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동안 겪게 되는 '관계맺음'들 가운데, 특별히 나무에 칼로 새기기라도 한 듯 옹골차게 박히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은 다른 것들과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반짝거리는 색채가 덧입혀져, 결국에는 보석같은 기억으로 가슴 속에서 오래도록 빛나게 되는 것이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하나쯤은 있다. 직사광선이 현기증이라도 일게 할 것 같은 한여름. 학교 뒤뜰에 아담히도 세워져있는 원두막. 자습 도중에 쉬러 나온 현실감 없는 교복 둘. 표면적인 연결고리는 없으나 아는 사이. 그리고. 그리고. 대화. '나와 친구할래? 그냥 친하게 지내자는 의미가 아니야, 내가 네 인생의 무대 위로 뛰어들어도 되겠느냐는 말이지.'
그녀가 내건 조건은 단 하나-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줄 것.
정중하고 도발적인 제안. 그러나 이 얼마나 어려운 조건이란 말인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온전하고, 오롯하게 바라보려는 마음을 의식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첫인상과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만으로 그의 성격 전부를 단정하지 않고, 특별히 낙관도 비관도 기대도 부담도 주지 않으면서 믿어주는 것. 내 가족, 특징, 환경, 관계 이런 것들과 무관한 나 자신을 보아줄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이 섞여 있는 '나'를 이해해 줄 것.
"어느 쪽이 나쁜지는 보기만 해도 아니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아준다는 것. 지난 23화에 등장한 카사노다에 대한 모리노즈카(혹은 테츠야)의 말이라든가, 오란고교 호스트부원들에게 있어서 타마키가 의미있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아, 물론 하루히도. 하루히의 뼈있는 통찰(...)은 아무래도 평상심을 가장한 무심한 관찰-마치 거울 같은-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싶지만.
하루히의 무자각형 대 서비스
이 아가씨는 도대체가 유일한 히로인이면서 주인공다운 구석은 한군데도 없다. 오히려 다른 호스트 부원들에 비해 존재감이...라기보다는, 호스트 부원들이 역할에 따라 성격이 팍팍 차이나는 것에 비하면 좀 개성이나 욕구가 희박하다고나 할까. 그게 아마도 이 집단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흐르는 물이나 반사경처럼 균형을 잡아주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카오루의 가설대로 이 개성넘치는 팀의 균형에는 타마키의 무자각이 기여하는 바가 상당하지만, 그와 만만치 않은 것이 하루히의 무반응과 무관심이다. 만약 하루히가 여타 순정만화에 등장하는 '주변에 항상 남자들이 끊이지 않으며', '꼭 그 사이에 끼어서 내적 갈등을 겪어야 직성이 풀리고', '여성스러움을 풀풀 날리는' 히로인이었다면, 아마도 호스트 부원들을 한 화에 한명씩 갈아치우는 하렘물이 되지 않았을까.
원작에서는 굳이 그런 부분을 강조하지 않아서 쟨 도대체 주인공인데 뭐하고 있다니 싶었는데, 그 부분을 오히려 애니에서는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복을 타고 나야 자기 작품을 뛰어넘는 2차 창작을 보게 될 수 있는건지, 그런 의미에서 원작자가 쪼끔 부럽다. 애니 나오기 훨씬 전에 제목에 낚여서 원작을 봤었는데 보다가 지겨워서 죽는 줄 알았다. 오히려 애니화 되니깐 개그센스가 확 살더만. 이보다 훨씬 나은 한국만화들은 애니 시장이 없어서 애니화 되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쪼금이 아니라 부러워 미치겠다. OTL
열혈 바보의 근성을 가진 이 왕자삘의 소년. 그의 본성이 오른쪽 얼굴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깊이와 진지함에 있다 속단하지 말자. 어쩌면 반대로 가끔 드러나는 저 모습이 대외용이고, 나머지는 뼛속까지 열혈바보일 수도 있으니까. 일반적인 왕자 캐릭터라면 '열혈의 탈을 쓴 부드러운 남자'가 맞겠지만, 이 녀석은 벌써 몇 번인가, 어디부터 어디까지 바보인줄 헤아릴 수조차 없는 바보스러움을 이미 여러 번 보였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
제멋대로 남들을 휘두르는 주제에 자기 마음 하나 제대로 모르는(정말 23화에서 뒤집어지는 줄 알았음OTL) 타마키는 분명 카오루나 쿄우야의 평대로 '大바보'가 맞지만, 악의나 사심이라곤 없는 그 바보스러운 순수함 때문에 도대체 미워할 수가 없다. 오히려 사랑스럽기까지한데, 그 사랑스러움이 뻔뻔할 정도의 추진력, 그리고 낙천성과 결합해 호스트부의 '킹같지 않은 킹' 즉, 군림하지 않는 킹이면서도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것이다.
