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 때 쯤 국민학교에서는 운동회 연습이 한창이었습니다.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운동회는 모두의 잔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흥겨운 잔치에 끼이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제 친구의 이야기를 동화로 엮었습니다.
운동회는 읍내 잔치였습니다. 온 가족이 음식을 싸들고 학교운동장에 모였습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새벽밥을 먹고 학교에 갔습니다. 만국기가 가을하늘 높이 휘날렸고 운동장 구석구석에는 술과 국밥, 팥죽 따위를 파는 리어카가 즐비했습니다. 어쩌면 아이들보다 어른들의 잔치날처럼 보였습니다.
모두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지만 명술이는 운동회가 싫었습니다. 운동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4학년 때 입었던 옷은 너무 작아 올해는 입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명술이 아버지는 운동복을 사주지 않았습니다. 운동회 날 한번 입고 말 것을 뭣하러 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명술이는 아버지가 무서워 어머니한테만 졸랐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돈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운동복 살 돈이 없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때는 그렇게 가난한 집들이 많았습니다.
운동회 전날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신이 나서 떠들었지만 명술이는 풀이 죽어 땅만 쳐다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 뒷산에 올라 하늘을 쳐다봤습니다. 지난 운동회때 달리기경기서 2등을 했던 장면이 푸른 하늘에 펼쳐졌습니다. 1등과는 정말 한뼘 차이였습니다. 상으로 연필 두 자루를 받았습니다. 올해는 꼭 1등을 하고 싶었는데 학교에 갈 수도 없다니…. 분한 마음이 복받쳐 올라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부엌에서 일하는 어머니는 쳐다보지도 않고 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요? 웃목에 까만 운동복 바지가 놓여있었습니다. 윤기가 자르르 흘렀습니다. 명술이는 입이 헤 벌어졌습니다. 바지를 들고 부엌으로 쫓아갔더니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면서 손가락 하나를 입술에 댔습니다.
올해도 아버지는 운동회에 오지 않았습니다. 점심때 어머니만 들러 도시락을 전해주고는 이내 돌아갔습니다. 달리기경기는 오후에 벌어졌습니다. 명술이는 어머니를 위해 꼭 1등을 하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명술이는 이를 악물고 뛰어 여덟 명 중에서 1등을 했습니다. 팔뚝에 1등이란 도장이 찍혔고 그 도장을 선생님께 내보이자 제법 두툼한 공책을 상으로 주었습니다.
1등이란 도장이 지워질까봐 팔뚝 위에 모래를 끼얹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날은 명술이네 청군이 백군을 이겼습니다. 정말 기분좋은 날이었습니다. 최고의 날이었습니다. 운동회가 끝나고 끼리 끼리 집으로 향했습니다. 식구가 많은 집은 열 명도 넘게 무리지어 돌아갔습니다. 명술이는 그런 모습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에게 달려가 팔목의 도장을 자랑했습니다. 어머니는 활짝 웃으면서 명술이의 머리를 쓸어주었습니다. 명술이는 행복했습니다.
운동회가 있은지 보름쯤 지난 후에 일입니다. 명술이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차로 한 정거장인 초강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갑자기 명술이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한테는 친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딱 한 벌뿐인 양복을 걸쳤는데, 아버지를 따라 나서는 어머니는 몸빼 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눈을 흘기며 "아니 지금 논에 가는 것이여 뭐여?" 하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그냥 가자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올 봄에 산 뽀쁘링(포플린) 치마는 모셔둘라고 산 것이여?"하고 호통을 쳤습니다. 어머니도 나들이옷으로는 그 뽀쁘링 치마 한벌 뿐이었습니다. 명술이 어머니는 우물쭈물하더니 "손을 탔는가… 암만 찾아도 없네"하고 말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명술이는 짚히는 게 있었습니다. 유난히 촉감이 좋았던 운동복 바지. 뽀쁘링(포플린) 치마로 어머니는 명술이의 운동복을 지은 것입니다. 혀를 끌끌 차는 아버지를 따라, 허드레 몸빼를 입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찾아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슬퍼 보였습니다.
뽀쁘링 운동복
뽀쁘링 운동복
이맘 때 쯤 국민학교에서는 운동회 연습이 한창이었습니다.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운동회는 모두의 잔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흥겨운 잔치에 끼이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제 친구의 이야기를 동화로 엮었습니다.
