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얼마 전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지 못했다. 아니, 사지 않았다. 공일오비의 새 앨범. 교보문고에 가서 몇 번이나 CD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도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빈 손이었다. 5년 전만 하더라도 조금의 고민도 없이 앨범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을 내 두 손은 좀처럼 앨범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만원이 아까와서였을까. 인터넷을 뒤져 MP3 파일을 찾으려는 것이었을까. 아니, 단순히 애정이 식어서여서일 수도 있다. 어쩌면, 더이상 음악 따윈 필요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는지도.
#2
생각해보면 공일오비를 그렇게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난 장호일이 싫었고, 정석원만을 좋아했다. 정석원이라 하더라도 어느 객원을 쓰느냐에 따라 나의 호/불호가 갈렸다. 예를 들면 김돈규는 싫지만 윤종신은 좋은 식이었다. 김연우가 아닌 토이의 노래는 어색한 것과 같은 이치였다. 곡에 따라서도 달랐다. 은 좋았지만 은 싫었다. 어쨌든 그 당시 나의 베스트는 이승환과 전람회였다. 공일오비는 이승환 무리 중 하나로 좋아하는 정도였다. 어차피 윤종신, 이승환, 이장우, 박정현 등등의 앨범에서 정석원의 이름은 빠지지 않았으니 그를 좋아했다고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정석원의 그 못말리는 감성과 가학적인 가사를 좋아했다. 지금 떠오르는 정석원 최고의 곡들은 공일오비의 수많은 히트곡들 외에도 윤종신과 장혜진의 , 이승환이 부른 6집의 정도.
#3
96년이었나, 6집을 끝으로 그들은 사라졌다. 정석원은 군대를 피하기 위해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고 했다. 대학에 들어가 노래방에 가면 나 를 불렀다. 가끔 누군가 를 부르면 지금쯤 정석원이 사랑했던 그녀의 딸은 도대체 몇 살쯤일까를 상상했다. 차가운 녹두의 밤공기를 마시며 막차를 타기 위해 달리던, 그런 시절이었다.
#4
군대에 가서 백일휴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워크맨을 들고 들어갔다. 일병부터는 내무반 안에서 워크맨을 듣는 것이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챙겨갔던 테이프가 공일오비 6집이었다. . 매일밤 나는 세기말을 노래하던 그 앨범의 노래들을 들으며 잠을 청했다. 리 오스카의 하모니카 연주곡을 들으며 몇 번 울었던 것이 기억난다. 아침까지 머리에 남아있던 가사는 앞쪽 트랙의 독백이었던 "희망은 거짓의 옷을 입고 있다"는 문장이었다.
#5
오늘, 저녁 늦게 집을 나섰다. 이승우의 소설을 사기 위해, 라는 핑계로 산책을 나간 것이었다. 교보문고에 들어선 순간 공일오비의 앨범이 다시 떠올랐다. 갑자기 사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원짜리 CD 한 장을 산다고 해서 내가 스무 살로, 열 다섯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나는 핫트랙스로 들어가 앨범을 집었다. 그리고 계산대로 가져갔다. 그 2미터를 걷는데 2주가 필요했다.
#6
집으로 돌아와 아직 포장을 뜯지도 않은 채로 이렇게 글을 쓴다. 나는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내 생각에 나는 살기 위해, 추억하기 위해, 가라앉아 박제가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서랍 속에서 오래된 CD 플레이어를 꺼내어, 앨범의 포장을 뜯고 10년 만에 돌아온 그들의 노래에 귀 기울여 볼 것이다. 돌아갈 수도, 돌아가고 싶지도 않은 과거에서 돌아온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 밤, 광화문에 땅굴이 있다는 이승우의 소설을 읽어내려갈 생각이다.
015B, 그리고 나
#1
실은 얼마 전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지 못했다. 아니, 사지 않았다. 공일오비의 새 앨범. 교보문고에 가서 몇 번이나 CD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도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빈 손이었다. 5년 전만 하더라도 조금의 고민도 없이 앨범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을 내 두 손은 좀처럼 앨범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만원이 아까와서였을까. 인터넷을 뒤져 MP3 파일을 찾으려는 것이었을까. 아니, 단순히 애정이 식어서여서일 수도 있다. 어쩌면, 더이상 음악 따윈 필요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는지도.
#2
생각해보면 공일오비를 그렇게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난 장호일이 싫었고, 정석원만을 좋아했다. 정석원이라 하더라도 어느 객원을 쓰느냐에 따라 나의 호/불호가 갈렸다. 예를 들면 김돈규는 싫지만 윤종신은 좋은 식이었다. 김연우가 아닌 토이의 노래는 어색한 것과 같은 이치였다. 곡에 따라서도 달랐다. 은 좋았지만 은 싫었다. 어쨌든 그 당시 나의 베스트는 이승환과 전람회였다. 공일오비는 이승환 무리 중 하나로 좋아하는 정도였다. 어차피 윤종신, 이승환, 이장우, 박정현 등등의 앨범에서 정석원의 이름은 빠지지 않았으니 그를 좋아했다고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정석원의 그 못말리는 감성과 가학적인 가사를 좋아했다. 지금 떠오르는 정석원 최고의 곡들은 공일오비의 수많은 히트곡들 외에도 윤종신과 장혜진의 , 이승환이 부른 6집의 정도.
#3
96년이었나, 6집을 끝으로 그들은 사라졌다. 정석원은 군대를 피하기 위해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고 했다. 대학에 들어가 노래방에 가면 나 를 불렀다. 가끔 누군가 를 부르면 지금쯤 정석원이 사랑했던 그녀의 딸은 도대체 몇 살쯤일까를 상상했다. 차가운 녹두의 밤공기를 마시며 막차를 타기 위해 달리던, 그런 시절이었다.
#4
군대에 가서 백일휴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워크맨을 들고 들어갔다. 일병부터는 내무반 안에서 워크맨을 듣는 것이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챙겨갔던 테이프가 공일오비 6집이었다. . 매일밤 나는 세기말을 노래하던 그 앨범의 노래들을 들으며 잠을 청했다. 리 오스카의 하모니카 연주곡을 들으며 몇 번 울었던 것이 기억난다. 아침까지 머리에 남아있던 가사는 앞쪽 트랙의 독백이었던 "희망은 거짓의 옷을 입고 있다"는 문장이었다.
#5
오늘, 저녁 늦게 집을 나섰다. 이승우의 소설을 사기 위해, 라는 핑계로 산책을 나간 것이었다. 교보문고에 들어선 순간 공일오비의 앨범이 다시 떠올랐다. 갑자기 사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원짜리 CD 한 장을 산다고 해서 내가 스무 살로, 열 다섯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나는 핫트랙스로 들어가 앨범을 집었다. 그리고 계산대로 가져갔다. 그 2미터를 걷는데 2주가 필요했다.
#6
집으로 돌아와 아직 포장을 뜯지도 않은 채로 이렇게 글을 쓴다. 나는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내 생각에 나는 살기 위해, 추억하기 위해, 가라앉아 박제가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서랍 속에서 오래된 CD 플레이어를 꺼내어, 앨범의 포장을 뜯고 10년 만에 돌아온 그들의 노래에 귀 기울여 볼 것이다. 돌아갈 수도, 돌아가고 싶지도 않은 과거에서 돌아온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 밤, 광화문에 땅굴이 있다는 이승우의 소설을 읽어내려갈 생각이다.
+
그리고 그날밤,
나는 그들의 노래 때문에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여전하면서도 새로운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또다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