괴롭혀도 되지만 어쨌든 퓨어(...) 소년
현란한 몸 동작과 말솜씨 때문에 종종 순수하다는 것을 잊게 되는 이 퓨어소년(도대체 어디의 어느 퓨어소년이 '유리잔을 내려놓을 때는 새끼손가락으로 원 쿠션...'같은 기술을 가르치냔 말이다 OTL)의 최대 장점이자 무기는 흑심이 없는 만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데 있다. 어느 기업 사장의 영애라거나, 누구 자식이라거나, 전교 1등이라거나, 혹은 깡패라거나, 심지어는 중딩이든 초딩이든 나이도 상관하지 않고 모두 같은 레벨에서 본다. 어쩌면 그것은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의 출신성분을 언급하기 미묘한 위치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스오우 가의 아들이니 그닥 꿇릴 것도 없고...나머지는 호스트에, 정신연령은 초딩부터 마담까지 맞먹을 수준이니 말 다했지.
여하튼, 한가닥 한다는 가문의 콧대 놓은 자식들이 줄줄이 호스트부에 낚인데(의기투합이라고 말하기도 찜찜할 정도로 타마킹에게 낚인 것처럼 보인다..)에는 타마키의 주위를 개의치 않는 저돌성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최종적으로 그들이 YES라고 말하게 되는 것은 이 퓨어 바보 소년이 가지고 있는 직관력 때문이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대왕바보마마 타마키가 어째서 그런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그의 과거가 대대적으로 밝혀진 바 없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경험에서 기인한다고 말할 수 없다. 단순히 바보라 직구 승부만 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묘하게 설득력 있다는게 슬프다), 어쨌거나 타마키는 마음에 응어리 내지는 갈등거리를 가지고 있는 쿄우야, 쌍둥이, 하니노즈카(+모리는 덤)를 차례로 설득한다. '형들을 넘어서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돼. 삼남이라는 틀 속에서 나오지 않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건 너 자신이잖아(쿄우야)', '지금 나에게는 무리지만 언젠가는 꼭 구분해내 줄게(쌍둥이)', '진정한 강함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하니)' 이라고.
'넌 바보면서 어떻게 나를 꿰뚫어보는 거야!!'
