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하다 평강하다

손세종200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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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하다 평강하다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개역-렘6:14) 이 구절은 성경책에 없는것 처럼 오늘날 저에겐 너무나 생소하게 다가오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어디선가 많이 들어온 익숙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은혜가 넘친다. 기쁨이 넘친다. 라고 다들 말하고 그렇게 평가하고 그러한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흐르는데 비하여 내 마음 깊숙한 곳에는 전혀 노력하지 않아도 강같은 평화가 마음에서 생수처럼 흘러나올때 가 있었던 예전과는 달리, 전혀 은혜가 안되고 기쁨이 예전같지 않고, 답답함과 슬픔과 묶임과 무거움이 가득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다. 그것은 교만이다. 너는 평안하다. 평안한 것이 맞다" 라고 말하는 다른 친구나, 다른 분들께서 성경을 보여주고, 조언과 교제와 도전과 격려를 줄 때면, '내가 잠시 사단의 유혹에 빠진걸까?' 하면서 오히려 나를 의심하게 되곤 하였습니다.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앞에 나오는 "평강하다" 라는 말이 2회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말로 평강이 넘치면 반복해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속에서 저절로 우러나기 때문입니다.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강이 말랐기 때문에 더더욱 걱정과 긴장속에 "가뭄이 아니다. 가뭄이 아니다. 곧 나올거야 나올거야" 하는 것입니다. 앞에 나오는 "평강하다 평강하다" 는 외부인의 판단입니다. 나의 병은 내가 잘 압니다. 팔이 아픈지 다리가 아픈지, 위가 아픈지 장이 아픈지, 조금 아픈지 많이 아픈지 자주 아팠는지 갑자기 아픈것인지를 내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말합니다. "괜찮을꺼야. 괜찮을꺼야" "뭐 그정도 가지고 그렇게 엄살이니" "나는 옛날에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 등등의 말을 합니다. 그러한 판단은 본인의 실재와 전혀 틀렸습니다. "평강하다 평강하다. 라고 아무리 말해도 본인 스스로 느끼는 평강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마구 찡얼댑니다. 아빠는 맨날 아이가 찡얼댄다고 미워하고, 오늘도 찡얼대는것이 엄살인것으로 생각하며 울음을 애써 외면합니다. 그러나 엄마는 어제의 찡얼댐이 엄살이었고, 오전의 찡얼댐이 엄살이었어도, 또 먹을 것을 갖다 줍니다. 알면서도 속고 모르면서도 속습니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정말로 배고플떄에 배고픔을 채워주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곤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상대방의 아픔과 상처와 의심과 흔들리는 신앙에 대하여 함부로 평가하지는 않는가 싶습니다. 평가하다 못해 그 잘못된 지식을 강요, 강압, 강제주입을 하는 것입니다. "QT를 안해서 그렇다." "주님과의 교제가 원만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세상을 좋아하게 되서 그만둔 것이다." "요즘 그의 신앙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이와 같은 은혜와 기쁨이 또 어디 있겠니.." "그런식으로 하면 하나님께서 슬퍼하신다." 이와 같은 모든 말은 자기 판단, 자기 생각이지 상대방의 스스로의 생각이 아닙니다.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을 수 있습니다. 평강하다 외치며 평강이 없다는 자에게서 문제를 찾을 것이 아니라, 평강이 없다고 하는데도 평강하다 평강하다 우기거나 세뇌, 미혹, 분위기 주도를 하는 가식적 평강, 가짜 생수, 가짜 평안에게서 문제를 찾아야 합니다. 가식적 평강, 가짜 생수, 가짜 평안이 평안인걸로 착각하는 무지에서 문제를 찾아야 합니다. 자식에게 밥을 굶기면서도 자식이 계속 배가 고프다고 우는데도 니가 선하지 못해서 배가 더 고픈거야 니가 노력하지 못해서 배가 더 고픈거야 라고 말을 합니다. 자식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하여 더 열심히 선을 행하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상하다 이상하다 합니다. 이것을 영적학대라고 합니다. 이 시대에 이러한 영적 지도자가 최소화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