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신파로 세상을 한방 먹이다

이영주200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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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참 뻔뻔하다. 아예 대놓고 신파를 찍었다.

요즘 세상에 사랑 때문에 죽고 살고 질질 짜는 신파는 욕이나 먹기 십상이란 걸 알고 있으련만, 이 영화는 세간의 평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사랑해”라는 대사를 귀가 닳도록 날리고 “죽고 나서도 사랑할 거야” 같은 닭살 돋는 멘트도 서슴지 않는다.

이 영화의 뻔뻔함은 현대 멜로영화의 교과서처럼 여겨지는 ‘봄날은 간다’를 드러내놓고 비웃는 지경까지 간다. 사랑은 원래 변하는 거야, 변치 않는 사랑은 신파영화에나 나올 법한 구질구질한 소재일 뿐이야, 지금껏 많은 멜로영화들이 신파라는 딱지를 피하기 위해 무장했던 까칠함에게 묻는다. 이래도 너 안 울래? 잘난 척해봤자 너도 신파 앞에선 무릎 꿇고 울 거잖아?

맞다. 감정이입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에이즈 걸린 아내와 끝까지, 죽고 나서도 사랑하겠다는 한 남자의 절규는 관객의 손수건을 축축하게 적신다.

감독은 노골적인 신파야 말로 사랑의 본질이라고, 이성적인 척 똑똑한 척해봤자 눈물 나도록 절절한 사랑, 죽어도 좋을 사랑을 꿈꾸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일갈한다.

이 영화의 뻔뻔함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이거 완전 신파야. 대박감이야" 영화 속 김기자의 대사, 얼마나 기가 막힌지! 자기반영적 대사를 통해 “그래 나 신파 만들었다, 그래서 어쩔 건데?”라고 의기양양하게 되묻는 감독의 자의식 드러내기가 참 얄밉지만 싫지 않다. 나 역시 건조함을 무기로 사랑에 대해 이성적인 척했던 것을, 그러나 내 본능은 변치 않는 절절한 사랑에 꽂히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가지는 또 하나의 미덕은 노골적인 신파 뒤에서 지금껏 금기나 다름없었던, 입에 올리기조차 더러웠던(!) 혐오질병 에이즈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지구상의 수많은 질병 중 치사율 100%에 치료법이 개발되지 못한 것이 에이즈 하나만이 아니고, 타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전염병 또한 에이즈가 유일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즈는 감염자가 죄인이 되는 특이한 질병이다. 지금껏 티켓다방 종업원이었던 과거마저 사랑으로 감싸주었던 가족과 이웃들마저도 에이즈 판정 이후 뒷덜미에 소금을 뿌리게 만드는 무서운 천벌인 것이다.

왜 유독 에이즈에게만 그토록 냉정한 심판을 내리는 것일까?

내가 내린 결론은 에이즈가 섹스로 감염되는 질병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섹스는 더러운 것이라는 암묵적 성윤리가 에이즈를 질병이 아닌 범죄로 만들었다고 본다.

또한 에이즈를 감염시키는 적극적 행위자는 성매매업소에 가서 콘돔을 거부하며 페니스를 들이대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범죄의 책임이 여자에게로 돌려진다. 보건소의 정기검진은 여자의 몫이고 검진을 받지 않거나 보건증을 위조할 경우 정상참작도 없이 실형이다.

에이즈는 단지 후천성면역결핍증이라는 질병이 아니라 섹스에 대한, 여자의 몸에 대한 주홍글씨다.

 

뻔뻔한 신파로 짐짓 까칠한 이성의 소유자인 척 점잔을 떨던, 소위 식견 있는 이들을 한방 먹인 영화 . 순결한 무균 섹스의 조건인 일부일처제를 위해 성매매는 필요악이라 주장하며 문란한 섹스에 대한 천벌인 에이즈의 책임은 사창가 여자에게 모두 떠넘겨 버리는 세상에 대해 다시 통쾌한 한방을 날린다. 감독의 배포에 박수를 보낸다.

/월간 '평화와 참여'에 기고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