물론 화가 날 수도 있다. 자존심이 드높은 쿄우야의 경우에는 화부터 냈다. 그럴만도 하지.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알 수도 없는 이 재벌 그룹의 축복받은 서자, 세째 아들로 태어났기에 가문을 이을 수 없는 자신과는 입장이 정반대라 가장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거(기대도 안했다는게 조금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던 녀석, 거기다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바보 자식이 자기가 듣고 싶었던 말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데에야 '뭐, 이런 게 다 있어?' 싶기도 할 것이다. 거기다 자기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경우, 평소 내심 '날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내 마음을 누가 좀 알아줘.' 하고 있더라도 정작 저런 허술해보이는 사람한테 정곡을 찔리면 발끈하게 마련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똑바로 바라봐주는 눈은 기쁘지 않은가. 출신과 성별, 내가 걸치고 있는 옷이나 말솜씨, 마음과 다른 행동들을 넘어서 진짜 나 를 알아봐 주고,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해주는 것. 비록 그게 너무 진지해서 좀 닭살돋을 정도라도 말이다. 옆에 있으면 휩쓸릴 수밖에 없는 제멋대로임(개인적으로는 이런 타입 좋아하지 않는다. 절대로)에도 중요한 것 하나만은 제대로 알아볼 줄 안다는 것 때문에 이 바보는 어떤 면에서 의 '토오루 파워'를 겸비(...소량이다...소량..orz 이 바보에게 토오루는 너무 아까워orz)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본인에게 말하면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게 될테니, 쉿!
네 진짜 모습을 인정해.
그대로 계속 살아도 좋아.
그리고 함께 걸어나가자.
"같이 부를 만들자"
타마키가 다정한 말 몇 마디로 호스트부원들을 구원했을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누군가를 구하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일 테니까. 다만 타마키는 그 계기를 주고, 먼저 손을 내밀어 줌으로써 홀로 걸어야하는 그 여정을 외롭지 않게 해주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고작 말 한마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말 한마디를 누군가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순간에 딱 맞춰 던질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그것은 그만큼 그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나'를 지켜봐 주었음을 반증한다.
내가 나답게 있는 것, 그래서 너를 너답게 보아주는 것. 서로에게 먼저 손 내밀어 주는 것.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답게 걸어가는 것. 때로 사람은 나 이외의 다른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 주거나, 이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안을 받는가. 그리고 그런 순간들은 또 다른 내일을 걸을 수 있는 힘을 주며 가슴 속에서 오래동안 반짝거리게 된다.
타마키 처방 전->처방 후의 쿄우야
그 결과, 이 차갑고 냉혈함을 표방(만)하던 남자는 이 무대책 호스트킹에게 낚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감화되어 이렇게까지 변모한다. 과거 회상 속에 보이는 가식적인 웃음이나 어두운 면과 그 이후의 미소에서 보이는 깊이는 얼마나 다른가.
어쩌면 '친구가 되자', '나의 무대로 올라와'라는 그 초대의 손을 거절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접근하는 학생들을 '인간'이 아니라 '어느 회사 사장의 둘째 아들'로 인식하고 애초에 마음을 나누는 친구를 만들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리고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세계에서 지금과 같은 미소를 지을 수도 없었겠지. 그 시절의 쿄우야는 분명, 그의 누나가 정리한답시고 옷장을 뒤지다가 엉망으로 만드는 행동에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해봤자 물리적인 결과가 뻔한 것에 도전 정신을 불태우는 타입이 아니니까. 그러나 그 무의미해보이는 행동에 누님의 애정이라는, 혹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 자신이지 타인이 아니다. 스스로 걸어온 시간을 의미있고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며, 타마키에 의해 비로소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된 쿄우야는 비로소 자신이 만든 틀 밖으로 전진할 수 있게 된다. 나머지는...알아서 잘 하겠지. 친구들이 생겼으니까.
그리하여 둘은 친구가 되었고, 밟고 밟히면서도 깔깔거릴 수 있는 매우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라는 바람직한 이야기. 호스트가 아닌 '동갑내기 친구'로서의 타마키를 볼 수 있는 희귀한(..) 장면이다. 목소리 연기도 어찌나 좋던지. 심각한 네타가 될 것 같아서 여기에는 넣지 않은 24화의 하이라이트 장면 외에 이 부분도 꽤 보기 좋은 장면이다. (본 분은 아실 듯...아, 사랑스러운 타마킹//-//, 얘 왤케 귀여워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던 4(+1 모리선배 자꾸 까먹어서 미안...)명의 학생들을 호스트부로 끌어낸 것이 타마킹이라 치면, 이후에 한번 더 호스트부 밖의 세계로 레벨업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게 저 무심한 하루히여야 할 것 같은데. 퍽 쟁쟁한 사람들을 옆에 두고서도 꿈쩍않는 쇠심줄같은 무신경함(어찌보면 감정이 억눌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게 거의 습관이나 성격으로 굳어져서, 원..)은 대체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궁금하지만 이제 완결까지 2화밖에 안 남았다. 그러게 괜히 쓸데없는 '즈카부'스토리는 2화씩이나 넣었는지 모르겠다.
