) 부분은 어진의 연애담이 아니었다. 보도방에서 만난 김여사(김지숙 분)와 동료 성모(윤다경 분), 지혜(오윤홍 분) 등 동료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어느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보여주지 못한 자매애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어진을 보도방으로 안내한 김여사는 어진을 성매매여성으로 이끈 포주(!)이지만, 어진을 비롯한 그녀들에게는 든든한 방패막이요, 냉철한 상담자이다. 이 영화를 보며 딱 한번 눈물이 찔끔 났는데, 김여사가 스스로 옷을 벗고 노래를 함으로써 진상들을 퇴치(?)하는 장면에서였다.
물론, 이들에게 꽂힐 수 있었던 건 연극판에서 내놓라 하는 여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력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김지숙이야 이름만 대도 다 아는, 말이 필요 없는 배우고, 윤다경은 '밀애'의 휴게소 매맞는 여자로, 오윤홍은 '강원도의 힘'에서 처음 봤던 그 분위기 있는 배우다.
아무튼, 그녀들의 거침없고 당당함, 동료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마음, 배려는 이 영화가 가진 매력 중 적어도 내게는 최고라 할 만하다.
연애, 길을 잃다...
앞에 줄줄이 열거한 대로 는 연애에 대한 까칠한 관찰이기도 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극단을 보여주는 호스티스물이기도 하고, 여성연대를 보여주는 여성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또 그 중 어느 하나도 속 시원하게 풀어내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고 만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게 남는 영화이기도 하다.
조금만 더 그녀들의 구체적인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면, 아마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연애
그저께 를 보았다.
는 못 볼 거란 느낌이 들면, 어떻게 해서든 보려는 오기 같은 게 날 극장으로 이끈 영화다.
그저 한번 볼까, 생각했는데... 화요일까지밖에 안 한단다. 그래서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화요일 밤 극장으로 뛰어갔다.
영화를 본 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씨제이와 사이더스가 만든 연애 3부작의 최종 결정판'이란 홍보문구가 눈에 띈다. , , 그리고 ... 그러고 보니 세 편을 다 봤다.
전작 2편에 대한 나의 평은 '엄지손가락 번쩍'이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는?
글쎄...올씨다...이다.
영화 자체로 본다면, 극장을 나올 때의 느낌이 그런대로 좋았던, 괜찮은 영화였다. 그리고, 여러가지 생각도 많이 하게 해주는 영화였고.
그러나 이 영화가 과연 연애 3부작 중 마지막 영화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왜 영화제목을 '연애'라고 지었을까 궁금했으니까.
는 연애영화일까?
물론, 이 영화의 주인공 어진(혹은 윤정)은 연애를 한다. 그리고 흔히 연애영화에 나올 법한 판타지 위에서가 아니라, 지지리 궁상이다 못해 약 먹고 콱 죽는 게 나을 것 같은 현실 위에서 낯선 떨림과 설렘을 경험한다.
연기생활 16년만에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는 배우 전미선은 연애로 도입할 당시, 누구나(판타지 위에 있든 끔찍한 현실 위에 있든) 겪을 수밖에 없는 미묘한 떨림, 어색함을 과장 없이 표현한다.
호기심과 약간의 호감이 담긴 민수(장현성 분)가 던진 "나랑 친구할래요?"는 한번도 제대로 된 연애는 못한 채, 먹기 싫은 과자까지 담겨 있는 종합선물세트같은 결혼부터 치러버린 어진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러나 어진에게 떨림과 흥분을 던져준 "친구할래요?"는 민수에게는 '쿨'하게 손익계산서를 뽑을 수 있는 '편안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연애의 달콤한 흥분 뒤의 끔찍한 대가를 치르고 어진은 다시 혼자가 되지만, 살아있는 한 마지막 연애란 없다는 전화친구 하늘(김유석 목소리)의 말대로, 어진의 연애는 여기서 끝이 아닐 듯하다.