운동회는 읍내 잔치였습니다. 온 가족이 음식을 싸들고 학교운동장에 모였습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새벽밥을 먹고 학교에 갔습니다. 만국기가 가을하늘 높이 휘날렸고 운동장 구석구석에는 술과 국밥, 팥죽 따위를 파는 리어카가 즐비했습니다. 어쩌면 아이들보다 어른들의 잔치날처럼 보였습니다.
모두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지만 명술이는 운동회가 싫었습니다. 운동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4학년 때 입었던 옷은 너무 작아 올해는 입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명술이 아버지는 운동복을 사주지 않았습니다. 운동회 날 한번 입고 말 것을 뭣하러 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명술이는 아버지가 무서워 어머니한테만 졸랐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돈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운동복 살 돈이 없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때는 그렇게 가난한 집들이 많았습니다.
운동회 전날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신이 나서 떠들었지만 명술이는 풀이 죽어 땅만 쳐다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 뒷산에 올라 하늘을 쳐다봤습니다. 지난 운동회때 달리기경기서 2등을 했던 장면이 푸른 하늘에 펼쳐졌습니다. 1등과는 정말 한뼘 차이였습니다. 상으로 연필 두 자루를 받았습니다. 올해는 꼭 1등을 하고 싶었는데 학교에 갈 수도 없다니…. 분한 마음이 복받쳐 올라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부엌에서 일하는 어머니는 쳐다보지도 않고 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요? 웃목에 까만 운동복 바지가 놓여있었습니다. 윤기가 자르르 흘렀습니다. 명술이는 입이 헤 벌어졌습니다. 바지를 들고 부엌으로 쫓아갔더니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면서 손가락 하나를 입술에 댔습니다.
"쉬잇."
아빠가 알면 큰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운동복을 입어봤더니 감촉이 기가 막히게 좋았습니다. 나이롱처럼 뻣뻣하지도 않았습니다.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올해도 아버지는 운동회에 오지 않았습니다. 점심때 어머니만 들러 도시락을 전해주고는 이내 돌아갔습니다. 달리기경기는 오후에 벌어졌습니다. 명술이는 어머니를 위해 꼭 1등을 하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명술이는 이를 악물고 뛰어 여덟 명 중에서 1등을 했습니다. 팔뚝에 1등이란 도장이 찍혔고 그 도장을 선생님께 내보이자 제법 두툼한 공책을 상으로 주었습니다.
1등이란 도장이 지워질까봐 팔뚝 위에 모래를 끼얹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날은 명술이네 청군이 백군을 이겼습니다. 정말 기분좋은 날이었습니다. 최고의 날이었습니다. 운동회가 끝나고 끼리 끼리 집으로 향했습니다. 식구가 많은 집은 열 명도 넘게 무리지어 돌아갔습니다. 명술이는 그런 모습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에게 달려가 팔목의 도장을 자랑했습니다. 어머니는 활짝 웃으면서 명술이의 머리를 쓸어주었습니다. 명술이는 행복했습니다.
운동회가 있은지 보름쯤 지난 후에 일입니다. 명술이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기차로 한 정거장인 초강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갑자기 명술이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한테는 친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딱 한 벌뿐인 양복을 걸쳤는데, 아버지를 따라 나서는 어머니는 몸빼 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눈을 흘기며 "아니 지금 논에 가는 것이여 뭐여?" 하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그냥 가자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올 봄에 산 뽀쁘링(포플린) 치마는 모셔둘라고 산 것이여?"하고 호통을 쳤습니다. 어머니도 나들이옷으로는 그 뽀쁘링 치마 한벌 뿐이었습니다. 명술이 어머니는 우물쭈물하더니 "손을 탔는가… 암만 찾아도 없네"하고 말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명술이는 짚히는 게 있었습니다. 유난히 촉감이 좋았던 운동복 바지. 뽀쁘링(포플린) 치마로 어머니는 명술이의 운동복을 지은 것입니다. 혀를 끌끌 차는 아버지를 따라, 허드레 몸빼를 입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찾아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슬퍼 보였습니다.
이제 그때 어머니보다 더 나이가 든 명술이는 그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택근 동화집 `벌거벗은 수박도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