덤으로, 순간적으로 지나가지만 이 부분 마음에 든다. 기억이 맞다면 지금까지 본 연재분에는 없는 부분(...틀릴수도 있습니다). 원작의 쿄우야 얘기에서 위화감이 느껴지는게 있다면 '막내(삼남)가 아니었다면'이라는 가정에 숨어있는 '사실은 내가 더 뛰어난데.'라는 듯한 어조이다. 확실히 쿄우야는 유능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과연 형들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일까. 정말로 형들이 쿄우야가 생각한 대로 집안에서 정해준 탄탄대로를, 별 고민이나 걱정 없이 완벽하게 보장받은 채로 걸어왔다면 이 퓨어(..)소년의 연주를 듣고 감동해서 눈물을 흘린다든가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감수성마저 매우 '우수'하다는 식의 설정이 아니라면)말이다. 물론 쿄우야 아버지의 프레셔는 좀 잘못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마 쿄우야가 '우수한 사람들'이라 단정짓는 그 형들도 자기들만의 수라장을 겪었을 것이고, 제각기 갈등과정을 거쳐서 그 자리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 한 장면으로 그런 설명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문제와 사정은 있다. 그리고 자기 위치에서 필사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것을 이해해줄 수 있는 깊이와 넓이를 가지게 되어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게 아닐까. 어쩌면 이런 생각도 내 기준에서 본 것 뿐으로,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는 사람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오란고교호스트부] 타마키, 이 퓨어소년의 사랑스러움
쿄우야같이 냉정한 타입에게 이렇게 반짝반짝하는 영상으로 기억되는 인간은 흔치 않을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타마키 이 녀석은 역시 꽤 용자(...)로군요.
타마킹 만세 (24화 미리니름 째끔 있을지도)
일생동안 겪게 되는 '관계맺음'들 가운데, 특별히 나무에 칼로 새기기라도 한 듯 옹골차게 박히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은 다른 것들과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반짝거리는 색채가 덧입혀져, 결국에는 보석같은 기억으로 가슴 속에서 오래도록 빛나게 되는 것이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하나쯤은 있다. 직사광선이 현기증이라도 일게 할 것 같은 한여름. 학교 뒤뜰에 아담히도 세워져있는 원두막. 자습 도중에 쉬러 나온 현실감 없는 교복 둘. 표면적인 연결고리는 없으나 아는 사이. 그리고. 그리고. 대화. '나와 친구할래? 그냥 친하게 지내자는 의미가 아니야, 내가 네 인생의 무대 위로 뛰어들어도 되겠느냐는 말이지.'
그녀가 내건 조건은 단 하나-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줄 것.
정중하고 도발적인 제안. 그러나 이 얼마나 어려운 조건이란 말인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온전하고, 오롯하게 바라보려는 마음을 의식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첫인상과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만으로 그의 성격 전부를 단정하지 않고, 특별히 낙관도 비관도 기대도 부담도 주지 않으면서 믿어주는 것. 내 가족, 특징, 환경, 관계 이런 것들과 무관한 나 자신을 보아줄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이 섞여 있는 '나'를 이해해 줄 것.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아준다는 것. 지난 23화에 등장한 카사노다에 대한 모리노즈카(혹은 테츠야)의 말이라든가, 오란고교 호스트부원들에게 있어서 타마키가 의미있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아, 물론 하루히도. 하루히의 뼈있는 통찰(...)은 아무래도 평상심을 가장한 무심한 관찰-마치 거울 같은-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싶지만.