연애란, 어진처럼 끔찍한 파국을 겪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비극적 종말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미친 짓, 인 결혼으로 막을 내리든, 사랑이 증오의 감정으로 변질되든, 가슴 아픈 이별로 결말을 내든, 연애의 종착역은 결국 언해피엔딩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기에, 두렵지만 설레는 연애를 기다리고 갈망하고, 또 그런 기회가 오면 몸과 마음을 내던진다. 연애는, 그래서 미친 짓이기도 한 것이다.
는 호스티스물일까?
그리 많이 보지 않았으나 80년대를 주름잡던 영화장르는 시리즈로 대표되는 호스티스물이다. 지금은 호스티스물이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하는지 임권택 감독의 에서 그 계보는 끊긴 것 같다.
는 끊어진 한국영화의 호스티스물 계보를 잇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카드빚 5백만 원도 갚을 능력이 없는 남편과 사는 어진이 흐르고 흘러 보도방 여자가 된다는 설정은, 이전 호스티스물들이 갖고 있는 설정(가난한 집안을 구하기 위해 시골에서 상경해 공장을 다니다 돈 많이 벌 수 있다는 유혹에 이끌려, 혹은 성폭력 이후 성매매여성이 된다는 식의)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1980년대에서 2000년대로 시간이 흐른 만큼 10대 말 20대 초의 여자가 아니라 30대 기혼여성이 그 주인공이란 점, 결혼한 아줌마 성매매여성 수요가 유흥가의 노래방 수만큼이나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점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전의 호스티스물들이 짓밟힌(?) 성매매여성의 절규를 통해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발했다면, 의 성매매여성들은 특별히 불쌍한 비련의 여주인공이라기보다 직업여성의 일부로 보인다.
물론, 직업여성의 일부로 보인다고 해서 성매매여성에 대해 '버려진 여자' '걸레'라는 인식이 사라졌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 성매매여성을 짓밟는 가부장적 폭력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욱 강화됐다.
그러나 는 거기에 남자의 계급문제를 하나 더 얹는다. 돈없는 섹스수요자 남성들의 추태와 돈많은 섹스수요자 남성의 고상한 매너와 친절은 확실히 대비된다.(주인공 어진이 돈많은 섹스수요자 민수에게 '연애' 감정을 느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다고 돈많은 섹스수요자 남성의 손을 들어주진 않는다. 민수의 '쿨'한 거래는 돈많은 남성의 면죄부를 한순간에 갈갈이 찢어버린다. 오히려 관계와 믿음, 거기다 자존심의 밑바닥까지 철저히 파괴한다는 점에서 돈많은 남성의 폭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는 성매매여성과 한 남자의 연애와 파국 속에서 간단치 않은(선과 악이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비정함을 드러낸다.
는 여성영화일까?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제일 꽂혔던(!) 부분은 어진의 연애담이 아니었다. 보도방에서 만난 김여사(김지숙 분)와 동료 성모(윤다경 분), 지혜(오윤홍 분) 등 동료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어느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보여주지 못한 자매애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어진을 보도방으로 안내한 김여사는 어진을 성매매여성으로 이끈 포주(!)이지만, 어진을 비롯한 그녀들에게는 든든한 방패막이요, 냉철한 상담자이다. 이 영화를 보며 딱 한번 눈물이 찔끔 났는데, 김여사가 스스로 옷을 벗고 노래를 함으로써 진상들을 퇴치(?)하는 장면에서였다.
물론, 이들에게 꽂힐 수 있었던 건 연극판에서 내놓라 하는 여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력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김지숙이야 이름만 대도 다 아는, 말이 필요 없는 배우고, 윤다경은 '밀애'의 휴게소 매맞는 여자로, 오윤홍은 '강원도의 힘'에서 처음 봤던 그 분위기 있는 배우다.
아무튼, 그녀들의 거침없고 당당함, 동료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마음, 배려는 이 영화가 가진 매력 중 적어도 내게는 최고라 할 만하다.
연애, 길을 잃다...
앞에 줄줄이 열거한 대로 는 연애에 대한 까칠한 관찰이기도 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극단을 보여주는 호스티스물이기도 하고, 여성연대를 보여주는 여성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또 그 중 어느 하나도 속 시원하게 풀어내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고 만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게 남는 영화이기도 하다.
조금만 더 그녀들의 구체적인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면, 아마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2005.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