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 수상한 식모들

임효진2006.10.03
조회19

"결론적으로 교양과 인격이 있는 남자가 하녀에게 유혹된다는 것이 이해 못하겠어요."

"그게 남자의 약점이야! 높은 산을 보면 올라가고 싶고, 깊은 물을 보면 돌을 던지고 싶고, 여자를 보면 원시로 돌아가고 싶어."

"듣기 싫어요. 원시가 뭐예요. 솔직히 남자란 야비한 동물이라고 하세요."

이때 하녀가 차를 가지고 나타난다.

 

이 시대를 버티는 현대인의 결정은 베란다에서 자주 이루어지게 된다. 지하실이 사라진 아파트에서 서재가 확보되지 않는 한 개인이 가족 관계를 벗어나 자기의 자리를 차지할 장소는 없다. 그나마 공중에 떠있는 베란다만이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유일한 공간이 된다.

 

현재는 폭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과거 진실한 비밀이 차지했던 자리를 지금은 진실의 겉옷을 입은 거짓말이 대신한다. 언어와 이미지 모두 믿을 수 없는 세계에서 사람들은 살아간다. 사람들은 구강만이 아니라 안구에도 메가폰을 설치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이제 이미지들은 조작되고 왜곡되지만 아름다운 곡선을 지니게 된다. 김완선의 가사처럼 진실은 회색 빌딩 사이로 숨어버린 지 오래다. 부는 순결한 흰색 드레스를 입고 자정의 파티에 참가하고 혁명은 리바이스 청바지의 상표처럼 소비된다. 착취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자선사업 프로그램 선글라스에 의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음성언어는 환상이 제거되는 순간에 삼각김밥보다도 유통기한이 짧아진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수상한 식모들은 순수했다. 그들 중 누구도 어떤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폼을 잡거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무고한 이들을 살인하지는 않았다. 살인과 폭력은 보복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합리화의 꼭지점일 뿐이다. 보복은 좀더 떨어진 자세에서 도도하게 눈을 내리깔고 상대의 무너진 가치관을 비웃는 것이다. 그런 의도로 볼 때 그녀들은 순수하게 보복을 즐겼다.

 

"진짜 보복은 요리와 비슷한 거야."

지씨는 보복에 대해 그리 말했다.

"잘 만든 요리처럼 다양한 재료와 긴 기다림, 그리고 혀끝에 닿을 때처럼 절정이 필요하지. 아름다움이 없는 보복은 그저 야만에 지나지 않아."

 

"애들이니까 쉽게 잊어버릴 거야. 내가 사랑만 해준다면."

뾰족한 시계를 모르시는군.

시간은 결코 모든 짐을 던져놓고 앞으로만 옮겨가는 게 아니다. 반지하방에서 걸려 있는 뾰족한 식칼 시계는 말한다. 잊혀졌다고 생각하겠지만 시간은 언제나 당신을 노리고 제자리를 맴돈다. 당신의 상처와 고동치는 심장을 겨냥하면서.

 

*

마늘과 쑥을 먹고 인내하여 사람이 된 웅녀.

결국 단군을 낳는다.

곰과는 달리,

참지 못하고 뛰쳐나간 호랑이는

호랑아낙이 되었다.

세월은 흘렀고 시대는 변했고 

그들은 '수상한 식모들'로 변신했다.