이 아가씨는 도대체가 유일한 히로인이면서 주인공다운 구석은 한군데도 없다. 오히려 다른 호스트 부원들에 비해 존재감이...라기보다는, 호스트 부원들이 역할에 따라 성격이 팍팍 차이나는 것에 비하면 좀 개성이나 욕구가 희박하다고나 할까. 그게 아마도 이 집단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흐르는 물이나 반사경처럼 균형을 잡아주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카오루의 가설대로 이 개성넘치는 팀의 균형에는 타마키의 무자각이 기여하는 바가 상당하지만, 그와 만만치 않은 것이 하루히의 무반응과 무관심이다. 만약 하루히가 여타 순정만화에 등장하는 '주변에 항상 남자들이 끊이지 않으며', '꼭 그 사이에 끼어서 내적 갈등을 겪어야 직성이 풀리고', '여성스러움을 풀풀 날리는' 히로인이었다면, 아마도 호스트 부원들을 한 화에 한명씩 갈아치우는 하렘물이 되지 않았을까.
원작에서는 굳이 그런 부분을 강조하지 않아서 쟨 도대체 주인공인데 뭐하고 있다니 싶었는데, 그 부분을 오히려 애니에서는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복을 타고 나야 자기 작품을 뛰어넘는 2차 창작을 보게 될 수 있는건지, 그런 의미에서 원작자가 쪼끔 부럽다. 애니 나오기 훨씬 전에 제목에 낚여서 원작을 봤었는데 보다가 지겨워서 죽는 줄 알았다. 오히려 애니화 되니깐 개그센스가 확 살더만. 이보다 훨씬 나은 한국만화들은 애니 시장이 없어서 애니화 되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쪼금이 아니라 부러워 미치겠다. OTL
열혈 바보의 근성을 가진 이 왕자삘의 소년. 그의 본성이 오른쪽 얼굴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깊이와 진지함에 있다 속단하지 말자. 어쩌면 반대로 가끔 드러나는 저 모습이 대외용이고, 나머지는 뼛속까지 열혈바보일 수도 있으니까. 일반적인 왕자 캐릭터라면 '열혈의 탈을 쓴 부드러운 남자'가 맞겠지만, 이 녀석은 벌써 몇 번인가, 어디부터 어디까지 바보인줄 헤아릴 수조차 없는 바보스러움을 이미 여러 번 보였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
제멋대로 남들을 휘두르는 주제에 자기 마음 하나 제대로 모르는(정말 23화에서 뒤집어지는 줄 알았음OTL) 타마키는 분명 카오루나 쿄우야의 평대로 '大바보'가 맞지만, 악의나 사심이라곤 없는 그 바보스러운 순수함 때문에 도대체 미워할 수가 없다. 오히려 사랑스럽기까지한데, 그 사랑스러움이 뻔뻔할 정도의 추진력, 그리고 낙천성과 결합해 호스트부의 '킹같지 않은 킹' 즉, 군림하지 않는 킹이면서도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것이다.
현란한 몸 동작과 말솜씨 때문에 종종 순수하다는 것을 잊게 되는 이 퓨어소년(도대체 어디의 어느 퓨어소년이 '유리잔을 내려놓을 때는 새끼손가락으로 원 쿠션...'같은 기술을 가르치냔 말이다 OTL)의 최대 장점이자 무기는 흑심이 없는 만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데 있다. 어느 기업 사장의 영애라거나, 누구 자식이라거나, 전교 1등이라거나, 혹은 깡패라거나, 심지어는 중딩이든 초딩이든 나이도 상관하지 않고 모두 같은 레벨에서 본다. 어쩌면 그것은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의 출신성분을 언급하기 미묘한 위치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스오우 가의 아들이니 그닥 꿇릴 것도 없고...나머지는 호스트에, 정신연령은 초딩부터 마담까지 맞먹을 수준이니 말 다했지.
여하튼, 한가닥 한다는 가문의 콧대 놓은 자식들이 줄줄이 호스트부에 낚인데(의기투합이라고 말하기도 찜찜할 정도로 타마킹에게 낚인 것처럼 보인다..)에는 타마키의 주위를 개의치 않는 저돌성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최종적으로 그들이 YES라고 말하게 되는 것은 이 퓨어 바보 소년이 가지고 있는 직관력 때문이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대왕바보마마 타마키가 어째서 그런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그의 과거가 대대적으로 밝혀진 바 없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경험에서 기인한다고 말할 수 없다. 단순히 바보라 직구 승부만 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묘하게 설득력 있다는게 슬프다), 어쨌거나 타마키는 마음에 응어리 내지는 갈등거리를 가지고 있는 쿄우야, 쌍둥이, 하니노즈카(+모리는 덤)를 차례로 설득한다. '형들을 넘어서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돼. 삼남이라는 틀 속에서 나오지 않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건 너 자신이잖아(쿄우야)', '지금 나에게는 무리지만 언젠가는 꼭 구분해내 줄게(쌍둥이)', '진정한 강함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하니)' 이라고.
물론 화가 날 수도 있다. 자존심이 드높은 쿄우야의 경우에는 화부터 냈다. 그럴만도 하지.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알 수도 없는 이 재벌 그룹의 축복받은 서자, 세째 아들로 태어났기에 가문을 이을 수 없는 자신과는 입장이 정반대라 가장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거(기대도 안했다는게 조금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던 녀석, 거기다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바보 자식이 자기가 듣고 싶었던 말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데에야 '뭐, 이런 게 다 있어?' 싶기도 할 것이다. 거기다 자기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경우, 평소 내심 '날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내 마음을 누가 좀 알아줘.' 하고 있더라도 정작 저런 허술해보이는 사람한테 정곡을 찔리면 발끈하게 마련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똑바로 바라봐주는 눈은 기쁘지 않은가. 출신과 성별, 내가 걸치고 있는 옷이나 말솜씨, 마음과 다른 행동들을 넘어서 진짜 나 를 알아봐 주고,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해주는 것. 비록 그게 너무 진지해서 좀 닭살돋을 정도라도 말이다. 옆에 있으면 휩쓸릴 수밖에 없는 제멋대로임(개인적으로는 이런 타입 좋아하지 않는다. 절대로)에도 중요한 것 하나만은 제대로 알아볼 줄 안다는 것 때문에 이 바보는 어떤 면에서 의 '토오루 파워'를 겸비(...소량이다...소량..orz 이 바보에게 토오루는 너무 아까워orz)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본인에게 말하면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게 될테니, 쉿!
네 진짜 모습을 인정해.
그대로 계속 살아도 좋아.
그리고 함께 걸어나가자.
타마키가 다정한 말 몇 마디로 호스트부원들을 구원했을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누군가를 구하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일 테니까. 다만 타마키는 그 계기를 주고, 먼저 손을 내밀어 줌으로써 홀로 걸어야하는 그 여정을 외롭지 않게 해주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고작 말 한마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말 한마디를 누군가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순간에 딱 맞춰 던질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그것은 그만큼 그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나'를 지켜봐 주었음을 반증한다.
내가 나답게 있는 것, 그래서 너를 너답게 보아주는 것. 서로에게 먼저 손 내밀어 주는 것.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답게 걸어가는 것. 때로 사람은 나 이외의 다른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 주거나, 이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안을 받는가. 그리고 그런 순간들은 또 다른 내일을 걸을 수 있는 힘을 주며 가슴 속에서 오래동안 반짝거리게 된다.
그 결과, 이 차갑고 냉혈함을 표방(만)하던 남자는 이 무대책 호스트킹에게 낚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감화되어 이렇게까지 변모한다. 과거 회상 속에 보이는 가식적인 웃음이나 어두운 면과 그 이후의 미소에서 보이는 깊이는 얼마나 다른가.
어쩌면 '친구가 되자', '나의 무대로 올라와'라는 그 초대의 손을 거절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접근하는 학생들을 '인간'이 아니라 '어느 회사 사장의 둘째 아들'로 인식하고 애초에 마음을 나누는 친구를 만들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리고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세계에서 지금과 같은 미소를 지을 수도 없었겠지. 그 시절의 쿄우야는 분명, 그의 누나가 정리한답시고 옷장을 뒤지다가 엉망으로 만드는 행동에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해봤자 물리적인 결과가 뻔한 것에 도전 정신을 불태우는 타입이 아니니까. 그러나 그 무의미해보이는 행동에 누님의 애정이라는, 혹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 자신이지 타인이 아니다. 스스로 걸어온 시간을 의미있고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며, 타마키에 의해 비로소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된 쿄우야는 비로소 자신이 만든 틀 밖으로 전진할 수 있게 된다. 나머지는...알아서 잘 하겠지. 친구들이 생겼으니까.
...라는 바람직한 이야기. 호스트가 아닌 '동갑내기 친구'로서의 타마키를 볼 수 있는 희귀한(..) 장면이다. 목소리 연기도 어찌나 좋던지. 심각한 네타가 될 것 같아서 여기에는 넣지 않은 24화의 하이라이트 장면 외에 이 부분도 꽤 보기 좋은 장면이다. (본 분은 아실 듯...아, 사랑스러운 타마킹//-//, 얘 왤케 귀여워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던 4(+1 모리선배 자꾸 까먹어서 미안...)명의 학생들을 호스트부로 끌어낸 것이 타마킹이라 치면, 이후에 한번 더 호스트부 밖의 세계로 레벨업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게 저 무심한 하루히여야 할 것 같은데. 퍽 쟁쟁한 사람들을 옆에 두고서도 꿈쩍않는 쇠심줄같은 무신경함(어찌보면 감정이 억눌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게 거의 습관이나 성격으로 굳어져서, 원..)은 대체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궁금하지만 이제 완결까지 2화밖에 안 남았다. 그러게 괜히 쓸데없는 '즈카부'스토리는 2화씩이나 넣었는지 모르겠다.
덤으로, 순간적으로 지나가지만 이 부분 마음에 든다. 기억이 맞다면 지금까지 본 연재분에는 없는 부분(...틀릴수도 있습니다). 원작의 쿄우야 얘기에서 위화감이 느껴지는게 있다면 '막내(삼남)가 아니었다면'이라는 가정에 숨어있는 '사실은 내가 더 뛰어난데.'라는 듯한 어조이다. 확실히 쿄우야는 유능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과연 형들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일까. 정말로 형들이 쿄우야가 생각한 대로 집안에서 정해준 탄탄대로를, 별 고민이나 걱정 없이 완벽하게 보장받은 채로 걸어왔다면 이 퓨어(..)소년의 연주를 듣고 감동해서 눈물을 흘린다든가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감수성마저 매우 '우수'하다는 식의 설정이 아니라면)말이다. 물론 쿄우야 아버지의 프레셔는 좀 잘못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마 쿄우야가 '우수한 사람들'이라 단정짓는 그 형들도 자기들만의 수라장을 겪었을 것이고, 제각기 갈등과정을 거쳐서 그 자리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 한 장면으로 그런 설명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문제와 사정은 있다. 그리고 자기 위치에서 필사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것을 이해해줄 수 있는 깊이와 넓이를 가지게 되어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게 아닐까. 어쩌면 이런 생각도 내 기준에서 본 것 뿐으로,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는 사람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원본은 http://ladywitch.egloos.com으로 오시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